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tion is flowing from the water purifier in my house RAW novel - Chapter 142
우리집 정수기에서 물약이 흐른다 143화
40. 너의 이름은(3)
“……하읏!”
밀폐된 공간 속에서 열띤 소리와 함께 스산한 안개가 자욱하게 피어오른다.
그곳에 있는 것은 두 명의 남녀.
두 사람 다 방금까지의 행위에 지친 듯 땀에 절어 있다.
묘하게 두 볼이 달아오른 여인을 보며 사내가 중얼거렸다.
“……너 진짜 질린다.”
“후훗.”
물론 그 사내는 나다.
밀폐된 공간이라고 해봤자, 이태영의 고문실을 꿈속에서 재현해 냈을 뿐이다.
온갖 고문 기구들이 늘어서 있는 곳에서 수십 겹의 쇠사슬로 사지가 포박된 아스모데우스가 달콤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앗! 낭군…… 설마 이게 전부라고는 하지 말아줘? 나는 아직 몸이 달아오르고 있으니까♡”
와 진짜 못 해 먹겠네.
허핑 길드장을 대상으로 했을 때와는 상황이 완전히 달랐다.
얼마나 강인한 인간이든, 지속적인 고문이 함께한다면 정신이 무너지기 마련이다.
더군다나 이곳은 내 꿈속.
고통의 강도조차 마음대로 키울 수 있었기에 그 어떤 인간이라도 굴복하게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자신할 수 있다.
그렇다, 그게 ‘인간’이라면 말이다.
“히잉…… 아무리 낭군이라도 내 몸을 이렇게 상하게 만드는 건 조금 그런데…… 잠시만?”
주변을 떠다니던 안개가 아스모데우스에게로 모여들더니 순식간에 상처가 치료된다.
분명히 여긴 내가 지배하고 있는 공간일 텐데도 저 보랏빛 안개는 도저히 없앨 수가 없었다.
“후훗. 이렇게 멋진 낭군님이잖아? 그런데 안주인 되는 내가 별 볼 일 없어서야 폼이 안 나지. 안 그래?”
“누구 멋대로 안주인이란 거냐.”
“내 맘대로♡”
아무래도 더 이상의 심문은 불가능할 것 같았다.
뭔 짓을 하던 그녀는 정말로 기분이 좋다는 듯 몸을 배배꼬고 열띤 한숨을 내쉬었으니까.
“이래 봬도 색욕의 마왕인걸? 그런 내가 느낄 수 있는 건 언제나 단 하나. 쾌락뿐이야.”
아스모데우스의 보랏빛 눈동자가 나를 응시하며 초승달처럼 휜다.
다른 수작은 부리지 못할 텐데도, 나도 모르게 빠져들 것처럼 더없이 매혹적인 시선이다.
“무슨 짓을 하든지 나한테 있어선 낭군님의 열렬한 구애 행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큰 쾌락은 오히려 고통이 된다.
그러나 쾌락의 정점에 도달한 이 존재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말이었다.
“그러니까 이거 풀어줘? 이런 시시한 것보다 더 재미난 거 하자? 응?”
“…….”
“애초에 나는 낭군님을 상처 입힌 적도 없는데! 나한테 왜 이렇게 나쁜 짓을 하는 거야!”
“개소리하네. 그럼 아까 나한테 한 건 뭔데?”
내 볼에다 남긴 키스 마크도 있다.
아마 그걸 이용해서 꿈속으로 찾아온 것이겠지.
“아하하…… 인간들은 그런 플레이를 좋아한다고 들었는데, 우리 낭군님한텐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나 보네?”
“그 말투도 거슬려. 대체 낭군님, 낭군님은 언제까지 할 거야?”
“그야 낭군님인걸? 낭군님을 낭군님이라 부르지 못하면 난 어떻게 하면 돼? 앗. 방금 나 완전히 낭군님이랑 같은 곳에 사는 사람 같았다? 그치?”
색욕의 마왕, 아스모데우스.
이제는 탐욕의 마왕이라는 자리에 앉은 나와 같은 위치에 서 있는 존재다.
아니, 같은 위치는 아니다. 나는 고작해야 한 달도 되지 않았으니까.
20대 중반 정도의 아름다운 외모와 인간 세계에서는 볼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게 이루어진 신체.
‘……아니, 볼 수 없는 건 아닌가.’
“응! 내가 낭군님을 좋아하는 수백 가지 이유 중 하나가 그 조각 같은 몸이니까. 아아, 진짜 좋아. 저기 말이야, 정말로 아무 짓도 안 할 테니까, 눈 딱 감고 한 번만 안아보면 안 될까? 응? 응?”
하지만 겉만 보고 판단해선 안 된다.
대체 몇 년을 살았는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에잇! 그런 못된 생각은 하면 안 되지!”
허공에서 나타난 검은 손이 여인의 입을 틀어막았다.
그것이 불만스러운 듯 몸을 바둥바둥 거린다.
나는 한숨을 쉬다가 이내 손발을 묶고 있던 쇠사슬을 풀었다.
“읍읍~ 읍읍읍읍~ 읍?♡”
저 입은 냅두고 싶었는데…….
대답을 들으려면 어쩔 수 없다.
“후훗. 고마워?”
내가 허락한 줄 알았는지 점차 다가오는 여인의 이마를 한 손가락으로 밀었다.
“내가 널 풀어준 건 물어볼 게 있어서 그런 거야. 다른 의도는 없어.”
“그런 거라면 처음부터 물었으면 좋았을 텐데. 이런 삭막한 곳이 아니라, 침대 위에서. 물론 내 위에서도 좋고.”
“나도 뭐 이런 귀찮은 짓 하고 싶진 않았는데. 네가 알아야 했으니까.”
“뭐를~?”
“이곳에선 아무리 발버둥 쳐도 내게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말이야.”
“흐음~”
입은 웃고 있으나, 눈은 웃고 있지 않다.
깊게 내려앉은 눈동자가 내 몸을 훑는다.
아스모데우스는 몸이 포박된 상태에서도 일 초도 쉬지 않고 제 힘을 사용하기 위해 온갖 수작을 부렸다.
하나같이 내가 사전에 막았지만, 조금이라도 방심했다면 분명히 당했을 정도로 성가셨다.
매일 밤, 꿈속에 머무르다 보니 숙련도가 차오르는 속도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이미 이곳에 있는 동안에 두 번째 업그레이드는 완료 된 지 오래다.
현실에선 하룻밤에 불과하겠지만, 내게 있어선 몇날 며칠을 지샌 것이나 다름없다.
내 정신은 더없이 피곤했지만, 그것은 결코 의미 없는 짓이 아니었다.
“자존심 상해. 난 몽환 세계의 지배자라고? 서큐버스의 퀸이 꿈속에서 이렇게 무력한 꼴을 보이다니.”
몽환 세계의 지배자.
그 말은 결코 거짓이 아니었다.
실제로 내가 한눈을 파는 순간 꿈속 세계의 주도권이 단숨에 넘어갈 것이니까.
지금 여인에게서 느껴지는 강대한 기운이 그걸 증명하고 있었다.
자존심 상한다는 말과는 반대로 아스모데우스는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응. 그래도 나쁜 기분은 아니야. 이 정도는 되어야 내 낭군님이라고 부를 자격이 되지. 후훗. 역시 일찍 찾아오길 잘했다니까? 오랜만에 찾은 이런 멋진 남자를 다른 잡것들한테 뺏길 순 없지.”
탁!
그녀가 손가락을 튕기자 장소가 바뀐다.
우리는 한 순간에 아름다운 꽃밭 위로 이동했다.
한 가운데에 놓인 테이블과 그 위에 놓인 허브티.
자리에 앉아 한 손으론 잔을 들고, 내게 보일 수 있게 노골적으로 다리를 꼰 아스모데우스가 물었다.
“그래서? 뭐가 궁금한데?”
드디어 첫 번째 질문을 할 수 있다.
제일 중요한 것은…….
“까망이는 지금 어디 있지?”
“응? 까망이?”
……너무 입에 익어서 나도 모르게 튀어나왔네.
정정했다.
아직은 익숙하지 않은 호칭.
“그리드.”
“흐흣. 그리드, 그 재수 없는 꼬마를 까망이라고 부르는 거야? 이거 재미있네. 역시 내 낭군이야. 내가 그런 식으로 불렀으면 분명 둘 중 하나는 이 세상에서 사라졌을걸?”
아니, 까망이가 어때서…….
“글쎄~ 어떻게 됐을까~”
죽은 것은 아니다.
분명히 휴대전화에는 사진이 남아 있었으니까.
“그렇지. 죽은 건 아니지. 하지만 그것도 오래가진 않을 거야. 탐욕의 자리가 낭군님에게 넘어갔으니까. 분명히 사냥개들이 움직이겠지.”
“사냥개?”
“나머지 다섯 권좌에 앉아 있는 마왕들의 하수인을 말하는 거야.”
다섯 권좌.
그렇단 건 이계에 마왕은 총 일곱 명이 된다는 거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은 탐욕과 색욕.
아마도 나머지 다섯 또한 칠죄종을 말하는 거겠지.
오만, 탐욕, 질투, 분노, 색욕, 식탐, 나태.
대표적인 7대 죄악이다.
“그놈들이랑 날 같은 선상에 놓아주지 말아줘? 그런 야만인들과는 다르게 나는 가녀린 여인이니까.”
“그래서 그 사냥개라는 놈들이 그리드를 노리고 있다고?”
“응응.”
아무래도 시간이 그렇게 넉넉하진 않은 모양인데.
“그래서 그리드는 어디 있는데?”
“알려줄 수야 있지. 다른 놈이라면 몰라도, 내게서 숨을 수 있는 존재는 없으니까. 그런데…….”
고민하는 척, 한 손으로 제 턱을 괸다.
그 상태로 날 바라보던 아스모데우스가 씨익 웃는다.
“맨입으로?”
이럴 줄 알았다.
상대방은 내 쪽이 더욱 급하단 걸 확실하게 이용하고 있다.
“내가 무리한 부탁하는 것도 아니잖아? 당연히 주고받는 게 있어야 하는 거 아니겠어, 낭군님?”
맞는 말이다.
대가없는 호의는 주종 관계에서나 이루어질 수 있는 법이다.
“아내가 남편을 보필하듯이, 낭군님 또한 나, 아스모데우스를 도와주면 되는 거야.”
“…….”
“믿지 못하는 모양이네? 색욕의 마왕, 아스모데우스의 이름을 걸고 맹세할게. 낭군님은 얼마 되지 않아서 모르나 본데, 마왕의 이름에는 그만한 무게가 있어. 한 번 입에 담은 건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언뜻 들으면 그럴듯한 말이다.
하지만, 이미 앞서 경험한 것이 있었기에 저 말이 거짓이란 걸 알 수 있었다.
손목시계를 확인할 필요조차 없었다.
“종속의 맹세. 그걸 한다면 믿어줄게.”
“…….”
내 말에 연신 싱글벙글 웃고 있던 아스모데우스의 표정이 굳어진다.
“……그건 어떻게 아는 거야?”
“글쎄?”
아스모데우스의 얼굴이 일그러지더니, 이내 미친 듯이 웃는다.
“아하핫! 그렇구나? 그리드, 그 미친놈이 힘을 넘겨준 것만으로도 모자라서, 종속의 맹세까지 한 거구나? 와…… 이거까진 예상 못 했는데.”
―……기억이 떠오른 건 얼마 되지 않았어요.
아마 까망이가 내게 그걸 걸었을 당시에는 자신이 마왕이라는 기억이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마지막에 보았던 까망이의 모습에 후회 같은 것은 없었다.
“하핫. 대단해, 대단해. 점점 더 가지고 싶어졌어. 절대로 그 누구한테도 넘겨주지 않을 거야!”
아스모데우스의 눈이 보랏빛으로 물든다.
꿈속 세계의 주도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지금이다.
“흐응. 누구 멋대로 남의 남자를 가로챈다는 거야?”
침대의 2단계 업그레이드가 완료되면서 얻게 된 특수 능력.
내 옆에서 생성된 포탈에서 이유지가 튀어나왔다.
내가 꿈속에서 만들어 낸 가짜가 아닌, 현실 세계의 이유지다.
마치 과시라도 하듯이 두 손으로 내 목을 감싼 이유지가 아스모데우스를 노려봤다.
“너구나? 그때 서진이 몸에 이상한 냄새를 묻혀놨던 요망한 짐승. 너 잘 만났어.”
“어머. 낭군님. 지금 본처가 보는 앞에서 바람피우는 거야? 응! 역시 내 낭군님이라면 그래야지. 이거 흥분되는데?”
“하. 바람은 무슨! 애초부터 네 것도 아니었거든!”
“그리고 딱히 네 것도 아니고. 그보다 왜 이렇게 늦게 온 거야?”
언제든지 내 꿈속으로 초대될 수 있도록 일찍 잠에 들라고 말했었다.
그걸 핑계로 고집까지 부리는 탓에 한 침대에서 세 명이 나란히 자기까지 했고.
“으, 응? 글쎄에…… 자, 잠이 잘 안 오더라고!”
대답을 얼버무리는 이유지를 뒤로 하고 반대편에서 루비가 튀어나왔다.
“좋은 밤입니다. 성자님. 꿈속에서는 처음 뵙지만, 어디서 보든 후광이 비치시는 것 같습니다.”
요즘 들어 낯부끄러운 표현을 자주 하는 루비다.
루비 또한 이유지와 마찬가지로 연결이 되지 않았다.
내 물음에 루비는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는 단지, 발정 난 짐승으로부터 성자님의 소중한 몸을 지키느라 늦은 것뿐입니다.”
“야! 무슨……! 네가 나보다 더 많이…….”
“하하, 재밌네? 단순히 여럿이서 놀자고 이러는 건 아닐 테고. 아! 혹시 그런 거야? 날 꼼짝도 할 수 없이 묶어두고 낭군님을 빼앗기는 장면을 연출하려는 거구나! 낭군님 악독해! 그건 좀 가슴 아플지도!”
이 둘은 단순한 보험일 뿐이다.
작업이 진행되는 동안, 발버둥 치는 것을 막기 위한 쇠사슬.
“여기가 꿈속 세계. 역시 당신은 평범한 사람이 아니었군요.”
드디어 메인이라고 볼 수 있는 존재가 뒤쪽에 열린 포탈에서 등장했다.
금발의 머리를 흩날리며 도도하게 걸어오는 여성.
“제가 말했죠? 곧 있으면 계약을 지킬 날이 올 거라고.”
“뜬금없이 계약을 하자 했을 땐 무슨 소린가 했는데, 정말로 평범한 존재는 아니네요?”
셀레나가 아스모데우스를 마주하고는 눈을 빛냈다.
“흥미가 돋아요.”
나는 셀레나와 계약했다.
그녀가 날 도와주는 대신, 인간 같은 게 아니라 그동안 본적 없는 어느 위대한 존재와의 계약을 주선할 수 있게 해주겠다고.
물론 그것이 공정한 계약이라곤 말하지 않았지만.
“언약의 조율자가 명한다.”
계약 이행.
그 어떤 존재라도 옭아맬 수 있는 고유 능력이 마왕을 향해 발동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