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ison-Eating Healer RAW novel - Chapter (80)
80화
“휘유……!! 오늘도 바글바글하네.”
부산에 거점을 둔 대한민국 서열 2위 길드.
‘비숍’의 부대표 가한찬이 휘파람을 불었다.
“헌터 숫자를 늘린다는 말에 어중이떠중이들이 다 지원했다더니. 쯧.”
그 옆에 미간을 찡그린 채 혀를 차는 대머리 사내가 있었다.
도복 스타일의 복장은 물론이요 튼실한 체격과 진한 인상까지.
두 남자는 한눈에 봐도 쌍둥이라는 걸 알 수 있을 만큼 닮았다.
차이점이 있다면, 가열찬에게는 수북한 턱수염이, 가한찬에게는 풍성한 머리카락이 있다는 정도.
지나가는 사람 중 몇몇이 그들을 바라보며 피식 웃는다.
이목구비는 똑같은데, 얼굴에 난 털만 정확히 반대로 나 있었으니 말이다.
“형. 그래도 우리에게는 잘된 일이 아니요. 요즘에 일손이 모자라서 뼈가 삭을 지경인데.”
가한찬이 이를 드러내며 웃는다.
도처에 깔린 지원자들을 보니 눈앞이 노다지로 느껴진 것이다.
비숍 길드가 가진 야망을 실현시켜 줄 미완의 대기들.
그러나 여전히 가열찬은 못마땅한 기색이 역력했다.
“가능성이 있는 놈들은 헌터가 되기 전부터 티가 나기 마련인데. 좀처럼 보이지가 않아.”
“흐흐. 예를 들면, 천해선 같은?”
“그래. 비단 1차 시험 때 골드 코어를 사용해서가 아니라, 녀석은 흘러나오는 기운 자체가 범상치 않았다. 그때 그놈의 마음을 확실히 사로잡았어야 하는 건데……!!”
‘S’랭크 힐러 천해선.
물론 당시에도 비숍 길드의 대표 가열찬은 그에게 적극적으로 러브콜을 보냈다.
글로리 길드가 어떤 제안을 하더라도 그것보다 좋은 조건을 제시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천해선은 정말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그의 제안을 거절했다.
“지금 생각해도 정말 기가 막힐 노릇 아니오? 집에서 멀다고 비숍 길드를 오지 않겠다니.”
가한찬이 실소를 머금은 채 자신의 턱을 긁는다.
차라리 돈이 부족하다거나 대우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면 이해라도 하지.
뭐?
멀어서 왔다 갔다 하기가 힘들어?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이야기라고 봐야지.”
“그게 뭔 말이오?”
“단순히 정말 집이 멀어서 그랬다면 지금쯤 서울 인근의 길드 어딘가에 가입을 했을 거다. 녀석에게는 위치 말고 다른 이유가 있는 게 분명해.”
그러니, 그 이유를 알아낸다면 천해선의 영입도 꿈은 아니다.
그는 아직도 여전히 ‘무적’인 상태니까.
“설마하니, 아직도 천해선 영입을 포기하지 않은 거요?”
“왜. 그러면 안 되냐?”
가한찬이 기가 막힌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형님. 꿈 깨죠. 천해선이 단순히 힐러일 때도 영입을 못 했는데, 다중 능력자가 된 지금이 가당키나 하겠소?”
“넌 왜 그렇게 늘 부정적이냐? 해 보지 않고는 모르는 거야 자식아.”
툭 쏘아붙이긴 했지만 실은 가열찬도 알고 있었다.
지금의 천해선을 영입하려면 비숍 길드의 기둥뿌리를 뽑아도 모자랄 지경이라는 걸.
당대 최고의 헌터라 불렸던 강현을 제압하고, 얼마 전에는 7성 몬스터인 크라켄마저 ‘단독으로’ 해치웠다.
같은 S랭크 헌터라곤 하나, 자신이었다면 혼자서 가능했을까.
확신할 수 없는 일이었다.
천해선의 가치는 어느새 닿을 수 없는 영역까지 치솟아 있었다.
오늘 자격 시험이 열리기 며칠 전.
천해선의 다중 능력 테스트를 이것으로 대체한다며, 협회 공식 위튜브 채널에 영상 하나가 올라왔다.
크라켄의 촉수들을 한 방에 불태워 버리는 가공할 염동력.
그 영상이 올라오자마자 천해선에 대한 특혜 논란이 한순간에 가라앉았고, 비난의 목소리들이 전부 찬양으로 바뀌어 버리고 말았다.
└와, 그 크라켄을 문어구이로 만들어 버렸네. 진짜 지렸다.
└어지간한 길드 정예 부대가 출동해야 되는 놈이잖아. 저걸 혼자서 해치웠다고?
└저 구워진 촉수, 맛있어 보이는 건 나뿐?
└아서라. 까맣게 불태워진 거 보니까 먹으면 제 명에 못 살 것 같다.
└영상 왜 이렇게 짧아 ㅡㅡ 3초가 말이 되냐?
└유료 결제 따위 얼마든지 해도 상관없으니까 나머지 장면도 보여줘!!
└이거 보니까 왜 협회에서 시험 면제해줬는지 알겠네. 자칫하면 측정 디바이스를 통째로 날려버리겠어.
└가만, 헌터 랭킹전이 언제였더라? 이렇게 된 이상 천해선도 무조건 나와야겠네!!
└그러게. 힐러들은 랭킹전에 나와봤자지만, 천해선은 이제 에스퍼 능력도 갖춘거잖아?
└구건이를 복날 개처럼 줘패던 강현을 처치했는데, 사실상 천해선이 1등 아님?
└그래도 해봐야 아는 거지. 구건이뿐만 아니라 쟁쟁한 헌터들이 많잖아.
채널에 올라온 댓글들을 떠올리고 있을 무렵, 누군가 가열찬에게 다가와 허그를 한다.
“가 대표님! 오랜만입니다!”
“어……. 김 대표.”
청검 길드의 김승환.
얼마 전 타우르스 떼거지를 처리하느라 진땀을 뺐던 사내다.
쾌활하고 사교성 좋은 성격답게, 김승환은 친분이랄 게 별로 없는 가열찬에게도 스스럼없는 모습을 보였다.
“요새 많이 바쁘시죠?”
“뭐 어디든 다 그렇지. 청검도 요즘에 일손이 많이 모자란다는 소문이 있던데.”
“아휴. 안 그래도 죽겠습니다. 비숍 길드처럼 헌터들이 깔려 있으면 모를까, 저희는 꼼짝없이 3교대를 하고 있어요.”
“깔려 있기는 무슨……. 그리 넉넉했으면 내가 직접 여기까지 왔겠나.”
겉으로 보이는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지만, 두 대표 사이에는 묘한 기류가 흐르고 있었다.
길드의 발전과 영예.
그것을 위해서는 눈앞의 상대보다 더 많은 양질의 헌터를 영입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 보이지 않는 경쟁심 때문일까.
김승환이 너스레를 떨며 가열찬을 자극한다.
“아참. 제가 얼마 전에 천해선 헌터와 자리를 같이했지 뭡니까.”
“천해선하고?”
순간 가열찬의 눈에 스파크가 튄다.
그 모습을 본 김승환이 속으로 고소를 머금는다.
‘생각보다 순수한 구석이 있단 말이야.’
가열찬이 속으로 천해선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지금의 행동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네. 앞으로 길드의 미래에 관해서 이야기를 주고받았습니다. 곧 좋은 소식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
사정을 아는 사람들이라면 김승환에게 ‘저런 사기꾼 같은 새끼’라며 돌을 던졌을 것이다.
천해선과 김승환이 자리를 함께한 곳.
그곳은 서울로 이동하는 헬기 안이었다.
천해선이 원했던 건 김승환이 아니라 단지 이동 수단이었고, 김승환이 그 헬기에 냉큼 올라타 있었을 뿐.
심지어 그 안에서 청검 길드의 비전 같은 건 언급한 적도 없었다.
그러나 이 사실을 알 리 없는 가열찬으로서는 혼란스럽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천해선이 청검과 그렇게 친한 사이였나? 이 자식……. 부산이나 수원이나 얼마나 차이 난다고.’
김승환은 사실 알고 있었다.
천해선이 청검 길드에 들어올 가능성이 제로에 수렴한다는 걸.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구라를 치는 건, 가열찬의 심기를 흐트러트리기 위함이었다.
좋은 유망주를 발견하기 위해서는 탁월한 눈썰미와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하다.
신입 헌터를 쥐락펴락할 수 있는 심리전 또한 필수.
그런 의미에서 오늘 ‘비숍’ 길드는 큰 수확을 얻지 못할지도 모른다.
‘뭐, 사실 그런 이유를 떠나서 친분 좀 과시해 보고 싶었던 거지만…….’
길드의 대표라고 해서 다를 것이 없었다.
그들 또한 하나의 헌터였으니까.
최근 천해선이 보여 주는 행보는 모든 헌터들의 로망이나 다름없었다.
오만한 협회를 상대로 단독으로 맞서는, 7성 몬스터 따위는 간단히 씹어 먹는 다중 능력 헌터.
영입을 하고 안 하고를 떠나, 그와 친분이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 어깨가 올라갈 만한 인물이었다.
그런데,
“저 친구도 양반은 못 되는 모양이군.”
“?”
비숍 길드의 부대표 가한찬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는다.
가열찬과 김승환이 고개를 돌려 보니, 엄청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한 쌍의 남녀가 걸어오고 있었다.
한 명은 천해선.
남은 한 명은…….
“허…….”
가열찬이 자신도 모르게 탄식을 뱉는다.
붉은 머리칼이 너무나 잘 어울리는 화려한 이목구비.
몸에 살짝 달라붙는 신축성 있는 복장이 그녀의 매끈한 라인을 한껏 부각시켜 준다.
눈이 번쩍 뜨일 만한 치명적인 미모의 소유자.
비수가 천해선과 함께 나란히 걸어오고 있었다.
* * *
“손은 왜 흔드냐?”
“꺄하. 이렇게 많은 카메라가 찍고 있는데 포즈 정도는 취해 줘야지.”
“벌써 헌터라도 된 것처럼 구네.”
퉁명스럽게 대꾸했지만 사실 알고 있었다.
처음 출입문 쪽에 나타났을 때는 모든 카메라가 나를 찍고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자 조금씩 비수를 촬영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었다.
단지 나와 같이 나타났다는 것 때문일까?
아니, 카메라의 앵글은 그것보다 훨씬 노골적으로 그녀를 탐색하고 있었다.
“어차피 헌터가 되는 건 따 놓은 당상인데 뭐 어때?”
“필기시험에서 떨어질 뻔한 사람이 누구더라? 이복순 씨.”
“그렇게 부르지 말라니까!”
비수가 기절할 듯이 놀라며 앙칼지게 외친다.
그렇게 의식하던 카메라조차 눈에 들어오지 않을 만큼.
“큭큭. 큭큭큭. 아, 미안합니다. 개명하셨죠, 이제.”
“한 번만 더 부르면 진짜 죽여 버릴 거야.”
“네. 가시죠, 복…… 비수 씨.”
이비수.
그녀는 암시장을 나온 뒤 곧바로 이름부터 바꾸었다.
암시장에서 가명으로 살았을 때는 별 상관이 없었지만, 이제 현실에서 살아야 하는 만큼 여고생 나이에 걸맞은 이름이 필요했던 것이다.
“휴……. 아무튼 태어날 때부터 도움이 안 된 인간이라니까.”
잠시 아빠를 떠올린 비수가 빠드득하고 이를 갈았고, 나는 실실대며 물었다.
“근데 기껏 암시장을 나와서 왜 또 비수로 지었냐? 그렇게 도망치고 싶었던 장소면서.”
“나도 고민했는데, 다른 이름이 입에 안 붙더라고.”
“복순이는 쫙쫙 붙…….”
“진짜 뒤질래?”
비수의 상냥한 웃음 뒤에 서릿발처럼 차가운 기운이 몰아친다.
여기서 한 발 더 나갔다간 정말 큰일 나겠네.
아쉽지만 놀리는 건 여기서 그만둬야 할 듯하다.
나는 양손을 모아 사죄했고, 그녀는 짧게 한숨을 쉬었다.
“따지고 보면 나는 암시장에서 다시 태어난 거나 마찬가지야. 그 악랄한 아버…… 야차 놈이 흉터를 말끔하게 고쳐 주기도 했고. 병 주고 약 준 기분이긴 하지만.”
“그래. 개인적으로 익숙한 이름이라서 좋네. 헷갈릴 일도 없고.”
“좀 전까지 신나게 복순이라고 놀리던 놈이?”
비수가 곱게 눈을 흘기며 어깨로 팔을 칠 무렵, 굵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이고, 이게 누구신가.”
기성 헌터들이 대기하는 구역에 진입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가열찬이 나타나 내 손을 잡는다.
“천해선 헌터. 오랜만일세.”
“가 대표님. 잘 지내셨어요?”
“잘 지내기는 무슨. 일손이 딸려 죽을 맛이네. 그래서 하는 말인데, 오늘 시험이 끝나면…….”
그때, 옆에 있던 활기찬 목소리가 잽싸게 그의 입을 막는다.
“하하하하. 천해선 헌터님. 또 뵙습니다.”
“아, 김승환 대표님.”
나는 슬쩍 고개를 숙으며 고소를 머금었다.
‘또’라는 말을 꽤나 강조하네.
아무래도 이 사람들.
친한 척을 하지 못해서 안달이 난 것 같다.
“그건 그렇고…….”
카메라의 앵글이 그랬던 것처럼, 선수(先手)를 제압당해 뚱한 표정을 짓던 가열찬의 시선이 내 옆을 향한다.
“이 아리따우신 숙녀는 누구신가?”
“우욱.”
순간적으로 구토감이 밀려온다.
포이즌 던전에 들어갔을 때조차 느끼지 못했던 역한 기운이 내 정신을 점령한다.
뭐?
숙녀?
내가 한 손으로 입을 틀어막자 비수가 무시무시한 눈빛을 날린다.
그리고는 언제 그랬냐는 듯 방실방실 웃으며 인사를 나눈다.
“안녕하세요. 이번에 헌터 자격 시험을 보게 된 이비수라고 합니다.”
“오. 헌터 지망생이셨군요. 눈이 번쩍 뜨일 만큼 아름답습니다.”
“히히. 감사해요.”
쩝, 하고 입맛을 다시며 주변을 돌아보니 다들 가열찬과 비슷한 생각인 것 같다.
하긴.
입가에 흉터가 있을 때조차 그녀의 매력엔 주변의 시선을 끌어당길 만한 힘이 있었다.
사람들이 이렇게 관심 가질 줄 알았다면 굳이 동행할 필요가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길을 잃을 염려는 없을 테니 말이다.
-응시생분들은 아홉 시까지 지정된 장소로…….
비수와 길드 대표들이 환담을 나누기도 잠시.
본격적인 시험 시작을 알리는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여기서부터는 혼자 가. 계단만 내려가면 되는데.”
“그러지 말고 좀 같이 가 주지? 혼자는 무섭단 말야.”
“무섭기는 개뿔이…….”
“하하하하. 그러지 말고 에스코트 좀 해 주지그래. 우리야 익숙하지만 비수 양에게는 처음이 아닌가.”
가열찬 대표가 익살스럽게 웃는다.
마치 무슨 관계인지 다 알고 있다는 듯한 얼굴이다.
아저씨, 그런 거 아니거든요?
“휴. 이러다 시험도 대신 쳐 주게 생겼네.”
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계단 입구까지 함께 이동했다.
기자들은 안쪽까지 없어 다행이지만 주변 응시생들의 뜨거운 눈빛은 카메라 렌즈 이상으로 번뜩거렸다.
제발 그만 좀 쳐다봐라.
얼굴 닳겠다.
찌릿.
“윽…….”
그때.
나는 특이한 냄새에 인상을 확 찡그렸다.
“왜 그래?”
비수가 고개를 갸웃거렸고, 나는 주변을 둘러보며 집중력을 극한으로 끌어 올렸다.
‘사라졌어……?’
잠시 착각했던 걸까.
코끝을 자극하던 냄새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아니……. 뭔가 착각했나 봐.”
“싱겁긴. 나 다녀올게.”
“그래. 사고 치지 말고.”
비수가 방끗 웃으며 계단을 내려간다.
“그래……. 다른 곳도 아니고 헌터 협회 내부에서 그 냄새가 날 리 없지.”
나는 피식 웃으며 등을 돌렸다.
잠시나마 착각했던 그 냄새.
그건 포이즌 몬스터에서 나던 특유의 비린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