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ison-Eating Healer RAW novel - Chapter (242)
242화
두두두두.
가늘게 이어지던 대지의 진동이 조금씩 거세게 변한다.
그에 따라 헌터들의 심장박동도 점차 커져 갔다.
마인과 키메라.
그리고 ‘엑스키(Exci)’라는, 각성이 진행된 키메라까지.
곧 맞닥뜨릴 상대는 인류 역사상 가장 강인한 적이 될 것이다.
“미리 말하지만, 시작부터 모든 힘을 다 꺼내 쓰세요.”
천해선이 등 뒤의 헌터들에게 당부의 말을 전했다.
차원 간섭이 없는 순수한 마인의 힘.
그건 지금까지의 전투와는 완전히 다른 개념이 될 것이다.
자신처럼 일거에 마인을 죽일 수 있다면 좋겠지만, 앞으로 그럴 일은 발생하지 않을 확률이 높았다.
“미리 말하지만…….”
사일리아가 천해선의 옆에 나란히 섰다.
천해선이 독불장군처럼 싸우는 걸 막기 위해서일까?
그러나 이어진 사일리아의 말은 모두의 예상을 뒤엎는 것이었다.
“이더스는 내 거다.”
“?!”
이번만큼은 천해선도 기막힌 얼굴로 되물어야 했다.
“뭐?”
“이더스는 내 거라고. 저번에 당한 앙갚음을 해야겠어.”
“허…….”
사일리아는 분명 성장했다.
마인과의 싸움에서 메루스를 쓸 수 있느냐 없느냐는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있다.
하지만 이곳은 지옥의 계단 7층.
그리고 이더스는 좀 전에 천해선이 해치운 두덱보다 서열이 높은 마인이었다.
‘할 수 있겠냐는 질문은 무의미하겠지.’
천해선은 활활 타오르는 사일리아의 동공을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이런 투쟁심이라면 말로 설득할 단계는 진작에 지났다.
전투에 있어서만큼은 광기에 가까운 집착을 보여 주는 그녀다.
그동안 꽁꽁 싸매고 있어서 그렇지, 이더스와의 대결에서 완패를 했다는 사실이 내내 그녀의 마음을 상처 낸 듯 보였다.
“딱 숨넘어갈 때쯤에 개입할게.”
“숨넘어가도 끼어들지 마.”
“그건 곤란하지. 네 밑에 소속된 헌터가 몇 명인데.”
사일리나는 ‘흥’ 하고 코웃음을 쳤다.
시선은 여전히 동굴 입구에 고정된 채로.
“온다.”
두두두두두두.
-크워어어어어어.
이제는 키메라의 포효 소리가 귓가에 또렷이 들릴 정도가 되었다.
헌터들은 에테르를 극한까지 뽑아내 닥쳐 올 전투를 대비했다.
파바바바밧.
쿵쿵쿵쿵.
커다란 동굴 입구에서 기이한 생명체들이 물밀 듯이 쏟아져 나왔다.
어림짐작한 숫자가 백 명이었지만 실제로는 그것보다도 더 많은 것 같았다.
커다란 몸체들이 한데 뒤섞여 홍수처럼 튀어나오는 장면은 기괴하기 이를 데 없었다.
“마그마 애로우!”
퍼버버버벙.
동굴 입구를 향해 에스퍼 한 명이 벌써부터 비기를 꺼내 들었다.
시작부터 전력을 다하라는 천해선의 말을 충실히 이행한 것이다.
-케에에에엑!!!
키메라 무리의 한 중간에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비기라는 말이 무색하게 절명한 키메라는 없었지만, 적어도 녀석들의 전진 속도를 지연시키는 효과는 있었다.
‘벼락검’
꽈르르르르르릉.
무리의 좌측을 첸의 벼락검이 훑고 지나간다.
이번에는 몇 마리의 키메라가 몸이 두 동강이 나 버렸다.
‘아르겐툼 건틀렛-포’
쾅!!!!!!!!!!!!!!
에스퍼와 힐러를 향해 다가오는 키메라 한 마리의 상반신이 통째로 날아가 버렸다.
놀랍게도 육철완이 발동시킨 스킬에는 단 1g의 메루스도 없었다.
에테르를 가득 응축시킨 순수한 힘만으로 키메라를 단숨에 날려 버린 것이다.
이전 같았으면 이 한 방에 커다란 체력 손실이 발생했겠지만, 이제 육철완은 건틀렛 포 따위(?)는 수십 발을 쏴도 멀쩡할 만큼 성장한 상태였다.
비수의 버프를 받아들이고, 에테르에 메루스를 섞으면서 몇 배의 성장을 이룬 덕분이다.
‘대단하다.’
강정현이 휘둥그레진 눈으로 눈앞의 전장을 응시했다.
동료들이 강해졌다는 생각은 했지만 직접 전투를 벌이는 걸 보니 눈이 호강하는 기분마저 들었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아군의 공세가 일방적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스스스스스스.
전투에 고양이 되어서일까.
강정현의 어깨에 돋아난 아니마 꽃의 줄기가 이전보다 훨씬 풍성해졌다.
‘내가 보내 줘야 할 대상은…….’
강정현은 빠르게 헌터들의 상황을 체크했다.
아직까지 메루스가 필요한 헌터는 보이지 않았다.
“응?”
이곳저곳을 스캔하던 강정현이 시선이 한 곳에 멈추었다.
동료들이 신나게 키메라 무리를 헤집고 다니는 동안, 제자리에 꼿꼿이 서서 동굴 입구만 보고 있는 헌터가 있었기 때문이다.
“사일리아 누나…….”
특유의 오만한 자세로 동굴 입구를 내려다보던 그녀의 입가에, 곧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왔구나, 개자식.”
고오오오오오.
끝없이 상승하는 에테르를 느끼며, 강정현은 자신의 메루스가 어디로 향해야 할지 직감했다.
* * *
“하아아아압!”
“크아아아아!!”
-케에엑.
천해선의 테스트를 통과한 헌터들은 기대만큼 제 몫을 다해 주고 있었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기대한 것 이상의 활약을 펼치고 있었다.
그건 천해선과 관련된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첫 번째는 여기까지 오면서 그가 보여 준 전투력.
각 층의 보스 몹은 물론 두덱까지 일거에 섬멸하는 모습은 헌터들에게 뜨거운 고양감을 선사해 주었다.
소위 ‘할 수 있다’는 마음가짐이 몸놀림을 더욱 가볍고 강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다.
두 번째는 체력.
여기까지 내려오는 동안 헌터들은 전투와 관련한 일체의 체력을 소진하지 않았다.
단순히 차원 간섭을 버티는 것에만 집중하면 되었기 때문에, 사실상 풀 컨디션으로 전투에 임할 수 있었다.
이 두 가지 이유가 시너지를 일으키며 평범한(?) S급 헌터들이 키메라와 합을 이루고 있었다.
동굴 안에서 새로운 존재들이 나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크르르르…….
“!”
울음소리만 들어도 여기 모인 키메라들과 다른 존재라는 것이 느껴졌다.
첸과 잉센이 본능적으로 동굴 입구를 향해 스킬을 꽂아 넣었다.
‘에테르 크레모어.’
‘벼락검’
콰과과과과과과과광.
꽈르르르릉.
귀청을 때리는 굉음과 함께 엄청난 에테르 덩어리가 입구를 향해 날아갔다.
키메라가 아니라 입구 자체를 무너뜨리려는 것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크와아아아!
입구 안쪽에서 고통과 분노가 섞인 포효가 들려온다.
그리고 잠시 후.
머리에 뿔이 돋아난 ‘엑스키’ 상태의 키메라가 번개 같은 속도로 튀어나왔다.
깡!!
쿵!!!
첸은 프라니움 소드로, 잉센은 자신이 만들어 낸 에테르 벙커로 각성 키메라의 공격을 막아 내었다.
빠직.
프라니움은 멀쩡했지만, 잉센의 몸을 두르고 있는 에테르 벙커는 슬슬 균열이 시작되고 있었다.
‘위험하다.’
잉센의 관자놀이에 땀이 한 방울 흘러내렸다.
초월급인 자신의 스킬이 이렇게 쉽게 무너지려 하다니.
위력만 강한 것이 아니라, 몸놀림 또한 빨랐다.
여기 모인 S급 나이트들이 굼벵이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그렇다면…….’
잉센은 정신을 집중해 에테르 빛무리를 발바닥 부근에 형성했다.
곧 그의 신발 아래로 백색의 에테를 추진기가 생겨났다.
슈우우우욱.
마치 로켓이 발사되는 것처럼, 제자리에 있던 잉센의 몸이 하늘 높이 솟구쳤다.
근처에서 전투 중이던 천해선 조차 휘파람을 불 정도였다.
“하늘을 정복한 사람이 한 명 더 있었네…….”
물론 천해선의 말과 달리 공중에 뜬 잉센은 그다지 자유로워 보이지 않았다.
단지 높이 뜬 것일 뿐, 천해선처럼 전후좌우로 움직일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잉센의 경우에는, 딱히 움직일 필요도 없지만.
스륵.
잉센이 눈을 감고 몸 안의 기운에 집중했다.
감은 눈꺼풀 속 동공에 황금색의 빛무리가 넘실거렸다.
곧, 공중에 뜬 그의 머리 위로 커다랗고 뾰족한 물체가 형성되고 있었다.
“저게 뭐야?”
“설마…….”
“에이……. 아니겠지.”
하늘에서 커다란 무언가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헌터들의 시선을 절로 끌 만한 것이었다.
신기한 것도 신기한 거지만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가 만들어 낸 ‘에테르 머신’이, 몹시도 불안한 형태를 갖추었기 때문이다.
‘메루스 미사일.’
공중에 뜬 상태로 잉센이 손가락 하나를 아래로 내렸다.
곧 집채만 한 크기의 미사일 하나가 지면을 향해 쏜살같이 하강했다.
“저런 미친놈!”
“진짜 광기는 따로 있었잖아?”
헌터들이 아연한 얼굴로 미사일을 피해 몸을 날렸다.
그러나 지성이 없는 키메라들은 그저 날아오는 미사일을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콰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광!
“으앗!”
잉센은 헌터들이 자신의 미사일을 보고 피할 것이라 확신했다.
제정신인 사람이라면 날아오는 미사일을 마냥 쳐다볼 리 없으니까.
결과적으로 그의 판단은 옳았고, 첸과 자신에게 돌격하던 각성 키메라는 물론 근처에 있던 키메라 수십 마리를 산산 조각내는 엄청난 성과를 올렸다.
“제대로 미쳤구만……. 다 죽일 셈인가?”
“이게 초월급이구나…….”
헌터들은 미사일의 위력에 아연하는 한편 잉센이 가지고 있는 살상력에 혀를 내둘러야만 했다.
스스로를 헌터가 아닌 과학자로 불리기를 원했지만, 조금 전 보여 준 무력은 과학자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파멸적이었다.
휘청.
잉센의 몸이 공중에서 한차례 출렁였다.
안 그래도 거대한 미사일에 메루스까지 조합했으니 그의 내력이 성할 리 없었다.
“휴. 하마터면 부스터까지 꺼질 뻔했네.”
잉센의 훤한 정수리에 굵은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다.
그는 쓴 미소를 지으며 아래 헌터들을 향해 부탁했다.
“두 방은 무리야. 이다음을 부탁할게.”
투두두두두두.
헌터들의 활약에 키메라들의 숫자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각성을 못 한 키메라의 수는 절반 이하가 되었고, 기껏 ‘엑스키’ 상태로 돌입한 키메라조차 순식간에 두 마리가 쓸려 나갔다.
물론 이 과정에서 다친 헌터들이 소수 생겼지만, 마리아와 S랭커 힐러들이 실시간으로 치유를 해 주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단 한 명도 죽지 않고 전쟁에서 이길 수도 있다.
대부분의 헌터들이 그런 희망을 품고 있을 때였다.
빠직.
듣기 불편한 소리와 함께 뼈가 박살이 나는 소리가 들린다.
콰직!
두 명.
곧이어 세 명.
눈에 비치지도 않을 만큼 빠른 무언가가 입구 근처의 헌터들을 박살 내고 있었다.
“뭐야?”
“너무 빨라……!”
전광석화처럼 이어지는 공격에 네 번째 헌터가 당하기 직전,
촤르르르륵.
백색의 에테르 사슬 두 개가 합쳐지며 헌터의 앞을 막아섰다.
캉!!!!!!!!!!!!!
극한의 에테르와 마력의 충돌로 눈이 시린 스파크가 튀었다.
“?!”
자신이 공격 대상이라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할 만큼 빠른 습격이었고, 그것에 준하는 대처였다.
헌터는 이 공방에서 자신이 끼어들 자리가 없음을 본능적으로 알아챘다.
그는 두어 걸음 물러섰고, 곧 금발 머리의 여성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또 본다?”
-…….
에테르로 만든 백색의 사슬.
‘카테나’를 양손에 걸친 사일리아가 습격자를 향해 인사를 건넸다.
그녀는 전투가 시작된 이래로 꼼짝 않고 서서 습격자가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패기 넘치는 여걸의 인사에 습격자, 이더스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두덱과 달리 떠벌거리는 걸 좋아하지 않는 타입이기도 하거니와, 자신들의 계획이 간파당했다는 사실에 굉장히 불쾌한 상태였다.
‘실력이 늘었나.’
이더스는 오만한 포즈로 서 있는 사일리아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가 없었다.
차원 간섭이 없는 곳에서 자신의 움직임을 쫓을 수 있는 ‘인간’은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사일리아는 단기간에 몰라볼 만큼 성장해 있었다.
보유한 에테르가 많으면 많을수록 메루스와의 조합은 힘이 들기 마련이고, 고초를 겪은 만큼 본래의 기량 또한 상승하게 된다.
하나 이더스 또한 백 프로의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상황.
실력이 늘었다고는 하나 사일리아가 이긴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었다.
“약속 지켜라.”
사일리아가 천해선을 향해 개입하지 말라는 대화를 상기시켰다.
천해선은 키메라 하나를 치워 버린 뒤 양어깨를 으쓱했고, 그 모습을 확인한 사일리아가 이더스를 향해 땅을 박차고 뛰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