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ison-Eating Healer RAW novel - Chapter (96)
96화
“옳거니.”
적독사가 날카로운 이빨로 무언가를 물고 있다.
놈의 커다란 몸에 군데군데 비늘이 벗겨져 있는 걸 보니 호숫물이 어지간히 독한 모양이다.
아픈 건지 간지러운 건지, 적독사가 신경질적으로 입 안에 물고 있는 걸 뱉었다.
쿵.
“우왁!”
동료들이 기겁을 하며 물러난다.
보스 몹이 아니라, 표면에 묻어 있는 호숫물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이 자식이……!!”
재빨리 몸을 날려 동료들에게 튀는 물을 막는다.
고개를 돌려 적독사 쪽을 노려보았지만, 이미 놈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내 에테르를 원천으로 나타나는 주제에, 이렇게 불충한 놈이 있다니.
……대가리 박으라는 말이 거슬렸던 건가?
치익.
살이 타는 냄새가 코끝을 어지럽힌다.
내 몸이 그다지 크지 않았으니 분명 누군가에게는 호숫물이 튀었을 것이다.
나는 고개를 돌려 부상자를 확인했고, 살짝 얼굴이 굳어지고 말았다.
“으음…….”
부상자는 마리아였다.
이미 여러 차례 중독된 육철완을 대신해, 그녀의 가녀린 몸이 육철완에게 튀는 독극물을 막아 준 것이다.
마리아의 한쪽 어깨가 눈 뜨고 볼 수 없을 만큼 타들어 간 상태.
한걸음에 달려가 그녀의 어깨에 손을 뻗는다.
샤르르…….
원래대로라면 그녀는 이런 부상을 입지 않았을 것이다.
‘S’랭커 힐러 정도 되면 자가 치유만으로 회복이 가능했을 터.
하지만 그녀의 어깨에는 그 어떤 치유의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동료들의 치료에 모든 힘을 쓴 터라, 자가 치유를 할 에테르조차 남아 있지 않은 것이다.
이 던전의 독성이 얼마나 치명적인지 피부로 체감할 수 있었다.
“마리아 님……!!”
“괜찮습니다.”
치유를 받는 동안 몸을 움찔움찔하면서도, 마리아는 육철완을 향해 온화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과연, 이럴 때 보면 왜 ‘성모’라는 별명이 생겼는지 알 것 같다.
하지만 나는 그녀에게 쓴소리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전시에는 힐러의 안전이 최우선입니다. 국내 최고 길드에 몸담으셨던 분이 그걸 모르지는 않으셨을 텐데.”
전장에서 부상당한 헌터는 다시 나가 싸울 수 있다.
힐러가 있다는 전제하에.
반면, 정작 그 ‘힐러’가 다치게 된다면?
그건 더 이상 길드에 남은 코인이 없다는 의미다.
바로 그런 이유로 힐러는 최우선 보호 대상이 된다.
내가 마리아에게 잔소리를 한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
가장 기본적인 원칙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그러나 마리아의 생각은 조금 다른 듯 보였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에테르를 모두 소진했어요. 당분간은 힐러도 뭣도 아니에요.”
“……!!”
“해선 씨가 그랬죠? 고통에 익숙하냐고. 익숙한 사람이 대신 감당했을 뿐이에요.”
나는 새삼스러운 눈으로 마리아를 바라보았다.
사람을 구하고자 하는 마리아의 성정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처절하고 절박한 것이었다.
타입이 힐러가 아니더라도 그녀는 온몸을 바쳐 위험에 처한 사람들을 돌봤을 것이다.
“……제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네요.”
“네?”
“당신이 반성의 시간을 갖는 게, 단순히 도덕적인 결벽증 때문일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터프한 분이라는 걸 이번에 알았습니다.”
마리아는 특별한 대답 없이 옅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희미했지만, TV 광고 화면에서 본 것보다 훨씬 눈부신 미소였다.
샤르르…….
치유를 마친 마리아가 옷을 갈아입는 동안, 나는 동료들의 자잘한 상처를 보살펴 주었다.
그런데 팀원들의 컨디션을 점검하고 마침내 일어나려는 찰나, 갑자기 현기증이 생긴다.
비틀.
“어쿠.”
“해선아!”
비수가 달려와 재빨리 나를 부축한다.
“어. 내가 왜 이러지.”
“……그런 의문을 갖는 게 더 이상해 보이는데?“
“응?”
“생각을 해 봐. 아까 전에 그 무식한 괴물을 불러내고, 무식하게 불을 내뿜지 않나, 무식하게 치유력도 남발했으니 몬스터가 아니고서야 그걸 버틸 수 있겠어?”
“……그런가? 근데 왜 자꾸 무식이 들어가. 정작 무식하신 분은…….”
비수가 부축한 팔을 빼 버리는 통에 나는 한 번 더 휘청거릴 수밖에 없었다.
확실히 몸 안이 텅 빈 느낌이다.
블랙 에테르는 물론이고, 매일같이 나를 괴롭히던 독과 치유력까지 남아난 게 없었다.
모든 것은 눈앞의 보스 몹을 잡기 위해서.
나는 적독사가 뱉은 눈앞의 보스 몹…… 아니 생선 대가리를 향해 한숨을 쉬었다.
“잡기는 잡았다만…… 이딴 게 보스 몹이라니…….”
스콰마(squāma) / BOSS / type -poison / 처치 난도 8성(★★★★★★★★) / 물리 레벨 ‘E’ / 기타 레벨 ‘S’ / 전용 스킬 – hide : 유독성 성분을 무색무취하게 만들어 드러나지 않게 타격을 입힙니다. / 전용 스킬 – 존버 : 스콰마의 인내심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적의 숨통이 끊어질 때까지 절대 은신처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백옥색의 비늘을 가진 물고기.
길이는 채 1m도 되어 보이지 않는다.
던전은커녕 큰 생선을 잡는 어선에서조차 대수롭지 않게 여길 만한 사이즈다.
이런 생선 대가리가 우릴 그렇게 힘들게 만들었단 말이지?
가슴속에서 뜨거운 살심이 솟아오른다.
유난히 큰 스콰마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린다.
팍.
스콰마의 몸통에 잔인한 발길질이 가해진다.
엥.
정작 내 발은 아직 여기에 있는데.
욕설을 뱉으며 발길질을 하는 주인공은 바로, 비수였다.
“시발! 뒈져! 하마터면 뒤질 뻔했잖아?”
-켕!
스콰마가 처절한 비명을 지르며 나가떨어진다.
지금에야 호수 밖으로 끄집어내서 그렇지, 이 생선 대가리에게 죽은 생명체가 한둘이 아닐 것이다.
“뒈져! 뒈져!”
……저러다 진짜 뼈도 못 추리겠는데?
나는 성큼성큼 다가가 비수의 어깨를 잡았다.
“그러다 후회한다.”
“뭐? 내가 왜 후회를 해. 이 새끼 때문에 우리가 그 생고생을……!! 뒈져!”
퍽퍽.
“발에 독이 퍼질 수도 있어.”
“어머 시발! 그건 곤란하지.”
비수가 언제 그랬냐는 듯 행동을 멈추고 자리를 뜬다.
미련 없이 돌아서는 걸 보니 이미 기분이 풀릴 만큼 후드려 팬 것 같다.
‘붉은 머리칼의 마녀’라는 별명이 생긴 그녀.
매력을 강조하기 위해 ‘마녀’라 부른 걸 테지만 실제로도 더없이 잘 어울리는 별명이다.
대중은 그녀의 성격이 마녀보다 훨씬 거칠다는 걸 알고 있을까?
-케르르…….
치명적인 독 기운과, ‘hide’ 능력으로 기타 레벨 ‘S’로 등록된 보스 몹.
그러나 녀석의 물리 레벨은 고작해야 ‘E’ 수준이다.
특히나 지금은 물 밖에 나온 상태인지라, 비수의 발길질에도 사경을 헤매고 있었다.
키링.
팔목에 찬 프라셀에 검은 칼날이 돋아나기 시작한다.
비수를 만류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이 녀석을 봐주자는 소리도 아니다.
다만 깔끔하고 심플하게, 한 방에 보내고 싶었을 뿐.
모든 보스 몹이 그런 건 아니지만, 클래스 있는 녀석들은 제각기 ‘재료’들을 남긴다.
멍청하게 생긴 이 생선 대가리도 마찬가지.
계속해서 발길질을 얻어맞았다간 ‘재료’가 상할 우려가 있었다.
“잘 가라.”
푹.
검은 칼날이 스콰마의 아가미를 정확히 꿰뚫는다.
고통에 버둥거리던 생선 대가리의 몸이 뻣뻣하게 굳어 버렸다.
화끈하게 치고받는 것보다 몇 배는 힘들었던 던전 공략이 드디어 끝났다.
처치까지 가는 과정이 어려웠지, 그 이후부터는 일사천리였다.
스콰마의 백옥색 비늘은 세상에서 가장 진귀한 화장품 재료가 된다.
육철완이 비늘 표면을 잘라 내자 비수의 얼굴이 탐욕으로 물든다.
“언니……. 다른 건 몰라도 저건 챙겨야 돼요. 알고 있죠?”
“어? 으응…….”
비수야 그렇다 쳐도, 마리아의 반응도 꽤 이색적이었다.
자긴 저런 건 필요 없다고 말할 줄 알았는데, 저렇게 대답할 정도면 꽤나 관심이 있다는 의미였다.
비수가 신줏단지 모시듯 비늘을 품 안에 넣을 무렵, 육철완이 배에서 또 다른 무언가를 추출했다.
“이겁니다. 이것이 바로 스콰마가 사용하는 ‘hide’ 기술의 원천이지요.”
손바닥만 한 주머니에 투명한 용액이 담겨 있다.
언뜻 보면 단순한 장기 중 하나로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육철완이 말했던 대로, 저 안에 담긴 투명한 용액은 세상 모든 것을 ‘숨겨(hide)’ 준다.
어떠한 화학 약품도 무색무취하게 만들어 주는 마법의 용액.
헌터 협회에서는 이 물건을 ‘스텔스’라 부른다.
“이건 부르는 게 값입니다. 특히나 암시장에서는 없어서 못 구하는 물건이지요.”
무언가를 숨긴다는 행위는 분명 밝은 곳보다 어두운 곳에 이용되기 마련.
금영화만큼은 아니지만 ‘스텔스’ 또한 수억 원을 호가하는 물건이다.
어설프게 맛과 향을 지우는 게 아니다.
우리가 좀 전에 당했던 것처럼, 몸이 잠식당하는지도 모르게 효과가 진행된다.
“해선 씨……. 이걸 암시장에 파실 생각이신가요……?”
마리아가 순진무구한 얼굴로 물어본다.
설마하니, 범죄에 이용될 수 있는 물건을 처분할 생각이냐는 뉘앙스가 역력하다.
그녀의 표정을 읽은 육철완이 어색한 웃음을 짓는다.
“아. 하하하. 마리아 님. 암시장에 판다고 해서 무조건 나쁜 일에 사용되는 건 아닙니다. 비위가 약한 재력가에게 약품 처리용으로 쓰이기도 하고, 그 외에도 사용처는 무궁무진하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천해선 헌터님?”
육철완이 다급한 눈짓을 보낸다.
눈앞에서 수억 원이 왔다 갔다 하는 일이니 어떻게든 그녀를 안심시키고 싶은 듯하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가 원하는 대답은 나오지 않았다.
“그렇긴 한데, 암시장에다 내다 팔 일은 없어요.”
“예에?”
육철완이 뒤통수를 한 대 맞은 얼굴로 되묻는다.
“이걸 왜 남한테 줘요? 얼마나 요긴한 물건인데.”
“요긴이라니…….”
“요오긴?”
“그럼 이걸, 직접 사용한다는 겁니까?”
“대체 이 위험한 물건을 어디에?”
마리아를 비롯한 모두가 기가 막힌다는 듯 입을 벌렸고, 나는 악랄한 미소를 지었다.
“곧 필요한 날이 올지도 모르죠.”
곧, 등 뒤에서 비수의 허탈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와, 저건 암시장보다 더 위험한 놈일세.”
* * *
쾅!!
쾅!!
쾅!!
‘뭐가 어떻게 된 거지?’
손발이 덜덜 떨린다.
그 어떤 몬스터를 만났을 때도 이렇게 쫄아 본 적이 없었다.
글로리 길드 3팀장 강태풍.
그는 길드가 자랑하는 돌격형 ‘S’랭크 나이트였다.
1팀의 구건이, 2팀의 연지선, 3팀의 강태풍.
이들이 바로 글로리 길드가 자랑하는 정예 팀이었다.
전력상 3팀이 가장 약하기는 하나, 국내 어느 길드의 정예 팀을 붙여 놓아도 그 3팀조차 앞서는 전력이 없었다.
강태풍은 호전적인 성격이었고, 무력의 향상 이외에는 머릿속에 든 게 없는 전형적인 싸움꾼이었다.
단순히 ‘힘’만 따지면 구건이의 압승이지만, 전투 기술과 속도 면에서는 강태풍도 밀리지 않는다는 게 세간의 중론이었다.
국내 최고의 파이터, 강태풍.
그런 그가, 비 오는 날 먼지 나듯 털리고 있었다.
‘이렇게…… 강해질 수가 있나?’
강태풍의 최고 목표는 구건이였다.
언젠가는 대련장에서 구건이에게 항복을 받아 낼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그건 헌터 이전에 싸움꾼이었던 강태풍의 로망이었다.
구건이가 비즈니스와 관련된 일에 집중할 때에도 강태풍은 오직 에테르의 흡수와 훈련에만 정진했다.
실제로 그들의 격차가 조금씩 줄어들던 참이었다.
한데.
조금만 더 노력하면 이룰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강태풍의 꿈이 산산 조각나 부서져 버렸다.
쾅!!
쾅!!
구건이.
그는 지금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원래도 인간 같지 않은 힘을 보유한 사람이었지만, 지금은 숫제 대형 몬스터를 상대하는 기분이었다.
살짝 스친 것만으로 같은 S랭커인 자신의 뼈가 두 조각이 나 버렸으니 말 다 한 수준이었다.
더욱더 놀라운 건 스피드.
항상 근소하게 비교 우위였던 스피드에서, 되려 구건이가 자신을 앞서고 있었다.
“흐압!!”
강태풍은 마지막 혼신의 일격을 짜내 옆꿈치로 구건이의 관자놀이를 찍었다.
착각이었을까.
어쩐지 구건이의 손놀림이 이전과는 다르게 굼뜬 것 같다.
빠각.
살벌한 타격음과 함께 옆구리가 관자놀이를 정확히 가격했다.
강태풍은 공격을 한 당사자임에도 가슴이 서늘해졌다.
구건이가 아니라 구건이 할아버지라 해도 지금의 공격에 치명상을 입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수세에 밀리다 보니 나도 모르게 전력을…….’
강태풍의 얼굴에 당혹감이 떠올랐지만, 그 얼굴은 그다지 오래가지 않았다.
“좀 더 훈련해야겠군.’
공격을 한 당사자의 걱정이 무색하게, 구건이가 태연하게 자세를 취했기 때문.
‘이럴 수가……!’
강태풍의 얼굴에 경악의 그림자가 드리운다.
구건이는 가볍게 강태풍의 다리를 걷어차 넘어트렸고, 그것으로 대련은 끝났다.
등을 돌린 그에게서 무미건조한 말이 전해진다.
“도와줘서 고맙다.”
“……!!”
멀어져 가는 구건이를 보며, 강태풍은 귀신에 홀린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구건이가 원래도 강하긴 했지만 결단코 이 정도 수준은 아니었다.
이건 마치 한 해가 다르게 성장해 가는 어린아이 같지 않은가.
이미 기량이 만개한 헌터가 이만큼의 파워업을 한다는 건 듣도 보도 못한 일이었다.
‘대체 무슨 조화를 부린 거지?’
터벅 터벅.
멀어져 가는 구건이를 우두커니 바라보는 강태풍.
태산처럼 커다란 등이 가로막고 있어, 미처 확인할 수 없었다.
시간이 점점 짙어져 가는 구건이의 ‘살의’를.
그리고 얼굴 가죽 전체에 번져 가는, 악귀의 형상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