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tion is flowing from the water purifier in my house RAW novel - Chapter 143
우리집 정수기에서 물약이 흐른다 144화
40. 너의 이름은(4)
이계의 북동쪽에 위치한 얼음 지대.
‘그림 베르’
우르르 쾅쾅!
그곳은 단 한 순간도 자연재해가 끊이질 않는다.
하늘에선 폭우가 쏟아짐과 동시에 벼락이 내리치며.
땅은 발 디딜 곳조차 없을 정도로 붕괴와 복구 작업이 이루어진다.
“주군께서 화가 많이 나신 모양이야.”
“언제는 그러지 않았던 것처럼 들리네. 우리의 주군은 언제나 진노하고 계신다.”
이것이 단 한 존재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그 누가 믿겠는가.
하지만 그런 자의 하수인으로서 살아가는 각 마물들은 이 상황이 몹시 익숙했다.
그저 언제나처럼 주군의 분노가 그들에게까지 번지지 않길 바랄 뿐이다.
“분노의 마왕이시여.”
분노의 마왕, 아몬.
그런 칭호를 가지고 있는 만큼, 그는 언제나 화를 주체할 수 없었다.
굳이 이런 외진 곳에 있는 얼음 지대를 영토로 선택한 것은 제 주군의 화를 식히기 위한 최측근의 간언 때문이었다.
물론 평범한 존재는 영혼마저 얼어붙을 이런 한기조차도 그의 분노를 가라앉을 수 없었다.
이곳 어딘가에는 아몬의 최측근이었던 마물의 사체 또한 묻혀 있을 것이다.
“……화를 가라앉히소서.”
두 눈에 푸른 안광을 빛내는 데스 나이트가 아몬 앞에 무릎 꿇었다.
분노의 마왕은 일곱 죄악 중에서도 독보적으로 무를 중시하는 자.
그런 그의 곁에는 언제나 이계의 강자들이 몰려들곤 했다.
“아몬이시…….”
쾅!
데스 나이트의 몸이 짓뭉개졌다.
동시에 부서진 해골 조각들이 서서히 모여들더니 원래 형태를 이룬다.
‘……역시 대단하셔.’
이것이 데스 나이트, 드렉이 그의 곁을 지킬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다.
드렉은 불사不死나 다름없는 제 몸의 특성이 썩 마음에 들었다.
분노에 가득 찬 눈빛이 휘하에 있는 1군단장을 노려본다.
“다른 군단장들은 어디 가고, 너 혼자 있는 거지?”
“제2군단장, 3군단장, 4군단장은 각각 군단을 이끌고 타 지역의 침공을 시작했습니다.”
타 지역.
나머지 죄악들의 영토를 말하는 것이다.
옛날에 맺은 마왕 간의 평화 조약 같은 것은 아몬에게는 그다지 신경 쓸 일이 아니었다.
“5군단장은 어디 갔지?”
“아몬 님께서 이전에 직접 처벌하셨습니다.”
“그런가.”
전략적 후퇴를 명령한 5군단장을 겁쟁이라는 이유로 단번에 처형했다.
측근을 직접 죽였다는 사실조차 기억하지 못하며 아무런 감흥도 느끼지 못한다.
그에게 있어서 파괴 행위란 숨 쉬듯 당연한 거였으니까.
그랬던 그가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 있었다.
“그리드. 그놈은 찾았나?”
다시 한번 몸이 부서질 것을 각오한 드렉이 말했다.
“아직 찾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나 아몬은 고성을 내지르지도 폭력을 행사하지도 않았다.
‘……웃고 계신다?’
그의 곁을 오래 보필하던 드렉조차 본 적 없는 모습이다.
“새로운 힘인가.”
그만큼 아몬은 곧 있으면 새로운 힘을 얻을 것이라는 사실에 흥분하고 있었다.
분노의 마왕.
무를 숭배하는 미노타우르스 종의 정점에 선 자, 아몬.
‘그런 겁쟁이 놈이 가지기엔 과분한 힘이지.’
탐욕의 마왕, 그리드.
세상 모든 것을 집어삼킬 수 있는 그릇을 가지고 있음에도 영 시원찮은 행동을 하는 그는 아몬에게 있어서 언제나 눈엣가시였다.
‘잘됐어. 이번에야말로 죽여주지.’
그 음침한 놈이 가지고 있는 힘을 모조리 흡수한다면 탐욕과 분노 두 가지의 근원을 소유하게 된다.
그 순간, 모든 마왕 사이의 균형이 무너질 것이며 그것은 곧 세상의 멸망을 의미하게 될 것이다.
“아, 아몬이시여. 어디로 가시는 겁니까.”
분노의 마왕이 자리에서 일어남과 동시에 성이 흔들린다.
평소에는 억제하고 있었지만,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내가 직접 가겠다.”
“주군…….”
“왜 그러지?”
“아무것도 아닙니다.”
오랜만에 기분이 좋아 보이는 제 주군을 보며 드렉은 마지막으로 말하고자 했던 말을 삼켰다.
이런 상황엔 그저 말없이 뒤를 따르는 것이 신상에 좋단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그렇게 큰 문제도 아니고…….’
색욕의 마왕, 아스모데우스가 사라졌다.
몽환 세계의 지배자.
환술에 능한 그녀이기에 그 존재를 찾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매번 있는 일이기에 드렉은 이 사실을 알리지 않기로 했다.
물론 제 주군이 그토록 바라는 힘의 근원이 어떤 인간에게 모여들고 있다는 사실을 안다면 절대로 그렇게 하지 않았겠지만 말이다.
* * *
마왕이란 어떤 존재일까.
까망이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마왕마다 그 성향과 보유한 능력은 다르다.
아스모데우스.
색욕의 마왕은 내게 마왕이라는 존재에 경각심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하아…… 하아…….”
“……아아! 진짜 더럽게 힘드네! 뭐 이런 놈이 다 있어?”
꿈속 세계.
그것도 내 보조를 받고 있는 이유지와 루비마저도 질색한 듯 여인을 노려본다.
“……얼추 성공적으로 되긴 했는데요. 아무래도 불안정한 면이 있을 거예요. 상대가 상대니까요.”
“그렇겠죠. 언제까지고 이 계약이 이어질 거라곤 생각하지 않아요.”
“그래도 꾸준히 시간을 들이면 느닷없이 풀린다거나 하는 일은 없을 거예요.”
셀레나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고유 능력, 계약 이행.
서로가 했던 말을 기준으로 언약의 맹세를 거는 신비로운 기술.
내가 낭군이니 뭐니 했던 그 헛소리들을 괜히 듣고 있던 것이 아니다.
아스모데우스는 자신한테서 숨을 수 있는 존재는 없다고 말했지만, 미국에서 이미 확인 한 바가 있다.
그녀는 순둥이가 숨은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으니까.
이미 내 꿈속에는 진작부터 셀레나가 순둥이의 보조를 받아 숨어 있었다.
“순둥아. 잘했어. 지루하진 않았고?”
“응! 엄청 지루했는데! 아빠가 중요한 일이라고 했으니까, 꼬오오옥! 참고 있었어!”
꿈에서 깨면 순둥이가 좋아하는 음식을 풀코스로 대접해야겠네.
“하아…… 그래도 다행이네.”
내 앞에 무릎 꿇고 있는 아스모데우스.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저항이 거셌다.
분명히 이쪽이 압도적으로 유리하다고 생각했는데, 아찔했던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아스모데우스.”
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성공적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지금 나는 한 명의 초월자를 내 손에 넣은 것이나 다름없으니까.
“으응…….”
정신을 차리고 서서히 고개를 들기 시작한다.
아스모데우스의 연보랏빛 눈동자가 나를 마주한다.
“내 말이 들려? 아스모데우스.”
과연 어떤 반응이 나올까.
그 격렬했던 저항을 생각해 보자면, 엄청난 욕설과 비난이 쏟아질 것이 분명했다.
혹시 모르니 일행을 잠시 뒤로 물리고 아이기스의 방패를 시전할 준비를 끝마쳤다.
“……군.”
역시 아스모데우스는 내가 예상할 수 없었던 말을 내뱉었다.
“낭구우우운~♡”
“……에?”
양쪽에 있는 이유지와 루비가 반응할 틈도 없이 아스모데우스가 내 몸을 와락 끌어안았다.
혹시 자폭이라도 하려는 걸까,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살의는 엿보이지 않았다.
퍼덕퍼덕!
아스모데우스의 등 뒤에 달린 날개가 흥분한 듯 펄럭인다.
“하아…… 낭구운. 너무 좋아. 너무 좋아. 응. 이 탄탄한 몸. 정말로 안아보고 싶었단 말이야!”
“……이건 어떻게 된 겁니까, 셀레나.”
“…….”
셀레나는 잠시 고민하더니 내게 말했다.
“아무래도 이서진 씨께서 도중에 했던 게 문제가 됐던 것 같은데요. 아니, 문제라고 할 것까지는 아니고 오히려 잘 된 것 같지만요.”
“중간에 했던 거라면…….”
아스모데우스의 몸을 붙잡고 내 안에 있는 마나와 마기를 강제로 밀어 넣었을 때를 말하는 것이다.
안환재의 장난을 떠올려 그대로 시도해본 것이다.
“이, 이게! 지금 뭐 하는 거야! 당장 안 떨어져?”
“아아, 낭군님. 나만의 낭군님. 들리고말고요. 저, 아스모데우스는 당신의 말을 제외하곤 그 어떠한 말도 들리지 않는답니다.”
“너 다 듣고 있잖아! 떨어지라고오!”
“……당장 떨어지세요. 이 마귀.”
두 사람은 나를 꽉 안고 있는 아스모데우스를 떼어내기 위해 온갖 짓을 다 했지만, 소용없었다.
마치 안개와 같이 변한 아스모데우스가 공격을 흘려냈기 때문이다.
“후훗. 유감이네요. 절 만질 수 있는 건 이제 낭군님 하나밖에 없는 걸요?”
이것은 아스모데우스의 능력 중 하나일 것이다.
꿈의 통제권이 넘어갔다, 라기보다는 개방품이 그녀가 내게 절대로 해를 끼치지 않을 것이라 판단해 힘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게 허락한 것이다.
“아스모데우스.”
“응? 낭군님, 불렀어?”
“……너 정말 아까 걔가 맞아?”
“어떻게 보이는데? 어떻게 보이는데? 혹시 아까보다 훨씬 예뻐 보인다는 말을 그렇게 돌려 하는 거야? 꺄악! 낭군님. 너무 로맨틱해!”
내 몸에 자리한 기운이 무언가 영향을 줬단 건 확실하다.
“후훗. 이상한 건 아니라고요? 제가 말했던 대로 저는 당신만의 여자가 되었을 뿐이니까.”
우리 낭군님.
우리 낭군님.
아스모데우스가 내게 말할 때마다 달고 살던 말이다.
언약의 조율자 능력은 서로 간의 대화를 이용해서 맺어지는 계약.
“내 입으로 말했잖아. 난 낭군님에게 봉사하고 싶다고. 그 말은 거짓말이 아니야. 물론, 지금과는 조금 형태가 다르긴 했지만?”
“……그걸 믿으라고?”
“흠. 어떻게 해야 우리 낭군님이 사랑스러운 새색시의 말을 믿어줄까…… 아하. 이거면 되겠구나.”
잠시 내 몸에서 떨어져 나와 두 눈을 마주친다.
서서히 짙은 보랏빛으로 변해가는 눈동자.
이전까지 보았던 장난기는 사라진 아스모데우스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나, 아스모데우스는 낭군님의 포로가 된 것을 맹세합니다.”
그녀의 몸에서 흘러나온 묘한 기운이 내 몸속으로 들어온다.
이전에 까망이에게서 느꼈던 것과 같은 감각이다.
지금부터 이 존재는 내 말을 거역할 수 없다.
“어때, 이 정도면 믿어줄 수 있겠어?”
이미 종속의 맹세가 걸린 상황에서 더 이상 계약을 위해 노력할 이유는 사라졌다.
하지만 이해가 가지 않았다.
계약을 했을지라도 그자의 정신까지 영향이 가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정해연의 불공정 계약을 통해 알 수 있다.
까망이의 행동을 질타했던 아스모데우스가 할 법한 행위는 아니었다.
“단지 낭군님의 손길이 닿은 순간, 운명을 느꼈을 뿐이야. 이까짓 마왕의 자리보다 더욱 달콤하고 아름다운 인연.”
운명이 그렇게 쉽게 느껴지면 세상만사가 어렵게 흘러갈 리가 있겠는가.
당장에 내 개방품 중에서도 운명을 느끼게 해주는 물건은 없었다.
내 의구심에 아스모데우스는 매혹적인 웃음을 흘리며 속삭였다.
“원래 비밀이 한두 가지 있을수록 사랑은 더욱 빛이 나는 법이야. 뭐, 낭군님이 정말로 알고 싶다면 말해주지 못할 것도 없지만.”
“……됐네요.”
장시간의 꿈속 표류로 인해 이미 지칠 대로 지쳤다.
거기다가 이제 그녀가 내 말에 복종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으니까.
“후훗. 이해해 줘서 고마워, 낭군님.”
쪽.
내 목덜미에 입맞춤을 한다.
혹시나 하고 거울을 만들어 살펴보니 아니나 다를까 자국이 남아 있었다.
다만, 이전에 보았던 단순한 키스 마크는 아니었다.
좀 더 복잡해 보이는 하트 문양이었다.
“이것은 나와 당신이 연결되어 있단 걸 증명하기 위한 문신이야. 소중하게 간직해 줘?”
아스모데우스는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나더니 손가락으로 제 신체를 가리켰다.
남한테 말하기 부끄러울 부위에 똑같은 문신이 그려져 있었다.
그것은 잠시 후, 안개에 감싸져 가려졌다.
쉿. 하고 손가락으로 입을 막은 아스모데우스가 말했다.
“낭군님한테만 보여주는 거니까, 우리 둘만의 비밀이야?”
“야! 너 방금 뭐 했어! 당장 이리로 안 와!”
“후훗. 잡아볼 수 있으면 잡아보시던가요?”
갸르릉거리며 허공을 떠다니는 아스모데우스를 쫓아다니는 한 마리의 이유지.
“……루비는 뭐 하는 거야?”
“단순히 정화일 뿐입니다. 성자님.”
대체 어떻게 만들어냈는지 모를 물약을 제 손에 직접 묻혀서 정성스레 내 목에 바르고 있는 루비.
“……이걸로 된 거겠지?”
색욕의 마왕이라는 강력한 우군의 확보.
결과적으로는 더없이 만족스러웠지만, 무언가 찜찜한 기분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