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ison-Eating Healer RAW novel - Chapter (36)
36화
다다다다.
“히힝!”
‘이블 홀스’에게 다가갈수록 녀석들이 동요하기 시작한다.
포이즌 몬스터들을 자극하는 특수한 약품.
비수와 함께 던전을 들어갈 때마다 뒤집어썼던 약품이 효력을 발동한 것이다.
‘독보’를 쓴다면 당연히 놈들을 뒤쫓을 수 있지만, 그건 너무 귀찮다.
약품 냄새를 쫓아, 내 쪽으로 달려드는 게 가장 편한 길이다.
“히히힝!!”
물론 다른 헌터들에게는 자살행위나 다름없는 일이다.
농도 짙은 독을 무더기로 뒤집어쓴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으니까.
하지만 ‘포이즈너’ 앞에 그런 단점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투두두두.
사방에서 ‘이블 홀스’가 뿔을 들이밀며 다가온다.
녀석의 물리 레벨은 고작해야 ‘D’ 수준이지만 저 단단한 뿔만은 예외다.
다른 부위가 허약해서 그렇지, 저 뿔에 박히면 ‘C’랭크의 나이트도 상처를 입곤 한다.
슈악.
한 마리.
서걱.
또 한 마리.
날아드는 뿔을 스치듯 피하며 엑사를 휘두른다.
놈들은 목에서 굵은 피를 쏟아 내며 땅바닥에 처박혔다.
사실 목 같은 급소가 아니라 어느 부분을 베더라도 죽기는 매한가지다.
그러나 오지호 선생과 훈련을 하면서 조금 더 목표 의식이 생겼다.
마구잡이로 싸우는 게 아니라, 가장 효과적인 동선을 추구하게 된 것이다.
빠르게.
그리고 확실하게.
서걱.
“에고, 잘못 그었네.”
정확히 급소를 노린 경우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다만 확실한 건, 엑사를 긋는 동작에 ‘태’가 난다는 것이다.
스스로 동작이 유려해졌다는 걸 깨닫고 나니, 이제서야 좀 헌터다운 느낌이 산다.
물론 내 타입은 여전히 ‘힐러’인 채지만 말이다.
“천해선 헌터님!! 위험……!!”
육철완이 무거운 장비를 단 채 뒤뚱뒤뚱 달려왔다.
그는 내 학살극을 가까이서 지켜본 뒤에야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정작 위험한 건 내가 아니라, 날 둘러싼 이블 홀스 놈라는 것을.
“이럴…… 수가!!”
방독면 너머로 육철완의 눈이 보인다.
두꺼운 눈두덩이가 전혀 보이지 않을 만큼, 눈을 부릅뜬 채 경악하고 있었다.
“천해선 헌터님…….”
“네.”
“힐러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맞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설명을 하기엔 지나쳐 온 일들이 너무나 많다.
딱히 설명하고 싶은 마음도 없고.
난 짤막하게 대답한 뒤 다시 몸을 움직였다.
“힐러이기 이전에 헌터니까요.”
서걱.
“……!!”
차례차례 베어 넘기다 보니 어느새 그 수가 절반도 남지 않았다.
갑자기 내 쪽을 향하던 놈들 중 두 명이 육철완 쪽으로 경로를 바꿨다.
이런.
조심해야 할 텐데.
덥석.
그러나 내 걱정은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육철완은 좌우로 달려드는 이블 홀스의 뿔을 양손으로 잡더니, 괴성을 내지르며 팔을 휘둘렀다.
“크아아악!!”
쾅!!
오우.
본의 아니게 강제로 박치기를 하게 된 ‘이블 홀스’ 두 마리가 그대로 바닥을 나뒹굴었다.
뭉그러진 대가리를 보니 두개골이 박살이 난 것 같다.
‘수백 킬로그램인 이블홀스를 양손으로 휘두르다니…….’
새삼 육철완이 ‘B’랭커 나이트란 사실을 깨달을 수 있는 순간이었다.
육철완은 나를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이쪽도 마찬가지다.
왜 ‘B’랭커 나이트가 ‘청소부’ 역할이나 하는 거지?
“우웩! 크흡! 천해선 헌터님! 저는 잠시 쉬겠습니다!”
“…….”
아까는 위험하네 어쩌네 하며 호들갑을 떨더니, 이제는 숫제 나에게 맡기고 쉬겠단다.
보아하니 힘을 쓰는 동안 호흡을 참았던 것 같다.
방독면의 기능이 아무리 좋다 한들 완벽한 차단은 불가능할 테니까.
서걱.
최후의 한 마리를 벨 때까지.
나는 ‘독보’를 사용하지 않고 ‘이블 홀스’를 땅바닥에 눕혔다.
그리고 그중 절반 이상이 급소에 치명상을 입은 상태였다.
엑사가 아니더라도 전투를 지속하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그동안의 전투를 돌이켜 봤을 때, 이는 꽤 고무적인 성과였다.
“놀랠 노 자의 연속입니다…….”
육철완도 나이트 계열이다 보니 짐작이 가는 모양이었다.
이건 ‘힐러’는 고사하고 어지간한 나이트 암살자(Assassin)보다 훨씬 나은 수준의 물리 공격이었다.
“헌터 자격 시험을 다시 봐야 하는 것 아닙니까……?”
나는 슬쩍 웃으며 양어깨를 들어 올렸다.
“이제 방해꾼들은 사라졌으니,수월하게 광물을 채집할 수 있겠죠?”
“네? 아……. 네! 물론입니다.”
“일하고 계세요. 저는 다녀올 테니.”
“다녀온다니 어디를…….”
“어디긴요. 던전에 왔으면 윗대가리를 부수러 가야죠.”
이전 같았으면 펄쩍 뛰면서 만류를 했을 테지.
그러나 좀 전의 전투로 육철완은 생각을 달리한 듯 보였다.
“언제든 도움이 필요하면 저를 부르십쇼.”
나는 고개를 한 차례 끄덕인 뒤 신형을 움직였다.
* * *
“오호라.”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던가?
그동안 익힌 격투술을 원없이 활용할 수 있는 보스 몹이 나타났다.
데콜로르 울프(Decoror wolf) / type – poison, fight / 처치 난도 3성(★★★) / 물리 레벨 ‘C’ / 기타 레벨 ‘D’>
기존 포이즌 던전에서 볼 수 있었던 보스 몹에 비해 독성은 약한 편이다.
그러나 녀석이 나름 3성(★★★)의 타이틀을 얻을 수 있는 건 ‘혼합 특성’ 때문이었다.
전투로 잡는 것도 녹록지 않을진대, 싸우다 보면 시나브로 중독까지 되어 버리는 것이다.
일반 헌터들에겐 독극물을 표면에 두른 야수를 상대하는 기분이겠지.
“워오-”
꼴에 울프라고 날 확인하더니 하늘을 향해 포효한다.
‘물리 레벨이 C인 데다 전투 타입이니 이만한 상대가 없다.’
스륵…….
나는 엑사를 쥔 손에 힘을 뺐다.
더 이상 에테르가 주입되지 않다 보니 엑사의 칼날이 사라져 버렸다.
전장에서 무장을 해제한다는 건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전의를 상실했거나, 무기가 없어도 잡을 자신이 있거나.
“덤벼 봐라.”
나는 손가락을 까닥거리며 데콜로르 울프를 도발했다.
오지호 선생이 분명 그랬지.
내 격투술은 ‘B’랭크 나이트를 상회한다고.
하지만 상대가 가능하다는 것일 뿐, 단순 물리력만으로 따지면 2티어 차이는 하늘과 땅 수준이다.
만약 ‘독보’를 사용하지 않는다면 그 격차가 한층 더 크게 느껴지겠지.
직접 상위 티어 레벨과 육박전을 벌여 보면 그 차이를 체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물리 레벨 ‘C’의 데콜로르 울프는 완벽한 연습 상대라 할 수 있었다.
“워오-!”
도발이 제대로 통한 것 같다.
데콜로르 울프가 한 차례 포효한 뒤 곧바로 지면을 박차올랐다.
원래대로라면 ‘독보’를 사용해 멀찌감치 튀었겠지만, 이제는 다르다.
나는 양다리를 지면에 단단히 박은 채 놈을 주시했다.
어느새 놈이 내 가슴팍 앞까지 도달했다.
흉악한 양 발톱이 내 얼굴을 잡아 뜯을 찰나, 양팔을 들어 팔의 방향을 바꾸었다.
팍.
아직 내 염동력 수치로는 ‘환격’을 사용할 수준이 못 된다.
각성자 수치를 재 보아도 기준 미달로 탈락할 양이니까.
기껏해야 훈련했던 대로 공격의 경로를 흘릴 정도다.
가까스로 녀석의 공격을 흘리기는 했지만, 워낙에 강한 공격이라 접촉한 부분이 저릿저릿 아려 온다.
“아오, 씨.”
데콜로르 울프는 길게 투덜거릴 시간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왼팔, 오른팔, 심지어는 발차기(!)까지.
이렇게 싸울 거면 독은 왜 가지고 있나 싶은 다양한 공격들이 들어왔다.
울프류 타입이 ‘최고의 싸움꾼’이라 불린다더니, 과연 허명이 아니었다.
최고의 연습은 실전이라는 말이 맞기는 맞나 보다.
오지호와 싸울 때는 발동되지 않았던 ‘생존 본능’이 나의 감각을 한층 예민하게 만들고 있었다.
퍽.
우당탕탕.
열네 번?
열다섯번인가.
아직은 거기까지가 내 한계인 듯하다.
정신없이 쏟아지는 공격을 흘리기를 여러 번.
결국은 데콜로르 울프에게 가슴팍을 두드려 맞고 말았다.
울컥.
피 한 모금을 쏟아 낸 나는 곧 정신을 집중했다.
아무래도 오지호처럼 반격만으로 녀석에게 타격을 주는 건 아직 무리인것 같다.
그렇다면, 선공을 해 보면 어떨까.
“워오-”
녀석이 승리를 낙관한 듯 또 한 차례 포효한다.
일반 헌터라면 물리 대미지뿐만 아니라, 중독 때문에라도 버티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녀석의 포효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순식간에 치유를 마친 내가, 이번에는 역으로 녀석에게 도약했기 때문이다.
팟.
금방이라도 쓰러질 줄 알았던 내가 공격을 하자 녀석이 당황한 듯 한 걸음 물러선다.
곧 전신의 모든 부분을 활용한 공격이 데콜로르 울프에게 쏟아진다.
녀석의 커다란 머리를 보니 차마 박치기는 못 하겟군.
다양한 방법으로 공격을 하면서 최대한 정신을 집중했다.
지금이야 갑작스러운 공격에 정신이 없겠지만, 내 물리 레벨을 감안하면 곧 반격해 올 테지.
그때가 승부다.
“워오-”
몇 대 얻어맞았다지만 큰 대미지는 아니었을 거다.
예상대로 놈이 오른팔을 크게 휘둘렀다.
번뜩.
오지호에게 매번 당했던 그 느낌.
그 느낌을 되살려야 한다.
‘환격’은 기본적으로 내 정신을 상대방에게 덮어씌우는 ‘환술’의 일종이다.
오지호처럼 반경 수 미터 내는 무리지만, 적어도 녀석이 공격해 오는 일부분 정도는 가능할지도 모른다.
‘무형(無形)’의 에테르를 녀석에게 쏘아 보낸 뒤, 나는 마치 물결처럼 녀석의 옆으로 이동했다.
스르륵.
붕!!
아찔한 파공음이 코끝을 스치고 지나간다.
녀석이 내 움직임을 읽었다면 공격 방향을 수정했겠지만, 놈의 공격은 명확하게 처음 있던 자리를 노렸다.
‘성공이다……!!’
짜릿한 전율이 등을 타고 흐른다.
범위는 오지호에 비해 민망한 수준이지만, 상대를 완벽하게 속여 넘긴 것이다.
‘여기서 곧바로…….’
기뻐할 틈도 없이 나는 한 손으로 데콜로르 울프의 팔꿈치를 밀어냈다.
코끝을 스쳐 간 녀석의 앞발이 스스로의 얼굴을 향하도록 말이다.
퍼억!!
스트라이크.
암시장에서 오지호에게 농락당했던 김관태처럼, 놈은 스스로의 공격에 얼굴을 직격당하고 말았다.
뿌득.
꺼림칙한 파열음이 녀석의 얼굴로부터 흘러나온다.
코가 완전히 박살이 난 것 같다.
그러나 녀석은 고통보다 훨씬 큰 감정에 사로잡힌 것 같다.
황당함.
내가 오지호와 싸우며 숱하게 느꼈던 그 황당함을 녀석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워오?”
양팔을 늘어뜨린 채 멍하니 서 있는 늑대가, 이내 다시 앞발을 휘둘렀다.
퍽.
이번에는 옆구리.
퍽!
이번에는 가슴팍.
놈의 공격이 번번히 경로를 바꾸어 자신을 향한다.
하하.
맛이 어떠냐 이 자식아.
내가 그동안 당했던 거에 비하면 이 정도는…….
퍽.
“크윽.”
갑자기 ‘환격’이 말을 듣지 않는다.
나는 놈의 앞발에 턱주가리를 정통으로 맞았고, 이내 팽이처럼 빙글 돌며 날아가 버렸다.
안 맞을 거라고 방심하다 맞아서 그런지 눈앞이 핑 돈다.
자체적인 치유 능력이 없었다면 그대로 기절해 버렸을 거다.
‘왜지?’
방법은 이전과 동일했다.
효과는 점점 좋아졌다.
그렇다면 남은 결론은, 이쪽의 ‘한도’가 모두 소진되었다는 이야기다.
‘너무 남용하면 안 되겠구나.’
“천해선 헌터니이이이이이이이임!!”
아 씨.
하필이면 와도 이럴 때 오냐.
멀리서 육철완의 절규가 들려온다.
“조금만 기다리십시오!! 제가 저 망할 늑대 놈을…… 쿨럭!”
달려오는 꼴을 보니 도착하기도 전에 피를 토하며 쓰러질것 같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방독면이 만능이 아니니 더 이상 시간을 끌 필요는 없을것 같다.
“워오!!”
타격을 입은 건 나도 저놈도 마찬가지.
녀석에게는 치유 능력이 없으니 앞으로 한 방만 제대로 꽂으면 된다.
나는 최대한 ‘환격’의 감을 되살리려 노력했고, 집중력을 키우기 위해 눈을 감았다.
“안 돼!!!!”
육철완의 눈에는 내가 포기한 걸로 보이겠지.
하지만 늑대에게서 나는 특유의 냄새가 손에 잡힐 듯 훤히 들어온다.
그리고 지금.
감았던 눈을 부릅떴다.
번쩍.
머리를 박살 내 버리겠다는 듯 데콜로르 울프가 양손을 동시에 뻗는다.
이건 말 그대로 골로 갈 만한 위력이다.
스르르.
마지막 남은 집중력을 긁어모아 상체를 슬쩍 눕힌 뒤, 그 자세 그대로 양팔을 뻗어 녀석의 공격 궤도를 틀어 버렸다.
퍼억!!!
녀석의 공격이 턱에 적중해, 뼈를 으스러트린다.
물론 내 턱이 아니라, 녀석의 턱에.
“케엥!!”
이전과는 느낌이 다른 울음소리.
더 이상 회복할 수 없는 타격을 입은 울프가, 그대로 절명해 버렸다.
“허억. 허억.”
연습을 실전처럼 하라는 말이 있지만, 두 번 했다가는 뼈도 못 추릴 것 같다.
하지만 그만큼 소득은 있었다.
포이즈너도, 힐러도 아닌 ‘나이트’로서 3성(★★★) 보스 몹을 잡은 것이다.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건가…….”
내가 내는 거친 호흡 소리에, 넋 나간 육철완의 목소리가 섞여들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