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ison-Eating Healer RAW novel - Chapter (56)
56화
“흐음…….”
책상 위로 도이수의 명함이 두 장 있다.
하나는 자녀인 쌍둥이들이 내게 준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암시장에서 직접 받은 것이다.
명함의 디자인도, ‘엄브렐라 인더스트리’라는 상호도 모두 동일하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도이수의 휴대폰 번호가 상이했다.
어떤 번호로 걸어야 하나.
나는 잠깐의 고민 끝에 쌍둥이에게서 받은 명함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지금의 연락은 ‘동업자’로서가 아니라 ‘자식을 도와주었던 사람’으로서 하는 것이니까.
[네. 전화받았습니다.] [천해선입니다.] [오……!! 헌터님!]수화기 너머로 반가워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그로서도 내가 이렇게 빨리 전화할 줄은 몰랐을 테지.
[그렇지 않아도 방금 헌터님의 기사를 보고 있던 참이었습니다.] [제 기사요?] [네, 고송동 게이트 기사요. 활약이 아주 대단하셨던데요.] [아, 그거요.]열차 사건을 기점으로 나에 대한 보도가 들불처럼 퍼져 가고 있었다.
힐러인 내가 4성 몬스터를 맨손으로 때려잡았으니 그 관심이 오죽할까.
열차에 타고 있던 목격자들이 많아 ‘청검 길드에서 해결한 걸로 하자’는 협상을 할 수도 없었다.
근데 뭐, 언제까지 숨길 수도 없는 일.
도리어 조금은 후련한 느낌도 든다.
귀찮게 하는 사람이 앞으로 훨씬 늘어나겠지만.
[어느 정도 짐작은 했습니다만…… 역시 포이즌 몬스터들도 직접 해결하셨던 거군요.] [혼자서 한 건 아닙니다.] [하하. 저한테까지 겸손하실 필요는 없습니다.]진짜야 이 양반아.
다른 놈들은 몰라도, 자이언트 트레저를 잡은 건 두 명의 조력자 덕분이었다.
[그나저나 어쩐 일로 전화를 주셨습니까? 제 개인 휴대폰이 울린 걸 보니 사업 이야기는 아닌 것 같습니다만.]역시 눈치가 빨라서 좋다.
그는 걸려 온 전화만으로 어느 정도 내 의도를 파악하고 있었다.
비공개 정보의 수집.
나는 ‘글로리 길드 연구소 폭파 사건’의 정황을 확인할 생각이다.
글로리 길드에 유지원까지 얽힌 일이다 보니 은근히 신경이 쓰인다.
청검 길드 대표의 말처럼 이 사건은 철저하게 은폐된 상태다.
V1을 통해 협회 데이터망을 해킹해 보았지만 별다른 소득이 없었다.
아니, 해킹할 정보 자체가 없다고 해야 할까.
협회의 비공개 망을 통해서도 확인이 불가능한 정보라면 다른 길드에게 물어봐도 소용이 없다.
하지만 단 한 명.
협회와 등을 지고 암암리에 몬스터 산업 기술을 개발하는 도이수 쪽이라면 가능성이 있었다.
[글로리 길드 연구소 폭파 사건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매번 즉각적으로 응답하던 도이수가 처음으로 침묵을 유지했다.
[……실례지만 연유를 여쭈어봐도 되겠습니까?] [정보가 있기는 있다는 말씀이시네요.] [그렇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려서, 천해선 헌터님에게 신세 진 게 없었다면 처음부터 모르쇠를 했을 겁니다.] [제가 글로리 길드와 유지원한테 별로 감정이 안 좋아서요.]도이수 또한 내가 개방동 주민이라는 것을 알고 있을 터.
‘왜 사이가 안 좋냐’ 따위의 질문은 나오지 않았다.
[……저희가 파악한 전말은 여기까지입니다.] [고맙습니다.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별말씀을요. 언제든 필요하면 연락 주십시오.]뚝.
말은 저렇게 해도 무상으로 제공하는 정보는 이번이 마지막일 것이다.
오늘 내게 순순히 알려 주었던 건 쌍둥이들을 도와준 답례의 개념일 테니까.
그다음부터는 일종의 ‘빚’이 되는 셈이다.
‘폭주라…….’
청검 길드 김승환이 흘린 정보는 사실이었다.
글로리 길드 연구소에서 클라우드로 전송한 마지막 데이터에 의하면, 유지원이 ‘폭주’ 단계에 돌입했다고 했다.
체내에 쌓인 에테르를 이기지 못해 신체가 무너지는 단계.
폭주 상태에 돌입한 헌터는 존재 자체가 폭탄이나 다름없다.
주변에 무작위로 에테르 에너지를 방사하는 한편, 정신적 붕괴 과정을 겪는다.
도이수의 말에 따르면 현장에 있던 연구원들 외에 유지원의 시체는 발견하지 못했다고 한다.
언제 터질지 모를 시한폭탄이 종적을 감춘 셈이다.
‘헌터가 되고 나서도 연구소를 출입하고 있었다라…….’
필경 어떻게든 능력을 복구할 생각이었겠지.
자식이 낮은 티어에 배정받자 나라 잃은 표정을 하던 부회장의 얼굴이 떠오른다.
표정 관리에 능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헌터 자격 수여식에서 보인 얼굴은 흡사 악귀와도 같았다.
유지원의 성정 또한 그 아버지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기자들을 대동해 시험장 안에서 허세를 떨던 모습을 생각해 보면, 그동안 얼마나 분해하고 있었을지 짐작이 간다.
[유지원이 헌터가 되기 전부터 연구소를 왕래했다는 정보가 있었습니다. 일각에서는 협회에서 보관하고 있던 골드 코어를 사용했다는 소문도 돌고 있습니다. 저희는 추후 협회를 압박할 목적으로 해당 자료들을 모으고 있는 중입니다.]글로리 길드에 들어가기 전에도 왕래하던 곳이니, 헌터가 된 이후로는 대놓고 들락날락했을 터.
아무래도 그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던 것 같다.
골드 코어라는 말에 나도 모르게 움찔했지만, 티는 나지 않았던 것 같다.
지은 죄도 없는데 왜 몸이 반응하는 거야?
어쨌거나 궁금증은 대부분 풀렸다.
글로리 길드는 이번에도 기대에 부응하는 썩은 모습을 보여 주었고, 그건 협회 또한 다르지 않았다.
이런 불신을 가지고 헌터 생활을 계속해도 되는 걸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결사가 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세계에서 가장 강한 헌터가 되는 것.
그것 말고는 다른 데 신경 쓸 여유가 없다.
“어디 보자…….”
책상 위에 다시 두 개의 물건이 놓여 있다.
하나는 야차에게서 건네받은 탈혼수.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이제 막 100%를 달성한 ‘골드 코어’다.
“아, 이제는 골드 코어라고 부르면 안 되겠네.”
‘골드’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이제는 황금빛을 찾아볼 수가 없다.
아주 미약하게 잠식하고 있던 검은색이 이제는 구체를 완전히 집어삼켰다.
그나마 다른 점이 있다면 다른 블랙 코어들과 달리 조금 더 때깔(?)이 살아 있다는 정도?
자그마한 흑진주를 몇백 배로 부풀리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 싶다.
“뭘 먼저 할까.”
영계를 먼저 체험해 볼까, 골드 코어를 흡수해 볼까.
잠시 동안 궁리한 나는 이내 골드 코어를 양손에 쥐었다.
그동안 기다린 시간이 너무 길었던 탓이다.
완성이 되지 않았다면 모를까, 전환율 100%를 달성하고 나니 잠시도 지체하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탈혼수를 마시고 나서 내 상태가 언제 돌아올지도 모르잖아?
“나 잠깐 나갔다 올게.”
“들어오자마자 또 나가?”
“이번에는 금방 돌아올 거야. 훈련하러 가는 거라서.”
입이 샐쭉해진 누나에게 봐달라는 신호를 한 뒤 집 밖을 나섰다.
“역시 여기가 제격이지.”
글로리 길드가 본격적으로 재난 복구 작업을 시작했지만, 이곳은 아직 그대로다.
어린 학생들이 통학하던 개방 초등학교.
이곳은 유독 많은 몬스터가 출현한 탓에 복구 대신 폐쇄 결정을 내렸다.
이곳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새 학교가 지어지는 중이고, 내가 서 있는 개방 초등학교는 아마 제일 마지막에 정리 작업이 들어갈 것이다.
스윽.
조심스레 골드 코어를 내려놓은 뒤 휴대폰을 동영상 촬영 모드로 전환해 놓았다.
코어의 등급도 등급이거니와, 난생처음 ‘뇌’에 블랙 에테르를 쏟아부을 생각을 하니 적잖이 걱정이 된다.
‘네가 가진 코어가 얼마나 좋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 방법’을 사용할 거라면 실내에서는 하지 말거라.’
진 박사의 조언도 내가 학교 운동장으로 나온 이유 중 하나였다.
이쯤 되면 특별한 이벤트가 없는 쪽이 더 서운하게 느껴질 정도다.
“해 보자.”
한 번도 해 보진 않았지만 어떻게 할지는 대충 감이 온다.
전신을 강화하기 위해서 뿌리내렸던 에테르를, 이번에는 한곳에 모아 뇌 쪽으로 보낸다.
대신, 뭐가 어떻게 될지 모르니 천천히.
운동장 바닥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심호흡을 내쉰다.
그리고 아주 조금 블랙 코어를 몸 속으로 흡수해 보았다.
샤르르…….
전류에 감전된 것처럼 온몸에 짜릿한 기운이 온다.
아직 이 에테르를 머리 쪽으로 보내지도 않았는데 이 정도라니.
이러다가 기절하는 거 아니야?
르르르…….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그 어떤 극독이나 마약류에도 취하지 않던 내 몸에 격량이 일고 있다.
심장에서 천둥소리가 나고, 감정 조절이 되질 않는다.
저 먼 밑바닥부터 끓어오르는 고양감에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가부좌를 틀고 있어 망정이지, 다른 자세였다면 진작에 어디론가 튀어 나갔을 것이다.
“으음…….”
안 되겠다.
일단 멈추고 천천히 다시…….
-쉬이이이익!!
다시 같은 건 없었다.
한번 유입이 되기 시작한 골드 코어가 무서운 기세로 내 몸을 타고 흡수되고 있었다.
몸 안에 들어온 녀석들은 방황조차 하지 않았다.
양 손바닥에서 머리를 향해 개통된 도로(?)를 따라, 일사불란하게 뇌에 뿌리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파직.
이게 정녕 사람의 뇌에서 나오는 소리란 말인가.
고통을 넘어 무슨 감각인지도 모를 충격이 머릿속에서 폭발하고 있었다.
“으……!!”
힘들다.
당장 멈추고 싶다.
하지만 검게 흑화한 골드 코어는 내게 조금의 여지도 주지 않았다.
‘날 이렇게 더럽혔으니 너도 대가를 치러라.’
마치 그렇게 말하는 것 같다.
“으아아!!”
흡수를 멈추기는커녕 코어의 기운이 노도처럼 끝없이 밀려 들어왔다.
전신이 용광로처럼 뜨겁고, 머릿속에서는 계속해서 ‘파직’ 하는 설명 불가능한 소리가 나고 있었다.
자이언트 트레저를 잡을 때도 이런 생각은 한 적이 없는데, 진짜로 죽을지도 모른다.
그 어마 무시한 충격에 나는 결국 뒤로 넘어가 버렸다.
쓰러지는 와중에도 오만 가지 생각이 다 든다.
십 년을 넘게 중독 증세로 고통받아왔던 날들.
그렁그렁한 눈으로 애써 웃어 보이던 누나.
포이즌 몬스터를 발견하고 악에 받쳤던 순간들.
마지막으로, 누나가 죽을 위기에 처했을 때 나타났던.
적독사(赤毒巳).
-키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이것이 주마등이라는 걸까.
그날 보았던 적독사가 머릿속에서 뚜렷하게 보인다.
핏빛으로 물든 강철 같은 비늘.
킹코브라를 닮은 흉악한 머리에 사신의 낫을 연상케 하는 이빨까지.
새카만 밤하늘을 온통 피범벅으로 만들어 버릴 것 같은 기세다.
그래.
그날 저놈을 불렀었다.
어떻게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키아아아아아아아악!
어후 시끄러.
그때는 난리 통이라서 느끼지 못했지만, 귀청이 떨어져 나갈 것 같은 목청이다.
한밤중에 주민들 다 깨우게 생겼…….
가만.
이건 내 기억 속이 아닌가?
슈웅.
적독사가 몸을 풀기라도 하듯 자신의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 본다.
“이럴 수가…….”
기억 같은 게 아니었다.
밤하늘을 배경으로 위풍당당하게 서 있는 ‘놈’은 실존하고 있었다.
여기, 내가 누워 있는 바로 옆에서.
그 지옥 같은 몸부림을 하는 와중에, 내가 이놈을 불러냈다는 건가?
적독사가 나타남과 동시에 골드 코어의 흡수가 끝났다.
이제 내 양손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
머릿속과 가슴이 동시에 울렁이는 기분이다.
이전보다 정말 많은 것이 달라졌다.
밤하늘이 CG로 만든 은하수처럼 밝아졌고, 운동장의 흙 내음이 진하게 올라왔다.
신체의 오감이 말도 안 되게 발달한 것이다.
그래서 저놈의 울음소리가 더 시끄러웠던 거였나.
-스읍.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하듯 적독사가 숨을 들이켤 준비를 한다.
미친놈아 그만해.
“워워워워!”
-???
한 번 더 포효를 했다간 헌터들이 출동할지도 모른다.
나는 엉겹결에 양손을 들어 녀석을 만류했고, 신기하게도 놈은 동작을 멈추었다.
고개를 한참 들어야 얼굴을 마주할 수 있는 거대한 몬스터가 내 말을 듣는다라.
진짜 웃기네.
슈웅.
적독사가 머리를 아래로 내려 내 쪽으로 접근한다.
양손을 펼쳐도 모자란 크기의 동공이 나를 쏘아본다.
-크르…….
장담하건대 어지간한 헌터도 이 장면에서는 바지를 적시고 말 거다.
나 또한 석상처럼 몸이 굳었지만, ‘내가 부른 놈’이라는 근거 하나에 정신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여기서 시끄럽게 하면 안 돼.”
마치 집 안에서 자주 짖는 강아지에게 하는 경고처럼, 나는 녀석에게 주의를 주었다.
-크르…….
내 말을 알아들은 게 맞긴 맞나.
그런 의문을 품고 있을 무렵, 적독사가 별안간 머리를 크게 쳐들었다.
그 동작만으로 큰바람이 일렁여 머리칼이 휘날린다.
이놈이 또 왜 이러는 거야?
그러더니 들어 올린 머리를 한차례 위아래로 흔든다.
슈웅.
덩치가 너무 커서 그렇게 보이지 않는 것일 뿐, 저 살벌한 동작이 의미하는 바는 바로…….
“끄덕…… 거린 거야?”
적독사가 또 한 번 고개를 힘차게 움직인다.
누가 보면 머리로 뭔가를 찍는다고 오해할 만한 동작이었다.
“하하…….”
신기하면서 재미있다.
생긴 건 살벌하게 생겨 가지고 하는 행동은 마치 머슴 같다.
각성한 날 이후로 아무리 불러도(?) 나타나지 않던 적독사가 마침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대형 포이즌 몬스터를 흔적도 없이 짓뭉개 버리던 압도적인 물리력.
나는 문득 그 물리력을 다시 한번 확인해 보고 싶었다.
“마침 철거 대상도 눈앞에 있고…….”
언젠가는 허물어야 할 초등학교 건물이 시야에 들어왔다.
별다른 명령 없이, 나는 눈짓만으로 학교 건물을 가리켰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적독사가 안광을 휘날리며 건물로 돌진했다.
과연 그때만큼 강한 물리력을 행사할 수 있을까?
콰앙!!!!!!!!!!!!!
적독사에게 조용히 하라고 했던 말이 무색하게, 주변 일대에 커다란 굉음이 일었다.
굉음뿐이 아니라 방금의 공격으로 지면이 일렁이기까지 했다.
폭음에 지진까지.
누가 보면 전쟁이라도 난 줄 알겠네.
“잘했어. 이제 들어와.”
적독사는 군말 없이 에테르로 변화해 내 몸으로 들어왔다.
그 커다란 덩치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완벽히 박살이 난 건물 잔해만이 황량하게 남아 있었다.
그리고,
Poisner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단 한 번도 듣지 못했던 기분 좋은 소식이 날아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