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ison-Eating Healer RAW novel - Chapter (46)
46화
계획은 심플하다.
육철완과 함께 자이언트 트레저의 가슴팍으로 접근해, 내 피를 뿌린다.
놈의 피부에 피가 닿으면 순간적으로 균열이 발생한다.
그 틈을 타서 육철완이 엑사의 칼날을 쑤셔 넣는다.
“해 볼 만할 것 같습니다.”
육철완이 비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다.
탱커는 기본적으로 버티는 데 능하고, 나이트 계열 중에서 힘이 가장 세다.
특정 조건이 부합될 시 가장 순도 높은 대미지를 가할 수 있다.
다만, 이 전략에는 한 가지 변수가 있었다.
“제 무기를 다른 사람이 쥐는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네?”
“아마 손에 쥐는 것만도 꽤나 고통스러울 거예요.”
그러자 육철완이 자신만만한 얼굴로 엑사를 손에 쥐었다.
“천해선 헌터님. 다른 건 몰라도 제가 참는 것 하나는 잘합니다. 어떤 고통이 있더라도…….”
치이익.
“으아악!”
자신감 넘치던 모습이 무색하게 육철완은 가냘픈 비명을 질렀다.
전투 중이 아니었다면 배를 잡고 웃었을지도 모른다.
“아니……. 이걸 쥐고 계속 싸워 오셨던 겁니까? 이건 마치…….”
그동안 수없이 많은 블랙 에테르가 엑사에 흘러들었다.
당장 에테르를 주입하지 않아도, 다른 사람들은 피부가 타들어 가는 고통을 받게 된다.
잠깐 쥐었을 뿐인데 육철완의 두 눈에 핏발이 선다.
통증도 모자라 벌써 중독 증세가 시작된 것이다.
“차라리 칼날을 직접 쥐는 게 나을 지경입니다.”
육철완은 치유를 받으면서 혀를 내둘렀다.
그러나 이 계획을 뒤로 물린다든가 하지는 않았다.
제법 큰 고통이었지만, 감내하겠다는 의지가 역력했다.
“저랑 같이 엑사를 쥐면 한결 수월할 겁니다.”
“네.”
나와 육철완의 시선이 다시 자이언트 트레저에게로 향한다.
‘파편’을 사용한 뒤, 놈은 잠시 동안 움직임이 둔해진다.
다시 몸을 움찔하는 걸 보니, 또다시 그 빌어먹을 스킬을 사용할 듯하다.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 공격이 될 겁니다.”
“각오하고 있습니다.”
“나, 나는 뭘 하면 돼?”
뒤에서 비수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글쎄.
이런 상황에서 은신 스킬이 전부인 비수가 뭘 할 수 있을까.
평소 같았다면 ‘그냥 가만있는 게 도와주는 거다’라며 핀잔을 주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비수 또한 육철완과 함께 위험 지대로 뛰어든 상태다.
내게 도움을 주기 위해서 말이다.
그래서 핀잔을 주는 대신, 다른 이야기를 건넸다.
“신에게 기도해 줘. 우리 대신.”
“……?”
육철완을 반쯤 둘러업고 다리 쪽에 에테르를 끌어 올렸다.
나이트 랭크로만 따지면 그가 두 단계는 위였으나, ‘기동력’ 한정으로는 내 쪽이 훨씬 앞선다.
육철완의 체중은 기껏해야 100kg 남짓.
‘독보’가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무게다.
파박.
자이언트 트레저가 휘두르는 팔을 피해 놈의 가슴팍에 도달했다.
일단 지근거리까지 도착하면, 놈은 주저없이 신체의 일부를 ‘파편’으로 만들어 발사한다.
촤라락.
나는 몸을 빙글 돌려 육철완의 몸을 가렸다.
그를 보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내 쪽에 상처가 많을수록 더 많은 피를 뿌릴 수 있기 때문이다.
퍼버버벅.
“크윽…….”
살다 보면 아무리 겪어도 익숙해지지 않는 것들이 있다.
‘고통’도 그중 하나다.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물체가 몸을 꿰뚫는 감각은 도통 적응이 되지 않는다.
주륵.
상처 부위에서 피가 흥건히 흘러나온다.
모아서 세수를 해도 될 정도의 양이다.
하지만 나는 여기서 한발 더 나가기로 결심했다.
으득.
소리가 새어 나올 만큼 어금니를 꽉 깨어 문 뒤, 몸 안에 꽂힌 프라니움 조각을 뽑아내 버렸다.
푸확.
“꺄악!”
밑에서 비수의 비명 소리가 들린다.
저 인간이 무슨 미친 짓을 하나 싶겠지.
엄청난 격통에 정신이 아득해진다.
몸이 뚫렸을 때보다 더한 통증이 온몸을 휘감는다.
하지만 그런 만큼 소득은 있었다.
원래 흐르던 피의 양이 갑작스레 증가하면서, 자이언트 트레저의 피부가 다량의 피로 물들어 버린 것이다.
시이이…….
당장이라도 주저앉고 싶지만, 눈을 부릅뜬 채 변화를 관찰한다.
마침내 영롱한 색을 자랑하던 프라니움의 표면이 점차 흐려지고 있었다.
“지금!!!”
나는 육철완을 불렀고, 그도 확인했다는 듯 에테르의 기운을 잔뜩 불러들였다.
“으오오오오오오오!!”
포이즈너의 에테르와 나이트의 에테르.
두 가지 기운이 합친 엑사가 자이언트 트레저의 가슴팍에 꽂힌다.
-카앙!!!!!!!!!!!!!!!!!!!!!!!!!!!!!
프라니움의 강성 때문인지 귀청이 떨어져 나갈 것 같다.
“해치웠나?!”
육철완에게서 희망 섞인 목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그의 얼굴은 곧 절망으로 뒤덮여 버리고 말았다.
‘젠장……!’
통하지 않았다.
두 사람이 모든 힘을 쥐어짜 낸 일격이었지만, 유감스럽게도 프라니움은 칼날의 진입을 허용하지 않았다.
‘이대로 끝인가.’
우리에게 남아 있는 플랜B는 없다.
애초에 실패를 염두에 두고 짠 계획이 아니었으니까.
자이언트 트레저의 커다란 그림자가 죽음을 암시하듯 우리를 잠식해 간다.
“크윽……!!”
설상가상으로 색이 바랬던 프라니움이 점차 영롱한 빛을 되찾아 가기 시작한다.
녀석의 피부가 정상으로 돌아온다면 일말의 희망조차 가질 수가 없다.
주륵.
육철완에게서 피 눈물이 흘러나온다.
엑사를 너무 오래 쥔 탓이 부작용이 나오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건 한편으로 나의 위험 신호이기도 했다.
더 이상 그에게 전달할 치유 능력이 남아 있지 않다는 뜻이니까.
“으와아아아아!!”
그런 상태에서도 육철완은 에테르를 바닥까지 긁어모아 사용하고 있었다.
이러다가는 부인보다 먼저 삼도천을 건너게 될지도 모른다.
뭐, 남 말할 처지가 아닌가.
눈앞이 점점 흐려진다.
원래대로라면 몸 상태가 정상이 될 때까지 사려야 하는 것이 맞지만, 모든 힘을 엑사에 집중하고 있다 보니 좀처럼 회복이 되지 않고 있었다.
천하장사도 눈꺼풀은 이길 수 없다고 하던데.
도저히 눈을 뜰 수가 없다.
내려가는 눈꺼풀에 시야가 완전히 사라지기 직전,
부우우웅.
“……!!!!”
뜨겁다.
이루 형용하기 힘든 뜨거운 감각이 갑자기 온몸을 휘감는다.
하지만 이 뜨거움이 고통으로 느껴지지는 않는다.
기분 좋은 고양감과 투기(鬪氣).
그런 것들이 내 흐트러진 몸을 바로잡고 있었다.
‘이게 뭐지?’
말라 가던 에테르의 기운이 언제 그랬냐는 듯 샘처럼 솟구친다.
혹시 육철완에게 특별한 스킬이 있었나?
의아한 마음에 고개를 돌려 봤지만 허사였다.
그도 휘둥그레진 눈을 한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허…… 헌터님!!”
주변을 돌아보니 희뿌연 기운이 나와 육철완을 휘감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V1에게서 경고 메시지가 날아들었다.
엑사에 새로운 기운이 감지되었습니다. 현재 엑사 내부에 세 가지 에테르가 공존 중입니다.>
경고 : 허용 가능한 에테르의 양을 넘어섰습니다. 중지하지 않으면 엑사에 심각한 손상이 발생합니다.>
너 같으면 이 상황에 중지하겠냐.
나는 육철완을 향해 목청을 높였다.
“밀어!!”
“크윽!!”
어디서 이런 기운이 전해졌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 기운 덕분에 나와 육철완의 힘이 배가 되었고, 그 결과 영원히 뚫리지 않을 것 같던 프라니움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투둑…….
육철완은 이미 사람이라고 할 수 없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엑사를 손에 쥔 지 이미 수 분이 흘렀고, 에테르를 남용해 ‘폭주’ 단계에 진입했으니 몸이 말이 아닐 것이다.
어차피 이제는 더 끌 시간도 없다.
우리는 마지막 힘을 짜내서 엑사에 힘을 주었다.
“이야아아아아압!!”
빠각!!!!!!!!
꽉 막혔던 무언가가 해소되는 느낌과 함께 자이언트 트레저가 격하게 몸을 뒤흔든다.
-고오오오오오오오.
나와 육철완은 녀석의 몸짓에 그대로 튕겨 나가고 말았다.
쾅!!!!
울퉁불퉁한 프라니움 대지에 등부터 떨어지니 눈이 번쩍 뜨인다.
정신을 잃으려다가도 도로 깰 만한 통증이다.
고개를 돌려 육철완의 상태를 확인하고 싶은데 정말 손가락 하나 움직일 힘이 없다.
우리는 성공한 걸까.
분명 손맛은 있었는데.
“천해선!!!!!!!!!!!!!”
멀찍이서 비수의 목소리가 들린다.
목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는 걸 보니 이쪽으로 달려오는 듯하다.
“이 미친놈아! 죽으려고 작정했어?”
아직도 구멍이 뚫려 있는 옆구리를 보며 비수가 질책을 한다.
“살고 싶어서 한 거지.”
“나참. 금방 뒤질 것처럼 있어도 입은 살아서…….”
“클랜장님은?”
“숨만 간신히 붙어 있어. 너처럼.”
“그거 다행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려는 찰나, 눈앞이 흔들린다.
이번에는 고통 때문에 시야가 흐려진 게 아니다.
꼿꼿이 서 있는 자이언트 트레저가, 정말로 몸을 흔들고 있는 것이다.
마치 금방이라도 이쪽으로 쓰러질 것처럼.
“……망할.”
이봐, 농담하지 말라고.
기껏 사생결단을 내놓고 결과도 확인하지 못했는데, 이런 쥐포 엔딩이라니.
“에이 씨발!”
비수가 신경질적으로 소리를 지르더니 날 둘러업었다.
그리고는 육철완의 팔을 질질 끌고 전속력으로 달렸다.
생각보다 힘이 좋은 친구네.
우리가 자리를 막 옮기자마자, 자이언트 트레저의 거구가 땅에 처박혔다.
쾅!!!!!!!!!!!!!!!!!
마치 운석이 떨어지는 소리 같다.
나는 자이언트 트레저와 그 옆에 있는 금영화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자이언트 트레저는 쓰러졌고, 금영화는 멀쩡하다.
그렇다면 남은 결론은 하나.
녀석에게 ‘백몽’의 칼날이 먹힌 것이다.
“성공이다……!!”
나는 누워 있는 상태에서 주먹을 불끈 쥐었다.
마침내 해냈다.
물리 레벨 ‘S’의 비현실적인 강체를 뚫어 버린 것이다.
“천해선 헌터님!!!!”
육철완이 엉금엉금 기어 내 손을 붙잡는다.
그는 맞잡은 손뿐만 아니라 어깨까지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격한 감정에 전신을 주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헌터님이 해내실 줄 알았습니다……!!”
“제가 한 게 아닙니다. 같이한 거죠.”
한참 감격에 젖어 있던 육철완이 돌연 흠칫한다.
그리고는 자신의 두꺼운 손을 내밀었다.
“헌터님. 그런데…….”
그의 손바닥 위에는 부서진 디바이스 기계가 있었다.
세 종류의 막대한 기운을 담느라 산산 조각나 버린, 엑사의 잔해물들이었다.
사용자의 뜻에 맞추어 자유자재로 모습을 변형하던 첨단 디바이스.
최후의 최후까지 버티던 녀석은, 결국 프라니움이라는 철벽을 뚫어 낸 뒤 수명을 다하고 말았다.
“…….”
고맙다.
다 네 덕분이야.
나는 잠시 동안 엑사의 잔해물들을 바라본 뒤 품 안에 소중히 넣었다.
지금은 감상보다는 다음 과정을 진행할 때다.
“으음…….”
생각보다도 육철완의 상태는 심각했다.
무리해서 에테르를 사용하다가 반병신이 된 케이스는 생각보다 흔하다.
헌터 자격 시험에서 재수 없이 굴던 유지원도 큰 대미지를 입지 않았던가.
세심하게 상태를 치유해 주고 나서, 나는 육철완과 함께 자이언트 트레저의 위에 올라탔다.
그동안 비수는 우리의 짐을 한데 모은 뒤, 미리 준비해 둔 주머니에 금영화를 고이 넣어 두었다.
“이제부터는 속도가 중요합니다.”
희귀초와 던전의 보스 몹은 일심동체다.
잠들 때는 상관이 없지만, 보스몹이 죽고 나면 얼마 안 가 꽃도 시들어 버린다.
자이언트 트레저를 죽이고 난 뒤 가능한 빨리 던전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그나저나 이 일을 어쩌면 좋습니까.”
“네?”
“헌터님이 사용하시는 무기가 박살이 나 버렸으니…….”
“……아. 난 또 뭐라고.”
육철완은 ‘힐러’인 내가 몬스터를 잡아내는 게 모두 ‘엑사’라는 무기 덕분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크게 보면 틀린 말은 아니지만, 정작 엑사가 가진 힘의 원천은 모두 나로 인한 것이었다.
으득.
갑자기 새끼손가락을 깨물자 육철완이 흠칫하며 놀란다.
“헌터님……. 무슨…….”
뚝, 뚝 하고 핏방울이 아래로 떨어진다.
갈라진 프라니움 사이에 박혀 있는 백몽의 칼날.
그 칼날을 타고 핏방울이 자이언트 트레니움의 몸속으로 스며든다.
스르르…….
손바닥만 하던 잠식 범위가 점차 세력을 넓혀 간다.
앞선 골렘들은 스스로 몸을 절단해 독이 퍼지는 걸 막았지만, 백몽에 취한 녀석은 무방비 상태나 다름없다.
서서히 자이언트 트레저의 몸이 회색으로 변해 가더니, 곧 몸 전체가 죽음의 빛으로 물들어 버렸다.
독 중의 왕.
포이즈너의 독이 일순간에 놈의 숨통을 끊어 버린 것이다.
“이게…… 도대체……!!!”
그동안 칼로 벤 모습을 봐서 그런지, 육철완이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날 바라본다.
이걸로 확실히 알았을 거다.
내가 일반적인 힐러와는 완전히 다른 존재라는걸.
“천해선 헌터님…… 정체가 뭡니까……??”
혼란스러운 얼굴을 마주한 채, 나는 그저 씨익 웃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