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ison-Eating Healer RAW novel - Chapter (43)
43화
“왜 이렇게 얼굴이 죽상이지?”
야차의 질문에 난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우리가 언제는 하하호호 하는 사이였나?”
“흐흐. 그것도 맞는 말이군. 근데 얼굴인지 쓰레기통인지 분간이 안 갈 지경이라.”
“물건을 봤으면 거래나 할 것이지 잔말이 많아.”
야차와의 대화는 늘 이런 식이다.
서로 간에 우호적인 이야기는 없고 으르렁거리며 거래를 진행한다.
그럴 때마다 비수를 비롯한 몇몇 수하들이 불안한 눈빛을 보낸다.
죽기 싫으면 야차의 신경을 긁지 말라.
뭐 그런 의미다.
하지만 야차에게 있어서 나는 꽤 쓸 만한 거래처다.
그들이 우려하는 일은 발생하지 않는다.
뭐, 어느 정도 짐작하는 바도 있고.
그의 몸에는 언제나 흉흉한 에테르가 흘러넘치지만, ‘살기’가 느껴지진 않는다.
말만 거칠게 할 뿐, 나와의 대화를 적당히 즐기고 있다는 소리다.
“이번에도 희귀초들의 상태가 괜찮군. 할멈은 4억 8천을 제시했다.”
“좋아.”
“그거 알고 있나? 암시장을 찾아오는 개인들 중에서 네놈 수익이 상위 1%라는걸.”
“나야 알 수 없지. 다들 사업 수완이 형편없나 보네.”
“흐흐. 그렇게 해석해야 하나. 돈다발을 안겨 주는 데도 표정이 썩어 있는 걸 보니, 원하는 물건이 나오지 않는 모양이야?”
‘저 할망구가…….’
나는 야차의 말에 뒤쪽에 서 있는 할멈을 쏘아보았다.
일전에 거래를 하면서 금영화에 대해 물어본 걸 야차에게 보고한 모양이다.
눈이 보이지 않아서 그런 건지, 알고도 모르는 척하는 건지 할멈은 무표정하게 서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노려볼 것 없어. 난 너에게 좋은 정보를 알려 주려는 거니까.”
“정보?”
“네놈도 알다시피, 던전이 생성되기 전에는 각종 파장이 흘러나온다. 몬스터가 출몰한 지도 세월이 꽤 흘렀고, 그만큼 인간의 기술도 발달했지. 지금이야 직접 들어가지 않고도 난이도 측정이 가능하지만,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직접 몸으로 때우는 수밖에 없었다.”
“암시장에서 역사 공부를 다 하네.”
“얼마 전에 한 업체에서 제안이 왔다. 제법 솔깃한 이야기를 하더군.”
암시장의 실질적 주인인 야차.
그는 자존심이 하늘 끝까지 닿아 있는 인물이다.
어지간한 일로 관심을 보일 리는 없을 텐데.
과연 그 제안은 나에게도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그들은 포이즌 던전의 출연을 사전에 예측할 수 있다고 했다.”
“!!!!!!”
그건 불가능하다.
아니지, 표현을 달리해야겠군.
지금까지 그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어디서 포이즌 던전이 열릴지 미리 알 수 있다면, 쥐도 새도 모르게 빠른 클리어가 가능하다.
얼마 전에 있었던 다른 길드의 방해라던가, 협회의 허가와 같은 귀찮은 일 없이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나도 나지만, 음지에서 던전을 파헤치고 다니는 암시장 놈들에게도 꽤 매력적인 이야기라 할 수 있었다.
“제안도 제안이지만 배짱도 두둑하군. 암시장의 총수와 거래를 할 생각을 하다니.”
“도이수라고, 제법 큰 규모의 대표라고 하던데.”
“도이수…….”
이상하게 입에 붙는다.
이름을 들어 본 거 같긴 한데, 어디서 들었더라?
“사전 예측이 가능하다는 걸 입증하겠다며, 내게 좌표를 하나 찍어 줬다. 건방지게도 이 몸에게 조심하라는 당부를 하더군. 7성(★★★★★★★)짜리 포이즌 던전이라면서 말이야.”
“7성……!!”
눈이 번쩍 뜨인다.
야차의 말대로, 내가 표정이 안 좋았던 건 원하는 물건을 손에 넣지 못했기 때문이다.
금영화(金永花).
글로리 길드 내의 포이즌 던전을 빼곡히 돌았지만, 던전의 난도가 낮은 탓인지 금영화(金永花)를 발견할 수 없었다.
하지만, 7성의 포이즌 던전이라면?
기대를 걸어 볼 만한 장소였다.
그래.
왜 오늘따라 야차가 직접 나왔는지, 그리고 쓸데없는 잡소리가 길었는지 이해가 가는군.
녀석은 나를 통해서 도이수가 믿을 만한 사람인지 확인해 보려는 심산이다.
“실로 공정한 거래가 아닌가? 넌 금영화를 찾아볼 수 있는 장소를 확보할 수 있고, 이쪽에서는 도이수라는 놈을 신뢰할 수 있는지 확인이 가능하지.”
“공정한 거래는 개뿔. 몸으로 때우는 건 죄다 내 몫이잖아.”
“받을지 말지, 선택은 네 자유다.”
망할 자식.
야차는 눈앞에서 맛있는 먹잇감을 든 채 이리저리 흔들고 있었다.
하지만 놈의 제안이 아니더라도 포이즌 던전을 도는 건 내 일이다.
표혁규 감독관과의 약속도 있었고, 무엇보다 그 안에서 내가 얻어 가는 게 너무나 많다.
만에 하나 입장한 던전이 포이즌 타입이 아니라 하더라도 손해 볼 건 없다.
만만한 던전이면 공략하면 그뿐이고, 어렵겠다 싶으면 곧바로 빠져나오면 된다.
“좋아. 받지. 7성 던전이 맞는지 확인해 보겠어.”
“좋은 선택이다. 생각보다 쫄보는 아니군.”
“도이수야 그렇다 치고, 나는 어째서 신뢰하는 거지? 내가 거짓 내용을 전달하면 어쩌려고.”
“오. 그건 걱정하지 마. 우리 쪽에서도 감시자를 한 명 붙일 테니까.”
“붙여? 누구를.”
야차의 시선이 한쪽을 향한다.
그곳에는 손가락을 스스로에게 향하며 ‘나?’라고 묻는 비수가 있었다.
“비수를 우리 쪽에 붙인다고?”
“그래. 비수가 저래 보여도 포이즌 던전 경험이 제법 되지. 너와 동행하는 게 처음도 아니고.”
“그런 걸 물어보는 게 아니다.”
7성 던전은 어지간한 나이트도 견뎌 내기 힘든 악조건이다.
제아무리 해독제와 안전장치로 대비를 한다 하더라도, 일반인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다.
그런데 야차에게 되돌아온 대답이 가관이었다.
“걱정하지 마라. 이쪽에서 만든 보호구가 웬만한 길드 연구소 제품보다 좋으니까. 그리고 저 녀석이 죽기라도 한다면, 그만큼 7성 던전이 확실하다는 증거가 되겠지.”
그걸 지금 말이라고 지껄이는 거냐.
라고 말하려는 찰나, 비수가 야차의 앞으로 걸어왔다.
“다녀올게요. 아버지.”
허 참.
겁이 없는 거야, 생각이 없는 거야?
“7성 던전이니까, 그만큼 많이 까 주실 거라고 믿어요.”
“……!”
그런 건가.
비수의 결연한 눈빛을 보니 무슨 의도인지 알 것 같다.
비수가 ‘깐다’고 한 대상은 아마 야차에게 진 빚일 것이다.
그녀가 아니라, 그녀의 아버지가 진 빚.
그 빚을 갚지 않고서는 비수는 야차에게서 벗어나지 못한다.
원망과 간절함, 불안을 담은 눈빛이 야차에게로 향한다.
야차는 그녀의 표정을 본 뒤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물론이지. 내 거래에 거짓은 없다.”
* * *
“잘 부탁해요! 클랜장 오빠!”
“아니. 그게, 저…….”
아무튼 붙임성만큼은 일품이다.
비수는 던전 입구에서 육철완을 만나자마자 팔짱을 끼고 찰싹 붙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클랜장 오빠가 먹고 있는 해독제들, 다 우리 회사에서 만든 거니까. 여차하면 뿅, 하고 숨을 수도 있어요.”
“아무리 그래도…….”
육철완은 쉽게 마음이 놓이지 않는 눈치다.
사실 당연한 일이다.
‘B’랭커인 자신조차 7성 던전 공략을 앞두고 밤잠을 설쳤다 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 붉은 머리칼의 여성은 나이트는 고사하고 헌터 자격조차 없는 ‘일반인’이었다.
은신을 사용할 줄 안다는 특성이 있었지만, 그건 포이즌 던전에서 별다른 장점이 되지 못한다.
“괜찮다니까요? 여긴 아직 헌터 협회에서 확인이 되지 않은 곳이니까, 제가 죽는다고 해도 책임질 사람이 없어요.”
“허허. 참…….”
육철완은 비수를 상대하는 게 꽤나 어려운 눈치다.
시선을 어디다 둬야 할지도 모른 채 안절부절못하고 있다.
눈이 번쩍 뜨일 미모의 여성이 딱 달라붙는 트레이닝복을 입고 완전히 밀착해 있으니 그럴 법도 하다.
“신경 쓰지 마세요, 클랜장님. 저긴 저쪽의 필요에 의해서 일을 하는 거니까요. 우린 우리의 일을 하면 됩니다.”
“우리의 일이라…….”
“네. 중요한 일이 아닙니까.”
육철완이 마음속으로 누군가를 떠올린 듯하다.
그는 입술을 꽉 다문 채 비수를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최대한 당신을 보호해 주겠소. 죽지 마시오.”
“어머나……. 너무 듬직해요, 오빠……!”
지랄을 해요, 아주.
비수가 엄청나게 감격한 듯 두 손으로 자신의 입을 가린다.
평소 성격이 어떤지 알고 있는 나로서는 여간 버티기 어려운 광경이었다.
“시작하시죠.”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깨고 싶지는 않지만, 오늘 던전은 어지간한 각오가 아니면 클리어하기 어려운 곳이다.
빚을 갚기 위해서.
코어를 확보하기 위해서.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
서로 다른 세 목적을 가진 남녀가 마침내 7성 던전의 문을 열었다.
* * *
통칭해서 ‘독’이라 할 뿐.
그 안에는 수많은 종류가 있다.
비릿한 향이 나는 것도 있고, 매캐한 느낌이 드는 종류도 있다.
“일단 도이수의 말이 절반은 맞았군.”
“그렇지?”
입장하자마자 코와 입이 절로 까끌까끌해진다.
바다 건너 넘어온 황사를 통째로 들이마시는 기분.
석회 가루와 같은 물질이 대기 중에 만연히 자리 잡고 있었다.
“천해선 헌터님.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육철완이 보호구를 착용한 채 내게 묻는다.
이 말도 안 되는 대기에 무방비로 서 있는 내가 어지간히 걱정스러운 눈치다.
“눈이 조금 따갑긴 한데, 별문제 없습니다.”
“클랜장 오빠. 쟤는 인간이 아니니까 걱정하실 필요 없어요.”
“비수 씨. 그렇게 나오지 말고 제 뒤에 서십시오.”
이곳이 포이즌 던전이라는 건 전문가가 아니라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남은 건, 이 던전의 난이도가 어느 정도냐는 것.
그저 그런 몬스터가 나온다면 곤란하다.
금영화는 높은 등급의 던전에만 출현하기 때문이다.
적당히 ‘급’이 높은 몬스터가 나와 줘야 희망을 가질 수 있다.
쿵.
쿵.
“어머. 지진인가?”
육중한 저음과 함께 지면이 울린다.
그리고 곧, 자욱한 안개 너머로 커다란 그림자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생명체라고 부르기조차 어색해 보이는 거대한 몸집.
한눈에 봐도 딱딱해 보이는 각진 팔다리.
회색으로 뒤덮인 거대 몬스터가 우리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그래. 이 정도 급은 돼야지.”
‘급’이 낮을까 봐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단체로 나타난 녀석들은 바로 ‘그레이 골렘’들이었다.
그레이 골렘(Gray golem) / type – poison, 전투형 / 처치 난도 6성(★★★★★★) / 물리 레벨 ‘A’ / 기타 레벨 ‘C’ / 전용 스킬 – 공간 잠식 : 전투 구역 일대에 강도 높은 독 지대를 형성합니다. 전투가 길어질수록 독의 농도가 급격히 짙어집니다.>
과연 7성 던전답다고 해야 할까.
일반 몬스터가 동영화를 캤을 때 만났던 박쥐 보스 몹보다 더 높은 등급을 가지고 있었다.
‘공간 잠식’이라.
어쩐지 설명을 듣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쿵쿵거리며 걸어오는 동안에도 놈들의 몸에서 석회 물질 같은 것들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아마 전투 중에는 더 심하게 흩날리겠지.
스윽.
품 안에서 약품을 꺼내자 육철완이 기절할 듯이 놀란다.
“천해선 헌터님!! 그건 너무 위험합니다!! 혼자서는 저 숫자를 감당할 수 없을 겁니다!!”
“벌써 약속을 잊으신 겁니까?”
“?!”
그동안 포이즌 던전을 오가며 육철완은 약속을 잘 지켜 왔다.
약속의 내용은 심플하다.
내 능력에 의심을 달지 말 것.
그리고 각자가 맡은 역할에 집중할 것.
언제나 그렇듯 오늘 7성 던전에서 내 역할은 몬스터를 쳐 죽이는 거고, 육철완은 광물 채집에 집중하면 될 일이다.
“우와! 겁나 크다! 클랜장 오빠! 여기로 오세요!”
방방 뛰며 신나 하는 비수를 보며 클랜장은 귀신에 홀린 얼굴이 되었다.
칼을 차고 전투에 나서는 힐러.
그동안 광물을 채집하는 나이트.
동물원에 온 듯 골렘을 구경하기 바쁜 일반인.
그는 필경 이곳이 ‘저세상 던전’이라 생각할 것이다.
-고오오오오오오오!
내가 몸에 약품을 바르자, 곧바로 골렘들이 포효하며 달려든다.
육철완이 화들짝 놀란 건 바로 이 약품 때문이었다.
설마하니 저 골렘들조차 한 곳으로 유인할 줄은 몰랐던 모양이다.
쿵 쿵 쿵 쿵.
‘다섯…… 여섯…….’
대충 세어 보니 열 기 정도 되어 보인다.
포이즈너인 내 입장에서는 물리 레벨이 높은 몬스터가 상대적으로 까다롭긴 한다.
하지만 과거 퍼플 스콜피온(Purple Scolpion)과 상대했던 경험이 내게 전투 방향을 명확하게 안내하고 있었다.
“와라. 황사 덩어리들아.”
팟.
시작부터 최대 출력으로 ‘독보’를 시전한 나는, 그레이 골렘 무리 사이로 뛰어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