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tion is flowing from the water purifier in my house RAW novel - Chapter 108
우리집 정수기에서 물약이 흐른다 109화
32. 멸망용의 분노(3)
나는 살짝 뒤로 물러서 방금 내게 보인 메시지창을 떠올렸다.
……뭘 얻었다고?
“이, 이번엔 갑자기 사라졌는데?”
“흠. 일단은 이거부터 확인해 보는 건 어떻겠나?”
박준호가 내게 물었다.
그의 말대로 일단은 저 균열을 이용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자, 얘들…… 아?”
까망이와 순둥이를 챙기려고 하는데, 둘의 모습이 이상했다.
[……저는 뒤에서 구경하고 있을게요.]
손을 벌벌 떨며 스케치북에 그 말을 간신히 적는다.
마치 겁에라도 질린 듯이 새파래진 얼굴로 뒷걸음질 치는 모습.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기에 근처에 있는 의자에 앉혀주었다.
‘역시, 얘는…….’
“순둥아? 잠시만! 언니가 먼저…….”
뒤에서 이유지의 당황 어린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자 순둥이가 균열을 향해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다.
평소처럼 ‘와아아!’라거나 ‘우와!’ 같은 감탄사를 뱉을 줄 알았는데, 지금 순둥이의 모습은 조금 이상했다.
나는 곧바로 그쪽으로 다가가 순둥이를 들어 올렸다.
내 손에 들린 순둥이가 다리만 버둥버둥 움직인다.
“순둥아.”
“……우웅?”
그제야 정신을 차린 순둥이가 나를 올려다보았다.
나는 한 손으로 순둥이를 안고 볼을 살짝 잡아당겼다.
그 행동이 재밌는지 방실방실 웃는다.
평소 모습 그대로였다.
“저기 안에 들어가고 싶어?”
“응! 뭔가 익숙한 기운이 느껴져! 포근포근하고! 뭔가 푹신푹신할 것 같아!”
내가 순둥이를 안아들고 균열에 다가가자 박준호가 내 앞을 막았다.
“내가 먼저 들어가도록 하지. 신호하면 곧바로 들어오게.”
마치, 게임 속에서 포탈을 타듯이 쏙하고 균열에 들어간다.
잠시 후, 균열에서 박준호의 손이 튀어나왔다.
이렇게 보니까 상당히 그로테스크한 장면이었다.
……진짜 들어갈 수 있는 곳이었구나.
“성자님, 제가 먼저…….”
“아니, 내가 먼저 갈게.”
균열 안쪽으로 들어가자 풍경이 확하고 달라진다.
던전에 들어갔을 때와 비슷하다.
보이는 것은 드넓은 황야.
근처에는 사람도, 마물도 없었다.
“운이 좋은 편이야. 원래라면 들어오자마자 마물을 피해서 도망쳐야 하거든.”
박준호는 주변을 경계하고 있었다.
곧이어 들어온 루비와 이유지가 내 등에 바짝 붙었다.
내 어깨에 턱을 올린 이유지가 감탄사를 뱉었다.
“우와…… 뭐야, 진짜로 있었잖아?”
내 옆에 나란히 선 루비도 드물게 제 감상을 말한다.
“……무언가 불경스러운 기운이 느껴지는 곳입니다.”
지구와 별로 다를 것도 없어 보였지만, 하늘에 떠 있는 것이 조금 달랐다.
붉은색과 푸른색.
두 개의 달이 하늘에 떠 있었다.
박준호가 내 뒤쪽을 쳐다보고는 말했다.
“그만 나가지. 더 이상 있다간 균열이 닫힐 수도 있으니까. 나야 괜찮다지만…….”
“콜록! 콜록!”
이유지와 루비가 마른기침을 한다.
두 사람 다 몸에 지나치게 힘이 들어가 있는 것이 보였다.
어지럼증이라도 느끼는 듯, 약간 창백한 표정의 그녀들이 내 어깨에 몸을 기댔다.
“서진아, 아무래도…….”
“……성자님.”
“그래. 일단 나가자.”
내 몸에 이상은 없다.
균열 너머에서도 내가 활동할 수 있다는 사실은 확인되었다.
오늘은 그걸 파악한 것만으로 충분하다.
지구로 돌아가기 전, 내 품에 안겨 있는 순둥이를 보았다.
순둥이의 칠흑 같은 두 눈이 저 너머를 주시하고 있었다.
* * *
“예? 전투복에 이상한 기능은 없었냐고요? 글쎄요…… 아! 혹시 이건가?”
신성 길드 하우스 부지에 신설된 공방.
그곳에서 작업복을 입고 망치를 두드리던 한보경이 손바닥만 한 크기의 부품을 보여주었다.
“각성자들한테는 그다지 필요 없는 기능이거든요. 신체로 파고드는 마기를 정화하는 필터 같은 건데…….”
“혹시 그 기능을 중심으로 슈트 두 개만 우선적으로 만들어 줄 수 있어?”
“안 될 건 없는데…… 왜요? 이거 넣으면 다른 추가 능력치는 기대하기 어려울 것 같은데.”
“그건 괜찮아.”
추가 능력치는 기본적으로 있으면 좋은 것일 뿐이니까.
그보다 중요한 것은 그곳에서 활동할 수 있는 방법을 얻는 것이다.
한보경은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작업에 들어갔다.
집으로 돌아와 2층에 있는 훈련실로 향했다.
박준호는 이미 그곳에 도착해 있었다.
훈련실에는 그 말고도 우리의 입주민도 있었다.
안지윤은 링 위에서 정좌한 상태로 박준호의 말을 듣고 있었다.
멀리서 들려오는 게, 박준호 본인의 무용담을 자랑하고 있었다.
벽이라도 처진 것처럼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안지훈은 도망이라도 치듯 멀찌감치 떨어져 개인 훈련을 하고 있는 중이다.
수호 길드장을 닮아서 강자를 좋아하는 놈인데, 쟤가 저런 태도를 보이는 걸 보면 무슨 일이 있었을지 대충 예상이 갔다.
“오! 왔는가!”
입구에 들어선 나를 알아차린 박준호가 손을 흔들었다.
손님치고는 지나치게 자연스러운 태도였다.
“이야. 자네 주변은 이렇게 열정적인 사람들밖에 없는가? 오랜만에 내 무용담을 얘기하니 기분이 좋구만!”
“대단하십니다! 그야말로 고수의 기운이 물씬 풍겨져 나오세요!”
“하하! 그래?”
“넵! 아, 물론 저한테는 사부와 싸부가 최고지만요!”
안지윤이 뒤늦게 내 눈치를 보더니 윙크를 날렸다.
뭐 씹은 표정으로 응대하자 헤헷 하고 웃는다.
“잠시만 기다려 줄 수 있겠나? 자라나는 꿈나무한테 고수의 실력을 한번 보여주고 싶군.”
“정말요?”
묘하게 안지윤과 죽이 잘 맞아 보인다. 어차피 나 또한 따로 할 일이 있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링 위에 오른 두 사람이 서로를 마주 보았다.
안지윤이 좋아하는 대련이다.
안지윤은 한 손으로 주먹을 감싸며 박준호에게 예를 갖추었다.
대련 전에 항상 하던 행동이다.
그걸 보자마자 박준호가 박장대소를 했다.
그와 동시에 안지윤에게 말한다.
“어떤 거대한 적수와 만나거든. 첫째, 침착하라. 절대로 상대의 외형에 압도당하지 말라.”
그걸 들은 안지윤의 입가가 떨리더니, 시원하게 웃으며 무언가를 말했다.
“연습할 때 땀을 많이 흘릴수록 실전에서 피를 적게 흘린다.”
“크큭. 요즘 시대에도 이런 말을 좋아하는 애가 있을 줄은 몰랐는데 말이야.”
“당연하죠! 이소룡은 최고라구요!”
“이 시대에 있었다면 과연 어땠을까 하고 생각되는 인물이기도 하지.”
안지윤이 즐거운 듯 재잘거렸다.
밥을 먹을 때마다 우리에게 항상 뭔가를 이야기해 주곤 했지만, 그걸 알아듣는 사람은 거의 없었으니까.
오랜만에 말이 통하는 사람을 만나니 신이 날 만도 하다.
나는 잠시 자리를 비우고 1층으로 향했다.
안씨 남매가 비밀번호를 알려주었기에 쉽게 들어갈 수 있었다.
안쪽으로 들어가자, 거실에서 조립식 장난감을 만지작거리고 있는 까망이가 보인다.
그 옆에는 순둥이도 있었다.
‘얘네 뭐 하는 거지?’
전혀 노는 것 같지는 않았다.
어딘가에 정신이라도 팔린 듯 멍한 표정을 하고 있다.
균열을 확인했던 날 이후 계속 저 상태다.
나는 그들의 머리에 손을 올렸다.
그제야 고개를 돌린다.
힘없는 움직임으로 스케치북을 향해 손을 뻗길래, 나는 곧장 그쪽으로 내 손을 가져다 댔다.
“……?”
까망이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이전에 까망이의 손이 스위치에 닿는 순간.
조건 완료라는 말과 함께, 내게 이상한 능력이 생겨났다.
권능, ‘균열 생성’
그것은 분명히 균열 너머 존재의 능력과 관련 있는 것이다.
그러나 까망이의 손에 스위치가 닿아도 별다른 반응은 없었다.
[왜 그러세요?]
“아냐. 아무것도.”
‘……우연이었나?’
나도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그 손을 놓았다.
내 손에 쥐고 있는 스위치를 주머니에 넣으며, 순둥이의 상태를 확인했다.
“순둥아. 뭐 하고 있었어?”
“……응?”
잠이라도 설친 걸까.
계속해서 정신을 못 차리는 그 모습을 보며 순둥이가 좋아할 만한 말을 꺼냈다.
“우리 소풍 갈까?”
“소풍?”
“응. 얼마 전에 갔던 곳으로. 순둥이가 좋아하는 김밥도 잔뜩 싸가자.”
“얼마 전에 갔던 곳……?”
그곳이 균열 너머를 가리킨다는 걸 알아챈 순둥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정말?”
“그렇게 좋아?”
“진짜, 진짜지!?”
“내가 언제 거짓말한 적 있니.”
“아빠가 최고야!”
그렇게 좋은지 내게로 안겨들었다.
저번에 균열 너머에 갔을 때 반응도 그렇고, 순둥이는 그곳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
‘용이라서 그런가?’
기본적으로 용 또한 마물로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균열 너머는 마물들의 고향이나 마찬가지인 곳.
짙은 마기는 그들에게 있어선 활력원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건 순둥이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이고.
줄곧 지구에서 살았을 때는 몰랐겠지만, 그곳에 갔다 온 이후로는 계속해서 생각났을 것이다.
‘왠지 미안하네.’
이렇게 좋아하는 줄 알았으면 진작 알아볼걸.
나 때문에 지구에서의 삶을 강제한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빠, 잠깐만!”
신나는 움직임으로 어딘가로 달려 나간다.
그사이에 1층으로 내려온 박준호가 나를 찾았다.
“그래서 마음은 정했나? 한번 가게 되면 오랜 시간 그쪽에 있을 수도 있어. 내가 권해놓고 이런 말 하기도 그러지만, 조금 더 신중히 생각하게나.”
“아, 그거 말인데요…….”
“응?”
별다른 말은 하지 않고, 나는 내 몸에 집중했다.
권능.
어떻게 사용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다른 능력들과 크게 다를 것은 없을 것이다.
예상대로 내 몸속에서 일정량의 힘이 빠져 나가더니 손으로 모여들었다.
특이한 것은 이 권능이라는 것을 사용할 때 소모되는 것이 마나가 아니라, 마기라는 것이다.
내 심장 옆에 붙어 있는 마석.
이제는 제 존재감을 물씬 풍기는 그곳에 보관되어 있던 마기가 단번에 빠져 나갔다.
동시에 우리 앞으로 균열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다.
이 근처에서 경보음이 울리지 않는 것을 보면, 균열 관리부에는 잡히지 않는 미확인 균열이겠지.
박준호가 나를 어이없다는 듯 쳐다보았다.
“……자네 능력이 뭐, 탐색계라는 정보가 있던데…… 혹시 그동안 숨겨오기라도 한 것이었나?”
“개인마다 고유 능력은 성장할 수도 있는 법이니까요.”
“고유 능력이 성장한 거라고……? 아니, 그래도 이건…….”
믿을 수 없다는 듯 균열에 손을 넣어 본 박준호의 표정이 변하더니 미친 듯이 웃는다.
“크하하하핫! 그래. 무슨 상관이겠나. 좋아, 아주 좋구만! 이거면 거기서 굶어 죽을 걱정은 없겠어! 역시 자네를 찾아온 건 최고의 선택이었네!”
나는 내 몸을 끌어안으려고 하는 박준호를 가볍게 피하고는 그에게 말했다.
“대신, 제 부탁 좀 들어주셨으면 합니다.”
“하하. 뭔가? 뭐, 길드라도 내어주면 되는 건가?”
“아뇨, 그건 좀…….”
“아, 그렇지? 이건 비밀이네. 셀레나가 알면 또 난리 날 테니까. 으하핫!”
“누가 난리 난단 건가요? 아, 혹시 제 얘기인가요?”
“으힉?”
……우리 집은 인터넷에 검색만 해도 나오는 건가.
건물 앞으로 고급 세단이 멈춰 서더니 뒷좌석에서 선글라스를 낀 금발의 여성이 내렸다.
또각- 또각-
셀레나.
사실상, 헤븐 길드의 모든 것을 책임지고 있는 인물이 당당한 걸음으로 박준호의 앞에 섰다.
“아이고, 셀레나. 내가 언제 자네 얘기를 했다고 그래.”
“그렇겠죠. 당신은 균열 너머가 아니라면, 아무런 관심도 주지 않는 사람이니까요.”
선글라스를 쓰고 있었지만, 그녀의 눈빛이 어떨지 대충 예상할 수 있었다.
“그런 사람이 무슨 바람이 불어서,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을 피곤하게 만들고 그러세요?”
“피곤하게 하기는 무슨! 내가 여기서 얼마나 환영받는 존재인지 알고나 하는 말인가!”
셀레나가 확인이라도 받으려는 듯 내 쪽을 보기에 살짝 고개를 저어주었다.
“잠깐, 잠깐. 셀레나! 이번엔 진짜 중요한 일이라 그래!”
“……말씀해 보시죠.”
저번처럼 끌려가는 게 아닌가 했는데, 박준호는 셀레나에게 차분히 설명을 시작했다.
“글쎄. 신성 길드장이 어X로든 문을 실제로 가지고 있지 뭔가. 어때, 정말로 신기하지 않나?”
“그렇군요.”
더 이상 들어줄 필요도 없다는 듯 박준호의 목에 무언가를 건다.
“이게 뭔가?”
“저번에 드린 것은 마음에 들어 하지 않으시는 것 같아서요.”
“하하…… 그런 걸 쓰고 있으면 목이 답답해서 말이야.”
“그럴 줄 알았습니다. 길드장님의 의견을 받아들여 이번에는 강제로 벗겨질 경우 아예 목을 날려 버릴 수 있게 폭파 장치를 추가해 봤습니다. 부디 현명한 선택을 해주시길. 저는 딱히 길드장 같은 자리는 하고 싶지 않거든요.”
“……뭐?”
박준호의 표정이 순식간에 무너진다.
저렇게 될 줄 알았다.
“이, 이것 좀 떼주게나!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지!”
나는 그들의 사이에 끼어들었다.
박준호의 목에 걸린 목걸이에 손을 댔다.
그곳으로 천천히 마나를 흘리자, 딸깍 소리가 나더니 목걸이의 제어가 풀렸다.
“…….”
“오! 자네 역시 재주도 좋구만!”
“……그건 제가 아니면 절대로 풀 수 없게 만든 제어구입니다만.”
당장에 나와 같이 균열 너머를 갈 사람인데, 저런 게 있으면 곤란했다.
확실히 이 자와 함께 행동하려면, 이 셀레나라는 사람에게 사정을 설명할 필요가 있다.
나는 그동안 있었던 일을 말해주었다.
대부분이 박준호의 독단으로 벌어진 일이란 것을 강조하면서.
“……그런 게 가능하다 이 말입니까?”
“그렇다니깐! 왜 내가 말할 때는 안 믿어줬던 건데?”
“길드장님은 잠시 조용히 해주시죠.”
“…….”
잠시 고민하던 셀레나가 선글라스를 벗더니 나를 가만히 응시했다.
겉모습과는 다르게 그동안 살아온 세월이 묻어나오는 깊은 눈동자였다.
“제가 말씀드리기도 뭐하지만, 저희 길드장께서는 방랑벽을 앓고 계십니다.”
“누가 들으면 병인 줄 알…… 알았네. 조용히 하면 될 것 아닌가.”
“신성 길드장님이 무엇을 위해서 저 너머로 향하고자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저희 길드장님에 대한 확실한 제어 수단을 가지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너 말이야. 내 비서가 맞긴 한 거지?”
명백하게 내 편을 들고 있는 셀레나를 보며 박준호가 눈을 좁혔다.
“하여, 제 고유 능력을 사용해 확실한 계약을 맺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계약?”
“잠깐, 잠깐만. 셀레나. 아무리 그래도 그건 좀 아니지 않나?”
대체 뭐길래 저러는 거야?
박준호는 찜찜한 표정을 짓더니 내게 설명했다.
“말 그대로 계약일 뿐이네. 대신, 그녀의 고유 능력으로 인해 그 내용이 강제되는 것이지.”
“예. 저와 길드장 사이에서도 다양한 계약이 맺어져 있죠.”
셀레나의 고유 능력으로 인한 계약을 지키지 않으면 패널티가 있다고 한다.
그토록 강한 모습을 보여줬던 박준호는 셀레나의 손에 이리저리 흔들렸다.
“하하…… 내가 그녀한테 꼼짝도 못 하는 이유 중 하나기도 하지.”
처음에는 별로 필요 없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확실하게 하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
손목에 있는 시계를 보았다.
진실과 거짓을 판별하는 손목시계.
두 사람의 말에 거짓은 없다.
당장에 루비 또한 나와 박준호 둘이 그곳으로 간다는 것에 불안감을 느끼는 것 같았으니까.
‘나쁜 사람 같지는 않지만.’
어딘가 찜찜한 면이 있는 사람이다.
“그럼 사용하겠습니다. 강제 이행.”
그 말과 함께 우리 주변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강대한 마나의 흐름이 이 일대를 감싸고 있었다.
셀레나.
그녀 또한 평범한 사람은 아니었다.
“지금부터 하는 말은 서로에게 있어서 계약의 형태로 남게 됩니다. 말을 신중하게 골라 주시길.”
“아이고, 내 팔자야. 뭐, 어떻게 하면 되는가?”
“제가 박준호 님에게 드릴 부탁을 성실하게 이행해주시면 됩니다.”
“쩝. 나는 별거 없는데…… 그냥 내가 원할 때 두 세계를 이어줄 균열을 만들어주기만 하면 되네. 아, 그리고 균열 너머에서는 대체로 내 의견을 따라주었으면 좋겠군. 아무래도 위험한 곳이니까. 자, 그럼 됐나?”
“그러면…….”
“잠깐. 하나만 더 하죠. 할 거면 확실하게 해야 하니까요.”
“어떤 걸 말하는 건가?”
“서로의 신변을 보장하기 위한 내용이요.”
“아, 그게 있었군.”
아무리 그래도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사이였으니까.
박준호도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도 추가하도록 하지. 자네, 그리고 자네의 주변 사람들에게 위해를 끼치는 행동을 할 수 없다.”
거기까지 들은 내가 고개를 저었다.
수정할 부분이 있었다.
“정정하죠. 저와 제 주변 ‘존재’들에게 위해를 끼치는 행동을 할 수 없다, 로.”
내 말에 재밌다는 듯 박준호가 씨익 웃었다.
“하핫. 그러도록 하지. 아, 물론 자네도 마찬가지일세. 나와 내 주변 ‘사람’들에게 위해를 끼치는 행동을 할 수 없네.”
“예. 그러죠.”
더 이상 할 것은 없었다.
길어져 봤자 복잡해질 뿐이니까.
“그럼 계약을 진행하겠습니다.”
그녀는 말과 함께 두 손을 내밀었고, 두 손에서 마나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내, 날카로운 열쇠 형태로 변하더니 우리를 향해 날아왔다.
푸욱!
내 옆에서 무언가 꿰뚫리는 소리가 들렸다.
“쓰읍. 몇 번을 겪어도 익숙해질 수 없는 감각이군. 심장이 뚫리는 느낌이라니.”
“전부 다 길드장님이 제 말을 듣지 않으셔서 그런 것 아닐까요.”
“……자네는 날 너무 억압하려고 하네. 뭐, 그게 좋은 거지만.”
박준호가 가만히 있는 날 보며 아리송한 얼굴로 쳐다봤다.
“자네는 아프지도 않나? 허허.”
나는 그 물음에 그저 웃기만 할 뿐이었다.
고유 능력, ‘강제 이행’
저것이 발동하는 조건은 방금 우리 둘에게로 날아왔던 그 날카로운 마나의 열쇠가 심장을 꿰뚫으면서 적용되는 것일 거다.
나는 저 사람들에게 위해를 가할 생각이 없다.
지금의 이 관계가 서로에게 필요한 도움을 주고 좋게 끝나길 바란다.
그러니까.
별다른 의도는 없다.
다만, 조금 정도는 조심성이 생겨났을 뿐이다.
내 부주의로 인해서 주변 사람들이 피해 입는 건 이제 보고 싶지 않으니까.
키잉!
챙그랑!
내 심장 주변을 둘러싼 아이기스의 방패가 내 심장을 파고들려 하는 마나의 열쇠를 막아냈다.
두 사람 다 눈치채지 못했다.
당연하다.
아이기스의 방패는 그 시전 방식이 완전히 달랐으니까.
탐색계 각성자라고 해도 알아차릴 수 없다.
그것은 일전에 확인했다.
이로써 강제 이행은 박준호에게만 적용될 것이다.
나는 박준호에게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그럼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헤븐 길드장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