Poison-Eating Healer RAW novel - Chapter (236)
236화
“흠. 좋긴 좋네.”
이목구비가 제멋대로 생긴 남자가 전용기를 둘러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미국으로 향하는 전용기 안에 제법 많은 인원이 들어차 있었다.
비수를 제외한 이레귤러 멤버 전원.
WHPO 총재인 사일리아와 초월급 헌터 잉센.
그리고 또 한 명.
천해선의 예상을 벗어난 인물이 한 명 있었다.
“무지성이 여길 왜 와?”
“부우우우우우우! 부지성이다. 그리고 형이라고 안 해?”
자꾸만 성씨를 바꿔 다른 아버지를 만들어 주는 천해선을 향해, 부지성이 발작적으로 소리쳤다.
“이쯤 되면 일부러 부르는 거라는 걸 알 때도 되지 않았어? 무 형.”
“빌어먹을 자식……!”
부지성은 손을 부들부들 떨었지만 인내할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힘으로도 안 되겠지만, 이 비행기의 주인을 생각하면 이렇게 고함을 치는 것도 눈치가 보이는 일이었다.
“으음.”
신음 같은 목소리를 내며 사일리아가 몸을 뒤척였다.
놀란 부지성이 용수철처럼 몸을 일으켰지만, 다행히 사일리아는 자세를 바꿔 다시 깊은 꿈에 빠져들었다.
“도로롱.”
귀여운 코골이 소리와 함께.
“알면 알수록 모를 사람이야. 세계를 좌우하는 지체 높은 여왕님이 코를 골면서 잘 줄 누가 알았겠어?”
부지성의 말에 천해선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상태가 말이 아닐 거야. 무 형. 바다에 기름 몇 방울을 스포이트로 떨어뜨리면 어떻게 되겠어?”
“갑자기 그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뭐…… 간에 기별도 안 가겠지.”
“사일리아가 어제 한 훈련이 바로 그런 거야. 어마어마한 에테르 바다에 한 줌도 안 되는 메루스를 퍼트려야 했지. 훈련이 끝난 다음에 마리아와 나 둘이 달라붙어서 치유를 해 줘야 했어. 다행히 급한 불은 껐지만…… 내상은 아직 회복되지 않은 상태야.”
“도로롱.”
사일리아가 천해선의 말에 응답이라도 하듯 코를 골았다.
이를 지켜보는 모든 멤버들이 피식하고 웃었다.
드높은 자존심만큼 열의도 대단한 헌터다.
정작 천해선조차 힘들 것이라 예상했지만 사일리아는 마침내 두 가지 메루스를 손에 넣었다.
비록, 가진 에테르에 비해 사용할 수 있는 메루스의 양은 극히 적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총재가 메루스를 사용할 수 있는 횟수는 제한적이라며?”
“어, 아마 핵심스킬 몇 번 쓰면 뻗게 될 거야.”
“그거 정말 무시무시한 일이군.”
“무시무시해? 마인이?”
그러자 부지성이 검지로 잘생긴 청년 하나를 가리켰다.
“아니! 네놈! 네놈이 무시무시하단 말이다. 초월급 헌터들도 몇 번 쓰고 나동그라지는 메루스를 무한히 사용할 수 있는 네놈!”
“나도 무한정 쓸 수 있는 건 아니야.”
천해선은 피식 웃었지만, 그가 이룩한 성장이 대단한 것은 사실이었다.
이레귤러 팀원들이 트레이닝을 했던 3개월 동안, 천해선도 앉아서 고스톱만 치고 있지는 않았다.
사용자 정보>
Poisner Class Level : 3 – Diviner>
보유 메르스 : 4,521 MRS>
보유 블랙 에테르 : 9,225 BA>
신체 강화 능력 : ‘S’>
치유 능력 : ‘S’>
염동력 : ‘S’>
보유 스킬 : Be-Strike – level 2 / 독보(毒步) – level 3 + ‘SKY WALK’ / 독무(毒霧) – level 2 / 독염(毒焰) – level MAX / 교감(交感) – level 2 / 사자후(獅子吼) – Level 2 / 호신강기(護身罡氣) – level MAX / 독우(毒雨) – level 2 …….>
크라수스 드래곤이 선사해 준 차원의 문을 통해 아니마 밭에서 메루스를 흡수하고, 한편으로는 영계를 테러하러 온 마물들을 죽인 뒤 코어를 손에 쥐었다.
아니마 밭이 보이지 않으면 홀로 던전에 들어가 8성 이상의 몬스터를 때려잡고 골드 코어를 흡수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천해선은 단기간에 자신이 가지고 있던 메루스를 두 배 가까이 늘릴 수 있었다.
이제는 한두 번의 전투로 메루스가 고갈된다거나 하는 일은 없게 된 것이다.
첸이나 잉센, 사일리아처럼 스킬 사용에 제약이 없는 천해선은 마인들에게 있어 가장 경계해야 할 인물이었다.
“흠.”
다시 사일리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에는 코 고는 소리나 잠꼬대가 아니라, 명확하게 의식을 담은 소리였다.
“그봐, 무 형. 그렇게 호들갑을 떠니까 위대하신 총재님이 잠을 깬 거 아냐.”
천해선이 부지성을 나무라자, 사일리아가 기가 막힌 듯 헛웃음을 삼켰다.
“……지금 나 까는 거지?”
“노노.”
“흥. 어쨌거나 잘 잤어. 거의 다 회복된 거 같아.”
“짐승 같은 회복력이네.”
“누가 누구보고 짐승이래?”
사일리아가 천해선을 향해 눈을 치켜떴다.
그러고는 잊은 게 생각났다는 듯 그를 채근했다.
“아까 자고 일어나면 해 줄 말이 있다고 했지? 지금 해 봐.”
‘해 줄 말?’
비행기 안의 모든 헌터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천해선이 해 줄 말이 있다는 건 그들로서도 들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 뭐 대단한 건 아니고.”
천해선이 뒷머리를 긁적이다 이내 히죽 웃었다.
“7층까지 내려가는 동안, 전투에 나서지 마세요.”
“?!”
헌터들의 머리 위로 솟은 물음표에 느낌표 하나가 더해졌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헌터님. 지옥의 계단 초반부는 저희들도 충분히…….”
육철완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철완 아저씨 말씀이 맞아요. 지금 여기 있는 누구도 고작 1, 2층에 어려움을 겪지는 않겠죠. 하지만 차원 간섭은 매번 숨을 내쉬는 순간순간마다 대미지를 줘요. 막상 차원 간섭이 사라지는 7층에 도착했을 때, 한 톨이라도 체력을 비축하는 게 이득이에요.”
“뭔가 말이 이상한데.”
첸이 눈꺼풀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우리들 중에서 핵심 전력은 누가 뭐래도 네놈이다. 가장 힘을 비축해야 할 사람이 혼자서 해결한다는 게 이해가 되질 않는군.”
“간단한 일이야. 나는 차원 간섭을 받지 않으니까. 누군가가 움직여야 한다면 편하게 숨을 쉬는 사람이 움직이는 게 낫지.”
“고작 그것만으로 다른 헌터들을 꿔다 놓은 보릿자루 취급할 수는 없을 텐데.”
“그 정도로는 납득이 안 되나?”
천해선이 조금은 난처한 웃음을 지었다.
그러고는 형형히 눈을 빛내며 말을 이었다.
“조금 더 이유를 추가하자면, 시간 낭비하고 싶지 않아.”
“시간 낭비?”
첸을 비롯한 다른 헌터들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자신들이 몬스터를 처치하는 게 어째서 시간 낭비라는 것인가.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가는 법이야. 내가 최전선에 서서 1층부터 아래층까지 전속으로 돌파하는 게 가장 빨라. 너희들이 7층에서 전력을 다할 수 있도록 길을 틀 거야. 한 층당 돌파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이어진 천해선의 말에 모든 헌터들이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5분도 안 걸린다고 장담하지.”
* * *
“보여야 할 얼굴들이 안 보이네.”
천해선이 조금 이상하다는 듯 전방에 모인 헌터들을 바라보았다.
사일리아가 내린 헌터 ‘소집령’.
그녀의 명령에 따라 각 국가의 랭킹 1위부터 3위까지가 모두 한자리에 모였다.
워낙에 강한 헌터들이 한자리에 모이다 보니, 가만히 서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신의 털이 곤두서는 기분이었다.
“다 너 때문이야. 천해선.”
사일리아가 시니컬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천해선이 ‘내가 왜?’라는 표정을 짓자, 그녀가 설명을 시작했다.
“영국의 로이 히들스터는 아직도 요양 중이야.”
“요양? 걔를 줘팬…… 흠흠, 대련을 한 지가 언젠데 아직도 요양이야?”
“그때 너에게 당했던 게 트라우마로 남은 모양이야. 너도 알다시피, 에스퍼 타입이 내상을 입게 되면 나이트보다 훨씬 회복이 오래 걸리지. 심리적 트라우마까지 겹쳐서 로이 히들스턴은 당분간 전투에 나설 수 없는 상태야.”
비수를 향한 욕정을 제어하지 못하고 세계 헌터 포럼에서 개수작을 부렸던 히들스턴.
그는 천해선에게 반병신이 되어 고국으로 돌아갔고, 좀처럼 치유될 수 없는 내상을 입었다.
“프랑코는?”
그러자 비수가 한숨을 내쉬었다.
“프랑코는 한술 더 떴어. 걔는 아예 헌터 면허를 반납했다.”
“엑.”
영계 탐사단을 선출하기 위해 ‘지옥의 계단’ 테스트를 진행했던 당시.
프랑코는 한국의 이레귤러를 훼방 놓기 위해서 계단 입구에 함정을 설치했다.
어떠한 물건도 무색무취로 만들어 준다는 ‘스텔라’.
그것을 극독을 가진 백사에 발라 넣었던 것.
하지만 세상 만물의 독에 내성이었던 천해선은 너무나도 쉽게 그 함정을 깨부술 수 있었고, 남은 건 처절한 대가뿐이었다.
“생각해 보니 어이가 없군. 너, 헌터가 다른 헌터를 뚜드려 패는 게 얼마나 중범죄인 줄 알아? 대련이 아닌 이상 다른 헌터에게 중상을 입히면 국제 헌터 수용소에 들어가게 된다고.”
그러나 천해선은 귀를 후비며 한쪽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대련이었는데?”
“……망할 자식.”
사일리아가 씹어뱉듯 대답하며 설명을 이어 갔다.
“프랑코도 로이 히들스턴처럼 꽤 큰 타격을 입었다. 문제는 그것뿐만이 아니었어.”
“그럼?”
“래더 총재의 비리가 밝혀졌을 때, 프랑코의 동아줄이었던 WHPO 간부도 옷을 벗었다. 프랑코가 이끄는 길드와 디바이스 제조 업체에 협력할 사람이 없어진 거지. 녀석은 안 그래도 의심하는 눈이 많은 마당에 헌터 생활을 하느니, 대놓고 사업에 집중하는 방법을 택했다.”
“전사가 아니라 사업가의 길을 선택한 거네. 나름 괜찮은 방법일지도.”
돈이 인생의 전부라면.
헌터가 아닌 사업으로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다면 고려해 봄 직한 선택이었다.
천해선 자신이었다면 절대로 하지 않았겠지만.
“과연 괜찮은 방법일까?”
“응?”
천해선에게 되묻는 사일리아의 입가에는 찐득한 악의가 깃들어 있었다.
“내가 WHPO 총재가 되고 나서 가장 먼저 한 일이 바로 그 더러운 짓거리를 청산하는 일이었다. 특히나 현직 헌터와 금전적으로 연결된 디바이스 업체는 아예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막아 놨지. 지금쯤 프랑코는 돈은커녕 빚더미에 시달려서 헌터 알바를 뛰고 있을 거다.”
“허…….”
평소 그녀의 일 처리를 보건대 프랑코가 어떤 에러 사항을 겪었을지 눈에 훤히 들어왔다.
사일리아는 세간의 우려와 달리 총재로 부임한 이후 꽤나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었다.
“자 그럼…….”
사일리아의 시선이 정면을 향한다.
그곳에는 난다 긴다 하는 각 나라의 헌터 정예들이 즐비하게 포진되어 있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들의 얼굴에는 불만이 가득했다.
자국에서 해야 할 일이 많은데, 생전 처음 소집령이라는 걸 접하고 강제로 미국에 와야 했으니 말이다.
“사일리아 총재. 한가하게 잡담이나 나누려고 이 많은 헌터들을 모은 건가?”
콜롬비아의 헌터 파블로가 인사도 없이 날 선 질문을 꺼냈다.
성질 급한 그가 총대를 메었을 뿐, 다른 헌터들의 입장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한 국가당 세 명.
자그마치 300명에 달하는 초일류 헌터들이 한자리에 모였으니, 반드시 합당한 이유를 꺼내야 할 것이다.
제아무리 담대한 인물이라도 이 정도의 압박을 받으면 수세에 몰리기 마련.
그러나 사일리아는 되려 턱을 슬쩍 들어 헌터들을 내려다보았다.
“갑자기 불러서 미안합니다.”
그녀의 사과에 이레귤러는 아연했고, 각국의 헌터들은 기가 막혀 했다.
저게 과연 미안해하는 사람의 행동이란 말인가?
그러나 사일리아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비수가 실종된 헌터, 아니 이제는 키메라가 되었겠군요. 그 키메라들을 전부 각성시키면 영계는 물론이고 인류도 끝장입니다.”
“……무슨 그런……!”
“파블로. 키메라랑 싸워 본 적 있죠?”
사일리아의 말에 파블로의 토실한 볼이 파르르 떨렸다.
과거 콜롬비아에 나타난 한 마리의 키메라를 상대하기 위해 파블로는 죽음 일보 직전까지 갔었다.
길드 전체의 전력을 모두 가동해 간신히 키메라를 저지할 수 있었는데, 놀랍게도 당시의 키메라는 힘이 불안정한 상태였다.
“그런 키메라가 백 마리 넘게, 그것도 각성 상태로 밀려들어 온다고 생각해 보세요. 단언컨대 인류에 있어 지금 같은 위기는 없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 끔찍했던 전투가 생각나서일까.
파블로는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도 수준 미달인 헌터들은 오래 잡아 둘 생각이 없으니까.”
“!”
감히 국내 탑 랭크의 헌터들을 상대로 ‘수준 미달’이라는 표현을 쓰다니.
그 도발적인 발언에 헌터들의 인상이 다시 험악하게 변했다.
이레귤러는 그저 조마조마한 얼굴로 사태를 주시했고, 천해선은 웃는 건지 난처한 건지 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수준 미달이라고 판단되면 여러분은 그 즉시 짐을 싸서 각 나라에 돌아가면 됩니다. 지금부터 테스트를 시작하죠.”
사일리아가 고개를 옆으로 돌렸고, 그녀가 향하는 시선의 끝에는 날카롭게 잘생긴 헌터 한 명이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