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tion is flowing from the water purifier in my house RAW novel - Chapter 116
우리집 정수기에서 물약이 흐른다 117화
34. 악몽(2)
“……진짜지?”
“어. 그렇다니까.”
“진짜로. 진짜로. 진짜로. 진짜지?”
“그래. 나 아니라니까.”
이유지는 우리 집에 들어오자마자 내게 또 꿈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근래 귀에 딱지가 생기도록 들은 말이다.
물론, 부끄러운지 자세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지만.
당연히 나는 시치미 뗐다.
별로 믿는 구석은 아니었지만.
“왜? 뭐, 야한 꿈이라도 꿨냐?”
“누, 누가 널 덮치는 꿈을 꿨다는 거야!”
저, 저, 꼬리 튀어나온 거 봐라.
아주 대놓고 저는 그런 꿈을 꿨습니다, 하고 어필하고 있었다.
조금 더 괴롭힐까 했지만, 귀여웠기에 봐줬다.
이제 식사할 시간이기도 했으니까.
“내가 언제 너한테 거짓말 한 적 있냐?”
“……너. 잘도 그런 뻔뻔한 말을 하는구나?”
내가 언제 그랬다고.
앞에 놓인 계란말이를 탁 집으려는데, 이유지의 젓가락이 그것을 낚아챘다.
이유지가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계란말이를 와그작 씹는다.
그래. 많이 먹어라.
대충 다른 걸 먹으려는데, 무언가 내 입으로 들어왔다.
옆에 있는 루비가 젓가락을 들어 나에게 음식을 먹여줬다.
타이밍이라도 재고 있었던 걸까. 아주 재빠른 손놀림이다.
오물오물.
자연스럽게 그걸 씹고 있자니, 뒤늦게 온 안지윤이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이제는 정말 부부라도 되는 거 같아요. 사부!”
“바, 방금 뭐 한 거야?”
이유지가 충격받은 표정으로 젓가락을 떨어뜨렸다.
뭐하긴, 자기도 포도를 먹여주니 뭐니, 그런 앙탈을 부렸으면서.
물론 이번이 처음이긴 하다.
갑자기 루비가 왜 이러는지는 모르겠지만.
나쁘지 않았다.
“아암~ 폭신폭신해!”
순둥이의 입속에도 계란말이 하나를 넣어주었다.
날 열심히 도와줬으니까 우리 순둥마마를 극진히 모셔야겠지.
달그락-
안지윤이 앉으며 허리춤에 걸려 있는 검이 옆에 있는 안지훈의 몸에 부딪혔다.
“야. 안지윤. 밥 먹는데 검은 좀 놓고 오지? 애가 밥상머리 교육을 어디서 받은 거야?”
“어디서 받긴. 너랑 나랑 같은 곳에서 받았거든. 이 멍청한 놈아.”
나는 그 검을 보다가 안지윤에게 말했다.
“그건 잘되어 가냐?”
“넵! 이제 두 방향까지는 가능한 것 같아요!”
“너 검기 쓸 줄 알지?”
“예? 네에. 쓸 줄 알죠.”
“검에 마나를 싣고, 휘두를 때 주변으로 흩뿌린다는 이미지를 가져봐. 그러면 좀 더 잘 될 거야.”
“예? 그걸 싸부가 어떻게 알아요?”
어떻게 알긴.
꿈속에서 몇 번이고 휘둘러봤으니까 알지.
“안지훈. 옆으로 가 봐. 비켜, 비켜. 나 배고프단 말이야.”
“그래.”
“……뭐야? 왜 그리 실실 웃어? 기분 나쁘게.”
안지훈은 평소와 달리 피식 웃으며 옆으로 비켜주었다.
마치 막혀 있던 속이 뻥 뚫린 듯한 표정이다.
“흐흐. 그렇게 티가 났습니까, 스승?”
[꼰대? 그런 말을 하면서 웃으셨어요.]
“꼰대가 아니라, 군대야.”
“어린 애는 밥 먹을 때 집중!”
순둥이가 까망이의 스케치북을 뺏었다.
쉬잇- 하고 손가락을 올리자, 까망이가 똑같이 따라 한다.
“그게 말이죠.”
안지훈이 웃은 이유가 있었다.
요즘 하도 던전도 많이 나오고, 던전 내부의 마물이 재생성 되는 주기 또한 짧아지고 있으니, 정부와 길드 간에 무슨 이야기가 오갔나 보다.
지금 대한민국의 주적은 북한이 아니라, 마물이었으니까.
“예. 군 복무 대신에 던전의 청소 작업 혹은 공략에 일정 횟수 참가하는 것으로 대체할 수 있게 된다는 말이 나와서요.”
확실히 그거라면 지금과 같은 삶을 보낼 수 있긴 하다.
“뭐, 그 기간에 일시적으로 정부 소속이 될 것 같지만, 저로서는 불만 없습니다. 할아버지도 그렇게 말씀하셨고요.”
감당할 수 없을 바에야 우호적인 관계를 위해서 나눈다는 뜻인가.
아마 정부 쪽에서도 각성자들을 자기 소속으로 완전히 끌어들이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하겠지.
뭐, 안지훈은 넘어가지 않겠지만. 금수저 손자니까.
‘내부의 적을 없애고, 외부를 경계한다는 건가.’
이전 정부와 달리 이번 정부는 길드에 우호적이다.
안환재 또한 근래 벌어진 일들로 인해 이런 결심을 하게 된 것 같다.
전국에 나타나는 균열들도 그 지역에 있는 대형 길드의 지원을 받기도 했으니까.
이전보다 더욱 견고하고 위험도 적어졌다.
“그나저나 할아버지도 조금 달라지신 거 같아요.”
“그렇지? 할부지 얼굴 주름 개수가 좀 줄어든 거, 나만 느낀 거 아니지?”
“……아니, 그거 말고. 난 성격 얘기하는 건데? 할아버지 얼굴이 달라지긴 뭐가 달라져?”
“에. 그건 네가 관찰력이 없어서 그런 거고!”
아마 안지윤이 본 것이 맞을 거다.
꼬박꼬박 챙겨 먹으라고 보내줬더니, 이제야 효과가 드러나고 있었다.
‘나 때는 금방 됐던 거 같은데.’
혹시 또 만물의 주인에 한정해서 그런 건 아닐까 걱정했는데, 느릴지라도 꾸준히 복용하면 효과가 조금씩 나타나는 모양이다.
좋은 현상이다.
나처럼 환상적인 결과는 나오지 않을지라도, 점점 노화가 진행되는 그의 몸을 조금이나마 젊게 만들어 줄 것이다.
“원래대로라면 절대로 뭔가를 나누려고 하시는 분은 아니었거든요.”
내부의 적을 없앤다.
안환재의 원래 스타일대로라면 그것은 철저한 배제를 의미했다.
지금처럼 자신의 편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것도 울 싸부 덕분 아니겠어? 내가 말할 때는 그렇게 안 들었는데, 싸부가 말하니까 몸에 좋은 걸 먹기 시작하시고.”
“무슨 산삼이라도 보내주신 거예요? 할아버지가 감사 인사 전해달라고 하더라고요.”
그것보다 더 좋은 걸 보내긴 했지.
산삼이라…….
이참에 각종 약재들과 물약을 합쳐보는 것도 좋겠지.
나는 피식 웃었다.
“감사 인사는 이미 받았어.”
내가 지금 이곳에서 편하게 잘 수 있는 것이 안환재 덕분이었으니까.
혹시 모를 습격에 대비해서 안환재가 심어 놓은 인물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었다.
안환재가 직접 내게 말해주진 않았다.
안지윤의 검 때도 그랬지만, 은근히 말하는 게 서투른 양반이다.
스미스로 인해 보강된 박명훈의 방범 장치 또한 있으니, 낯선 인물은 접근도 하지 못할 것이다.
아무래도 내가 유명해진 만큼, 날 노리려는 인물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물론, 그런 사람이 있다면 용서할 생각은 없다.
‘이건 그 본보기 중 하나가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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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꿈에 침범하는 침대 +1」
설명: 【만물의 주인】 이서진이 사용할 경우, 상대방의 꿈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
*숙련도에 따라 꿈속 세계의 시간 흐름을 조정할 수 있다.
*숙련도에 따라 꿈속 세계에서 느끼는 감각을 증폭 혹은 축소시킬 수 있다.
*‘위치를 추적하는 휴대전화’와의 시너지 효과로 인해 대상을 지정할 수 있다.
▶하루에 한 번, 원하는 대상에게 수면 상태를 강제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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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왕 첸이 잠을 안 자고 버틴다면, 나로서는 그다지 방법이 없었을 것이다.
결국엔 졸음을 못 참고 꿈속으로 들어오기는 하겠지만, 제대로 그를 망가뜨리려면 매일 같이 괴롭히는 것이 더욱 효과적일 테니까.
‘대상의 수면 상태를 강제할 수 있다.’
내가 침대에 누워서, 꿈속 세계로 향했을 때만 사용할 수 있는 기능이다.
저것으로 인해 왕 첸은 하루에 한 번, 무조건 잠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처음에는 저항도 했던 그였지만, 이제는 체념한 듯 고문을 당한다.
―아니, 형님 이런 건 대체 어디서 배우셨어요?
이태영에게 직접 찾아가 자문을 구하기도 했으니, 그 고통이 수준급일 것이다.
거기다 점점 늘어나는 꿈속 시간.
정신이 유지될 리가 없다.
아마도 어떤 식으로든 반응이 올 것이다.
왕 첸 스스로 마무리를 짓는 것도 괜찮은 결말이겠지만…….
‘아직 물어볼 것이 남았으니까.’
오늘 밤은 꿈이 아니라, 현실에서 그를 만나게 될 것이다.
* * *
“으윽…… 으허억! 끄아악!”
끔찍한 비명과 함께 한 남성이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 누구보다 성공했다는 걸 증명하듯이 화려하고 거대한 실내.
왕 첸은 곧바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보이는 것은 자신을 지키고 있는 수많은 경호 인력들.
개미 한 마리라도 허락하지 않을 정도로 촘촘하게 펼쳐져 있었다.
“…….”
하지만 아무리 많은 경호원이 있다고 해도 왕 첸을 괴롭히는 존재를 막아줄 수는 없었다.
저들에게 꿈속까지 지켜달라고 할 수는 없었으니까.
왕 첸은 마치 현실과도 같이 생생했던 그 꿈들을 떠올렸다.
수백 번 칼에 꿰뚫려 비참하게 죽었을 때.
마물에게 산채로 물어 뜯겨 먹혔을 때.
자신의 몸에 있는 온갖 가죽들이 벗겨져 소금에 절여졌을 때.
상상조차 하기 싫을 정도로 끔찍한 고문들에 왕 첸은 자신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침대는 완전히 땀에 절어 있었다.
그것이 왕 첸은 피로 물든 것과 다름없다고 생각했다.
“……이건. 이건 말이 안 되는 거잖아.”
처음에는 부정했다.
자신의 계획을 모조리 박살 낸 이서진.
그에 대한 분노로 인해 꿈속에서조차 그가 나타난 것이라고.
오히려 저 건방진 콧대를 꿈에서나마 꺾을 수 있을 거란 사실에 흥분하기도 했다.
아니었다.
현실에서도, 꿈속에서도 당하는 것은 자신이었다.
꿈을 꾸면 꿀수록 그곳에서 느끼는 감정과 고통은 점점 현실보다 리얼해져갔다.
고작해야 몇 시간이 흘렀을 뿐이지만, 그곳에서는 며칠이 흐른 것 같았다.
“아예. 잠을 자지 않는다면…….”
잠을 참으려 해도 소용이 없었다.
몸에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걸까.
자정이 되는 순간, 몸은 기절이라도 하듯 잠에 빠졌다.
그러면 끝이다.
잠에 드는 순간, 왕 첸에게는 벗어날 수단이 없다.
막대한 돈을 들여 고용한 강대한 경호원들은 현실에 있었고, 꿈속에서 자신은 끝없이 고통만 받을 뿐이다.
“……이서진.”
그가 무슨 수를 쓴 게 분명하다.
물약도 섭취했고, 정밀 검사도 받아봤지만 별 이상은 없었으니까.
이서진.
이서진.
그 석 자를 되새기는 왕 첸에게 이전과 같은 감정은 없었다.
그에 대한 공포심만 점점 늘어갈 뿐이었다.
삶에 대한 집착.
죽게 될 경우 빼앗길 영혼.
왕 첸은 이제 살아도 산 것 같지 않은 현실을 더욱 두려워하게 되었다.
“……다들 나가.”
자신의 방에 있는 경호 인력들을 전부 밖으로 내보냈다.
혼자 남게 된 왕 첸의 방에 균열이 나타났다.
그곳에서 흘러나오는 매혹적인 목소리가 왕 첸의 귓가에 맴돈다.
―하핫. 뭐야. 꼴이 말이 아니잖아?
“……분명히 도와주신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도와줬는데? 그 기회를 날린 건 내가 아니라, 너야.
균열 너머에서 난데없이 전멸해버린 허핑의 주요 전투원들.
생존자는 아무도 없다.
그곳에서 일어난 일을 알지 못하는 왕 첸으로서는 이 사악한 요녀가 무슨 짓을 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생존자가 없는 게 아니지.’
당초 목적이었던 이서진.
그는 당연하다는 듯 살아남았다.
그렇게 살아남아 자신에게 매일 밤 지옥을 경험시켜 주고 있었다.
이서진이 무언가를 했다.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이미 지금까지 겪은 일만으로도 왕 첸에게 있어서 이서진은 대적할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사람이다.
허핑의 엘리트 전투원들을 상처 하나 없이 전멸시킬 수 있는 것은 사람이라고 부를 수 없다.
그가 한 행동은 사람이 할 수 있는 범주를 넘어섰다.
그 어떤 사람이 현실과 꿈의 경계를 넘어 설 수 있겠는가.
사람이 아니다.
그런 생각은 도저히 할 수 없었다.
은연중에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걸 인정해 버리는 순간, 왕 첸은 인 외의 무언가에게 영원히 시달리게 된다는 뜻이다.
왕 첸의 정신은 이미 완전히 무너져 있었다.
‘인 외의 무언가…….’
자신과 지금 대화하고 있는 존재 또한 그랬다.
이서진, 그에게 평생을 당할 바에는 저 존재에게 영혼을 바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그래? 그런데 난 이제 너한테 별 관심이 없는데 말이야.
상관없었다.
영원히 이어질 이 고통들을 끝낼 수만 있다면.
왕 첸이 무언가 결심을 했을 때.
자신에게 들려오던 목소리가 끊어졌다.
―왔…… 구…… 나?
왕 첸의 방에 있던 작은 균열이 사라지고, 곧이어 같은 자리에 또 다른 균열이 나타났다.
왕 첸의 몸이 자연스럽게 반응했다.
몸은 떨려오고, 정신은 나갈 것만 같았다.
곧이어 균열에서 누군가 걸어 나왔다.
매일 밤 꿈속에서 보았던 그 괴물이었다.
“오랜만이네?”
이서진.
그가 균열을 이용해 왕 첸의 앞에 나타났다.
* * *
좌표가 제대로 된 것을 확인하고는 균열을 넘었다.
내 앞에는 온몸이 땀으로 절여져 있고, 퀭한 눈을 한 왕 첸이 무릎 꿇고 있었다.
“얼굴 꼴이 말이 아니네, 안 그래?”
“…….”
“우리 한두 번 본 게 아니잖아? 그래도 이렇게 현실로 보니까 반갑네. 넌 안 그래?”
“…….”
왕 첸은 입을 열지 않았다.
나는 무미건조한 눈빛으로 그를 내려다보았다.
저런 놈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았을까.
그가 저질렀을, 저지르고자 했던 일들이 떠오르니 일말의 동정심조차도 들질 않았다.
“말해. 이 일을 위해서 얼마만큼의 사람을 죽인 거야?”
“…….”
왕 첸의 눈은 나를 보고 있지 않았다.
내 너머에 있는 무언가를 보는 것 같았다.
“말해.”
“제발…… 그만…….”
두근!
심장이 요동친다.
아니, 심장이 아니다. 그보다 옆에 있는 무언가다.
두근!
마석이 요동친다.
그와 함께 내 마음속에 있는 무언가가 쿵하고 가라앉았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마나가 아닌, 마기가 내 몸에 흐르고 있는 것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말해.”
내가 착용하고 있는 시계가 진동했다.
상태창이 변화하며, 그 위에 그동안 보지 못했던 무언가가 덧씌워진다.
[‘진실을 강제하는 손목시계’가 대상을 노려봅니다.]“너로 인해서 희생된 사람이 몇이나 되지?”
“커, 커헉……!”
내 몸에서 나온 검은 선이 왕 첸에게 닿았다.
그는 괴로운 듯 발버둥 치다가 입을 열었다.
“……셀 수 없습니다. 저에겐 하찮은 것과 다름없는 것이기 때문에……”
내 손에 들린 손전등에 빛이 났다.
성스럽고 새하얀 빛이 아닌, 지독하게도 검은빛이었다.
“크, 크아악! 그, 그만! 제발!”
꿈이 아니다.
현실에서 왕 첸의 온몸이 끔찍하게 변화하고 있었다.
각성자조차도 버틸 수 없는 지독한 마기가 그를 잠식했다.
왕 첸은 도망치기 위해 문으로 뛰어갔다.
왕 첸의 몸이 뚝 하고 멈춰 섰다.
나는 벌벌 떨고 있는 그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커튼을 손에 들고 그를 바라보았다.
내 주변 사람들을 괴롭혀 온 녀석.
이놈이 없었더라면 내 소중한 사람들이 그런 고통을 겪을 일은 없지 않았을까.
“아빠!”
“그만.”
뒤에서 들린 순둥이의 외침에 나는 정신을 차렸다.
그와 함께 몸에서 돌고 있던 짙은 마기가 마석으로 돌아갔다.
심장에 가득 들어찬 마나가 순식간에 온몸에 퍼졌다.
이전보다 키가 커진 순둥이, 이서율이 내 허리를 끌어안았다.
“고마워.”
“헤헤…….”
살며시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웃는 얼굴로 뒤로 물러난다.
나는 다시 왕 첸을 보았다.
방금 느꼈던 그것은 무엇일까.
그것이 어떠한 선처럼 느껴졌다.
그 선을 넘는다면 나는 지금 있는 일상을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
“고작 이런 놈 때문에 그렇게 될 수는 없지.”
품에서 물약을 하나 꺼냈다.
검은색의 물약이다.
내 정수기에서 나왔다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짙은 마기를 담은 물이다.
마치, 그동안 정제해왔던 모든 마기들이 이곳에 농축되어 있는 것 같았다.
“마셔.”
그걸 왕 첸에게 내밀었다.
저항할 생각조차 하지 않고, 그는 단숨에 들이켰다.
“커헉!”
결국, 저렇게 죽게 될 것이다.
왕 첸은 희미하게 웃고 있었다.
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두 손에 착용 된 건틀릿에서 빛이 났다.
「은월銀月의 건틀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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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악한 자의 영혼을 섭취하여 장비의 효능을 성장시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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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죽고 싶어도 못 죽을 것이다.
그야말로 영원의 시간을 이곳에서 헤매다가 결국에는 자기 자신조차 잊게 될 것이다.
그때가 되면 다시 알려줄 것이다.
네가 어떤 존재였는지.
그것을 반복할 것이다. 영원히.
왕 첸의 몸에서 영혼이 빠져나왔다.
지직-
그 영혼이 건틀릿에 들어가려는 순간, 의문 모를 힘이 영혼의 주위를 감쌌다.
왕 첸의 영혼이 어딘가로 사라지려 한다.
나는 곧바로 스위치를 꺼냈다.
아마도 이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예상대로 스위치를 건틀릿에 가까이 대자, 그 기운은 뒤쪽에 열려 있는 균열 너머로 사라졌다.
영혼을 흡수한 건틀릿에서 이전과는 다른 힘이 느껴졌다.
균열을 잠시 노려보다가, 바닥을 보았다.
왕 첸의 껍데기가 남았다.
따로 치울 마음은 들지 않았다.
“돌아갈까?”
“응!”
나는 집으로 향하기 위해 균열을 넘었다.
* * *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는 방.
순간, 불이 꺼진다.
왕 첸의 시체 근처에 있는 어둠에서 무언가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온몸이 검은 생명체였다.
그 수는 총 네 마리.
네 마리의 검은 생명체들은 한데 뭉치더니, 이내 2M가 넘는 크기의 무언가가 되었다.
이빨은 날카로웠으며.
두 손발은 가늘고 날렵했다.
그동안 충분한 영양을 섭취한 이 검은 존재는 다음 단계로의 진화를 이루어내었다.
그 존재는 왕 첸의 시체를 한입에 집어삼켰다.
꼬물.
꼬물.
무언가 소화되는 소리가 들린다.
콰앙!
누군가가 왕 첸의 방문을 부시며 들어왔다.
한 손에 검을 든 류웨이가 방을 둘러보았다.
어두운 방 안, 침대 위에 앉아 있는 왕 첸이 류웨이를 노려보았다.
“이게 무슨 짓이지?”
“……죄송합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길드장님.”
“당장 내 방에서 나가.”
분명히 무슨 일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류웨이는 길드장을 보면서 어딘가 낯선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그는 왕 첸의 명령을 따르는 살수일 뿐이다.
―혹시 내 방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 거 같으면 곧바로 구하러 와.
주인의 명령에 의문을 품지 않는다.
류웨이는 목례를 취하고 모습을 감췄다.
그림자가 가득한 방 안.
왕 첸.
아니, 왕 첸의 껍데기를 뒤집어쓴 도플갱어, 꼬물이가 두 손을 활짝 펼치며 외쳤다.
“끄아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