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ison-Eating Healer RAW novel - Chapter (92)
92화
몬스터가 출현하고 난 뒤, 사람들을 작금을 ‘비극의 시대’라 불렀다.
그 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들.
마수에게 잡아먹힌다든가, 불분명한 병에 죽을 때까지 고통받는다든가 하는 일이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게 되었다.
몬스터의 출현은 분명 불행한 일이다.
그러나 아주 극소수의 누군가에게는, 더없이 행복한 일이 되기도 한다.
매드 사이언티스트(Mad scientist).
과학과 관련된 그들의 지적 호기심은 법은 물론이요 도덕과 윤리의 벽까지 스스럼없이 허물어트린다.
새로운 지식에 목말라 있던 ‘미친 과학자’들에게 몬스터의 사체와 던전의 물질들은 새로운 정보의 요람이요, 보물 창고와도 같았다.
‘헌터를 더 강하게 만든다’라는 미명하에 정부와 헌터 협회에서는 각종 과감한 실험들을 묵인해 주었고, 일부 길드에서는 별도의 연구소를 만들어 이들의 연구를 장려하기까지 했다.
미친 호랑이가 날개를 단 격.
몬스터의 성분을 추출해 세포를 배양하고, 던전의 식물들을 이쪽 세계에 키워 보는 실험 같은 건 그들에게 ‘시시한’ 일이었다.
낮은 레벨의 몬스터를 일부러 파워업 하는 일.
마수들의 팔다리를 잘라 헌터의 신체에 끼워 넣는 일.
포이즌 던전의 마약, ‘독편’을 전투 중의 각성제로 활용하는 일 등.
일반인의 범주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독한 실험들이 그들의 손에 쥐어졌다.
그러나 그런 미친놈들에게도 최소한의 지켜야 할 선은 그어져 있었다.
특히나 엄중하게 지켜야 할 것이 바로 ‘미성년자에 대한 실험’이었다.
헌터들이야 더 강한 힘을 얻기 위해 자원한 사람들이 있다지만, 민간인 중에 그런 미친 실험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연구 장벽이 허물어져 버린 매드 사이언티스트 하나가 그 벽을 아주 가볍게 뛰어넘었다.
강준우 박사.
그는 ‘강한 헌터를 육성하려면 어릴 때부터 싹을 틔워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성인이 되어 몬스터의 육체를 이식해 봐야 효율이 안 나오니, 아예 어린아이들을 가지고 몬스터의 세포를 접합시켜 보자는 주장을 펼쳤다.
당연히 그의 의견은 반영되지 않았다.
세상천지에 각성도 되지 않은 미성년자를 상대로 몬스터의 세포를 쑤셔 넣자는 의견에 동의할 집단이 있을 리 만무했다.
강준우는 가로막힌 지식의 벽에 절망했고, 자신의 진보적인 생각에 동의해 주지 않는 세상을 저주했다.
그리고 급기야, 비밀리에 부모 잃은 자식들을 납치해 실험 도구로 사용하기에 이른다.
다른 매드 사이언티스트를 ‘가짜 광기’로 만들어 버리는 과학자 강준우.
워낙에 비상한 머리를 가졌기에 어지간하면 데리고 있으려 했지만, 그를 고용한 길드는 강준우를 해고할 수밖에 없었다.
납치도 납치지만, 아이의 반쪽을 차지하고 있던 마수가 반대편 몸을 먹어치우는 끔찍한 영상이 유출되었기 때문이다.
한쪽 눈은 탐욕에 물들고, 한쪽 눈은 눈물을 흘리는 반인 반수.
제 것인지도 모른 채 스스로의 이빨로 살점을 뜯는, 이루 형용할 수 없는 참담한 장면이었다.
그렇게 강준우는 모든 지위와 권력을 상실한 채 낙향했다.
관계자들은 그를 손가락질하며 저주했고, 한편으로는 이제 그 미친 짓거리를 보지 않아도 되었다며 안도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강준우에게는 아직 한 명의 실험체가 남아 있었다.
정신병자와는 같이 살 수 없다며 도망가 버린 아내가 덜렁 두고 간 작은 생명체.
바로 그의 외동아들이었다.
* * *
“흐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밤마다 끔찍한 비명 소리가 메아리친다.
그를 둘러싸고 있는 첨단 장비는 시간이 흘러 먼지가 잔뜩 쌓였고, 군데군데 녹이 슬기도 했다.
삐걱삐걱 용케 돌아가는 반인륜의 현장.
매일 밤, 어린 소년은 강 박사를 향해 울부짖었다.
“아빠……! 너무 아파!!!”
그러니 제발 죽여 주세요.
소년은 차마 마지막 문장은 말할 수 없었다.
죽여 달라고 말할 때마다 아빠가 더 강한 약물을 투입해 왔으니까.
자신의 최후를 두고 강하게 호소조차 못 하는 소년은, 그렇게 살지도 죽지도 못하는 나날을 보내왔다.
조금이나마 상태가 좋아지는 날이면, 강 박사는 소년의 볼에 입을 맞추었다.
“넌 내 걸작이란다. 아들아. 조금만 있으면 넌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존재가 될 거야.”
소년은 고개를 세차게 가로저었다.
자신은 강력한 존재고 뭐고 필요가 없었다.
그저 조금만, 조금만 덜 아프고 싶었다.
자신의 어깨에서 꿈틀거리는 이 이질적인 존재가 끔찍하게 싫었다.
이 녀석이 팔에서 튀어나오면 무언가는 반드시 죽었다.
대상을 씹어 먹는 느낌이 고스란히 전해질 때마다 소년은 밤새 몸서리를 쳐야 했다.
자신의 인생에 있어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던 시간들.
그 시간을 끝내 준 건 다름 아닌, 소년의 어머니였다.
“이 미친 인간……!!”
자식의 근황이 궁금해진 소년의 어머니가 어렵사리 강 박사의 본가를 찾아왔고, 참담하게 망가져 버린 자식의 모습을 본 순간 눈이 뒤집혀버렸다.
그리고 이리저리 몸싸움을 하던 와중에, 약에 취해 있던 강 박사가 전심전력을 다해 그녀를 밀어 버렸다.
쿵.
기계 모서리에 뒤통수를 찧은 소년의 어머니가 눈을 까뒤집고 생을 마감했다.
“엄…… 마……?”
그와 동시에, 소년을 휘두르던 ‘그것’의 광기도 활동을 멈추었다.
뚝.
더 큰 광기가 소년의 심장에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촤아아아아아아아악!!
소년의 인생 처음으로, 그의 몸 안에 있는 식물이 생각한 대로 움직여 주었다.
쏜살같이 뻗어 나간 식물의 이빨이 강 박사의 목을 움켜쥔 것.
조금만 힘이 들어가도 목이 잘려 나갈 상황.
피에 젖어 붉게 번뜩이는 이빨 새로 나온 말은, 용서해 달라는 것이 아니었다.
“역시…… 넌 내 걸작…….”
와그작.
소년의 어깨 끝에서 아빠의 머리가 으스러지는 느낌이 정확히 전달된다.
본능적으로, 그는 이 느낌을 절대 잊지 않겠노라 결심했다.
몬스터와 관련된 모든 것들을 없애 버리겠다.
세상을 구한다는 미명하에 벌어지는 가식들을 먹어 치울 것이다.
그래서, 더 이상 나 같은 사람이 만들어지지 않도록 하겠다.
소년은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그렇게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강정현.
그의 나이 15세에 일어난 일이었다.
* * *
“…….”
무거운 침묵이 테이블 위를 떠다닌다.
마리아는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고, 비수의 눈화장은 이미 흉하게 번져 있었다.
그리고…….
“어헣헣헣헣헣허헣헣헣.”
육철완이 세상이 떠나갈 듯 대성통곡을 하고 있다.
눈물이 줄줄 흘러 수염에 맺히는 게 슬프기도 하고 지저분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정현 씨가 왜 저를 찾아왔는지 조금은 알 것 같네요.”
강정현이 뒷머리를 긁으며 수줍게 웃는다.
강정현의 시선에서 보면 나는 정확히 그가 다짐한 삶을 선행하고 있었다.
양면의 탈을 쓴 길드에 가입하지도 않고, 되려 포이즌 던전을 묵묵히 수행하며 협회의 부당한 대우를 초법적인 지위로 탈바꿈시켰다.
강정현의 비극적인 과거를 떠올려 보건대, 일반적인 헌터 응시생의 몇 배에 달하는 감정이 새겨졌을 것이다.
스스로 이런 말을 하기는 그렇지만, ‘존경’ 같은?
흠흠.
“이런 나쁜 자식.”
독심술이라도 있는 건가?
비수가 갑자기 얼굴을 주욱 내민다.
“넌 어떻게 이런 사연을 듣고도 그런 말부터 나오냐? 안 슬퍼? 안 슬프냐고호호혹!”
“말을 하든가 울든가 둘 중 하나만 해라.”
“어헣헣. 천해선 헌터님. 정말이지 눈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슬픕니다!”
“눈을 계속 부비고 있으니까 그렇죠, 철완 아저씨.”
보이는 건 정반대지만, 감성이 충만한 걸로 따지면 비수와 육철완은 꽤나 닮았다.
그들은 연신 눈물을 닦거나 강정현의 어깨를 어루만져 주었다.
그런 호의가 익숙지 않아서일까?
강정현은 그때마다 움찔하며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나도 한 개고생(?)해 봤지만, 저 친구는 더하군.
지극정성으로 간호해 주었던 누나와 다르게, 강정현의 아버지는 간호는커녕 오히려 고통의 주범이라 할 수 있었다.
누나가 갑자기 미친 과학자가 되어 내 몸에 이런저런 실험을 한다면?
어후.
상상하기도 싫다.
‘훙!’ 하고 요란하게 콧물을 정리한 뒤, 비수가 묻는다.
“그런데 지금 나이가 열일곱이라며? 2년 동안 왜 헌터가 되지 않았어?”
“아 그게…….”
강정현이 슬쩍 눈치를 살피더니 말을 잇는다.
“아직 식물을 컨트롤하는 게 완전하지 않고…… 무엇보다 돈이 없어서요.”
“아……!”
그렇지 참.
헌터 자격 시험에 응시하기 위해서는 오천만 원의 돈이 필요하다.
나 또한 그 돈을 벌기 위해 헌터 자격을 따기 전부터 포이즌 던전을 돌아다니지 않았는가.
열다섯 살의 나이에 오천만 원이라는 돈을 모아야 한다면 기분이 어떨까.
숨부터 막혔을 것이다.
“아르바이트를 알아보기는 했는데, 팔이 이렇다 보니 사람들 많은 곳은 일하기가 힘들었어요. 학교도 제대로 안 나왔고…….”
“쉽지 않았겠죠.”
“그래서 온라인 과외를 했어요.”
“과외?”
“네.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 과외를 해 줄 수 있는 웹사이트가 있어서…… 헌터 자격 시험하고 기초 학문을 알려 주면서 돈을 벌 수 있었어요.”
“아니 잠깐…….”
비수가 대화에 끼어든다.
“정현 씨……. 편하게 말 놓을게?”
“아, 네.”
“너도 지금 열일곱이라며. 이제 막 헌터 자격 시험에 합격했고. 그런데 네가 다른 사람을 가르쳤다고?”
“아……. 그게…….”
강정현이 머뭇머뭇하더니 씁쓸한 얼굴로 대답한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는 말이 이런 건가 봐요……. 학교 교과서나 학습지를 구해서 공부하다 보면…… 거의 다 기억이 나서…….”
“옴마…….”
비수의 동공이 크게 흔들린다.
팔에서 괴식물이 튀어나온다는 말에도 크게 놀라지 않던 그녀가, 지금 한 말에는 숫제 괴물처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럴 만하지.’
절로 입꼬리가 올라간다.
그녀의 입장에서는 ‘한번 공부한 건 잊혀지지 않는다’는 건 어떤 말보다 충격적일 것이다.
“그게 말이 돼? 원래 두세 번 반복해야 외워지는 거 아냐?”
“되게 두세 번만 외운 척하네. 열 번 넘게 틀린 문제가 한두 개가…….”
“이게!”
비수가 내 입을 잡으려 양손을 벌렸고, 나는 아주 여유 있게 위빙으로 피했다.
“아오! 약올라!”
그 광경에 육철완이 마침내 웃음을 되찾았다.
“핳하하하핫.”
“씽. 철완 아저씨. 울다가 웃으면 어떻게 되는지 몰라요?”
“흡. 그나저나, 고생이 아주 많았군요. 이 년 만에 오천만 원을 모으는 건 일반 성인도 힘든 일이었을 텐데.”
“네……. 그래서 이번에 대출을 받을 수밖에 없었어요. 그동안 과외비 받은 걸 증빙해서 간신히 천오백만 원을 대출받을 수 있었어요.”
“네? 아니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육철완이 고개를 갸웃했고, 그건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강정현은 젊다.
아니 젊다는 표현으로도 부족하지.
어린 유망주다.
헌터 시험이 몇 년에 한 번 열리는 것도 아닌데, 왜 대출을 받아서까지 시험을 친 거지?
우물쭈물하던 강정현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천해선 헌터님이…… 에스퍼 심사로 나오신다고 해서…….”
“?”
뭐야.
내 이름이 여기서 왜 나와.
“그때가 아니면 만나기 힘들 거라고 생각했어요.”
“오호라…….”
비수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꺾는다.
“그러니까, 우리 착하고 불쌍한 정현이가 대출까지 받아서 시험을 서두른 게 천해선 저놈아 때문이라는 거구나?”
“저런…….”
마리아가 함께 추임새를 넣는다.
저런은 무슨 저런이야?
“이…… 이대로는 안 되겠습니다. 천해선 헌터님. 이번 분기 최고의 신인이 대출에 허덕이는 꼴을 봐서야 되겠습니까?”
안 되지.
근데 왜 그게 내 탓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건데?
정작 강정현이 가만히 있는데 왜 다른 사람들이 더 난리야?
“나 참…….”
본의 아니게 남의 인생을 서두른 꼴이 되었군.
에스퍼의 심사자로 참여한 게 이런 나비효과가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하나 그게 내 탓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이제 강정현은 우리의 동료다.
육철완의 말마따나, 최고의 신인이 사채에 시달리는 건 죽어도 못 본다.
“그럼 일단, 돈부터 벌죠.”
마침 좋은 건수가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