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tion is flowing from the water purifier in my house RAW novel - Chapter 107
우리집 정수기에서 물약이 흐른다 108화
32. 멸망용의 분노(2)
“……호오. 꽤나 본격적인 훈련실인데? 처음 보는 것들도 잔뜩 있고 말이야. 이건 뭐지? 오! 하하! 신기하군, 신기해.”
상대는 헤븐 길드의 수장이다.
불쑥 찾아오기는 했지만, 마땅한 대접은 해주어야 한다.
당장에 내가 그에게 했던 행동도 있고 말이다.
‘……조금 찝찝해서 집으로 데려가지는 못했지만.’
나뭇잎으로 중요 부위를 가리고 있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렇지만 박준호는 오히려 이 훈련실을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았다.
그럴 만도 하다.
입주민의 건강을 위해서 만든 최상의 시설이었으니까.
“……성자님.”
“……정말로 괜찮은 거야?”
“응. 수호 길드장께서 보증한 인물이니까. 아마도 괜찮을 거야.”
거기다 내게 있어서 악한 존재였다면, 손전등을 비췄을 때, 어떻게든 반응했을 것이다.
줄곧 내 옆을 지키듯 서 있던 루비와 이유지를 발견한 헤븐 길드장, 박준호가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그때 그 처자들이로구만! 여기서 또 만나게 돼서 반갑군. 흐하하!”
이전의 일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그 태도에 이유지는 미안한 감정이 들었는지 앞으로 나섰다.
“……그땐, 정말 죄송했습니다.”
“응? 아냐, 아냐. 오히려 좋기만 했구만, 뭘. 정말 미안하면 여기서 한 번만 더 해줄 수 있겠나?”
“엑.”
방금까지 미안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던 이유지의 얼굴이 서서히 썩어간다.
나는 그녀를 뒤로 끌어 그 모습을 숨겼다.
이윽고 그의 시선이 루비에게로 향한다.
루비도 고개를 살짝 숙였다.
평소에 내게 하듯이 두 손을 맞잡지는 않았다.
“흠…….”
두 사람을 은근한 시선으로 바라보던 박준호가 내게 물었다.
“신성 길드장이라고 했나?”
“예.”
“그 두 사람은 자네의 경호원이고?”
경호원. 그렇게 봐야 할까.
그런 식으로 딱 잘라 말하기에는 다소 복잡한 관계였다.
“하하, 신기해서 말일세. 고작 경호 인력으로 사용할 만한 인재가 아니라서 말이야. 그렇게나 젊은데, 어떻게 그런 힘을 가질 수 있었지? 혹시 따로 스승이라도 있나?”
“딱히 스승 같은 건 없는데…….”
칭찬에 약한 이유지가 제 뺨을 긁적거렸다.
그 말을 들은 박준호가 순수한 감탄사를 뱉었다.
“호오. 독학이라 이 말이군. 대단해. 나도 따로 스승은 두지 않았었지. 쉽지 않은 길이었겠어.”
박준호의 시선이 이번엔 루비로 향했고, 루비는 대답 대신 나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그 시선의 의미를 알아챈 박준호가 물었다.
“흠. 자네가 그녀의 스승이라 이 말인가?”
―제 스승은 성자님입니다.
아무래도 루비는 그 때 안지윤에게 말했던 걸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모양이다.
내가 고개를 젓기도 전에 루비가 이어서 말했다.
“제 힘의 원천은 전부 성자님에게서 비롯되는 것이니, 별다를 바는 없습니다.”
힘의 원천이 나에게서 비롯된다.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었지만, 박준호는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때론 누군가를 향한 맹목적인 믿음이 강한 힘을 이끌어내기도 하는 법이지. 요즘 젊은이답지 않게 좋은 마음가짐이군. 자네들이 그토록 강한 이유를 알겠어.”
박준호가 나를 보며 씨익 웃었다.
“가장 신기한 건 자네지만 말이야.”
“뭐가요?”
“무력을 가지는 것보다, 무력을 가진 자를 온전하게 자신의 편으로 만드는 것이 더욱 힘든 법이야. 이전에 보니, 안환재, 그놈도 자네에게 뻑 간 거로 보였다만.”
……뻑 갔다니. 무슨 그런 말을 쓰신대.
“요 며칠 간, 내가 없는 동안 일어났던 일들에 대해 조금 알아봤지. 꽤 많은 일들이 벌어졌더군.”
그렇긴 했다.
당장에 몇 개월 동안 몇 가지 사건이 벌어졌는지 셀 수도 없었으니까.
“그리고 그런 사건들의 중심엔 언제나 자네가 있었고.”
박준호는 말했다.
균열 너머의 세계가 궁금하지는 않냐고.
“그래. 아무래도 나 혼자서는 한계가 있어서 말이야. 그곳에 있을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그곳은 사람 살 곳이 못 돼. 언제나 죽음을 앞에 두고 있는 것 같지.”
저 정도로 강한 사람이, 저런 말을 할 정도면 대체 저 건너편은 어떤 곳이란 말인가.
……그리고 그런 곳에 나를 데리고 가려는 이유는 또 뭐고.
“원할 때 이곳으로 돌아올 수 없다는 점이 가장 크지. 그에 반해 자네는 알고 있지 않나?”
“어떤 걸요?”
“균열이 언제, 어디서 열리는지 말일세. 아아. 그렇게 쳐다보지 말게나. 솔직히 숨기려고 한 정보도 아니지 않나.”
……하긴.
오히려 헤븐 길드장 정도 되는 사람이 이 정도도 모른다는 게 더욱 이상했다.
지금은 전혀 활용하고 있지 않지만, 나는 미확인 균열이 언제, 어디서 열릴지 알 수 있다.
그러니까 요점은 그거다.
“균열 너머에서 또한 어느 타이밍에 균열이 열릴지는 알 수 없지. 내가 귀환에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도 그것 때문이야.”
그렇기 때문에 균열의 발생을 확인할 수 있는 내가 필요하다.
그럴싸한 이유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가 남아 있었다.
“그곳에는 아무나 못 들어간다면서요?”
안환재가 그랬다.
균열 너머에선 박준호를 제외하곤 아무도 들어갈 수 없다고.
“정확히 말하면 들어갈 수 없는 게 아니라, 장기간의 표류가 가능한가, 아닌가의 문제지.”
말만하기 심심한지, 그는 링 위에 올라가곤 허공에 가볍게 주먹을 내질렀다.
“다행히 내 고유 능력 덕분에 나는 그곳에서 활동할 수 있는 것이고.”
그럼 내가 그곳에 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감이지, 뭐.”
“…….”
“아아. 또 그렇게 보는구만. 감이라고 무시하지 말게나. 나 정도 되는 사람이면, 단순한 감이라고 무시할 수 없단 말이지. 하하핫!”
눈을 게슴츠레 뜨고 바라봤지만, 아마도 그의 감은 맞을 것이다.
이미 나 또한 절반정도 확신하고 있었으니까.
내가 균열 너머로 향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박준호가 말하길, 그곳은 이곳과 환경이 다르다고 한다.
단순히 험하다. 그런 개념이 아니었다.
지구에선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한 마나들이 대기 중에 떠돌아다니지만.
균열 너머에선 정반대로 짙은 마기가 퍼져 있다고 한다.
아무리 각성자가 마나를 이용해 마기를 억제할 수 있다지만, 저런 곳이라면 마기에 잠식당하는 것도 순식간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다르겠지.’
은월의 건틀릿도 그렇고, 마석의 정화도 그렇고.
이유는 모르겠지만, 내 몸은 마기에 영향을 받지 않았으니까.
‘그래도…….’
그곳에 뭐가 있는지 궁금하기는 했지만, 굳이 갈 이유는…….
“너무 걱정하지는 말게나. 어차피 안 될 것 같으면 곧바로 나오면 될 일이니까. 거기다, 최근 나 말고도 그곳에서 돌아다니고 있는 사람을 몇 보았고 말이야.”
“사람이요?”
“균열 너머에 수상한 집단이 있더군.”
“……수상한 집단?”
“이상한 복장을 하고 균열 너머를 탐사하고 다니는 놈들이었어. 뭐, 나처럼 오래 돌아다니지는 못하는 것 같았지만.”
“혹시 그 옷에 어떤 문양이 있진 않았습니까?”
“어깨 부위에 모란꽃의 자수가 새겨져 있긴 했지.”
그놈들이다.
한국에서 난리를 핀 것도 모자라, 균열 너머에까지 발을 들인 것이다.
내 눈을 본 박준호가 씨익 웃었다.
“관심 있나?”
“예. 조금 정도는 생긴 것 같네요.”
또 무슨 일을 하려는 건지 모르겠지만, 그냥 있을 수는 없지.
내 어깨를 누군가 툭툭 건드렸다.
같이 이야기를 듣고 있던 이유지와 루비였다.
“뭐야, 나는 못 가는 거야?”
“……저도 힘이 되어드리고 싶습니다.”
아마도, 박준호만 믿고 나를 보내야 한다는 사실이 꽤나 걱정스러운 모양이다.
대충 그녀들도 같이 갈 방법이 떠오르긴 한다.
허핑 길드가 그곳에서 어떻게 활동하는지를 생각한다면 쉽게 알 수 있다.
허핑 길드에서 제작한 전투복.
그곳에 그 비결이 있을 것이다.
균열 너머에서 활동할 수 있는 기술을 그대로 흡수하고, 더 업그레이드된 장비를 만들면 그만이다.
우리에게는 최고의 대장장이, 스미스가 있었으니까.
‘하지만, 조금은 시간이 걸리겠지.’
“먼저 확인부터 해보죠.”
주변에 나타날 균열을 찾기 위해 밖으로 나가려는데, 누군가 훈련실 안으로 들어왔다.
[아저씨.]
까망이었다.
까망이는 스케치북을 펼쳐 내게 아침 인사를 했다.
“좋은 아침. 뭐 하고 있었어?”
[……누님과 놀아드리고 있었습니다.]
“까망이는 부끄럼쟁이야. 당연히 누나가 동생이랑 놀아주는 것이 당연한데!”
동시에 순둥이도 나타났다.
어디 있나 했더니, 까망이와 놀고 있던 모양이다.
입구에 있는 귀여운 두 꼬마를 보며 박준호가 눈을 좁혔다.
“……저 애들은 누구지?”
“제 딸입니다.”
“호오. 누구 아이인가. 자네인가?”
“에, 에?! 그, 그게……!”
얼굴이 터질 듯이 붉어진 이유지를 냅두고, 박준호의 시선이 루비를 향했다.
루비의 입이 열리려고 할 때, 나는 박준호를 부추겼다.
“예, 그렇…….”
“얼른 가시죠. 균열 관리부 측에도 미리 연락을 취해야 하니까.”
“흠…….”
몸은 움직이면서도 박준호의 시선은 순둥이에 고정되어 있었다.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귀엽긴 했다.
순둥이의 손가락이 박준호를 가리켰다.
“변태 아찌다!”
이전처럼 뭐 변태가 아니니, 뭐니. 할 줄 알았는데, 그저 은근한 눈빛으로 순둥이를 바라볼 뿐이었다.
“지지야!”
그 말은 조금 아팠는지, 제 가슴을 부여잡는다.
잠시 후, 왠지 모르게 식은땀을 흘리고 있는 박준호가 중얼거렸다.
“……어쩌면 균열 너머 같은 곳보다 더 위험한 곳에 찾아온 걸지도 모르겠군.”
“예? 무슨 소립니까?”
“흐하핫! 아니네, 얼른 가지.”
* * *
[탐색을 시작합니다.] [균열 확인] [균열 발생까지 10분 남았습니다.]다행히 균열 관리부 측의 동의를 받아냈다.
우리는 그곳에 나란히 서 곧 열릴 균열을 기다렸다.
이미 거리는 통제가 완료돼서 우리 말곤 아무도 없었다.
단순히 확인차 온 거지만, 균열에서는 마물이 나온다.
만약을 대비해 박준호가 균열 앞을 지켰다.
“꼬물이 입처럼 생긴 구멍! 얼른 보고 싶어!”
“순둥아. 조금 더 뒤로 와서 구경하자.”
“응!”
어쩌다 보니 순둥이와 까망이도 같이하게 되었다.
현재 안씨 남매는 자리를 비운 상태고, 집에 애들만 둘 수 없었으니까.
거기다가 균열이라는 말에 두 애들이 관심을 보였다.
[저도 보러 가도 될까요?]
내가 까망이를 이곳에 데려온 것은 다른 이유도 있었다.
‘어쩌면 균열을 봤을 때, 다른 반응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종속의 맹세.
내게 절대로 해를 끼치지 않겠다는 걸 믿어달라며 까망이가 시전하였던 능력.
딱히 원하지는 않았지만.
이걸로 까망이는 내 명령을 거부할 수 없게 되었다.
지금은 1층에 입주하고 순둥이의 동생으로서 잘 지내고 있었지만, 처음에는 끝없이 의심했던 존재였다.
스위치 또한 가슴팍에 넣어뒀다.
‘분명히 그놈은 균열을 자유자재로 열고 그랬지.’
군영철.
그놈의 능력이라고 생각되진 않는다.
만약에 방법이 있다면, 이 스위치와 연관이 있을 것이다.
정확히는 이 스위치의 원래 주인과.
까망이.
마물을 컨트롤하는 스위치.
여러모로 균열 너머와 관련이 있어 보이는 것들이었다.
내가 복잡한 눈으로 까망이를 보고 있자, 서로의 눈이 마주쳤다.
마치 심연을 보듯 어두운 눈동자였다.
까망이는 스케치북에 말을 적었다.
내가 생각하고 있는 고민과 달리 정말 단순한 의문이었다.
[제 얼굴에 뭐 묻었나요?]
“……아냐. 그냥 별일은 아니고. 지내면서 불편한 점은 없어? 이래 봬도 건물주니까, 불편한 게 있으면 부담 없이 말해줘.”
까망이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불편하지 않아요. 오히려 모두 저 같은 애한테 과할 정도로 잘해주세요.]
“그래? 그런 거면, 뭐…….”
무얼 쓰는지 색연필을 쥔 손에 힘을 주며 열심히도 쓴다.
[전부 아저씨 덕분이에요. 지금 있는 곳은 어둡지도, 춥지도 않아요.]
단순히 말을 돌리고자 했던 말인데, 저런 식으로 표현하니 기분이 이상했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던 내가 너무 나쁜 사람인 것 같잖아.’
까망이는 부끄러운 듯 스케치북으로 제 입가를 가렸다.
“뭐야, 뭐야! 아빠랑 놀고 있는 거야?! 순둥이도 같이할래!”
순둥이가 까망이에게 달려들었다.
그에 따라, 까망이가 앞쪽으로 넘어진다.
재빨리 움직여 까망이가 다치지 않도록 몸을 끌어안았다.
까망이의 손이 내 가슴팍에 닿았다.
정확히 스위치를 넣어둔 곳이다.
부르르-
주머니에 있는 스위치가 진동한다.
그와 동시에 우리가 기다리고 있던 균열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서서히 갈라지고 있는 허공을 보면서 이유지가 박준호에게 물었다.
“여기로 들어간다, 이거죠?”
“아니. 일단 안쪽에서 어떤 마물이 나올지부터 확인해야겠지. 그놈을 보고, 이 너머가 어떤 환경인지 대충이나마 파악할 수 있을 테니까.”
“흐응. 그럼 매번 들어갈 때마다, 위치가 다르단 거네요?”
“위치를 고정시킬 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까. 그렇기에 더더욱 조심해야 해. ……잘못하면 나 같은 건 감당조차 할 수 없는 존재를 만날 수도 있거든.”
이제까지와는 다르게 균열을 마주한 박준호는 진지했다.
하지만 그곳에서 마물은 나타나지 않았다.
당연하다. 그 균열이 아니었으니까.
“하, 하나 더?”
바로 옆에 또 다른 균열이 나타났다.
콘택트렌즈를 통해 나타날 것을 예상했던 그 균열이었다.
안쪽에서 마물이 튀어나왔다.
그것을 한 번의 휘두름으로 때려잡은 박준호가 당황 어린 눈동자로 앞서 열린 균열을 보았다.
“……분명히 여기서 열리는 건 하나뿐이라고 하지 않았나?”
나 또한 뜬금없이 열린 또 하나의 균열을 보고 있었다.
정확히는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았다.
균열에서부터 뻗어 나온 가느다란 실 같은 것이 나와 연결되어 있었다.
내가 그 실을 자르듯이 손을 젓자, 균열은 서서히 사라져갔다.
이렇게 될 거라고 얼추 예상은 했지만…….
“……이러다 마녀사냥이라도 당하는 거 아닌가 모르겠네.”
내 앞에 나타난 메시지창을 보며 근심 가득한 한숨을 내쉬었다.
[‘마물을 컨트롤하는 스위치’의 숨겨진 기능이 개방됩니다!] [권능, ‘균열 생성’을 획득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