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tion is flowing from the water purifier in my house RAW novel - Chapter 106
우리집 정수기에서 물약이 흐른다 107화
32. 멸망용의 분노(1)
대형 길드장들의 실종 사건.
현재 대한민국의 모든 관심이 신성 길드로 치우쳐 있다곤 해도, 이것은 중대 사건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실종이 일반인들에게 알려질 일은 없었다.
마치 계획이라도 된 듯이 하루아침에 사라진 그들.
그 자세한 속사정을 아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는다.
황혼 길드장에게서 습격 사실을 들은 안환재는 재빠르게 작업에 들어갔다.
정해연을 습격한 대형 길드들에 대한 노골적인 압박.
제 길드장을 잃은 그들은 별다른 저항조차 하지 못하고 몰락의 수순을 밟게 되었다.
오펜, 혜태. 러쉬, 다말, 로만.
허핑 길드의 제안을 받아 황혼의 여식을 습격한 자들이 창설한 길드.
총 다섯 개의 길드가 대형 길드의 자격에서 박탈되었다.
애초부터 대형 길드의 탈을 쓰고만 있을 뿐, 주축이라고 볼 수 있는 길드는 따로 있다.
대한민국의 대형 길드는 철저하게 그들에 의해 좌지우지될 뿐이다.
그중 하나가 수호 길드장, 안환재다.
그는 한자리에 모인 길드장들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나같이 그에게 있어서 우호적인 인물들뿐이었다.
정해연이 습격을 받았다는 소식에 그는 기회를 포착하고 벼르고 있던 작업을 진행한 것이다.
안환재는 길드장들을 훑어보던 끝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정해연의 옆에 앉아서 그녀를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는 신성 길드장, 이서진을 보자니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
방금까지 이해득실을 따지던 자신의 눈빛이 그를 보자마자 한순간에 사라진 것이다.
‘욕심이라곤 없는 것인가.’
현재 신성 길드가 이룩한 것들은 하나같이 대단한 것들뿐이다.
이서진이 마음만 먹었더라면, 진작에라도 대한민국 길드 간의 권력 구도가 뒤집힐 수도 있을 만큼.
그러나 이서진은 그러지 않았다.
세간에서 그를 부르는 호칭.
「성자」
어찌 보면 우스운 별명이었으나, 그는 정말로 재물이나 권력 같은 것에 큰 욕심이 없어 보였다.
‘오히려 다른 부분에서 의외의 면모를 보이곤 했지.’
그는, 그의 주변 인물과 관련된 일이라면 눈빛이 달라지곤 했다.
이해관계를 따지지 않고 적극적으로 행동한다.
그것은 이서진을 대하는 주변 인물 또한 그랬다.
아마도 일전에 황혼의 여식이 제 전투조를 이끌고 북한 지대로 향한 것 또한 그와 관련된 일이리라.
정해연의 평소 성격을 잘 알고 있는 안환재로서는 믿기 힘든 행동이었다.
‘득실을 따지지 않는 관계라.’
문득 항상 자신의 곁에 있던 한 사내가 떠올랐다.
사람은 늙을수록 감성적인 사람이 되어간다더니.
딱히 틀린 말 같지도 않았다.
―꼬박꼬박 챙겨 드세요. 누가 압니까, 혹시 젊어지기라도 하실지.
자신의 거처로 꼬박꼬박 물약을 보내고 있는 이서진을 떠올린 그가 피식 웃었다.
“나쁘진 않군.”
‘우, 웃으셨다!’
한편, 그런 모습을 보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20인의 길드장이 전부 모인 회의실, 그곳의 말석에 위치한 사내.
송도형.
위트 길드의 길드장인 그는, 난생처음 오는 대형 길드 간의 모임에 눈치만 살피고 있었다.
‘……어쩌다 내가 여기 있게 된 거지?’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던 그의 길드이지만, 아직 이들 사이에 섞일 만한 급은 아니다.
‘마치 기적이라도 일어난 것 같이…….’
몇몇 대형 길드에게 주요 수입원이라고 볼 수 있는 알짜배기 던전들이 매물로 나오게 되었다.
송도형 또한 던전을 매입하기 위해 참가했으나,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어차피 큰 가치가 있는 던전들은 대형 길드 사이에서 그 주인이 정해져 있단 것쯤은 은연중에 알고 있는 사실이었으니까.
송도형이 예상했던 대로, 해당 던전들은 앞으로 얻을 미래가치를 생각하자면 터무니없을 정도로 싼값에 넘어가게 되었다.
위트 길드.
그의 손에 말이다.
누군가 설계라도 한 것처럼 그러한 일이 우후죽순으로 일어났다.
그 결과, 말석이라고는 하지만, 대형 길드라고 부를 수 있을 위치에 위트 길드가 자리 잡게 되었다.
‘……하나같이 대단한 사람들뿐이잖아?’
별들의 연회 당시 말을 걸어 볼 생각조차 못 했던 사람들이 이곳저곳에 앉아 있었다.
그중에서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송도형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숙였다.
그와 눈을 마주친 이서진이 작게 눈웃음을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 한결같은 모습을 보니 긴장이 풀어졌다. 그러고 있자니, 이서진이 다른 사람에게 또 손을 흔들었다.
‘……흡.’
자신도 모르게 숨을 들이 삼켰다.
자신과는 악연이라고 볼 수 있는 스네이크의 부길드장, 전진우가 인상을 와락 구기며 이서진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그에 따라, 송도형과 눈이 마주친다.
송도형은 어색한 눈빛으로 작게 고개를 숙였다.
그걸 보며 눈을 좁힌 전진우가 고개를 홱 돌렸다.
하지만 그곳에는 이서진이 있었다.
결국, 고개를 테이블에 처박은 전진우가 중얼거렸다.
“이놈이나, 저놈이나…… 진짜 짜증 나는 놈들뿐이네.”
전진우가 위치하고 있는 곳은 이전보다 더욱 상석에 가까웠다.
Top 10.
말석에 위치하던 스네이크 길드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10대 길드 자리에 위치하게 되었다.
“익숙한 얼굴들도 있고, 새로 함께하게 된 얼굴들도 보이는군.”
상석에 위치한 안환재가 입을 열었다.
그의 입에서 이 회의를 연 목적에 대해서 나오려던 찰나.
쿵!
회의실의 문이 거칠게 열리며 누군가 들어왔다.
이곳은 대한민국을 좌지우지하는 모든 길드가 모인 장소다.
그 누구도 이곳에서 저런 무례한 행동을 할 수는 없다.
“무슨 짓이냐!”
“어느 길드 사람이야!”
실제로 자리에 앉아 있는 대형 길드장 몇몇이 그에게 일갈했다.
하지만, 정작 상석에 앉아 있는 안환재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이야. 내가 잘 찾아온 거 맞나?”
잠시 후, 이죽거리고 있는 사내를 바라보는 안환재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말했다.
“매번 불참하더니, 이번에는 어쩐 일로 참석하게 됐나?”
“너도 오랜만이네. 못 본 사이에 아주 주름이 몇백 개는 는 것 같아?”
“……그러는 자네는 그 나이치고 지나치게 젊어 보이는군. 평소 행실이 애 같아서 그런 건가?”
“하하! 내가 좀 동안이긴 하지.”
간편한 츄리닝 차림을 입고 있는 사내가 좌중을 둘러봤다.
그의 눈을 마주친 대형 길드장들이 흠칫 몸을 떨었다.
단순히 시선이 닿은 것만으로 온몸이 경직된다.
“그런데 내 자리는 어디지? 아, 거기 내 자리 아닌가?”
“이제 와서 상석에 앉을 생각을 하는 건 아니겠지?”
“쩝. 뭐, 자리야 아무 데나 앉으면 되는 거니까. 어디 보자…….”
이미 자리가 있는 곳을 두드리자, 그곳에 앉아 있던 길드장이 얼떨결에 자리를 비켰다.
“오. 여기가 좋겠구만.”
랭킹 1위.
헤븐 길드장, 박준호가 반대편에 있는 곱상한 얼굴의 남성을 보며 미소 지었다.
그에 따라 그를 마주 본 이서진이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 * *
만남은 짧게 이루어졌다.
타 국가에 있는 어떤 세력에서 접촉할 수도 있으니, 주의하라는 것과 새로 합류하게 된 길드장들과 안면을 트기 위한 자리.
이번에 제명된 다섯 길드에 대해 직접적으로 말하지는 않았지만, 다들 그가 전하고자 하는 의미는 알아들었을 것이다.
이곳에 남아 있는 길드장들은 그런 위험한 도박수를 던질 정도로 머저리가 아니었으니까.
회의가 끝나고, 나와 안환재는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 어느 식당으로 가게 되었다.
당연히 그가 죽고 못 사는 한빛인 줄 알았지만, 우리가 온 곳은 평범한 중국집이었다.
안환재는 자신의 눈앞에서 게걸스럽게 접시에 얼굴을 박고 있는 박준호를 보며 인상을 찡그렸다.
“음식이 어디 도망이라도 가나? 천천히 좀 먹게나.”
“뭘 모르는 소릴 하고 있네. 내가 아는 음식은 정말로 제 발로 도망간단 말이지.”
끄윽.
이쑤시개를 제 이빨을 쑤시며 그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배를 두드렸다.
“기껏 오랜만에 만나서 대접한다는 게 이거였나?”
“왜? 짜장면 좋잖아? 내가 거기 있을 때, 가장 생각났던 게 이거라고.”
“……자네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전혀 달라진 게 없군.”
“칭찬 고맙네. 너는 성격이 좀 온순해진 거 같단 말이지.”
“자네도 그 나이 먹었으면 조금은 얌전해질 만도 하지 않나.”
“왜? 나보다 얌전한 사람이 이 세상에 어딨다고.”
“……자네 목에 달린 그거 위치 추적기 아닌가?”
“아, 이거? 부럽나? 셀레나가 선물이라며 내 목에 직접 걸어주더군.”
안환재와 허물조차 없이 편하게 대화하는 것을 보니 정말로 오래 알고 지냈다는 것이 느껴졌다.
헤븐 길드장, 박준호.
외견상으로는 대충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게 안환재와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날 줄 알았는데, 안환재의 반응으로 미루어보면 그런 것도 아닌가?
……하는 행동은 오히려 외견보다 더 어려 보였지만.
“오! 입맛이 없나? 배고플 텐데, 얼른 들지.”
안환재에게서 시선을 돌린 박준호가 나를 응시했다.
나는 입안에서 맴돌고 있던 말을 내뱉었다.
최대한 진심을 담아서,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이전에 제가 했던 무례는 정식으로 사과드리겠습니다, 헤븐 길드장님.”
“오…… 이번에도 빈틈을 노리는 전략인가?”
“…….”
“하하. 농담이니까, 미안하다는 표정 짓지 말게나. 난 별로 신경 안 쓰니까.”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듯 보였다.
“당연히 각성자라면 그런 식으로 대처해야 하는 법이지. 균열에서 튀어나온 게 어떤 괴물일 줄 알고? 오히려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다면 실망했을 거야.”
단무지가 담긴 그릇을 제 입으로 가져가더니 국물을 들이켠다.
물 맛 좋다! 그런 감탄사를 내뱉은 그가 말을 이었다.
“그보다 그때 봤던 그 두 사람은 대체 누군가? 가볍게 상대해 줄 생각이었네만, 도저히 그런 실력이 아니더군. 하마터면 내가 당할 뻔했어. 아니, 이미 당했던가? 크하핫! 이야, 맵더군, 매워!”
“……그 두 사람이 한 행동은 전부 제가 지시한 겁니다. 그것 또한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다.”
“응? 자네가 지시했다고? 그런 대단한 애들을? 흠…….”
“……!”
인지할 수 없는 속도로 내 앞에 도달한 박준호가 내 몸을 더듬거렸다.
“뭐, 몸은 좀 좋은 것 같지만, 그렇게 실력 있어 보이진 않는데?”
“그만하게. 상대는 자네와 같은 길드장일세. 더 이상 실례되는 행동은 하지 말게나.”
“길드장?”
“……신성 길드장, 이서진입니다.”
“응? 분명히 신성에는 길드장이…….”
긴가민가한 표정을 짓는 박준호가 이내 은근한 미소를 지으며 내게 속삭였다.
“자네도 뭐 그건가? 힘을 숨기고 뭐 어쩌구 그거 말일세. 이야, 여기서 동료를 만날 줄은 몰랐는데.”
아뇨. 숨길 힘 같은 건 없습니다만…….
“어쩐지 싸우는 내내 뒤쪽을 신경 쓰는 것 같더라니. 그것 때문이었구만. 그렇구만. 신성 길드였나. 신성의 길드장이 이런 카사노바일 줄은 몰랐어. 능력도 좋아.”
위잉!
위잉!
그때, 박준호의 목에 달려 있는 목걸이에서 소리가 울렸다.
“오. 이만 가봐야겠군.”
“예? 어디를요?”
“통금 시간이야. 더 늦게 갔다간 우리 셀레나가 화낼지도 모른다고? 뭐, 그것도 좋기야 하겠다만. 흐흐.”
갑작스러운 등장처럼 퇴장도 한순간이었다.
나는 그가 일어남과 동시에 줄곧 궁금해하던 것을 물어봤다.
그는 분명히 지구에 오는 것이 오랜만이라고 했으니까.
그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것도 있고, 그는 대체 어디에 있었던 걸까.
내 물음에 그는 간단하게 말했다.
“균열 너머에 있는 세계.”
……균열 너머에 또 다른 세계가 있다고?
아직 궁금한 것이 많았지만, 그는 사라진 지 오래였다.
“하아…… 미안하군. 신성 길드장. 저놈과 만날 때마다 진이 빠져서 말일세. 도저히 나 혼자 만날 자신이 없었네.”
“……이해합니다.”
안환재가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나는 아쉬운 대로 그에게 박준호에 대해 물어보기로 했다.
“수호 길드와 동시에 창설된 초창기 길드지. 나처럼 언제나 전선에 나서던 놈이었고 말일세.”
헤븐 길드에 대해서 아는 게 거의 없다.
명색이 대한민국의 1위라고 볼 수 있는데도 풀려 있는 정보는 극히 드물었다.
“쯧. 운 하나는 더럽게 좋은 놈일세. 헤븐의 실질적인 길드장은 셀레나, 그녀라고 해도 좋을 정도니까. 대체 그런 놈의 뭐가 좋다고 그런 곳에 있는 건지.”
시리도록 차가운 표정으로 박준호를 짓밟던 금발의 미녀.
안환재가 저렇게 말할 정도면 길드를 이끄는 능력이 그만큼 탁월하다는 뜻이겠지.
……도저히 좋아하는 거론 보이지 않던데?
‘헤븐 길드장이라…….’
박준호.
가히 대한민국에서 가장 강한 각성자라고 부를 수 있을 인물이긴 하다.
하지만 아직도 이해는 잘 가지 않았다.
한 길드에게 길드장이라는 위치는 중대한 역할을 맡고 있었으니까.
시도 때도 없이 자리를 비우는 그의 길드가 어떻게 수호 길드를 제칠 수 있었을까.
“균열 너머에서 가져온 물건들 때문에 그렇겠지.”
균열 너머의 물건?
“박준호. 그놈의 나이가 어떻게 되는 줄 아나? 나와 비슷하네. 일흔을 가까이 두고 있지.”
예상은 했지만, 직접 들으니 더욱 충격적이었다.
이 정도면 동안이니, 뭐니 할 수준이 아니었다.
“셀레나, 그녀도 실제 나이는 마흔이 넘네.”
……아니, 그 사람도?
아무리 봐도 20대 중후반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는데.
“아마 균열 너머에 있던 무언가 덕분에 그런 신체를 유지할 수 있는 거겠지.”
그렇게 말하는 안환재의 얼굴에 한순간 부러움의 감정이 스쳤다.
균열 너머에서 가져온 물건.
아마 저것 말고도 더 많은 것들이 있겠지.
그런데 균열 너머에 그런 귀중한 물건이 있다면, 안환재가 가만히 있을 리가 없을 텐데…….
“거긴 아무나 못 들어가네. 아니, 그놈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못 들어간다고 하는 게 맞겠군.”
역시 시도해 본 모양이다.
안환재가 저렇게 말할 정도면 저 너머는 지구와는 다른 환경이란 뜻이겠지.
“얻지 못할 것에 집착하는 것만큼 허황된 것도 없지.”
안환재는 목이 타는지 물 한 모금을 마셨다.
“뭐, 언제나 그렇듯 갑자기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놈이니 그렇게 신경 쓸 필요는 없네.”
그래 봤자, 자네만 더 피곤할 뿐일세.
안환재는 그렇게 말했지만, 나는 어쩐지 그와 좀 더 얽히게 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 * *
다음 날.
어떻게 알았는지, 우리 집 앞으로 박준호가 찾아왔다.
그는 앞뒤 맥락을 설명하지도 않고, 내게 눈을 빛내며 말했다.
“자네, 균열 너머가 궁금하지는 않나?”
……대체 이 사람들은 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