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ison-Eating Healer RAW novel - Chapter (8)
8화
키이이잉-
전동 드릴 소리가 하루 종일 귓가에 맴돈다.
진 박사의 집에 머무른 지 이틀째.
그동안 나는 진 박사의 PC를 통해 헌터 관련 자료를 열람하거나, 몸 안의 블랙 에테르를 컨트롤하며 시간을 보냈다.
“후우…….”
각성을 끝내고 보니 알겠다.
내 몸 안에서 미쳐 날뛰는 독성이 얼마나 독하고, 강력한 놈인지.
하루하루 생성되는 그 강력한 기운의 극히 일부만이 블랙 에테르로 치환되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더 이상 특별한 통증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 정도?
신기한 점은 진 박사의 집에 들어오고 난 뒤, 컨디션이 한결 좋아졌다는 점이었다.
“후르륵.”
나는 그동안 삼시 세끼를 통조림으로 해결해야 했다.
진 박사의 손님맞이가 박한 것이 아니다.
단지, 이곳에 있는 음식이 통조림밖에 없었을 뿐이다.
으리으리한 장비들과 벽에 걸린 첨단 디바이스들과 달리, 진 박사의 주식은 부실해도 너무 부실했다.
이유는 바로, 진 박사가 가지고 있는 트라우마 때문이었다.
“이곳에 정착한 이후, 나는 5년 동안 밖으로 나가 본 적이 없어.”
미안해서 그런 걸까.
통조림에 남은 파인애플을 털어 먹고 있을 무렵, 진 박사가 쓰게 웃으며 말했다.
“헌터 협회 사람들에게 죽을 고비를 넘긴 후, 편집증 증세가 생겨 버렸지 뭐냐.”
“편집증이라면…….”
“모든 사람들이 다 나를 죽이지 못해 안달인 것처럼 느껴지더구나. 실제로 악의가 없는 사람들인데도 말이다. 나 혼자 끊임없이 의심하고 도망치고. 도저히 일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했지.”
“그래서…… 사람들과의 만남을 극단적으로 피하셨던 거군요.”
“그래. 최대한 사람들을 마주치지 않기 위해 유통 기한이 긴 음식들을 찾았고, 이렇게 대량으로 통조림을 쟁여놓은 게다.”
짧은 시간이지만 지금까지 느낀 진 박사는 정이 많은 사람 같았다.
그런 사람이 이렇게 극단적으로 스스로를 고립시키다니.
그동안의 세월이 참 모질게 느껴졌을 것이다.
“심심하진 않으셨어요?”
“심심하긴……. 디바이스를 개발하다 보면 하루하루가 짧게 느껴지더구나. 그리고 지금 네 옆에 있는 애완동물도 있고 말이다.”
애완동물?
이건 또 무슨 소리야.
나는 진 박사의 시선이 향하는 곳, 그러니까 내 왼쪽 어깨 위를 쳐다보았다.
-꾸왕!
“으악!”
시바, 깜짝이야.
진심 욕이 튀어나올 뻔했다.
아무리 덩치가 작다곤 해도, 이렇게 기척 없이 앉아 있을 수가 있는 거야?
-꾸왕?
어깨를 움찔했는데도 녀석은 용케 내 어깨 위에 앉아 있었다.
이걸 대체 무슨 생명체라고 해야 할까?
엄지손가락만 한 검은색 몸통에 땅콩만 한 다리.
자그마한 날개와 영롱하기 그지없는 노란색 눈동자.
상상 속의 용을 축소시켜 놓으면 이런 모습일까.
일단 확실한 건, ‘이쪽 세계’에는 존재하지 않는 생명체였다.
“흐하하. 극독에도 눈 하나 깜짝 안 하는 사내가 뭘 그리 놀라는 게냐.”
배를 잡고 웃음을 터트리는 진 박사를 보니, 내 반응이 어지간히 웃겼나 보다.
하지만 그럴 만했다.
두꺼비에게서 추출한 코어로 블랙 에테르를 흡수하고 난 뒤, 내 오감은 일반인보다 다소 예민해졌다.
기운을 숨길 줄 아는 헌터가 아닌 이상에야, 가까운 거리의 인기척은 대부분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가까운 거리는커녕, 어깨 위에 올라탄 것도 모르고 있었다니.
이러니 놀라는 것도 무리가 아니지.
“하긴. 이 녀석이 신출귀몰한 건 사실이지. 이놈은 뽀리라고 한다.”
“생긴 것만큼 귀여운 이름이네요.”
귀엽다는 말에 자극을 받은 걸까.
자그마한 용, 뽀리가 손톱만 한 꼬리로 내 어깨를 두드린다.
“안 아프다 요놈아.”
-꾸왕!
“뽀리는 키릴이 던전에 들어갔다가 데려온 녀석이다. 기본적으로는 포이즌 타입 몬스터라고 하더구나.”
“네? 그럼 진 박사님은…….”
키릴이나 나는 몰라도, 진 박사가 독에 내성이 있을 리 만무.
그러나 진 박사는 괜찮다는 듯 손을 저었다.
“뽀리는 다른 몬스터들과는 달리 인간이 기를 수 있는 종이다. 주인에게 충성심이 아주 강하지. 그리고 녀석이 가진 독이라봐야, 기껏해야 조금 가려운 수준이란다.”
“아하…….”
-꾸왕!
확실히 기존에 알고 있던 몬스터와는 여러모로 다른 모습이었다.
인간과 몬스터가 평화롭게 공존(?)하는 세상이라면, 분명 애완동물 1순위로 선호 받을 만한 생김새다.
기척은 물론 가지고 있는 독성도 원하지 않을 경우 발산하지 않는다고 한다.
신기한 녀석이다.
“아무래도 이 녀석이 널 마음에 들어 하는구나. 이틀 내내 네 옆을 떠나지 않으니 말이다.”
“엑, 이틀 내내?”
놀랠 노 자로군.
나는 헛웃음을 삼키며 손가락으로 녀석을 천천히 쓰다듬어보았다.
-꾸르…….
녀석이 기분이 좋은 듯 이전과는 다른 목소리를 낸다.
진 박사가 나와 뽀리를 보며 훈훈한 미소를 짓더니, 돌연 손바닥을 마주 친다.
“오! 그러고 보니 반점이 아주 조금 옅어졌구나.”
“그래요? 전 잘 모르겠던데.”
“아니야. 처음 봤을 때보다 확실히 나아진 것 같구나. 흠……. 혹시 말이다.”
“네?”
“우리 집에 오고 난 뒤 변화가 생긴 게 없었니? 예를 들면 기운이 넘친다든가. 하는 것들 말이다.”
“음……. 확실히 몸이 좀 개운해진 느낌이 있어요. 특히 오늘 아침에 일어날 때 컨디션이 엄청 좋던데요.”
“하하하. 확실히 그렇구나. 그랬어.”
무엇이 그리 재밌는지, 진 박사의 커다란 입이 양 귀에 걸렸다.
이봐요 진 박사.
저도 이유를 알고 같이 좀 웃읍시다.
“아무래도 뽀리에게 새로운 주인이 나타난 모양이다. 뭐 하긴. 그동안 찰싹 붙어다닌 것만 봐도 알겠지만 말이다.”
“주인이요?”
지금 나보고 이 친구를 집에 데려가라는 말인가?
나는 진 박사의 이야기가 얼마나 모순적인지를 열거해야 했다.
“그러니까, 게이트가 열려서 사람들이 떼죽음을 당한 개방동에, 몬스터를 데려가란 말인가요?”
“핫하. 걱정하지 말거라. 이 녀석은 자신이 원한다면 언제든 모습을 감출 수가 있으니 말이다.”
-꾸왕!
녀석이 대답이라도 하듯 목소리를 높인다.
근데 어디 갔지?
어깨 위에 있던 녀석이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다.
“얘 어디 갔어요?”
“아마도 네 어깨 위에 그대로 있을 게다.”
그래.
미약하지만 녀석의 무게가 느껴진다.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뽀리는 분명 내 어깨 위에 있었다.
“맙소사…….”
요컨대, ‘은신’ 스킬을 쓸 수 있는 몬스터라는 거다.
헌터 중에서도 최상급 에스퍼만, 그것도 에픽 아이템을 통해서만 사용할 수 있다는 희귀 기술.
그걸 이 조그만 녀석이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할 수 있다니.
“너. 나중에 크면 도대체 뭐가 되는 거냐?”
-꾸왕!
녀석이 힘찬(그래 봐야 잘 들리지도 않지만) 목소리와 함께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아마 네 컨디션이 좋아진 건, 뽀리와 관계가 있을 게다. 예전에 키릴도 그랬지.”
키릴이 각성을 막 끝냈을 시절.
그러니까 그녀의 몸에도 전신에 반점이 있었던 시절.
이 뽀리란 녀석을 만나고 난 이후, 반점이 급속도로 사라졌다고 한다.
“우리는 그때 결론을 내렸지. 이 녀석은 주인의 독성을 흡수하는 능력이 있다고 말이다.”
흡수라.
“그렇다면…… 제가 블랙 에테르로 만들지 못한 남은 독성을 이 녀석이 지금 먹어 치우고 있다는 건가요?”
“그럴 확률이 높다. 실제로 네 반점이 미약하게나마 옅어졌고, 컨디션도 좋다고 하지 않았니.”
-꾸왕!
알아서 잘 모시라는 듯, 뽀리가 또 한 번 포효했다.
오호라.
진 박사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 녀석을 거두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말라서 조금 까칠한 느낌이 있기는 하다만……. 해선이 넌 참 조각같이 생겼어. 아마 반점이 없어지면 여러 여자를 울리게 될 게다.”
진 박사는 그 말을 남긴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 밤 안으로 디바이스 작업이 마무리된다고 한다.
그는 남은 시간 동안 PC에 있는 정보들을 많이 파악해 두라고 당부했다.
“흠…….”
굳이 진 박사의 말이 아니더라도, 이틀 동안 헌터와 관련된 기본 지식을 상당수 쌓을 수 있었다.
내부자가 아니라면 알 수 없는 고급 정보들까지.
신열 때문에 탁했던 머리가 각성 이후로 완전히 깨끗해졌다.
나는 PC에 있는 정보를 최대한 머릿속에 욱여넣고, 필요하다면 메모도 했다.
앞으로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그 방향성을 제시해 주는 정보들이었다.
-누나. 몸은 좀 어때? 어디 쿡쿡 쑤시는 곳 없어?
-응. 괜찮아. 걱정되는 마음은 알겠는데, 너무 자주 전화하는 거 아니야? 호호.
키릴은 이미 누나의 독을 치유시켜 주었다.
진 박사는 확신을 가지고 이야기했지만, 아무래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나는 아침저녁으로 누나에게 전화를 걸었고, 목소리만으로도 누나가 회복 중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내일 집에 돌아갈 수 있을 거 같아. 모처럼 같이 저녁 먹을 수 있겠네.
-그러게. 해선이 오는 날이니까 맛있는 거 먹어야겠네?
돼지 뒷다리살로 만든 김치볶음.
누나와 내가 가장 좋아하는 특식(?) 요리다.
형편이 여의치 못해 가장 싼 부위로 만든 메뉴.
원래부터 좋아하는 요리였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너무나 간절하게 먹고 싶다.
도대체 지금 몇 끼 연속으로 통조림을 먹는 거냐.
진 박사는 어떻게 오 년을 버틴 거지?
-두고 봐. 세 그릇은 먹을 테니까.
-호호. 한 그릇이나 제대로 먹으면 소원이 없겠다.
누나는 평소보다 고기를 많이 사 놓겠다는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
참 사려 깊은 사람이다.
게이트에서 죽을 뻔한 고비를 넘기자마자, 동생이 안 하던 외박을 하고 있는 상황.
궁금한 것도 의심스러운 것도 한가득일 텐데, 누나는 내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우리가 서로 물어보는 건 딱 하나.
서로에 대한 안위뿐이었다.
나는 누나에게 ‘게이트 당시에 만났던 헌터의 집에 있다’며 적당히 둘러댔다.
「흐음……. 그래?」
누나는 완전히 믿는 것 같지 않았으나, 그렇다고 꼬치꼬치 캐묻지도 않았다.
무슨 말을 하든 믿어 ‘주는’ 것이다.
하나밖에 없는 동생이 하는 말을.
진 박사의 PC에는 일반인들이 확인할 수 없는 협회의 데이터들이 쌓여 있었다.
시간이 한정되어 있어서 모든 걸 다 확인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지금 당장 무엇을 해야 할지는 알겠다.
‘이제 나는 앞으로…….’
* * *
“가는 게냐?”
“네. 집을 이렇게 비워 둔 게 처음이라서요.”
진 박사와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만 누나를 안심시키는 게 우선이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이제는 통조림 캔을 따는 소리만 들어도 헛구역질이 나올 것 같다.
집에 갈 채비를 하는 동안 진 박사의 표정을 보니 상당히 아쉬워하는 눈치다.
5년 만에 만나는 손님(?)이 떠나서 그런 걸까.
하긴, 그러고 보니 뽀리도 나를 따라오는구나.
“자주 찾아올게요, 진 박사님. 맛있는 거 잔뜩 사서.”
“하하. 말만으로도 고맙구나. 하지만 우리는 당분간 보지 못할 게다.”
“네?”
“일단 외부 손님이 이 구역에 발을 들인 이상, 거처를 옮겨야 한다. 장소가 정해지는 대로 디바이스를 통해 기별을 넣으마.”
“아……. 저는 안심하셔도 될 텐데요. 제가 입이 무거운 편이라.”
“흐하하. 그런 문제가 아니다. 이미 이쪽 부근에서 실종된 헌터 협회의 끄나풀들이 꽤 쌓였어. 머지않아 발각이 될 테지.”
“그러면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제가 도와드리러…….”
“도와줄 건 없다. 여기 있는 디바이스들을 상자에 담아서, 다른 거처로 옮기기만 하면 되니까. 전국에 이런 장소가 열 군데는 넘는다.”
사람을 죽일 수 있는 트랩.
그것이 설치된 거처가 열 군데가 넘는다고?
진 박사의 편집증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심한 것 같았다.
“네게 준 디바이스는 의심의 여지 없는 최상품들이다. 대한민국뿐 아니라 전 세계 어느 길드의 기술력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지.”
진 박사는 모처럼 가슴을 펴며 이야기했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굳이 이야기를 듣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그가 내게 건네준 세 가지 디바이스들.
아무리 검색을 해 보아도 비슷한 종류를 찾을 수가 없었다.
이 모든 것들은 전부 포이즈너를 위해 만들어진 것들이니까.
“앞으로 어떻게 할 테냐.”
“우선 다음 분기 헌터 자격 테스트 때까지 힘을 기를 겁니다.”
“헌터라……. 너도 알다시피 헌터 협회에서는 포이즈너를 탐탁지 않게 생각할 텐데.”
그래.
그래서 포이즈너라는 사실을 숨길 거다.
“다른 타입으로 헌터 자격 시험을 칠 거예요.”
“음……. 그래. 블랙 에테르로 강화된 신체가 있으니, 낮은 티어의 나이트 정도는…….”
“아니요.”
처음에는 그렇게 하려고 했다.
그러나 내 어깨에 앉아 있는 이 신기한 녀석.
뽀리가 함께하면서, 계획이 바뀌었다.
“저는 다른 타입으로 시험을 볼 겁니다.”
“나이트도 아니라는 거냐?”
“네.”
팀으로 움직이는 헌터 집단 안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
그러나 그들 중에서 가장 약한 존재.
그래서, 가장 의심받지 않을 수 있는 존재.
“저는, 힐러가 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