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ison-Eating Healer RAW novel - Chapter (64)
64화
이태원에 위치한 지하 클럽.
쿵 쿵 쿵 쿵.
낮은 베이스 사운드가 연신 가슴을 때리고, 희뿌연 연기가 사방을 아득히 메운다.
술과 담배, 그도 아니면 또 다른 무언가가 사람들의 눈빛을 혼탁하게 만들고 있었다.
통제력을 잃은 몸을 아무렇게나 흔들어 대고 있는 사람들.
그중에서 유난히 눈에 띄는 남자가 있었다.
그는 이 공간의 유일한 장년층이었고, 복장 또한 놀러 온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중절모를 푹 눌러쓰고 마스크를 착용한 터라 주름진 눈가 외에는 드러난 것이 없다.
남자는 경계 가득한 눈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앞선 거한을 따라 걸었다.
똑똑.
거한은 노크를 한 뒤 문을 열었고, 장년의 남자에게 눈짓했다.
혼자 안으로 들어가라는 신호다.
남자는 잠시 망설였으나, 이내 분노한 얼굴을 한 채 홀로 클럽 룸 안에 들어섰다.
“어서 오십쇼, 고객님.”
샛노랗게 물들인 머리를 칼같이 세운 사내가 인사를 건넨다.
왜소한 체격에 볼살이 없어 전체적으로 박복한 인상이었지만, 몸에 걸치고 있는 것들은 하나같이 비싼 명품 브랜드 제품이었다.
풀어헤친 단추도 그렇고 유난히 희번덕거리는 흰자도 그렇고.
전형적인 탕아의 느낌을 풍기는 사내였다.
“…….”
장년의 남자가 말없이 맞은편 소파에 앉는다.
평상시에는 맡을 수 없는 자극적인 냄새에 그는 얼굴을 찌푸렸고, 노란 머리의 사내는 그 모습이 재미있다는 듯 이를 드러냈다.
“이런 곳을 찾으실 만한 분은 아닌 것 같은데.”
“여기선 아무것도 묻지 않는다고 들었소만.”
“물론 그렇습니다.”
노란 머리의 사내가 다시 한번 비열한 웃음을 짓는다.
헌터 협회에서 발표한 공식 자료에는, 천해선을 포함해 ‘S’랭크 헌터가 열다섯 명 등록되어 있다.
하지만 이것이 ‘S’랭커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드물다.
헌터로 활동하지 않는 인물까지 포함하면 최소 스무 명은 넘을 것이라는 게 업계의 견해였다.
그렇다면, 열다섯 명을 제외한 나머지 공백은 어디에서 오는가.
본인이 가진 힘을 그릇된 방향으로 사용하는 사람들.
그들은 국가에서 지정한 1급 수배자, 쉽게 말해 ‘범죄자들’이었다.
“단지, 저희를 잡아먹지 못해 안달이셨던 분과 닮아서 말입니다.”
노란 머리의 말에 장년 남자의 몸이 미세하게 떨린다.
눈앞의 노란 머리가 1급 수배자는 아니다.
그는 단지 접선책일 뿐.
한때 ‘S’랭커였던 최상위 헌터 3명을 포함해, 거대한 청부 조직이 대한민국 음지에서 숨 쉬고 있다.
테네브라(Tenebra).
살인 청부, 납치, 마약 등 악질 범죄를 취급하는 어둠의 카르텔.
장년 남자가 찾아온 이곳은 ‘테네브라’의 접수처 중 하나였다.
‘최대한 숨겼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알아차린 건가.’
부르르 몸을 떨던 장년 남자는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이미 어느 정도 각오한 일이었다.
이들이 자신의 정체를 알고 있든 아니든, 어차피 돌아갈 길은 없다.
구천을 떠도는 아들의 영혼이 지금도 원통하다 절규하고 있지 않은가.
“당신들 마음대로 생각하시오.”
“그러지요.”
무슨 이유로 의뢰를 하는지, 의뢰를 하는 자의 정체가 누구인지 묻지 않는 것.
그것이 ‘테네브라’의 원칙이었다.
그저, 합당한 수수료만 받으면 원하는 대로 해 줄 뿐.
물론 의뢰의 내용에 따라 ‘합당한 수수료’는 천차만별로 갈린다.
“한잔하시겠습니까?”
노란 머리가 위스키를 따라 장년의 남자에게 건넨다.
남자는 잠시 주저하다 단숨에 잔을 비워 냈다.
지금부터 자신이 하려는 일은, 정말이지 맨정신으로 할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한평생 이루어 낸 업적을 한순간에 무너뜨리는 일.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해야만 했다.
‘완전히 눈이 돌아갔군. 하긴 아들이 뒤졌으니 그럴 만도 하지.’
노란 머리는 망가져 가는 남자를 보는 것이 무척이나 즐거웠다.
어찌 즐겁지 않을 수 있겠는가.
자신들을 벌레 보듯 하며 ‘헌터들의 수치’라 멸시했던 작자가, 여기에 와서 의뢰를 하고 있지 않은가.
헌터 협회에서 접선 장소를 파악하고 있다는 사실이 조금 찝찝하긴 했지만, 지금은 그것보다 무너져 가는 위선자를 바라보는 것이 무척이나 즐거웠다.
장소야 변경하면 그뿐.
어차피 조직의 실체가 잡힐 일은 없다.
“잔도 비웠고, 슬슬 일 이야기를 해 보실까요?”
노란 머리가 태블릿 펜을 빙빙 돌리며 메모할 준비를 한다.
장년 남자의 눈빛은 음울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그 안에는, 무엇보다도 뜨거운 감정이 타오르고 있었다.
증오.
그것 외에는 표현할 단어가 없었다.
“의뢰 내용은?”
“살인.”
“대상자는 일반인입니까?”
“헌터요.”
“헌터라. 그렇게 되면 수수료가 상당히 높게 책정됩니다.”
“돈은 얼마가 들어도 좋소.”
그러자 노란 머리가 익살스러운 웃음을 터트린다.
“히히히히. 다들 처음에는 그런 말들을 합니다. 근데 그거 아십니까? 수수료 금액을 듣고 의뢰를 한 사람보다, 꼬리를 내리거나 항의하다 불구가 된 사람들이 더 많다는 거.”
“……원래 그렇게 말이 많은 편이요? 듣던 것과는 다르군.”
“아차. 죄송합니다.”
장년 남자의 말처럼 노란 머리는 수다와는 거리가 먼 사내였다.
단지, 남자의 정체 때문에 신이 난 나머지 말이 많아졌을 뿐.
‘그동안 해먹은 비리가 꽤 되나 보지?’
노란 머리는 그렇게 생각하며 물었다.
“대상 헌터의 티어는?”
“S.”
“……!!!!”
내내 히죽거리던 노란 머리도 이번만큼은 표정이 굳을 수밖에 없었다.
‘S’랭크 헌터의 살인 청부.
그건 제아무리 ‘테네브라’라 하더라도 덜컥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다.
난이도는 물론이거니와, 자칫하면 길드 전체와 전쟁을 벌여야 할 수도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갑자기 말이 없어졌군. 어렵소?”
“A랭커 이상은 본부에서 결정할 일입니다. 다만, 당신의 자산이 수백억 이상은 되어야 할 겁니다.”
“돈은 얼마가 들어도 상관없소.”
“……헌터의 이름은?”
“천해선.”
노란 머리의 얼굴이 기묘하게 뒤틀린다.
자신이 생각하기에 천해선은 눈앞의 남자가 절대로 죽여서는 안 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고귀한 헌터’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이미지가 좋은 앞길 창창한 유망주를, 어째서 그가 청부 살인을 하려는 것인가.
‘아하…….’
노란 머리는 그제야 뭉쳤던 실타래가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
어쩐지 기사에 꺼림칙한 것들이 있다 싶었다.
유지원은 스스로 발화해 죽은 게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 죽임당한 것이다.
그리고 눈앞의 남자는 복수를 다짐한 것일 테지.
헌터 협회 부회장 유인원.
그는 자식을 죽인 천해선을 도저히 그냥 두고 볼 수가 없는 거다.
‘그 자리에 글로리 길드 새끼들도 있다고 했는데……. 어째서 천해선이……?’
여전히 미심쩍은 사항들이 남아 있지만 노란 머리는 생각하는걸 그만두었다.
어차피 그 이후에 일들은 자신이 아닌 윗선에서 결정할 일이니까.
“이걸 받으십시오.”
노란 머리가 유인원에게 휴대폰을 하나 건넨다.
“이건 단문 전송만 가능한 디바이스입니다. 이걸 통해 의뢰의 수락 여부와 수수료를 전송드리겠습니다.”
유인원은 말없이 디바이스를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되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기분.
그러나 유인원은 고뇌를 하는 대신, 스스로 위스키를 따라 입 안에 털어 넣는 쪽을 택했다.
* * *
“아니요……. 그런 식의 변화는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표혁규 감독관이 안경을 고쳐 쓰며 커피를 한 모금 마신다.
순하게 생긴 공무원의 표본 같은 인상이지만, 때때로 안경 너머 예리한 안광을 비추곤 한다.
그리고 오늘.
유지원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내내, 표혁규 감독관의 눈에서는 형형한 기운이 서려 있었다.
“유감이네요.”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협회는 몰라도, 표혁규라면 뭔가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기대하던 차였다.
“폭주라는 게 기본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이기는 합니다. 몸 전체가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 축소되죠. 그러면서 에테르를 방출하게 되구요. 하지만 천해선 헌터님의 말씀대로라면…….”
그건 이미 인간이 아니라 괴물의 형태였다.
사람과 몬스터를 적당히 뭉쳐서 만들어 내면 저런 모습일까 싶을 정도로.
“게다가…… 폭주 상태에서 사람을 먹게 된다는 건 정말이지…….”
유지원은 사람을 먹었다.
하지만 헌터 협회의 정보망에 그 이야기는 빠져 있었다.
실종된 인물들은 모두 에테르 폭발 과정에서 사체가 소멸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었다.
차마 죽은 자식을 식인귀로 발표할 수는 없었던 것일까.
어쨌거나 표혁규는 나를 통해서 ‘진실’을 마주하게 되었다.
“식인뿐만 아니라…… 놈의 몸에서 나온 물질이 제 몸에 상태 이상을 가져왔습니다.”
“천해선 헌터님에게 말입니까?”
표혁규가 놀란 얼굴로 반문한다.
웬만한 독은 내 몸에 영향을 줄 수 없다.
중독을 치료하는 수준이 아니라, 처음부터 기를 펴지 못하고 사멸한다.
표혁규는 그 사실을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인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포이즌 던전의 제거를 부탁했던 거고.
“금방 치유되기는 했지만 분명 제게 영향을 끼쳤어요. 가볍게 볼 일은 아니라 생각했습니다.”
“네. 상당히 유의미한 일입니다.”
표혁규가 테이블을 손톱으로 두드리더니 나직이 단어 몇 개를 읊조린다.
“식인…… 맹독…… 폭주…….”
그러더니 갑자기 노트북을 꺼내 무언가를 찾기 시작한다.
탁탁탁.
잠시 후.
표혁규가 안경을 고쳐 쓰며 모니터를 노려보았다.
“1년 전 인도에서 유사한 사건이 기록된 바 있습니다.”
“인도요?”
“네. 천해선 헌터님이 말씀하신 내용과 일치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여기 좀 보시죠.”
표혁규가 노트북 화면을 돌렸고, 나는 떨떠름한 표정이 되었다.
“…….”
본다고 뭘 알겠냐고.
온통 힌디어로 되어 있는데.
“아, 죄송합니다.”
표혁규가 헛기침을 한 뒤 사건을 요약해 들려주었다.
“당시 기록된 바에 의하면 사람의 얼굴을 한 몬스터가 주변 낭인들을 먹어치우다 헌터들에게 잡혔다고 합니다. 현장에서 즉시 처치가 되었고…… 살아남은 헌터 중 몇 명은 심각한 중독 증세에 시달렸다고 하는군요.”
사람의 얼굴을 한 몬스터.
분명 그렇게 생각할 법도 하다.
나도 유지원의 얼굴을 알고 있어서 망정이지, 모르는 상태에서 녀석을 봤다면 결코 인간으로는 생각하지 않았을 거다.
“당시에는 중독 증세에 대해서는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오염된 갠지스강을 마셔서 그런 게 아니냐는 우스갯소리만 남아 있군요.”
“갠지스강이라면 충분히 그럴 만하죠.”
표혁규는 쓰게 웃으며 노트북을 덮었다.
“더 이상의 추가 정보는 나와 있지 않습니다. 인도에서는 이 사건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럴 수도 있죠. 몬스터 중에서는 인간의 모습을 따라 하는 종도, 인간을 먹는 종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유지원은 사람이었다.
중간에 어떻게 변했던, 몬스터를 기준으로 생각할 일이 아니라는 소리다.
아무래도 표정을 보아하니 표혁규도 나와 같은 생각인 듯하다.
“인도 사건에 대해 좀 더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천해선 헌터님.”
“네?”
“돌아가는 정황이 점점 심상치 않습니다. 이제는 듀얼 게이트는 흔한 수준이고,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이상 현상이 폭증하고 있습니다.”
“원인은…… 알 수 없구요?”
“여러 방면으로 파악 중입니다만, 현재로서는 그렇습니다.”
여러 방면이라는 건 헌터 협회의 대외적인 활동과 배후 세력의 활동 모두를 말하는 것이겠지.
어쨌거나 표혁규는 내 가능성을 알아보고 골드 코어까지 제공해 준 인물이다.
당장 척을 지기보다 정보를 공유하는 편이 여러모로 이득이다.
주문한 커피가 어느새 차게 식었다.
우리는 각자 옷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났다.
“업데이트할 만한 내용이 나오면 서로 연락하기로 하죠.”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제 집으로 가십니까?”
“아니요. 지방에 내려갑니다.”
“지방에요?”
가야지.
새로운 헌터 디바이스가 완성되었다는데.
뒷말을 생략한 채, 나는 표혁규에게 인사를 하고 등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