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tion is flowing from the water purifier in my house RAW novel - Chapter 113
우리집 정수기에서 물약이 흐른다 114화
33. 이미 끝난 싸움(2)
얼굴에 자신감이 가득하던 각 나라의 길드장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얼굴이 굳어갔다.
몇 번이나 입을 벌렸는지, 턱은 빠질 것 같았으며.
믿기 힘든 현실에 눈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
“……하아. 더 이상 놀랄 건 없으니 다행이라면 다행이겠군.”
솔직히 조금 얕잡아 보았다.
신체 강화의 물약.
GGM이라는 의미 불명의 명칭이 붙은 전투복.
어느 것 하나 모자람이 없는 물건들이다.
하지만 그것뿐이라고 생각했다.
현재 타 국가에서 제작된 그 어떤 것보다도 퀄리티 높은 물건이지만, 어느 곳에서든 천재는 태어나기 마련인 법.
당장에 러시아를 빛내고 있는 각 분야의 각성자들 또한 셀 수 없이 많았다.
선수를 빼앗겼을 뿐이다.
조금 더 시간이 주어진다면 차이는 금방 벌릴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게 아니었어.”
신체를 강화하는 물약.
원래라면 그것에 대한 확실한 답을 얻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었지만,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본 것은 그보다 더욱 충격적인 광경이었다.
“물약의 양산화에 성공했다.”
모든 나라에서 앓고 있는 문제나 다름없다.
각성자만이 아니라, 일반인에게도 물약은 그 효용성이 말이 안 됐다.
전투 및 의료에 사용되는 물약은 그 수가 터무니없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그에 따라 시민들의 불만은 커지게 된다.
양산을 위한 희석조차 안 된다.
정화 자체가 완벽하질 않는데, 이미 제조된 것을 희석하려고 해봤자 결국 남아 있는 마기에 전부 물들 뿐이다.
수행원, 나타샤가 두 손에 무언가를 쥔 상태로 허겁지겁 달려왔다.
“사, 사 왔습니다.”
“……진짜로 이렇게 쉽게 사지는 거였구나.”
꼴깍.
조심스럽게 뚜껑을 까 한 입 마셨다.
자신의 신체에 극도로 예민한 둘이기에 알 수 있었다.
원본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희석되었지만, 이것은 물약이 맞다고.
“하아…….”
자신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그렇게 놀라고도 또 놀랄 구석이 남아 있었구나.
입가에 딸기향이 맴돈다.
물약이라기에는 너무도 달콤한 맛이다.
조금 전에 보았던 화면 속 신성 길드장을 떠올리며 알렉세이가 옆에 있는 나타샤에게 중얼거렸다.
“……이거 돌아갈 때 좀 챙겨달라고 하면 챙겨줄까?”
“……글쎄요.”
* * *
“준비됐어요? 그동안 저 없었다고 외롭거나 하신 건 아니죠?”
“그러게요. 해연 씨 없으니까 많이 외롭긴 하더라고요.”
“……그걸 그렇게 받아치시면 어떻게 해요? 사람 부끄럽게.”
거울에 비친 정해연의 얼굴이 나를 찌릿- 하고 노려봤다.
오랜만의 만남이다.
타 국가의 길드장들과 만나기 전, 그녀는 손수 나를 메이크업해 준다며 찾아왔다.
“해연 씨도 여러 가지로 바쁠 텐데.”
솔직히 중요한 자리인 만큼, 전문가에게 맡기는 게 맞겠지만, 이럴 때 만나지 않으면 언제 만나겠는가.
“서진 씨 볼 시간은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아니면 혹시 싫으세요?”
“싫기는 무슨. 이참에 제 전속 디자이너로 활동하실래요?”
“흐흣. 그것도 좋겠네요. 매일 이러고 있을 수 있을 테니까.”
거기다가 매사에 열정적인 정해연이기에 이런 것에서도 수준급의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정해연의 손에 들린 브러쉬가 내 볼을 간질인다.
나도 모르게 하품을 내쉬었다.
내가 피곤하단 걸 알아챘는지, 정해연이 빙긋 웃었다.
“졸리세요?”
“예. 조금…….”
“혹시 끼니 거르고 그러는 건 아니죠? 아무리 바쁘셔도 밥은 꼬박꼬박 챙겨 드셔야 해요.”
대체로 아침은 매번 챙겨 먹는 편이다.
우리 집에 나 혼자만 있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그렇지만 그 후의 끼니는 거르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물약이 있…….”
“물약이라고 만능이 아니란 건 아시잖아요? ‘사람은 물만 먹고 살 수 없다’라는 말도 있잖아요.”
“사실 제가 하루 영양소를 전부 섭취할 수 있는 물약 하나를 만들었거든요.”
“저, 정말요?!”
“아뇨. 농담.”
“…….”
“아얏.”
눈을 좁히더니 내 볼을 살짝 잡아당겼다.
예전에는 귀한 옥체니 뭐니 하면서 손도 대지 않았었는데.
“더 바빠지실 거예요. 더욱 유명해지실 거고요. 아마도 저 같은 건 나중엔 만나주지 않을지도 몰라요?”
그럴 일은 없을 것 같은데.
정해연이 내게 준 도움들만 해도 셀 수 없을 만큼 많다.
그런 걸 잊어버릴 만큼 나는 염치없는 놈이 아니다.
‘아니, 염치 같은 건 상관없으려나.’
딱히 그런 이유가 없더라도 나는 정해연을 만나고 싶었으니까.
내 머리를 만지작거리던 그녀의 손이 멈췄다.
“……계약 같은 게 없다 해도요?”
“왜요? 원하면 이 자리에서 계약 하나 할까요? 그래야 안심이 된다면야 지금 당장에라도…….”
“농담이에요. 농담! 왜 이런 부분에선 쓸데없이 진지하신지 몰라. 만날 때마다 점점 더 능청스러워지시는 거 같단 말이야…….”
“하하…….”
같은 건물에 자기표현이 확실한 사람들이 있어서 그렇다고는 말하지 못한다.
‘역시 편하단 말이야.’
이전에는 당황해서 거절했지만, 요즘 들어선 정해연도 그곳에서 같이 살게 된다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간의 휴식이 끝나고, 만남의 시간이 다가왔다.
“순둥…… 아니, 율이야. 준비됐어?”
나는 허공을 향해 말했다.
그러자 아무것도 없던 곳에서 한 소녀가 뿅 하고 나타났다.
“쟈쟈쟌! 어때? 귀여워?”
“퍼펙트.”
나와 마찬가지로 깔끔하게 차려입은 순둥이.
이제는 이서율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 내 딸이 멋진 동작과 함께 나타났다.
조금이지만, 키가 커서 그런지 귀여움과 더불어 의젓함이 엿보였다.
율이의 어깨와 머리에 올라가 있는 꼬물이들이 공명했다.
그와 함께 율이 또한 같은 포즈를 취한다.
“하핳!”
의젓함이 사라졌다.
“엣! 헴! 나쁜 인간들은 내가 다 알려줄 테니까, 아빠는 걱정하지 마!”
“……몇 번을 봐도 신기하네요.”
“그렇죠?”
정해연 정도 되는 실력자라면 저렇게 갑자기 나타나는 것에 더욱 놀랄 것이다.
아무런 기척조차 느껴지지 않을 테니까.
기존에도 대단했지만, 그 날 이후로 율이는 키 말고도 마법 또한 성장한 것 같았다.
“아뇨. 그거 말고요.”
“그럼 뭐가 신기한데요?”
“서진 씨가 어떻게 그런 이름을 지을 수 있었죠?”
“……예?”
이서율.
내게서 순둥이의 이름을 들은 정해연은 충격받은 표정을 지었다.
갑자기 마나를 끌어올리며, 나를 노려보기도 했다.
“……당연히 서진 씨가 아니라, 도플갱어는 아닌가 하고 생각했죠.”
“…….”
우리의 이야기를 들은 율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내가 왜 율이야? 순둥이는 동글동글한 귤을 더 좋아하는데!”
“그거야 우리 율이가 우리한테…….”
“난 순둥인데!”
너는 내게 빛이다.
인생을 밝혀준 기적이다.
마치 프로포즈라도 하는 것처럼 얼굴을 붉혀가면서 설명했지만, 율이…… 아니, 순둥이는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난 순둥이가 좋은데! 아빠가 애칭이라 했어! 좋아하는 사람한테는 애칭!”
순둥이가 손가락으로 정해연을 가리켰다.
“빨강이!”
“언니한테도 애칭으로 불러주는 거야? 고마워.”
순둥이의 볼을 만지작거리며 정해연이 피식 웃었다.
“뭐, 이렇게 될 것 같았어요. 서진 씨. 순둥이가 누구 딸이겠어요?”
“허어…….”
나는 정해연의 말을 들으며 진지하게 생각했다.
그리고 결론이 나왔다.
평소처럼 불러도 괜찮겠다고.
애초에 순둥이 또한 누가 봐도 귀여운 이름이었으니까.
……빨강이도 괜찮은데? 역시 순둥이다.
그런 의견을 그녀에게 전했다.
“절대로 그렇게 부르지 마세요.”
정해연이 정색했다.
* * *
각국에서 찾아온 대형 길드장과 신성 길드장과의 만남.
신성 길드에서 두 가지 물건을 공개한 직후, 각 나라를 대표하는 모든 길드에서 접선을 해왔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신성의 물건들은 전부 우리가 가져가게 될 거야.”
각 나라를 대표하는 대형 길드들이 내건 조건은 터무니없이 좋았다.
그 누구라도 받아들일 내용이었지만, 그런 화려한 조건을 내건 길드 중 한국에 있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그들 또한 대형 길드로서의 자존심이 있었으니까.
자신을 길드장의 대리라고 소개하며 전면에 나선 신백준.
그는 조건이 아닌, 제 길드장의 기준에 맞춰 사람을 골랐다.
최소한 신성의 물건을 악용하지 않을 인물들과의 만남을 주도했다.
대형 길드. 그런 곳을 이끄는 수장인 만큼 하나같이 자존심이 강하다.
신백준의 조건에 그들은 고개를 저었다.
솔직히 말하면, 이런 변방의 나라에서 만들었으니 자기들도 만드는 게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러시아, 일본, 중국, 미국 등 열 개의 나라에서 각각 하나의 길드들만이 신성의 선택을 받을 수 있었다.
각국을 대표하기에는 조금씩 모자란 길드들이었다.
그만큼 위로 올라가기 위해 신성의 물건이 필요한 사람들이기도 했다.
그들 또한 의심을 하긴 했다.
아직 확실하지도 않은데, 이런 식으로 매달릴 필요가 있을까 하고.
하지만 한국을 돌아다니고 나서야 깨달았다.
이서진, 그는 자신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욱 대단한 인물이라고.
신체 강화의 물약?
GGM 전투복?
그들은 확신했다.
그런 것은 단순히 그가 앞으로 이룩할 것들에 비하면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고.
이것은 단순한 계약이 아니라, 그런 인물과 교류할 수 있는 한 걸음이다.
“후우…….”
처음 방한 때 가지고 있던 대형 길드의 자존심은 사라지고, 그들은 마치 면접이라도 보듯이 긴장하고 있었다.
끼익-
문이 열리고, 그들이 있는 곳으로 한 사람이 들어왔다.
한국에 있는 동안 질릴 정도로 봤던 얼굴이었다.
“기다리게 해드려서 죄송합니다. 신성의 길드장, 이서진입니다.”
드르륵!
누군가가 벌떡 일어났다.
너무 긴장한 나머지, 정말 면접이라도 보는 듯 인사를 나누기 위해서였다.
러시아, ‘파라곤’의 길드장 알렉세이가 아차 싶은 얼굴을 짓는 순간.
“반갑습니다,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
“……!”
유창한 러시아어가 그의 입에서 나왔다.
그의 옆에 있던 통역사들이 당황했다.
그들이 듣기에도 신성 길드장의 말은 현지인과 다를 것 없이 훌륭했다.
단순히 인사만이 아니었다.
그 후의 대화도 러시아어를 사용해 자연스럽게 이어나간다.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각각의 인원들과 하나씩 다른 언어를 사용해 인사를 나누었다.
어찌 보면 사소한 것이지만, 그것은 그들에게 대접받고 있다는 느낌을 들게 했다.
신성과의 계약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다.
이서진은 물약과 전투복의 성능을 눈앞에서 확실하게 증명해 주었다.
‘대단해.’
비단 두 물건에 관한 이야기만은 아니었다.
이서진, 그 또한 자신이 갑의 위치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전혀 그런 모습은 내비치지 않는다.
가끔씩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보며 고개를 끄덕이긴 했지만, 별로 신경 쓸 건 아니었다.
‘이렇게 간단하다고?’
각 길드 간의 계약은 복잡하다.
신경전을 벌이며 조금이라도 더 이득을 얻기 위해 서로를 견제한다.
하지만 이서진은 그러지 않았다.
자신의 입장을 이용해서 큰 이득을 취하지 않았다.
서로에게 만족스러운 결과만을 남겼다.
“그럼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논의가 끝났을 때, 그들은 자신들의 몸이 평소보다 더욱 편안해져 있단 것을 깨달았다.
‘조금 더 친해지고 싶은 사내야.’
단순히 계약을 위해 왔지만, 이제는 이서진이라는 사람에게 호감이 생겼다.
열 명의 길드장들이 가벼운 식사를 제의했지만, 그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아서요. 이른 시일 내에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들은 아쉬운 표정과 함께 떠나갔다.
이서진으로서도 만족스러운 결과였다.
애초에 신백준에 의해 고르고 골라진 인물들이었으니까, 악인은 없으리라.
허공에 두둥실 떠 있는 순둥이 또한 웃기만 할 뿐이었다.
약간 피곤했지만, 긴장을 풀지는 않았다.
아직 가장 중요한 것이 남았으니까.
모두가 나간 방 안으로 누군가가 들어왔다.
한국에 찾아온 길드는 아직 하나가 더 남아 있다.
그에게는 그 어떤 길드보다 익숙한 길드였다.
“……자네가 신성 길드장이로군.”
자신의 앞에 앉은 인물을 보며 이서진이 피식 웃었다.
‘어떤 얼굴을 하고 있나 했더니.’
예상했던 대로 죄책감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얼굴이었다.
이서진이 유창한 중국어와 함께 웃으며 인사했다.
“반갑습니다. 허핑 길드장. 꼭 한번 뵙고 싶었습니다.”
궁지에 몰린 쥐가 모습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