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ison-Eating Healer RAW novel - Chapter (61)
61화
구건이는 하마터면 한 손으로 마리아의 눈을 가릴 뻔했다.
마리아 또한 전장을 누비면서 온갖 참상을 겪었지만, 눈앞의 광경은 정말이지 처참하기 이를 데 없었다.
군데군데 널브러진 뼈와 옷가지, 그리고 살점들.
근육을 아무렇게나 만들어서 붙여 놓은 듯한 유지원의 기괴한 형체.
이루 형용할 수 없는 역한 냄새와 비릿한 피 내음까지.
폐건물 안에 ‘정상적인 것’이라고는 눈앞에 보이는 천해선밖에 없었다.
“천해선……!!”
“……당신들이 왜 여기…….”
천해선이 말을 하다말고 비릿한 웃음을 짓는다.
“하긴. 찾는 게 당연한 일이지.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 글로리 길드 출신이니.”
그의 시선이 땅바닥에 떨어진 자그마한 금속 물체로 향한다.
절반이 피로 물들어 버린 글로리 길드의 배지.
물건의 정체를 확인한 구건이와 마리아의 얼굴이 딱딱히 경직되었다.
“설마 저 배지의 주인을…… 유지원이 해치운 거냐?”
“이곳에 도착할 때 누군가를 막 먹어 치웠더군. 그리고 저걸 뱉었지.”
먹다니.
유지원이 다른 사람을 먹었다고?
구건이는 자신이 잘못 들은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사색이 된 마리아의 표정을 보자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폭주를 했다지만 사람이 사람을 먹다니.
숨이 꽉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유지원은 어떻게 찾은 거지?”
“그런 것까지 말해 줄 의무는 없는 것 같은데.”
구건이는 속으로 부아가 치밀었지만, 딱히 반박할 수 없었다.
천해선이 글로리 길드 소속이라면 당연히 상명하복을 하겠지만, 그는 지금 어디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은 상태였으니까.
원하는 정보를 얻으려면 고개를 숙여야 하는 법.
다행히도 대신 고개를 숙여 줄 사람이 옆에 있었다.
“부탁드려요, 천해선 님. 저희가 계획한 수색 작업으로는 유지원을 찾을 수가 없었어요. 유지원 헌터가 폭주를 하게 된 단서를 찾기 위해서라도…….”
천해선은 잠시 동안 침묵하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냄새가 났습니다.”
“냄새……?”
“해남동에 볼일이 있어 와 봤더니, 피비린내와 몬스터 포이즌과는 다른 이질적인 냄새가 났습니다.”
“……!”
천해선의 말에 구건이는 두 번째 사형 선고를 받는 기분이 들었다.
녀석의 말이 사실이라면, 에테르 반응을 가지고 유지원을 찾아 나선 건 완벽한 헛다리였던 것이다.
“저는 해남동에서 그런 냄새를 맡지 못했는데……. 아무래도 천해선 님만 감지할 수 있는 것 같네요.”
마리아의 말에 천해선은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았다.
그저 손바닥에 핀 아지랑이를 천천히 쓸어내릴 뿐.
‘저건?’
달라진 변화에 구건이가 눈을 크게 떴다.
손바닥에 맺힌 무형의 기운을 알아본 것이다.
‘이전에 봤을 때는 없었던 건데…….’
구건이는 천해선에게 물어보려다 입을 다물어 버렸다.
조금 전과 마찬가지로, 저 건방진 놈이 대답할 리 없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몸이 여러 갈래로 찢어졌는데도 스스로 이어붙이더군. 난 이제 빠질 테니 알아서 해결해.”
세상에 그 어떤 사람도 구건이에게 이런 식으로 말하지는 않는다.
그 시건방진 태도에 구건이는 열이 뻗쳤지만, 지금은 다른 일이 더 시급했다.
몸의 재생을 마친 유지원이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기 때문이다.
스윽.
“……!!”
구건이는 은연중에 전신의 에테르를 가득 끌어 올렸다.
그가 천해선보다 확실히 비교 우위에 선 항목이 하나 있었다.
이른바 ‘전투 경험’.
천해선은 불시에 당했지만, 백전노장의 ‘S’랭커 나이트에게는 유지원의 위험성이 똑똑히 보였다.
‘통곡의 벽’
구건이가 양손을 앞으로 뻗자, 투명한 에테르 기운이 좌우로 넓게 퍼졌다.
겉보기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구건이의 앞에는 밀도 높은 방어막이 펼쳐진 상태였다.
그 어떤 몬스터도 뚫지 못했던, 세계적인 헌터들과 비무를 벌일 때도 깨어지지 않았던 궁극의 방어막.
이른바 통곡의 벽.
파캉.
과연 구건이의 통찰력은 정확한 것이었다.
자세를 취하기가 무섭게 유지원의 이빨이 ‘통곡의 벽’과 충돌했다.
키익.
투명한 막이다 보니 달라진 유지원의 모습이 똑똑히 보였다.
흉측한 알몸상태로 드라큘라처럼 변한 이를 벽에 처박는 모습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참담한 기분이 일게 만들었다.
“지원 요청을 할까요?”
마리아의 말에 구건이는 고개를 저었다.
지금 펼친 ‘통곡의 벽’을 뚫지 못한다면 지원은 필요치 않다.
게다가 S랭크 나이트와 힐러가 현장에 이미 와 있는데, 그 누가 이들을 도와줄 수 있겠는가.
“괜찮아. 빠르긴 해도 이 녀석의 살상력은…….”
쩌억.
“?!”
구건이는 채 말도 끝내지 못하고 전방을 바라봐야 했다.
놀랍게도, 8성 몬스터도 뚫어 내지 못했던 ‘통곡의 벽’에 균열이 가기 시작한 것이다.
‘이럴 수가……!!!’
마리아 또한 놀란 토끼 눈이 되어 눈앞의 광경을 바라보았다.
구건이와 함께 굵직한 던전을 수차례 오갔지만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했던 일이었다.
별다를 것 없어 보이는 이빨에 ‘통곡의 벽’이 금이 갈 줄이야.
마리아는 눈을 가늘게 뜨고 유지원의 이빨을 유심히 살폈다.
그리고 이내, 특별한 무언가를 발견했다.
‘저건……?’
얼핏 보기에는 이빨로 파내는 것 같지만, 그 끝에 미약한 액체가 묻어나오고 있었다.
보랏빛으로 보이는 정체불명의 성분.
그 성분이 압축 에테르로 만들어 낸 ‘통곡의 벽’을 잠식하고 있었다.
창!
유리가 깨지는 소리가 나며 마침내 ‘통곡의 벽’이 완전히 깨져 버렸다.
구건이도 어느 정도 예상을 했는지 오른손을 회수해 주먹을 날렸다.
풍압만으로 육신을 박살 낼 것 같은 어마어마한 위력.
그러나 유지원의 몸놀림은 천해선의 ‘독보’조차 따라가지 못할 만큼 빠른 것이었다.
놈은 몸을 기묘하게 꺾어 구건이의 주먹을 피한 뒤, 그의 오른쪽 허벅지를 깨물었다.
콰악.
천해선과 마찬가지로, 녀석의 이빨은 몸 깊숙이 들어오지 못했다.
구건이의 단련된 육체는 천해선의 ‘호신강기’와 필적하는 수준.
오히려 천해선보다 더 큰 상처를 입는 게 억울한 경지였다.
그러나 구건이는 유지원에게 일격을 당했다는 자체에 몹시 화가 나 있었다.
“이 개자식이…….”
덥썩.
악력으로 유지원의 머리를 들어 올린 구건이가 창을 던지듯 벽 쪽으로 유지원을 집어 던졌다.
콰광!
‘드럽게 우악스럽네.’
천해선은 마음속으로 휘파람을 불었다.
건물에 천장이 없어 망정이지, 있었다면 폐건물 자체가 무너져 내렸을 것이다.
구건이가 품 안에서 무언가를 꺼낸다.
얼핏 보면 흔한 끈처럼 생겼지만 끈 외부에 진득한 에테르 성분이 잔뜩 발라져 있었다.
저건 아마 몬스터 생포용 디바이스일 것이다.
‘저걸로 될까?’
천해선은 잠자코 구건이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가 예상컨대, 지금은 생포가 중요한 단계가 아니다.
‘독중지왕’이라 불리는 자신조차 가벼운 현기증이 일지 않았는가.
제아무리 ‘S’랭커라 한들, 일반적인 헌터가 견딜 수 있는 독이 아니었다.
휘청.
걸음을 옮기던 구건이가 돌연 무게 중심을 잃는다.
스스로 처한 상황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입을 떠억 벌린 채 몸 이곳저곳을 살펴본다.
어느새 그의 얼굴에는 보랏빛 핏줄이 드러나기 시작했고,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마리아가 재빨리 다가왔다.
샤르르…….
“우웩!”
치유가 진행되는 와중에도 구건이는 연거푸 바닥에 위액을 토해 냈다.
그 말은 곧, 마리아의 치유조차 제대로 먹히고 있지 않다는 의미.
천해선은 유지원이 품고 있는 독의 위력을 한 번 더 체감할 수 있었다.
자신이야 그렇다 쳐도, 다른 ‘S’랭크 헌터들마저 쩔쩔맬 만큼 놈의 성분은 악독하기 이를 데 없었다.
-키익.
벽에 박힌 유지원이 쇳소리를 내며 두 발을 땅 위에 내디딘다.
몸이 산산 조각날 때도 죽지 않은 놈이니, 저런 물리적 충격 따위야 우스운 수준일 터.
하지만 아직 구건이는 일어서는 것조차 어려운 상태였다.
마리아는 마리아대로 충격에 빠져 있었다.
스스로 과신하는 편은 아니었으나, 그 어떤 상태 이상도 자신의 치유를 통해 금세 정상화되곤 했다.
하지만 지금은 악화되는 상태를 붙잡는 데 급급할 뿐이었다.
전력을 다해 치유 능력을 활성화했지만, 구건이의 상태는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유지원이 접근해 온다면 분명 치명상을 입게 될 것이다.
마리아는 자신도 모르게 천해선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글로리 길드에서 알아서 해결하라’며 한 발 뒤로 물러섰던 그는, 깍지를 낀 손을 주욱 내밀고 있었다.
“좀 실망인데. 상대하기 힘들 거란 건 알고 있었지만.”
그 도발적인 말에 구건이가 충혈된 눈을 번뜩인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것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리액션이었다.
조금이라도 에테르에 집중을 하지 못하면 각혈이 나오는 통에, 구건이는 새파란 애송이에게 무어라 대꾸조차 하지 못했다.
“죽이죠.”
천해선이 한 말에 마리아가 사슴 같은 눈을 깜빡거렸다.
치유를 도와준다고 할 줄 알았더니, 그 반대였다.
그는 구건이를 치유해 주는 게 아니라 상대방을 죽이자고 제안하고 있었다.
“몸을 찢어발겨도 복구를 하는 놈입니다. 아예 가루로 만들 수밖에 없어요. 생포하는 편이 여러모로 용이하겠지만, 적당히 봐줘서 싸울 놈이 아닙니다.”
구건이와 마리아는 말문이 턱 막히고 말았다.
몸을 찢어발기다니.
누가.
무슨 수로?
농담이라고 하기에는 천해선의 표정이 너무 진지했다.
‘잠깐…….’
그러고 보니 궁금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천해선은 어떻게 유지원과 대치할 수 있었던 거지?
그는 ‘S’랭커이지만 기본적으로 ‘힐러’다.
나이트나 에스퍼가 아닌 이상에야 유지원과 1대1로 맞붙는 건 자살행위와 진배없다.
하지만 그는 분명 유지원이 산산 조각났었다고 했다.
도대체 누가 저 위협적인 변종에게 궤멸적인 공격을 가했다는 것인가.
천해선.
당신이?
그 해답을 얻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구건이와 마리아 앞에 선 천해선을 향해, 유지원이 재차 도약해 오고 있었다.
* * *
처음에는 ‘환격’을 사용해 볼까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별로 좋지 못한 선택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잠깐의 눈속임으로 유지원의 이빨을 흘릴 수는 있겠지만, 만에 하나 뒤쪽의 ‘짐덩이들’에게 공격이 가해진다면 손을 쓸 수가 없다.
녀석에게 아직 이성이라는 게 남아 있을까?
있을 확률이 높다.
내 얼굴을 확인하고 난 뒤 보였던 반응은, 단순한 본능을 넘은 ‘증오’가 느껴졌으니까.
맨정신일 때도 저놈은 지 혼자 열등감을 느껴서 지랄 발광을 했었지.
어쨌거나 녀석에게 이성이 남아 있다면, 되려 편하게 잡을 수 있다.
팟.
놈의 공격 방식이 원 패턴이라서 다행이다.
처음에는 보이지도 않던 녀석의 움직임이 이제는 제법 익숙하다.
나는 이전처럼 오른팔을 뻗어 놈의 공격을 유도했다.
콱.
그리고 예상했던 대로, 놈은 내 오른팔을 지나 옆구리를 깨물었다.
“천……!!”
마리아가 깜짝 놀라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지른다.
구건이에 이어 나까지 중독이 걸리면 정말로 손 쓸 수 없게 되는 상황이다.
‘역시나.’
녀석은 일말의 이성이 남아 있는 상태였다.
죽지 않을 정도로 패 버리면 대화도 할 수 있지 않을까.
나 또한 놈에게 묻고 싶은 게 한가득이지만, 이미 녀석은 선을 넘어도 한참 넘었다.
저벅.
옆구리를 물린 상태로 한 걸음씩 앞으로 향한다.
놈의 체중이 족히 200kg은 되겠지만 내 물리 레벨 또한 그 정도는 감수할 만한 수준이다.
거구의 몬스터를 끌고 비척비척 걸어가는 광경은 스스로 보기에도 그로테스크했다.
어쨌거나 두 명의 남녀에게서 적당한 거리를 둔 나는, 손바닥을 녀석의 머리에 대었다.
-키긱.
놈에게서 당황하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천하의 구건이도 주저앉게 만든 공격이, 어째서 내게는 통하지 않는지 궁금하겠지.
그 대답은 지옥에나 가서 확인해 봐라.
나는 오른손바닥을 들어 놈에게 겨냥했다.
가까이서 보니 놈의 동공이 보이지 않는다.
심연처럼 검게 물들어 버린 눈이 내게 묻는 듯하다.
내 쪽으로 ‘독염’을 쏘면 너도 무사하지 못하다.
뭐 그렇게 말하는 것 같다.
실제로 이 방향에서 이놈의 머리통을 날리면 그 여파가 내게도 퍼질 거다.
문제는, 놈에게는 치명적인 ‘독염’이 내게는 아무런 해가 되지 않는다는 거다.
“잘 가라.”
손바닥에서 피어나는 아지랑이가 일순간 거세지며 전방에 검붉은 화염을 쏟아 낸다.
펑!!!!!!!!
힘 조절이 되지 않는다는 게 이렇게 도움이 될 줄이야.
머리를 겨냥해 날린 ‘독염’이 눈앞의 모든 구역을 불태워 버렸다.
“…….”
옷의 반쪽이 타 버린 건 어쩔 수 없었지만, 신체에는 아무런 손상이 없었다.
전신이 재가 되어 버린 유지원만이, 모든 손상을 짊어졌을 뿐.
옆구리에 박힌 서슬 퍼런 이빨을 제외하고, 이제 ‘유지원’이라 부를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독염’ 한 방에 폭주 상태에 빠진 헌터를 잿더미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역시. 이것만으로는 재생이 안 되나 보네.”
이빨을 하나둘 떼어 내는 그 모습을, 구건이와 마리아가 황망한 얼굴로 지켜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