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ison-Eating Healer RAW novel - Chapter (62)
62화
옆구리에 박힌 이빨을 떼어 정리하는 내내 어색한 침묵이 흐른다.
이렇게 보니 구건이와 마리아의 표정이 꽤 가관이다.
힐러인 내가 어떻게 이런 살상력을 가지게 된 건지.
지옥 같은 화염 속에서 어떻게 나만 멀쩡할 수 있는 건지.
왜 이렇게 태연한 표정을 짓고 있는 건지도 궁금하겠지.
“너……!!”
간신히 치유를 끝낸 구건이가 힘겹게 입을 떼었다.
“어떻게 된 거야? 언제부터 그런 능력을…….”
“아까도 말했지만.”
“?”
“설명할 의무가 없다.”
나는 그렇게 말하며 유지원의 이빨을 마리아에게 튕겼다.
“남아 있는 거라곤 그게 전부입니다. 조사를 하든 유품으로 주든 알아서 하세요.”
“…….”
그녀 역시 지금의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는 모습이었지만, 구건이에 비하면 꽤 침착한 모습을 보였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묻고 싶은 게 많을 텐데 그녀는 질문 대신 감사 인사를 전했다.
예전부터 느꼈던 거지만 구건이와는 여러모로 다른 사람이다.
똑같은 S랭커지만 오만함이나 권위 의식은 찾아볼 수가 없고, 사려 깊은 생각들이 행동에서 묻어 나오곤 했다.
외모적인 차이야 뭐 말할 것도 없고.
나는 구건이에게 들으라는 듯 단호한 어조로 이야기했다.
“글로리 길드가 앞으로 이 건에 대해 어떻게 발표하는지 두고 보겠습니다.”
“……!”
내가 유지원을 평소에 어떻게 생각했는지는 나중 문제다.
이 녀석이 이렇게까지 망가진 이유에 대해 글로리 길드는 책임을 가지고 밝혀야 할 것이다.
그전에는 좀 재수 없긴 해도 ‘인간’의 범주를 넘어선 적은 없었다.
이를 벅벅 갈고 있는 구건이를 보니 그렇게 할지 의문이긴 하지만.
‘이쪽도 이쪽 나름대로 확인을 해 봐야겠지.’
유지원과의 전투는 내게도 적잖은 충격이었다.
아무리 난도 높은 포이즌 던전을 돌아도 멀쩡하던 내가, 고작 조금 물렸다고 해서 현기증을 느끼다니.
놈에게 있던 ‘어떤 성분’은 포이즈너인 나에게조차 위협이 되는 물질이었다.
‘성분이 남아 있었으면 좋겠는데.’
그들에게 던져 준 이빨은 전체 개수의 절반 정도뿐.
그들은 전부를 받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나, 사실 그럴 이유는 전혀 없다.
나는 마리아에게 살짝 눈인사를 한 뒤 몸을 돌려 건물 밖으로 나갔다.
주머니 속에 유지원의 이빨을 쑤셔 넣은 채.
* * *
헌터가 되면 언제고 살인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한다.
유지원처럼 폭주 상태에 든 헌터를 제지할 때라든가, 범죄 행위를 저지른 헌터와 상대할 때 등등.
본인들이 원하지 않더라도 상대방을 반드시 죽여야 하는 상황이 온다.
상당수의 헌터들은 사람을 죽이고 난 후에 후유증을 겪는다고 한다.
세상을 구한다는 대의명분은 같지만, ‘사냥’과 ‘살인’은 다르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전쟁터에서 처음으로 사람을 죽인 병사가 겪는 트라우마.
그와 비슷한 심적 고통이 헌터들에게도 찾아온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나는 예외인 것 같다.
“후아암…….”
유지원에게 인간성이 사라진 상태라서 그런 걸까.
사람을 죽인 건 처음이었지만 몬스터를 죽였을 때와 큰 차이가 느껴지지 않는다.
악몽을 꿀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독염’을 연거푸 사용해서인지 숙면을 취할 수 있었다.
내가 이렇게 비인간적인 사람이었나 반성(?)을 하게 될 정도다.
사실 예전에 누군가에게 말했던 것처럼, 나는 때때로 마수보다 사람이 더 무섭게 느껴진다.
길바닥에 쓰러져 경련을 일으킬 때 소 닭 보듯 쳐다보며 지나가던 사람들.
무미건조한 눈으로 시한부 선고를 내리던 의사들.
한 구역의 사람들을 통째로 버려 버리는 구건이 같은 놈들.
자이언트 트레저보다 그런 놈들이 훨씬 더 무섭다.
뭐, 그렇다고 해서 사람도 몬스터처럼 쉽게 죽이겠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혐오하는 놈들과 비슷한 사람이 되고 싶은 생각은 없으니까.
‘상태 체크.’
상태 이상 없음. 정상 컨디션입니다.>
이빨에 닿은 성분이 남아 있으면 어쩌나 싶었는데, 다행히 말끔히 지워진 모양이다.
그런 고로, 마침내 이 물건을 사용할 날이 되었다.
스윽.
골드 코어를 흡수하고 난 뒤 사용할 계획이었던 탈혼수(脫魂水).
사건이 일단락되었고, 컨디션도 정상이니 더는 지체할 이유가 없었다.
사람들이 존재하는지조차 잘 모르는 영계의 체험.
야차는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거기서 무언가를 발견할 수도 있다 말했다.
꿀꺽.
특별한 맛은 느껴지지 않는다.
다만, 졸릴 뿐이다.
잠에서 깨어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해일처럼 졸음이 밀려온다.
꾸왕.
내 상태를 걱정해 주는 걸까.
뽀리가 어깨 위에서 사납게 외쳤다.
그리고 녀석의 울음소리에 눈을 떴을 때,
-???!!!
나는 손등으로 눈가를 비벼야만 했다.
-이럴 수가…….
과연, 탈혼수의 효과는 확실한 것이었다.
생전 처음 보는 밀림(?)이 눈앞에 펼쳐쳐 있었다.
분명 조금 전까지 소파 위에 누워 있었는데, 신기하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심지어 내 몸은 지면이 아닌 공중에 둥둥 떠 있었다.
마치 유령이라도 된 듯, 내 몸은 이리저리 밀림 속을 부유하기 시작했다.
-뿌우우우.
어딘가 모르게 이질적인 울음소리가 풀숲 너머로 들려온다.
사방에 깔린 식물들 또한 현세와는 거리가 먼 종들이었다.
일곱 개의 커다란 잎으로 되어 있는 대형 클로버라든가, 눈부시게 흰빛을 뽐내는 해바라기류라든가.
어린아이가 멋대로 색깔을 입혀 놓은 듯한 세계가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신기하네.
중독 증세 때문에 영계는커녕 해외조차 다녀 본 적이 없는 내게는 더없이 진귀한 경험이었다.
트리케라톱스처럼 사나운 뿔을 가진 포유류도 보이고 웰시코기처럼 다리가 극단적으로 짧은 맹금류도 보인다.
저래 가지고 사냥은 제대로 할 수 있는 건가.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있을 무렵, 또다시 뽀리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꾸왕!
오늘따라 굉장히 쾌활하네.
가만.
뽀리는 분명 나와 함께 소파에 있었는데.
녀석에게 탈혼수를 먹인 기억은 없었다.
그렇다면, 녀석은 스스로의 힘으로 이곳 영계에 발을 들였다는 말인가?
팔랑팔랑.
마치 고향을 만난 것처럼 뽀리는 반가운 얼굴로 날개를 파닥거린다.
그리고는 이내 분홍빛 나무들 사이로 숨어 버렸다.
-야, 멀리 가지 마라.
말은 그렇게 했지만, 알아서 돌아오는 데는 문제가 없을 거다.
나는 다시 영계를 살펴보는 데 집중했다.
영계의 생명체들은 확실히 몬스터들과는 느낌이 달랐다.
기본적으로 공격적인 성향도 보이지 않았고, 생김새 하나하나가 어딘가 모르게 영특하게 느껴졌다.
-예전에 만났던 대범이랑 비슷한 놈들이네.
-나 말인가?
-응.
응?
엉겁결에 대답한 나는 곧바로 등을 돌렸다.
그곳에는 인간들이 몬스터로 알고 있던 영물.
내가 헌터 자격 시험 때 치료해 준 ‘임페리얼 타이거’가 있었다.
-대범이!
-……결국 그렇게 호칭을 정한 모양이군.
머리를 위로 쳐들어야만 눈을 마주칠 수 있는 대형종.
몸 전체를 덮고 있는 잿빛 털과 새카만 무늬가 보는 이로 하여금 압도당하는 기분을 선사하는 영물.
녀석이 내 앞에 있었다.
-와, 오랜만이다. 네가 도망쳤다는 이야기는 들었어.
-다 네 덕분이다.
-엉?
-네가 해 준 치유는 근본적인 것이었다. 신체의 외상뿐만 아니라 훼손되었던 내 안의 코어를 정상으로 돌려주었지.
-오오……. 내가 그랬었나.
-……알고 한 게 아니었나?
-난 그냥 널 회복시켜야겠다고 생각했을 뿐이야. 그다음부터는 내 안의 치유력이 알아서 한 거고.
-축복받은 능력이군. 아무래도 넌 다른 인간들과 좀 다른 것 같다.
-그나저나, 내가 여기 있는 건 어떻게 알았어? 난 지금 이상한 약을 먹고 잠시 와 있는 거거든.
-모습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넌 지금 일종의 영체(靈體) 상태로 보이니까. 네가 여기 온 걸 알려 준 친구가 있다.
그 친구가 누구인지는 굳이 물어볼 필요가 없겠군.
대범이의 근엄한 얼굴 위에 껌딱지만 하게 붙어 있는 작은 용이 울부짖었다.
-꾸왕!
-어쨌거나 모처럼 만나서 반갑다. 영계에 오길 잘했네. 건강한 모습도 볼 수 있고.
-지금은 네가 영체(靈體) 상태이니 그럴 일이 없지만, 너와 내가 같은 세계에 있다면 언제든 날 부를 수 있다.
-그런 능력도 있어?
-내 능력이 아니다. 네 능력이다.
엥.
설마하니 V1이 알려 준 ‘교감’이라는 스킬에 그런 능력이 있었던 건가.
-그렇구나. 지원군이 생긴 것 같아 든든하네.
이 녀석만큼은 나를 해할 일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 걸까?
어쩐지 사람들이랑 대화를 할 때보다 더 즐거운 기분이 든다.
찌릿.
-윽……!!
그런데, 갑자기 전신을 짓누르는 듯한 압박감이 느껴진다.
자이언트 트레저를 마주쳤을 때도 이런 기분은 아니었는데.
-이게 뭐지?
산 너머 어딘가로부터 압도적인 존재감이 피부로 느껴진다.
무언가의 기운을 느끼는 것만으로 이런 두려움을 느낄 수 있다니…….
내 경직된 표정을 눈치챈 듯 대범이가 고갯짓을 한다.
-크라수스 드래곤(Crassus Dragon). 이 영계의 주인 중 하나다.
-휘유……. 주인 행세를 할 만하네……. 살면서 이런 공포는 처음이야.
-여기까지 왔으니 한번 보고 가지 않겠나.
먼발치에 있는 드래곤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숨이 잘 안 쉬어지는데, 직접 목격하면 질식하는 것 아닐까.
하지만 그와는 반대로 마음속 저편에서 강한 호기심이 일렁거린다.
영계의 주인 중 하나인 드래곤.
최고의 영물을 볼 수 있는 기회는 흔하지 않다.
-보아하니 시간이 많지 않아 보이는군. 타라.
대범이의 말처럼 의식이 서서히 흐려지는 중이다.
탈혼수의 약발(?)이 다해 가는 걸까.
차라리 잘 됐다.
말짱한 정신으로 크라수스 드래곤(Crassus Dragon)을 바라보면 그 공포감에 제정신을 잃을지도 모를 테니까.
대범이가 상체를 숙여 자신의 머리를 밑으로 내린다.
지체 높은 영물의 머리를 밟고 올라서자니 어딘가 뻘쭘한 기분이 든다.
-꾸…….
뽀리가 원래 자리(?)인 내 어깨로 돌아와 얼굴을 부빈다.
영계에 와서 그런지 애교가 는 것 같기도 하고.
-그나저나 너도 나중에 크면…… 저렇게 무서운 놈이 되는 거냐?
-꾸왕.
* * *
투두두두…….
임페리얼 타이거 위에 올라타 이동을 하게 되는 일.
장담컨대 인간 중 유일한 경험이 아닐까 싶다.
그 엄청난 속도에 ‘영체’ 상태임에도 머리가 휘날리는 착각이 들 정도다.
다만 아쉬운 게 있다면, 이제 곧 의식이 끊어질 것 같다는 점?
대범이가 열심히 달리고 있지만 어쩌면 드래곤을 보기도 전에 현세로 돌아갈 것 같다.
-미리 작별 인사를 할게. 언젠가 또 봤으면 좋겠네.
-머지않아 그렇게 될지도 모르지.
-응?
-거의 다 왔다. 너무 가까이 가면 영체가 소멸해 버릴지도 모르니 여기서 보면 될 거다.
까마득한 절벽 끝에 대범이가 걸음을 멈추었다.
절벽의 반대편에는, 수십 미터는 되어 보이는 고고한 생명체가 하나 있었다.
전설 속의 동물로만 여겨지던 드래곤.
크고 웅장하다는 표현은 이럴 때 쓰는 거겠지.
어두운색으로 뒤덮인 비늘은 강철보다도 단단해 보였고, 태양을 전부 가릴 수 있을 것 같은 드넓은 날개가 천천히 숨을 쉬고 있었다.
머리에 솟아난 네 개의 뿔이 이곳의 최고 존엄을 상징하는 왕관처럼 보인다.
8성 몬스터도 공략한 나지만, 저런 거랑 상대했다간 뼈도 못 추릴 거다.
금방이라도 ‘크와’ 하며 포효할 것 같은 이미지인데, 어쩐지 드래곤의 행동은 잠잠하다.
나는 멀리서나마 그 완전무결한 자태를 감상하고 있었다.
거대하지만 섬세하고 두렵지만 아름다운 존재.
녀석은 오만한 눈동자로 땅바닥에 선 무언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조용하다 했더니, 누군가와 대화하고 있었던 거구나.
나는 안력을 돋구어 땅 위에 선 존재를 확인했다.
그리고 벼락을 맞은 듯 굳어 버리고 말았다.
-어……?
그 누군가는 그을린 피부에 자신만만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펄럭.
처음 만났던 그때처럼, 코트의 한쪽 팔이 바람에 흩날린다.
나와 같은 포이즈너이자, 지금의 나를 있게 해 준 사람.
크라수스 드래곤(Crassus Dragon)과 조우하고 있는 외팔의 인간은,
-키릴!!!!!!!!!
내 생명의 은인이자 스승.
키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