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ison-Eating Healer RAW novel - Chapter (68)
68화
“그런 일이…… 있었군요.”
진심으로 놀라는 도이수를 보며 나는 마음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다.
이쪽도 모르고 있었구나.
아는 정보라면 헬기 값(?)으로 다른 걸 제공해야 했을 터다.
나는 헬기를 보내 준 도이수에게 ‘정보’를 제공했고, 다행히 그 정보는 쓸 만한 것이었다.
유지원의 사망 소식이 대중에게 알려지긴 했으나, 그 내용은 사실과 사뭇 달랐다.
사람보다 몬스터에 가까웠던 그의 육신도, 식인 행위도, 전투 내용까지.
뭐, 처음부터 그들이 제대로 보도할 것이라고는 기대도 안 했다.
자식이 사람을 잡아먹는 괴물이 되었다는 걸 알리고 싶은 부모는 없을 테니까.
또 글로리 길드의 입장에서, 최고의 정예가 출동하고도 정작 처치한 사람이 나라는 걸 알면 길드 체면이 말이 아닐 것이다.
대외적인 이득에 눈이 멀어 진실을 외면하는 집단들.
알면 알수록 협회와 길드에 구역질이 난다.
“구역질이 나는군요.”
이 양반.
독심술이라도 쓰는 건가.
도이수는 내가 느끼고 있는 감정을 입 밖으로 정확히 표출했다.
“이건 단순히 체면을 차릴 성질이 아닙니다. 만약 유지원이 폭주와는 다른 어떤 이유로 변형이 된 거라면…… 그 원인을 명백하게 조사할 필요가 있을 텐데요.”
“지들이 알아서 잘 해 먹겠죠.”
“……천해선 헌터님은 협회를 신뢰하지 않으시는 것 같군요.”
“모르고 계셨어요?”
내 은근한 눈빛에 도이수가 실소를 머금는다.
“아니요. 짐작은 했습니다. 단지 언제쯤 제게도 속마음을 비쳐 주실지 기다리고 있던 참이었습니다.”
도이수는 함께 온 진 박사에 대해서 가타부타 물어보지 않았다.
특이하게도 그건 진 박사도 마찬가지였다.
서로 조심스럽게 눈빛만 오갈 뿐, 직접적인 대화를 주고받지도 않았다.
그래서 나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저 둘은, 이미 알고 있는 사이라고.
진 박사가 예전에 헌터 협회 출신이었고, 도이수의 회사 또한 협회와 함께 일했으니 접점이 있었을 것이다.
도이수가 진 박사를 모르는 척하는 건 일종의 배려다.
진 박사는 지금 숨어 사는 입장이니까.
도이수는 날 미행한 자들에 관한 이야기를 듣더니 신중한 어조로 의견을 내었다.
“처음에는 이상하다 싶었는데, 지금은 알 것 같습니다. 살인 청부를 고용한 인물은 유인원일 겁니다.”
“저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은 했지만……. 유인원은 헌터 협회의 부회장이잖아요. 꽤나 계산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걸리면 모든 걸 잃게 될 거래를 시도했을까요?”
“했을 겁니다.”
도이수는 꽤 단정 지어 대답했다.
“부모가 자식을 생각하는 마음은 그런 겁니다. 비이성적이고 무모하다고 생각되는 일도, 자식과 관련된 일이 되면 물불을 가리지 않게 되죠.”
“…….”
“아, 물론 그게 잘한 일이라는 건 아닙니다. 심정적으로 이해만 간다, 이런 의미지요. 풍문으로는 자식을 능력 있는 헌터로 만들기 위해 별 짓거리를 다했다고 하던데, 인과응보라고 생각합니다.”
“대표님이 저에게 처음부터 잘해 주셨던 것도 비슷한 이유인가 보네요.”
“하하. 그렇습니다.”
도이수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내게 상당히 우호적인 태도로 일관했다.
어느 정도 계산이 깔려 있었겠지만, 그런 걸 감안하고서라도 일방적인 호의가 느껴지곤 했다.
자식들이 사기당할 뻔한 걸 막아 준 것치고는 과하다 생각했는데, 부모의 입장에서는 다른가 보다.
“안 그래도 연구소 폭파 사건 이후로 해남동 일대의 데이터를 분석 중에 있습니다. 유의미한 정보가 나온다면 헌터님께도 공유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아 그리고…….”
“?”
“저희 같은 사업가들에게는 가끔씩 이런저런 제안이 오곤 합니다. 그중에는 불법적인 일을 대행해 주겠다는 제안도 있지요.”
“이를테면, 살인 청부 같은?”
도이수는 잠시 움찔했지만 이내 쓴웃음을 지었다.
“네. 물론 거래에 응한 적은 없었지만, 관심이 있는 척하며 그들의 정보를 조금 캐낼 수 있었습니다.”
자칫하면 그들에게 드잡이질을 당할 수도 있는 일.
하지만 도이수라면 능히 그런 처세를 부릴 만한 사람이다.
“천해선 헌터님을 노린 자들이 과거 ‘S’랭커 계열이라면, 그 정도 급을 가진 범죄 조직은 단 하나뿐입니다.”
“거기가 어디죠?”
“테네브라(Tenebra). 과거 대한민국 최고 헌터로 불렸던 강현이 이끄는 조직입니다.”
“테네브라…….”
강현이란 이름에 대해서는 들어 본 적이 있다.
아주 오래전 일이기는 하지만, 구건이와 비무를 벌일 때 개 패듯이 패 버렸다는 일화가 있을 만큼 뛰어난 전투 능력을 갖춘 인물이다.
자세한 정보는 더 확인해 봐야겠지만, 오늘 해치운 그들이 정말 테네브라의 일원이라면…….
“당분간 바짝 긴장하고 다녀야겠네요.”
“부디 조심하십시오. 현역에서 물러났다고는 하나 강현은 과거 최강이라 불렸던 남자입니다.”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말이다.
비슷한 레벨일 경우 몬스터를 상대하는 것보다 헌터를 상대하는 것이 훨씬 까다롭다는걸, 오늘의 전투에서 깨닫게 되었다.
모르긴 몰라도 테네브라의 수장, 강현은 오진아보다 더 강한 상대겠지.
그나마 테네브라의 인물들이 내가 가진 능력을 알지 못해서 다행이다.
두 명 중 한 명이라도 살아 돌아갔으면 전황은 내게 불리하게 돌아갔을 터.
일단은 정보력 면에서 이쪽에 우위가 있었다.
“일이 이렇게 된 이상 길드에 들어가는 게 어떻겠습니까? 아무래도 대형 길드 소속으로 들어가면 테네브라 놈들도 손쓰기가 힘들 겁니다.”
“그러면 대표님과 약속했던 포이즌 던전 거래를 할 수가 없잖아요.”
“거래가 아무리 중요하다 한들 헌터님의 안위만 하겠습니까.”
립서비스를 잘하는 양반이긴 하지만, 이번만큼은 도이수에게서 진심이 느껴진다.
나는 도이수를 향해 슬쩍 입꼬리를 들어 올렸다.
“걱정하지 마세요. 저도 나름대로 생각이 있으니까.”
* * *
“급히 보고드릴 게 있습니다.”
부회장실로 들어온 비서의 말에 유인원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 과도한 동작에 되레 비서가 당황해할 만큼.
“부회장님……?”
“아, 아닙니다. 보고하세요.”
비서가 정식 보고 체계를 생략하고 곧바로 부회장실로 왔다는 건 사안이 그만큼 중대하다는 의미다.
그놈들이 마침내 성공한 건가.
며칠간 밤낮없이 기다려 온 소식이었으니 과잉 반응이 튀어나온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아들을 죽인 원수.
유인원에게 있어 천해선의 사망 소식보다 중요한 일은 없었다.
“부산에서 에테르 성분의 폭발 사건이 발생했는데……. 사망자가 두 명 나왔습니다.”
“두 명이나?”
“네?”
거듭되는 이상한 반응에 비서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아들을 잃어서 정신이 다른 곳에 가 있구나.
막연히 그렇게 생각할 뿐.
하지만 유인원에게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애초에 죽여 달라고 한 건 한 명이었는데…….’
천해선을 해치운 과정에서 사상자가 발생한 것인가.
힐러인 천해선이 무슨 수로 사람을 죽였다는 거지?
유인원은 자리에 도로 앉을 생각도 없이 급히 물었다.
“사망자 신원은 확인됐습니까?”
“네. 둘 중 한 명은 오른손밖에 남지 않았지만, 협회에 DNA 정보가 남아 있어서 바로 확인되었습니다.”
유인원의 두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돌출되었다.
헌터들은 기본적으로 협회에 DNA 정보를 기록하게 되어 있다.
지금처럼 사체의 일부만 남아 확인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확인된 사망자가 ‘헌터’라는 뜻.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비서가 알려 주는 사망자 중 그가 원하는 이름은 없었다.
“사망자 신원은 오진아와 나지환. 소재가 불분명했던 제명 헌터 두 명입니다.”
“뭐…….”
유인원은 대답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 채 멍한 얼굴로 비서를 응시했다.
자신이 잘못 들은 걸까.
하지만 재차 들려온 이름에도 천해선의 이름은 없었다.
왜.
죽으라는 천해선은 멀쩡하고.
엄한 놈들만 뒤졌단 말인가.
“이 병신 같은 것들이…….”
유인원이 들릴 듯 말 듯 한 목소리로 씹어뱉더니, 이내 표정을 바꾸었다.
“알겠습니다. 내용 정리해서 메일로 보내 주세요.”
“네.”
유인원은 비서가 나간 걸 확인하자마자 노란 머리에게 받은 디바이스를 꺼냈다.
한 글자 한 글자 쓸 때마다 손가락이 휘어질 만큼 강하게 눌러 문장을 완성했다.
[일 처리를 어떻게 하는 거야? 실패했잖아!]급한 마음과 달리 답장은 금방 오지 않았고, 유인원은 피가 마르는 기분이 되었다.
오진아와 나지환은 굳이 정보를 검색하지 않아도 되는 인물들이었다.
둘 다 1급 수배범으로 낙인찍힌 상급 헌터들이었으니까.
만약 그 둘이 힘을 합쳤다는 사실을 진작에 알았더라면, 유인원은 박수를 치며 환영했을 것이다.
‘S’랭크 에스퍼와 ‘A’랭크 나이트가 연합 공격을 해 오는데 힐러 하나가 무슨 수로 감당하겠는가.
그러나 사망 소식이 들려온 건 오히려 그 두 명의 이름이었다.
‘장소는 왜 또 부산인 거지?’
유인원이 알기로 천해선과 부산은 특별한 연고가 없었다.
출생부터 지금까지 개방동 임대촌에서 살았다고 했으니까.
유인원은 사건 현장의 내용을 재차 확인해 보았지만 특별한 단서를 찾을 수가 없었다.
현장에서 확인된 건 끝을 알 수 없는 커다란 구덩이와 부품 단위로 박살 나 버린 수많은 전자 기계뿐이었다.
지하에 거점을 둔 기계 시설.
협회 관계자라면 이상한 점을 느꼈어야 정상이다.
실제로 평상시의 유인원이라면 특별한 누군가를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자식을 잃은 슬픔과 천해선에 대한 증오로 제정신이 아닌 유인원에게 그런 추론이 남아 있을 리 없었다.
웅.
실제로는 한 시간.
그러나 유인원에게는 억겁과도 같은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메시지 하나가 수신되었다.
[곧 만나러 가겠다.]* * *
온 정신을 집중하고 걸음을 걷는다.
한 발, 또 한 발.
그러기를 두 시간째.
결국 참지 못한 그녀에게서 앙칼진 목소리가 튀어나온다.
“시팔! 언제까지 해야 하는데!”
언제까지라는 건 없다.
처음부터 그녀가 지랄발광할 때까지 계속할 생각이었으니까.
“아, 방금 막 끝났어.”
“어휴. 땀 나는 것 좀 봐.”
줄곧 은신 상태였던 비수가 능력을 해제하고 모습을 드러낸다.
아닌 게 아니라 그녀의 목덜미에 땀이 흥건하다.
얇은 티셔츠도 흠뻑 젖어서 상체의 굴곡이 적나라하게 보인다.
같은 붉은색 머리칼이라 그런 걸까.
갑자기 헐벗고 나타난 오진아와 비수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
“너 왜 얼굴이 빨개져? 힘든 건 난데.”
“그…… 나도 나름대로 집중을 해서.”
적당히 둘러대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거짓말을 한 것도 아니다.
걸음을 걷는 내내 온 신경을 집중해 비수의 기척을 탐지했으니까.
하지만 나는 완벽히 실패했다.
포이즈너의 레벨이 2단계가 된 지금에도, 염동력 수치가 ‘S’랭크를 찍은 지금에도 비수의 ‘은신’은 느껴지지 않았다.
“완벽했어. 은신 스킬이 더 좋아진 거 같은데?”
“그게 다 저 망할 도마뱀 때문이야. 예전에 물렸던 트라우마가 남아서 더 필사적으로 연습했어.”
-꾸왕.
“칭찬하는 거 아니거든?!”
배를 내밀며 자랑스러워하는 뽀리를 보며 비수가 버럭 성질을 부린다.
나는 한차례 웃음을 터트린 뒤 생각을 정리했다.
비수의 은신은 완벽하다.
나조차 감지하지 못할 정도면 오진아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남은 건 이제 계약뿐이다.
“너, 나하고 일 하나 같이하자.”
“일? 무슨 일.”
“음……. 뭐라고 해야 하나.”
이를테면, 역공이라고 해야 할까.
가만히 앉아서 처맞고만 있을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다.
테네브라인지 뭔지.
어차피 싸워야 한다면 내 쪽에서 먼저 부숴 버릴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