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tion is flowing from the water purifier in my house RAW novel - Chapter 127
우리집 정수기에서 물약이 흐른다 128화
36. 한 사람만의 연금술사(4)
“모두 모인 건가?”
어두컴컴한 실내.
짙은 검은색의 로브를 뒤집어쓰고 있는 한 여성이 중얼거렸다.
누군가 본다면 하나같이 범죄 조직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수상한 모임.
아주 중대한 발표라도 하려는 것일까.
더없이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로브녀가 천천히 입을 열려는 순간.
“나 어두운 거 싫은데, 그냥 불 켜면 안 돼?”
“그, 그럴까?”
“그동안 잠수 탄 거로 모자라서, 이 음습한 분위기는 뭐야?”
“자, 잠시만!”
요즘 들어 눈 아프단 말이야.
자신의 팀원이 뱉은 말에 로브녀가 허겁지겁 불을 켰다.
그와 함께 머리를 덮고 있던 로브가 뒤로 젖혀진다.
화륵!
원탁 위에 촛불이 하나 켜지자 만족한다는 듯 조금 전 말을 뱉은 팀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이래야 분위기가 살지. 그래서? 우리 오랜만에 모인 건데, 뭐 할 말 있는 거야?”
“일단 출출한데. 뭐라도 만들어 올까?”
“오! 좋아! 간단하게 샌드위치라도 어때?”
“잠까안!”
금방이라도 친목 모임으로 변질될 것 같았기에 그녀가 다급하게 그들을 막았다.
“왜 그래? 아멜리아. 뭐 따로 필요한 거 있어?”
“쉬잇! 내가 절대로 이름으로 부르지 말라고 했잖아!”
“뭐, 그럼 에이미?”
“아아아!”
“알았어. 알았어. 또 뭐 때문에 그러는데.”
“쟤가 저러는 게 하루 이틀이야? 또 이상한 거에 꽂혀서 혼자 히죽거리고 있었겠지.”
그녀의 태도가 더없이 익숙한 듯 자리에 앉아 있는 여섯 명의 인원이 고개를 끄덕인다.
“이번엔 진짜야. 너희들도 이걸 보면 내 말을 이해할 걸?”
아멜리아라고 불린 로브녀가 원탁 위에 상자를 조심스럽게 올려놓았다.
“이게 뭔데?”
“그냥 상자가 아닌데? 이거 하나에 수천만 원은 하는 거야. 더럽게 귀한 거 넣어놓는 보관용 금고.”
“허어. 너 돈 많냐?”
“흥. 놀라지나 마.”
끼익!
호언장담을 하며 개봉 된 상자 안에는 상아색을 한 거대한 무언가가 넣어져 있었다.
“서핑 보드?”
“아니거든!”
이것의 진짜 가치도 알아보지 못하다니.
아멜리아는 그들이 불쌍하다는 듯 혀를 찼다.
그녀는 그들을 한데 모으더니 숨죽이며 말했다.
“용이야.”
“뭐? 용?”
“조용! 조용!”
“조용이 네가 말하는 그 용이야?”
“아아! 진짜!”
“야, 얼른 야식이나 가져와야겠다. 얘 말 하루 종일 들어줬다간 우리 또 굶어죽을 수도 있어.”
그 말에 자존심이 상한 아멜리아가 곧바로 상자에서 물건을 꺼냈다.
이 상자는 단순히 물건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외부인을 이 물건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만든 방어막 같은 것이었다.
“윽!”
지하실에 모여 있던 다섯 명의 남녀들이 반사적으로 마나를 개방했다.
“모두들 맛있는 음식 나왔…….”
나머지 한 명이 들고 온 접시 위에 있던 샌드위치가 그대로 썩어 문드러진다.
그걸 본 대머리 남성, 제임스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야, 너 미쳤어?”
“그, 그게. 너희들이 내 말을 안 믿어 주길래…….”
“보여주고 싶단 게 우리 시체였냐? 무슨 이딴 게…….”
“이딴 게 아니라, 발톱이야.”
아멜리아가 진중한 표정으로 그것을 들어 올렸다.
가벼운 언행을 하고 있었지만, 그녀는 미국에서 유명한 각성자다.
지금은 비록 소속된 곳이 없었지만, 세간에서는 그녀를 S급으로 규정해야 한다는 말도 나온다.
이곳에 모인 전원이 각성자.
하나같이 A급 이상의 베테랑이다.
그런 그들이 이 수상한 물건 앞에서 긴장하고 있었다.
“어마어마한 마기야.”
“그렇지? 마석도 아니고, 살아 있는 것도 아닌데, 이런 기운을 담고 있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돼.”
“……그래서? 네가 말한 용이라는 게 정말로 그 용이었어?”
“드래곤! 그 불 뿜고 하늘 날아다니는 판타지 속 드래곤 말하는 거지?”
“그래, 맞아. 아니, 사실 그런 게 아닐 수도 있지만…….”
아멜리아의 말에 일동은 의심하지 않았다.
그녀의 고유 능력이 무엇인지 오랜 기간 교제한 그들은 알고 있었으니까.
「진리의 도서관」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이름 및 쓰임새를 내면의 도서관에서 꺼내 열람할 수 있는 유니크한 능력.
던전 내부에서 발견된 것들 또한 지구로 가져오면 그 능력이 적용되었기에 그녀가 모르는 것은 없다고 해도 무방했다.
그렇기에 일행은 당연하다는 듯 물었다.
“이건 그래서 뭐하는 물건인데?”
“몰라.”
“모른다고? 네가?”
“응. 마치 책의 모든 부분이 찢긴 것처럼 설명이 지워져 있어.”
다만, 알 수 있는 것이 하나 있었다.
단순한 발톱.
신체에서 떨어져 나온 이물질에 불과한 것임에도 신체를 오싹하게 만드는 이것의 원래 주인.
목이 바싹바싹 마른다.
불러선 안 될 것 같으면서도 그녀는 겨우 내뱉었다.
“멸망용.”
진명으로 보이는 뒷부분은 역시 알아낼 수 없었다.
하지만 멸망용이라는 것만큼은 알 수 있었다.
며칠 전, 이것이 자신의 집을 완전히 파괴시키며 나타났다.
대체 의도가 무엇일까. 그동안 오랜 고민을 했다.
멸망용.
그런 존재가 자신에게 이런 걸 보낸 특별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단순히 이름밖에 모르지만, 멸망이라는 의미는 그녀 또한 잘 알고 있었다.
아멜리아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언제나 엉뚱한 말과 행동을 하며 제 친우들을 당황하게 만드는 그녀였지만, 이번에 뱉은 것은 그들로서도 상상하기 힘든 것이었다.
“우리, 오늘부터 빌런 하자.”
* * *
“성자님. 안색이 안 좋습니다.”
“어? 아냐, 아냐. 어차피 이렇게 될 거라고 얼추 예상하고 있어서 별로 충격적이지도 않거든.”
내가 여유롭게 쉬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 자체가 잘못이었겠지.
그래도 일주일 뒤 벌어질 일이었기에 지금 당장은 휴가를 즐기기로 했다.
“우와아…….”
연신 감탄사를 내뱉는 순둥이와는 다르게 루비는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이전에는 해외로 곧잘 돌아다니곤 했으니까요.”
“뭐? 정말?”
난생 처음 듣는 이야기인데.
“아직 성자님과 만나기 전의 이야기니까요. 고작 과정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래서 굳이 꺼낼 필요를 못 느꼈다, 이건가.
조금 섭섭하긴 했지만, 듣고 보니 일리 있긴 했다.
나도 루비한테 과거에 있던 일들을 낱낱이 말하는 건 아니니까.
물론 직접 물어본다면 알려주지 못할 것도 없겠지만.
나도 그렇고, 그녀도 그렇고 어느 선을 지키는 것이다.
“성자님과 만나게 되었다는 결과만이 중요할 뿐. 그 이전의 것들은 그렇게 깊게 생각할 것이 못 됩니다.”
툭-
누군가 내 어깨를 부딪치고 지나갔다.
“끄아악!”
내가 무슨 행동을 취하기도 전에 루비는 나와 부딪친 상대방의 팔을 꺾고 바닥에 눕혔다.
“Shit! 이게 뭐하는 짓이야!”
단순한 접촉이라기엔 과잉 반응이었다. 하지만 저 놈은 저래도 싸다.
주머니를 뒤지자, 내 지갑이 튀어나온다.
“이건 또 대단하네. 소매치기랑 관련된 고유 능력을 가지고 있는 건가?”
평범한 소매치기범이라기엔 그 숙련도가 남달랐다.
“무슨 일입니까!”
주변에 있던 경찰이 우리 쪽으로 급히 뛰어왔다.
역시라고 해야 할까.
단순한 경찰이라고 부르기엔 무장이 살벌했다.
당연하다.
옛날과는 범죄의 규모가 차원이 달랐으니까.
마물로부터 인류를 지켜주는 각성자가 있으면 제 손에 들린 힘을 악한 곳에 사용하려는 자도 있기 마련이다.
“이 머저리들이 아무런 죄도 없는 저를 이렇게 때려 눕혔습니다!”
해외에 갔을 경우, 되도록이면 현지인과의 충돌을 피하는 편이 좋다.
의사소통도 잘 안 될뿐더러, 그들로서도 현지인의 말을 더 들어줄 수밖에 없으니까.
“죄송합니다만, 두 손 위로 들어주시고 잠시 대기해 주시겠습니까.”
가까이 다가온 경찰이 내 선글라스를 벗겼다.
그는 잠시 긴가민가한 듯 미간을 구기더니 이내 사나운 표정을 풀었다.
“고생 많으십니다.”
“별말씀을요. 타지에 오셔서 이런 일을 겪게 해드려 죄송할 따름입니다. 손은 내려주셔도 괜찮습니다.”
현지인과 다를 바 없는 의사소통 능력을 가지고 세계적으로 얼굴이 알려진 나한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어, 어? 쟤네들이 먼저 나한테 수작 부렸다니까! 나는 피해자라고!”
“당장 두 손 뒤로 돌려!”
뒤에서 들리는 단말마 소리를 무시하고 다시 거리를 걸었다.
“끄악!”
과연 인구가 많은 만큼, 헛짓거리를 하는 놈들도 많았다.
대놓고 범죄를 저지르진 않았지만, 능력을 이용해서 헛짓거리를 하려는 것들.
“끄아아악!”
은근슬쩍 지나치며 루비를 만지려던 사내의 두 손이 순식간에 꺾였다.
“어딜 그딴 더러운 손으로 누굴 만지려는 거야?”
오른손에 드러난 짐승의 팔은 커튼으로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업그레이드로 인해 투명화 되는 범위를 내 맘대로 조정할 수 있었다.
남들에게는 그저 평범한 인간의 팔로 보일 것이다.
아무래도 수인화라는 능력은 이곳에서도 꽤나 이질적일 테니까.
숨길 수 있다면 숨기는 편이 좋을 것이다.
“……? 무슨 일이십니까, 성자님?”
미래시를 통해 사전에 제압한 것이기에 루비는 무슨 일이 일어난 건 줄 몰랐다.
나는 별일 아니라는 듯 살짝 웃어주었다.
“좀 더 이 쪽으로.”
루비의 어깨를 끌어 내 쪽에 바짝 붙였다.
어차피 떨어져도 금방 찾을 수 있겠지만, 애초부터 잃어버리지 않는 쪽이 좋을 테니까.
내 행동에 루비는 옆으로 흘러내린 머리를 귀 뒤로 살며시 넘겼다.
그와 함께 붉어진 귀가 드러난다.
꽤나 부끄러운 기색이었지만, 얼굴 표정은 좋아보였다.
루비는 결과만이 중요하다고 했지만, 이런 스쳐 지나가는 과정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아무런 능력도 없겠지만, 기왕 온 여행이니까 이런 것도 괜찮겠지.’
근처에 보이는 액세서리점으로 가 한눈에 들어온 머리핀 하나를 선물했다.
“별…… 입니까.”
내 목에 둘러진 별모양 목걸이를 툭툭 치자, 잠시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듯 보였던 루비가 살며시 웃는다.
“그렇군요. 성자님과 같은 것이라면 루비는 그 어떤 것이라도 좋습니다.”
아닌 듯 보여도, 은근히 이런 걸 좋아하는 것 같단 말이지.
부르르-
전화가 울린다. 아무래도 이유지가 일어난 모양이다.
그것을 받으려는데, 루비가 앞에서 한 손을 내밀었다.
“가시죠. 성자님. 지금부터는 루비가 직접 안내하도록 하겠습니다.”
그 의도가 뻔히 보이는 행동이었지만, 귀여웠기에 어울려 주기로 했다.
나는 울리는 휴대전화를 도로 집어넣고 루비의 손을 마주 잡았다.
* * *
“언제 일어나는 거지?”
텔레비전에서 확인했던 건물 앞.
그곳에 있는 카페에서 가볍게 커피 한 잔을 마시며 밖을 살펴보았다.
내 눈앞에 보이는 저 멀쩡한 건물이 그 이상한 로브의 빌런들로 인해 붕괴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앞에서 아주 신나게 웃고 있는 한 여성.
그 얼굴을 확인했으니, 이곳에서 지켜보고 있다면 반드시 붙잡을 수 있을 것이다.
이곳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은 매우 많았지만, 내 눈은 그보다 정확하게 그들의 안면을 꿰뚫어 보고 있으니까.
쪼록-
물론 내 시야에서 놓친다고 하더라도 별로 문제 될 것은 없었다.
“아메리까 쪼코 케이크! 푹신푹신해서 기분 좋아!”
“확실히, 어느 것이 더 맛있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색다른 매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자! 솜뭉치도 한 입 줄게! 얼른 아앙해!”
“아, 아앙……?”
누군가 본다면 자매라고 오해할 게 분명한 비주얼이다.
흰색과 검정. 음양의 조화라고 해야 할까.
언제 보아도 각각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신비로운 기운을 뿜고 있는 두 여성.
참고로 이유지와 까망이는 오늘도 늦잠을 자는 중이다.
“아앙. 해주시지요.”
“아앙~”
주변의 시선을 모조리 흡수할 듯이 다채로운 색상의 그들이었지만, 그 누구도 이곳을 보는 사람은 없었다.
우리 근처에 펼쳐진 투명한 막.
오로지 순둥이와 내 눈에만 보이는 것이다.
외부에 있는 사람들은 안쪽에 있는 우리를 보지 못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들이 인지한 것을 마치 스쳐지나가는 풍경처럼 흐릿하게 만드는 마법이다.
단순히 투명화 하는 것보다 훨씬 고등적인 종류의 마법일 것이다.
“신기하단 말이야.”
당연히 나는 마법의 마 짜도 모른다.
그럼에도 나 또한 이것을 따라할 수 있을 것 만 같았다.
몸속에 있는 마석이 요동치는 것과 동시에 나와 눈을 마주친 순둥이가 방긋 웃었다.
“응! 이제는 순둥이랑 아빠랑 완전히 판박이니까! 아빠한테는 당연한 일인 걸!”
“서, 성자님도 아앙…….”
내가 계속 그쪽을 바라보고 있자, 떨리는 손으로 포크를 내미는 루비.
그때, 무언가가 내 발끝을 툭툭 두드렸다.
바닥에 있는 것이라곤 그림자뿐이다.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그 어떤 존재라고 하더라도 이곳에 수도 없이 펼쳐진 그림자들의 시선에서 벗어날 수는 없을 것이다.
그 신호와 함께 내 눈에 텔레비전에서 보았던 여성이 발견되었다.
무언가를 조심스럽게 품에 끌어안고 어딘가로 이동 중이다.
‘딱 봐도 폭탄이네.’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부자연스러웠다.
대체 왜 주변 사람들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 걸까 했는데, 그녀의 존재감이 흐릿하게 느껴졌다.
순둥이가 펼친 마법이나 내 커튼보다는 아니지만, 꽤나 그럴 듯해 보였다.
“가자.”
카페에서 나와 그 빌런의 뒤를 미행했다. 아니나 다를까, 점점 인적이 드문 으슥한 곳으로 향한다.
‘그런데 여긴 그 건물이랑 다른데?’
“흐흐…… 마, 마법의 용 발톱 님. 이제부터 저희가 무엇을 하면 좋을…….”
헛짓거리를 하는 것이 보였기에 당장에 그곳을 덮쳤다.
“……!”
역시 그런 간 큰 짓을 하는 놈이라서 그런 걸까. 내 기습을 막아내는 게 평범한 각성자는 아니었다.
“……뭐야?”
“야, 아멜리아! 괜찮아?”
일행이 있었다. 그들이 우리에게 달려들었다.
처음 맞닥뜨린다고 볼 수 있는 해외의 각성자.
지구상에서 가장 수준 높은 각성자들을 보유하고 있다 알려진 그 ‘미국’의 실력자였지만…….
“컥!”
그 누구도 루비의 움직임을 따라잡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순둥이가 점점 마법을 사용하는 것에 능숙해지듯이, 루비는 날이 갈수록 더욱 강해지고 있었다.
대체로 나와 보내는 시간이 더 많은데, 어떻게 저리 급격한 성장을 보일 수 있는 걸까.
“성자님의 말대로 전원 무력화시켰습니다.”
일곱 명.
빌런 집단이라고 부르기에는 조금 모자란 숫자였지만, 하나같이 괜찮은 실력이긴 했다.
“……대체 뭐 하는 놈이야!”
“우린 아무 짓도 안 했다고!”
‘아직’ 하지 않은 거겠지.
이제 이들이 하려던 테러를 막았으니, 포박 후에 넘기고 나면 대충 나머지 시간은 편히 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때.
콰앙!
어디선가 폭발음이 들려왔다.
동시에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크게 울려 퍼진다.
방향으로 확인하건데, 원래 텔레비전에서 보았던 그 건물이다.
이 놈들이 아니었다.
“진짜로 아직 안 했단 말이야! 멸망용의 말씀이 들려올 때까지는 대기할 생각이었다고!”
멸망용……?
쟤네 입에서 그 말이 왜 나오는 거지.
“아, 앗! 잠깐만!”
나는 로브녀가 꽁꽁 싸매고 있던 상자에 다가갔다.
그것을 열자 텔레비전에서 확인했던 그 발톱이었다.
드래곤이니 뭐니, 헛소리를 하기에 그냥 넘겼지만…….
두근!
두근!
내 직감이 말하고 있었다.
이건 진짜 ‘멸망용’의 몸에 붙어 있던 것이다.
‘아빠! 여기서 엄청 익숙한 기운이 느껴져!’
순둥이의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마치 공명이라도 하듯이 멸망용의 발톱이 내 손 위에서 흔들리고 반짝인다.
더럽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마치 보석이라도 되듯이 우아한 자태.
좀 더 자세한 확인을 위해 콘택트렌즈의 능력을 사용하려는데, 충격에 빠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호, 혹시…….”
멸망용의 신체 부위를 가지고 있던 인물이자, 테러범으로 오해했던 의문의 로브녀.
그녀가 내게 말했다.
“……당신은 용이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