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ison-Eating Healer RAW novel - Chapter (60)
60화
“뭐라고?”
에테르를 가득 담은 노성이 해남동 하늘에 울려 퍼진다.
마리아와 함께 현장에 도착한 구건이.
글로리 길드 3팀장에게 보고를 받은 직후, 그의 얼굴은 딱딱히 굳어졌다.
“수색에 나간 헌터가 실종이 되다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건가?”
“말씀드리기 송구합니다만…… 그렇습니다.”
구건이에게 한번 찍히면 출세는 요원하다.
그의 인사평가는 자비가 없기로 유명하니까.
글로리 길드 3팀장도 할 수만 있다면 다른 보고를 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순찰을 내보낸 헌터가 사라진 건 명백한 현실이었다.
C랭크 힐러 조진찬.
유지원을 찾고자 수색 명령을 내린 헌터 한 명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최근 들어 해남동 일대에 실종 사건이 발생한다고 하던데…….”
웬만하면 마리아의 말에 동조하는 구건이였지만, 이번만큼은 고개를 저었다.
“일반인 실종 사건하고 이 건이 같아? 만에 하나 인신매매범이 있다고 한들 명색이 헌터가 일반인에게 당하겠냐고.”
“그건 그렇지만…….”
“마지막으로 확인된 구역이 어디야? 디바이스에서 보낸 GPS 신호가 있었을 거 아냐.”
구건이의 날 선 질문에 3팀장이 땀을 삐질 흘리며 대답한다.
“바로 이 근처입니다. 이곳에서 폭발적인 에테르 반응이 한번 발생한 뒤, 다시 사라졌습니다.”
“염병할…….”
구건이가 거친 욕설을 씹어뱉는다.
그는 길드원들에게 ‘순찰을 돌다 에테르 반응이 발견되면 유지원인지 확인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폭주 단계에 돌입한 헌터는 자신의 에테르를 감출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에 하나.
유지원이 에테르를 숨길 수 있는 상태라면?
구건이가 내린 수색 작전은 처음부터 ‘실패한 오더’가 되어 버리고 만다.
‘하지만 어떻게……?’
구건이는 헌터 생활을 하면서 ‘폭주’ 상태에 빠진 헌터들을 종종 목격했다.
폭주 상태에 빠진 헌터는 그 어떤 인간보다 불안정하다.
걸어 다니는 시한폭탄처럼 주변으로 에테르를 발산해 충돌을 일으킨다.
결코 이런 식의 ‘폭주’는 경험해 본 적이 없었다.
유지원이 한 소행이 확실하다 해도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고작해야 ‘E’랭크, 게다가 힐러로 판정받은 놈이 어떻게 조진찬을 제압할 수 있었던 걸까.
구건이는 복잡한 미로에 떨어진 기분이 되었다.
삐빅.
“무슨 일이야?”
3팀장이 누군가에게 무전 보고를 받는다.
보고를 받는 동안에도 눈알을 굴려 구건이의 눈치를 살핀다.
잔뜩 긴장해 보고를 받던 3팀장의 인상이 갑자기 구겨진다.
“다른 헌터가 나타난 게 무슨 대수야. 여기에 우리만 있으라는 법 있어?”
그러나 ‘다른 헌터’의 이름은 3팀장도, 구건이도, 마리아도 놀랄 만한 인물이었다.
“천…… 해선?”
“?!”
천해선이 왜 여기에?
구건이와 마리아가 서로를 바라본다.
“구 대표님. 보고에 의하면 천해선이 해남동 57번지 근처에서 폐건물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합니다.”
해남동은 ‘동’치고는 행정구역이 꽤 넓은 지역이다.
57번지면 이곳에서부터 직선거리로 5km 이상 떨어진 지역이었다.
조진찬의 무전이 여기에서 끊겼다는걸 감안하면 그다지 상관이 없는 장소.
그러나 구건이의 촉이 계속해서 그를 보채고 있었다.
천해선 쪽에 뭔가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이 구건이의 머릿속을 간지럽혔다.
“대표님. 우리도 가 보죠.”
마리아 또한 구건이과 같은 기분을 느낀 것인가.
서로 고개를 끄덕인 두 남녀가 빠르게 신형을 움직였다.
* * *
“…….”
하마터면 못 알아볼 뻔했다.
눈앞에 보이는 ‘저건’ 인간이라기보다 몬스터에 가까운 모습이었으니까.
하지만 놈의 목 위에 달린 얼굴은 명백히 유지원의 것이었다.
비록 뒤틀리고 일그러져 있었지만, 헌터 자격 시험에서 날 내려다보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
-키익.
유지원의 안면 근육이 격하게 출렁거린다.
얌마.
네가 그렇게 반응하면 내 쪽이 악당 같잖아.
놈은 불구대천의 원수라도 목격한 듯 바들바들 몸을 떨기까지 했다.
상대를 목격하고 충격에 빠진 건 나 또한 마찬가지다.
유지원은 재수가 없어서 그렇지, 꽤 잘빠진 훈남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훈남은커녕 혐오스럽기 이를 데 없었다.
두 배로 커진 체격은 좌우가 비대칭 했고, 흉하게 난 털과 굽어 버린 등은 도저히 ‘인간’이라 부를 수가 없었다.
그런 모습을 한 채 사람을 먹어 치우다니.
누나나 비수가 봤다면 곧바로 혼절해 버릴 장면이었다.
퉷.
땡그랑.
놈의 입 안에서 무언가가 튕겨져 나왔다.
달빛에 비치는 황금색의 조그만 물건.
“저건……?”
글로리 길드의 배지다.
전투 중에 역할을 곧바로 알아볼 수 있게 만든, 힐러 전용 배지.
그러니까.
방금 저놈이 먹어 치운 놈이 헌터였단 말인가?
스윽.
나는 눈을 가늘게 뜬 채 유지원을 노려보았다.
도대체 내가 알고 있는 ‘폭주’와는 일치하는 게 하나도 없었다.
유지원의 사고 소식 이후로 ‘폭주’와 관련된 자료를 깡그리 읽어 보았다.
협회에서 공시한 자료는 물론 비공개 자료들까지.
하지만 어떤 문건에서도, 저렇게 기괴한 몸뚱어리가 된다거나 사람을 먹어 치운다는 내용은 없었다.
요컨대, 생전 처음 보는 타입이라는 의미다.
유지원.>
데이터가 부족한 건 V1 또한 마찬가지였다.
놈의 이름 세 글자 이외에는 표기되는 정보가 단 하나도 없었다.
넌 누구냐.
왜 그런 모습을 하고 있는 거냐.
츄앗-
순간적으로 유지원의 모습이 사라졌다.
땅으로 꺼졌나 싶은 생각이 들려는 찰나, 등 뒤에서 날카로운 통증이 느껴진다.
까득.
“윽……!”
반사적으로 얼굴을 후려치고 뒤쪽으로 물러섰다.
생긴 것만 몬스터가 된 줄 알았는데 하는 짓도 별 다를 바가 없잖아?
‘그나저나…… 방금의 움직임은 뭐였지?’
처치 난도가 높은 몬스터들을 여럿 겪었다.
그중에서는 몸놀림이 빠른 녀석들도 더러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은 움직임을 쫓을 수 있었다.
내게는 가지고 있는 물리 레벨보다 한 차원 높은 수준의 기동력, ‘독보’가 있었기 때문이다.
츄앗-
또다시 놈이 잔영만을 남긴 채 사라지고, 나는 좀전의 경험을 떠올려 위쪽으로 도약했다.
“윽……!”
그러나 이번에도 놈의 이빨이 내 발목을 물어뜯었다.
‘폭주’상태에 빠지면 신체의 능력이 이다지도 발달하는 걸까?
정확한 이유를 알 수는 없었지만 나는 한 가지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현재의 유지원은 ‘C’랭크의 헌터보다, 아니 ‘독보’보다 빠르다는 것을.
‘공격 패턴이 단순한 게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날카로운 통증은 있지만 그게 전부일 뿐, 특별한 외상은 없다.
트레저 헌터의 코어를 흡수한 뒤 ‘호신강기’가 생겼기 때문이다.
놈의 물리 공격이 S랭크급이 되지 않는 이상에야, 내 몸에 상처를 입히는 건 불가능하다.
의외인 건 녀석의 공격 패턴.
마치 한번 물기만 하면 끝이라는 듯 몸에 달라붙는 데에만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다.
엑사를 휘두르던 과거의 내 모습처럼 말이다.
‘혹시……?’
폐건물 일대에 퍼진 기이한 냄새.
설마하니 녀석도 몬스터 포이즌을 개화한 걸까?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되지만, 눈앞에 보이는 녀석은 이미 상식의 영역을 아득히 벗어난 지 오래다.
게다가 몬스터 포이즌이라면 그간의 실종 사건이 어느 정도 이해되는 측면도 있다.
일단 이렇게 한번 물어뜯기면 별다른 저항조차 하지 못하고 정신을 잃을 테니까.
물론 독 중의 왕이라 불리는 ‘포이즈너’ 앞에는 그 어떤 독도…….
어질.
“?!”
효과가 있었다.
정신을 잃을 정도는 아니지만, 나는 가벼운 현기증을 겪어야 했다.
그건 정말 믿기 어려운 일이었다.
보스 몹에게 치명상을 당해도 멀쩡하던 내 몸에 변화를 일으키다니.
경고 : 상태 이상. 확인되지 않은 성분이 사용자의 몸에 침투합니다. 손상률 0.3%>
‘……이걸로 확실해졌다.’
유지원의 움직임에 신경을 집중하면서 생각을 정리했다.
저건 단순한 폭주가 아니다.
헌터 협회에서 알고 있는 ‘폭주’의 내용과 같은 점이 단 하나도 없다.
하지만 연구소가 폭파되었을 당시의 과정은 ‘폭주’로 인한 에테르 방출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그렇다면 다음과 같은 결론이 남는다.
‘폭주 이후에, ‘플러스 알파’가 있었다.’
그 플러스 알파가 뭔지 당장은 확인할 길이 없다.
인간을 뼈째 씹어 먹는 유지원과 ‘대화’가 가능할 리 없으니까.
지금 당장 해야 할 건 눈앞의 괴물을 무력화시켜야 한다는 점이었다.
적독사를 불러내 짓이겨 버려야 할까?
하지만 ‘독보’보다 빠른 녀석에게 그런 정밀한 타격이 가능할지 미지수다.
그동안의 트레이닝을 통해 얻은 사실은, 적독사가 그다지 똑똑한 놈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가만히 서 있는 놈에게는 가혹하리만치 잔인한 물리 공격이 발생하지만, 그 대상이 빠르게 움직이면 공연히 건물들만 다 때려 부술 가능성이 컸다.
살랑.
손바닥에서 피어나는 조그마한 아지랑이.
아직은 에테르의 컨트롤이 원활하지 못하다.
하지만 이 방법이라면 어떨까?
쉬익.
유지원이 또다시 이쪽으로 도약한다.
세 번째쯤 되니 그나마 눈에 익긴 하지만, 여전히 움직여서 피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놈은 놈대로 내가 쓰러지지 않으니 약이 바짝 오른 눈치다.
너무 그렇게 열 내지 마라.
내가 포이즈너가 된 이후로 미약하게나마 ‘상태 이상’이 발생한 건 네가 처음이니까.
나는 일부러 오른팔을 앞으로 뻗었다.
‘타격’ 자체가 목적이 된다면 돌출되어 있는 신체만큼 좋은 먹잇감은 없다.
콱.
예상대로 유지원은 내 손을 목구멍에 집어삼켰다.
‘꿈에 나올까 무섭네.’
내 손을 삼키고 아등바등하는 모습을 보자니 절로 인상이 찡그러진다.
몇 배는 커진 이빨이 내 팔을 갉아 먹으려 하지만 미세한 상처만이 남을 뿐이다.
어질.
또다.
유지원이 몸을 물자 현기증에 머리가 핑 돈다.
경고: 상태 이상. 손상률 0.1%>
하지만 이것조차 면역이 되는 걸까.
이전보다는 한층 더 빨리 회복이 되는 것 같다.
과연 ‘독중지왕’이라는 별명이 허명은 아닌 듯하다.
“야.”
-키익.
“처음 만났을 때부터 재수가 없더라.”
-?
화륵.
녀석이 삼킨 손안에서 아지랑이가 피어오른다.
블랙 에테르를 염동력의 형태로 발산하는 불꽃.
이른바, ’독염’.
에스퍼들이 발산하는 에테르 에너지와 기본적으로 같은 원리다.
다른 점이 있다면 에너지 자체의 파괴력이라고 해야 할까.
손바닥에서 분출된 블랙 에테르가 녀석의 목을 타고 내부에서부터 터져 나갔다.
퍼버버버벅.
-키엥에에엑!
놈은 나를 물었다고 생각했겠지만, 실상은 정반대다.
오히려 폭탄을 몸 안에 집어넣을 수 있게끔, 아가리를 벌려 줬다고 해야겠지.
끈덕지게 팔을 물고 있던 악력이 무색하게, 놈은 ‘독염’ 한 방에 반대편 벽에 처박혔다.
쾅!!!
“휘유.”
살갗이 탄 역겨운 향이 후각을 자극한다.
유지원의 몸은 형체를 분간할 수 없이 산산 조각나 있었다.
뭐, 본래 형체도 정상적이라고 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지만.
갈가리 찢겨진 사체와 실종된 사람들의 잔해물 등.
이곳은 정말 지옥도가 어울릴 만한 공간이었다.
스륵.
얼마 나지 않은 상처조차 자연적으로 치유가 된다.
어느새 V1이 보냈던 상태 이상 경보도 사라져 버렸다.
외부의 물리 공격은 ‘호신강기’가, 염동력과 몬스터 포이즌은 ‘블랙 에테르’가 지켜 주니 걸어 다니는 철옹성이 따로 없었다.
타격을 입지 않는 ‘S’랭크 힐러라니.
이건 이거대로 사기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꿈틀.
“아니……?”
사지가 갈가리 찢겨 나간 유지원의 얼굴이 움찔거린다.
설마하니 아직도 숨이 붙어 있는 거야?
놀랍게도, 숨이 붙어 있는 정도가 아니었다.
샤르르…….
‘치유?’
저건 분명 헌터들이 사용하는 치유 능력이다.
유지원이 원래부터 ‘힐러’로 등록되어 있기는 하나, 그보다 더 상급의 기운이 갈가리 찢긴 몸을 치유해 서로를 붙이고 있었다.
바닥에 떨어진 글로리 길드 배지가 다시 한번 눈에 들어온다.
설마하니, 먹어 치운 놈의 능력을 습득한다거나 그런 어처구니없는 짓을 벌이는 건 아니겠지?
놈을 다시 공격해야 하나, 그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 마구 찢어진 놈의 사지가 결합 되어 붙었다.
완벽함과 거리가 먼, 찰흙으로 대충 붙인 것 같은 기괴한 몰골이긴 했지만.
“자가 치유라고 하기에는 말도 안 되는 회복력인데…….”
인간이라면 죽는 게 당연한 공격이었다.
몸이 여러 조각이 나고도 살 수 있는 사람은 없으니까.
놈의 치유 능력은 인간의 회복력을 아득히 앞서는 것이었다.
지독하리만큼 강인한 생명력에 마음속으로 혀를 내두르던 찰나,
“천해선!”
등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린다.
익숙하면서도, 들으면 들을수록 엿 같은 목소리.
네가 왜 여기서 나와?
고개를 돌려 보니, 구건이와 마리아가 경악에 찬 얼굴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