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tion is flowing from the water purifier in my house RAW novel - Chapter 144
우리집 정수기에서 물약이 흐른다 145화
40. 너의 이름은(5)
잠에서 깨자마자 내 몸이 무사히 있나 확인했다.
근처 인물들의 강력한 주장으로 인해 구매하게 된 킹사이즈의 침대.
기본적으로 개방이 완료된 것들은 같은 종류의 물건들보다 훨씬 더 기본 성능이 월등해진다.
특수 능력을 제외한 보너스라고 해야 할까.
‘푹신하네.’
당장에 내가 누워 있는 이 침대 또한 이 세상 어느 곳에 있는 것보다 푹신 할 것이다.
기왕이면 더욱 큰 침대를 샀어야 한 것은 아닐까 하는 후회도 든다.
“……너희들 때문에 말이야.”
아스모데우스가 포박되었을 때의 기분이 이러했을까.
순간 나는 이곳이 현실이 아니라, 꿈인 줄 알았다.
다만 나를 단단히 묶고 있는 것이 쇠사슬이 아니라, 훨씬 부드러운 감촉을 지닌 것들이란 게 달랐지만.
죽부인이라도 된다는 듯 날 끌어안고 있는 두 사람.
침대와는 또 다른 푹신함이 내 양팔에 느껴진다.
“으으응…….”
“안 자는 거 알거든? 얼른 일어나라. 애초에 다 같이 깨어났는데 되지도 않는 연기 하고 있네.”
“오, 오 분만 더어어…….”
“서, 성자니임…… 루비의 머리가 어지러운 것 같습니다…….”
“그래라, 그래.”
현실의 육체는 계속 누워 있었지만, 역시 정신적으로는 꽤나 지쳤을 것이다.
어쩔 수 없이 그들의 요구를 받아들이고 누워 있는 상태로 천장을 쳐다보았다.
“후훗. 낭군님. 좋은 아침?”
끝부분이 뾰족한 꼬리와 등 뒤에 달린 악마의 날개.
언뜻 보면 박쥐의 것과 비슷하지만 묘하게 달랐다.
……서큐버스도 따로 날개가 있나?
꿈이 아닌, 현실에서 만나는 것은 두 번째다.
아스모데우스는 이전에 미국에서 보았을 것 이상으로 흉흉한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애초에 그때는 제약으로 인해서 운신이 자유롭지 않았으니까. 본체를 보내지도 않았어.”
“……그럼 그때 그게 그냥 분신이었다고?”
“응. 뭐, 낭군님이 있는 곳을 제외하면 그때랑 상황은 똑같겠지만. 하여간 역겨운 놈들. 언젠가 이렇게 될 줄 알았다니까.”
아마 저 역겨운 놈들이란 저 위에 있는 신들을 말하는 것일 거다.
대한민국은 내 영역 선포로 인해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신의 영향을 받지 않는 땅.
그렇단 건 이곳에서만큼은 아스모데우스 또한 나처럼 힘을 사용하는데 그다지 큰 제약이 없다는 것이다.
떨떠름한 표정을 짓자 아스모데우스가 살포시 내려앉았다.
선명한 복근이 있는 배 위로.
내 왼쪽 가슴에 손을 올린 그녀가 웃었다.
“후훗. 왜 그런 눈을 하고 그래? 이제 와서는 이 힘 전부 우리 낭군님 것이나 다름없는데. 안 그래?”
……그렇긴 한데.
아직도 실감이 가진 않는다.
쉬운 건 아니었지만, 이렇게 일이 잘 풀릴 줄은 몰랐으니까.
“뭐, 저항이라면 더 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럴 필요가 없었으니까. 낭군님이 좋은데 굳이 저항할 이유가 없잖아?”
“……그래?”
오랜만에 이 환골탈태 한 몸이 더없이 고마웠다.
“우리 낭군님은 좀 더 기뻐할 필요가 있어. 그동안 나, 아스모데우스를 제 품속에 넣은 자는 아무도 없으니까.”
마왕이라는 존재가 고작 몇십 년을 살았을 거라곤 생각되지 않는다.
“그럼 대체 몇 년을 살아온 거야?”
“아무리 낭군님이라도 그건 말해줄 수 없답니다? 나이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아요? 겉으로 보이는 게 중요한 법이지.”
내게 살의는 보일 수 없을 텐데도, 어쩐지 눈빛이 살벌했다.
자연스럽게 손이 점점 내려가는 것을 보며 나는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여긴 순둥이 자리야!”
침대 밑에서 튀어나온 순둥이가 내 가슴팍에 찰싹하고 붙었다.
졸지에 자리를 뺏긴 아스모데우스가 눈을 좁히며 순둥이를 보았다.
“……흠. 얘가 그 멸망용의 새끼구나?”
“어? 어떻게 안 거야?”
“나한테서 숨을 수 있는 존재가 그것 외에는 떠오르지 않으니까. 거기다가 외형 자체도 용이잖아?”
역시 마왕은 무언가 다르다는 건가.
순둥이의 정체를 한 번에 간파할 줄은 몰랐다.
“……저기 있잖아, 낭군님. 하나 궁금한 게 있는데.”
진지한 표정의 아스모데우스가 내게 물었다.
“혹시 낭군님은 그쪽 취향인 거야?”
“그쪽 취향이라니?”
“……그 파충류?”
“뭐?”
“지이이인짜 싫지만, 낭군님이 그런 쪽을 좋아한다면 나도…….”
큰일 날 소리를 하고 있다.
미안하지만, 내 성 취향은 그렇게 왜곡되지 않았다.
지금 당장도 나름대로 인내심을 가지고 참고 있으니까.
“……그래? 그러면 이 애는 그년이랑 직접 교배를 해서 낳은 건 아니란 거네?”
“그년?”
“있어. 성질 더러운 파충류 하나가.”
더 이상 말도 꺼내기 싫다는 듯 표정을 찌푸린다.
아마도 또 다른 멸망용. 순둥이의 부모를 말하는 것이다.
성별이 어떻게 될까 했더니, 저렇게 말하는 걸 보니 그런 부분에선 보통 생명체와 다를 것은 없구나.
“부우웅~ 삐비빅! 순둥이의 배터리가 부족합니다. 오늘은 하루 종일 아빠한테 붙어서 마음껏 충전할 예정입니다!”
……그런데 성질이 더럽다고?
도저히 이해가 가진 않았지만, 순둥이는 내 영향을 많이 받은 애니까.
뭐, 다를 수도 있겠지.
“낭군님도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단순히 성질이 더럽다는 말로 설명할 수 없으니까. 애초에 만날 생각을 하지 마.”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야.”
이미 순둥이는 내 삶에 있어서 빠트릴 수 없는 존재이기에 양육권을 두고 다툴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근래 그 마음이 조금 흔들리고 있었다.
“……? 헤헤. 이건 무슨 놀이야아?”
두 귀를 막은 내 손을 만지작거리며 방실방실 웃는 순둥이.
언젠간 이 아이에게 진짜 부모의 존재를 알려주고 싶었으니까.
“낭군님을 위해서 하는 말이야.”
진지한 표정으로 충고하는 아스모데우스에게 고개를 끄덕여 줬다.
뭐, 지금 당장 만날 생각은 없으니까.
그쪽에서 직접 찾아오지 않는 이상 그런 일은 없겠지.
“응. 그것이라면 문제 될 것 없어. 걱정하지 마. 직접 찾아가지만 않으면 되는 거니까.”
결국에는 직접 이계로 향하긴 해야 한다.
까망이가 그곳에 있으니까.
“그래서 이제는 말해줄 거지?”
“후훗. 맨입으로?”
“…….”
나는 손바닥에 마기를 넓게 퍼트리고 둥실둥실 떠다니는 아스모데우스의 꼬리를 붙잡았다.
“흐읏?”
아무래도 내 몸에서 흐르는 기운에 격하게 반응하는 것 같았으니까.
거기다가 꼬리가 있으면 일단 잡고 싶은 생각이 든다.
자연스럽게 내 배에 둘려 있는 얼룩무늬 꼬리도 같이 붙잡았다.
“흐얏? 자, 잠시만! 이, 일어날 테니까! 서진아아!”
“후훗. 원하던 건 이런 게 아니었지만, 뭐 나쁘지는 않네?”
계속해서 꼬리를 만지작거리는 내 손길이 썩 기분 좋은 듯 만족스러운 웃음을 흘린 아스모데우스가 말했다.
“알았어. 데려가 줄게. 대충 어디 있는지 알 것도 같아. 그 음침한 방구석 폐인이 갈 곳이라 해봐야 그리 많지도 않으니까.”
본인은 잘 안다는 것처럼 말한다.
원래부터 까망이와 교류가 있었던 편인가?
“이계에 있는 존재라면 그리드를 모르는 놈은 없을걸? 걘 탐욕 그 자체니까. 어떻게든 엮일 수밖에 없거든. 뭐, 이제는 아니겠지만.”
“내가 탐욕이니까?”
“응. 두 명의 탐욕은 존재할 수 없으니까.”
“……그럼 까망이는?”
내가 하고 있던 걱정이다.
평범한 인간이 아니라, 마왕이라는 직위에 있던 존재다.
휴대전화의 사진이 지워지지 않았다고 해서 살아 있을 거란 확신은 없었다.
“후훗. 걔가 괜히 탐욕으로 선택된 존재겠어?”
“그 말은?”
“살아 있어. 그 힘이 미약하긴 하겠지만. 그러니까 그놈이 애새끼 같다는 거야. 아주 꼭꼭 숨어 있겠지. 걱정하지 마. 낭군. 그리 쉽게 발견되진 않을 거야.”
아스모데우스의 손에 보랏빛 구체가 떠오른다.
내가 가진 것과 비슷한 힘.
저것이 색욕色慾의 근원이다.
“힘의 근원은 그만큼 우리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이야. 원래라면 낭군님에게 힘을 넘긴 즉시 존재 자체가 사라졌어도 이상하지 않아.”
그런데도 까망이는 아직 살아 있었다.
탐욕.
끊어내려 해도 끊어낼 수 없는 깊은 욕망.
―춥고 어두운 곳은 싫어요.
―저는 이곳에 있어도 되는 건가요?
언젠가 까망이가 했던 말이다.
아직도 우리와 있기를 원했기에, 그는 무의식적으로 아주 미약한 힘을 남겨둔 것이다.
혹시 자신을 찾아올지도 모른다는 자그마한 탐욕을 간직하고서.
아스모데우스의 말이 이해가 갔다.
그야말로 어린아이 같이 알아보기 쉬운 행동이다.
하지만 오히려 그것이 맞았다.
“그야 까망이는 순둥이 동생인걸!”
원래 그 나잇대는 알기 쉽게 행동하는 편이 더 어울리고 좋다.
“저기, 낭군. 그리드 걔도…….”
“자꾸 그러면 너한테 강제로 캐물을 줄 알아.”
“응, 낭군! 그리드 걘 하는 짓이 애 같으니까, 나이도 비슷할 거야!”
지금 당장에 균열 너머로 향하고 싶었지만…….
“이번에 이계로 가게 되면 일이 끝날 때까지 지구로 돌아오지 못할 거야. 아무래도 마왕은 서로의 힘에 민감하니까. 혼자라면 몰라도 두 명의 마왕이 같이 있는데 알아차리지 못할 리가 없겠지.”
지금 현실에 들이닥친 문제도 급했다.
언제까지고 던전이 없는 채로 있을 수는 없었으니까.
단순히 보급 문제가 아니라, 언젠가 다가올 날을 위한 전투 훈련을 위해서라도 그랬다.
무슨 좋은 방법이…….
“잠깐.”
꽤 그럴듯한 생각이 떠올랐다.
나 혼자라면 애매했겠지만, 아스모데우스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내 의견을 들은 아스모데우스가 배를 잡고 웃기 시작했다.
“아하핫! 진심이야, 낭군?”
“이게 될지는 모르겠는데, 시도해 볼 가치는 있어.”
“응. 응. 이래야 내 낭군이지. 하아…… 그놈들한테 이렇게 골탕을 먹일 수 있을 줄은 몰랐는데 말이야. 하하핫!”
대한민국이 아닌 곳은 마기의 운용이 제한된다.
그렇다면 마기가 아니라, 내가 원래 사용하던 힘을 쓰면 될 일이다.
스윗 하우스의 업그레이드가 완료되면서 그 기능 또한 바뀌었다.
이제는 무작위가 아니라, 내 선택으로 인해 개방품을 고를 수 있게 되었다.
컴퓨터, 냉장고, 에어컨 등.
아직 개방되지 않은 물건들은 많았다.
개방 후의 능력은 정확히 알 수 없었기에 신중하게 골라야 하지만…….
‘촉이 와.’
누군가 들으면 왜 하필 그딴 걸 고르냐고 화를 낼 정도로 어이없는 선택이겠지만, 그동안 겪어온 감이 말하고 있었다.
“개방할 물건을 결정하겠다.”
저 쓰레기통이 내게 행운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 * *
세상엔 이전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많은 던전들이 생겨나고 있었다.
그에 따라 각 나라에 있는 길드들은 현재 최전성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던전의 수가 많았기에 더욱 효율이 높은 것들을 남겨 활용할 수 있었다.
“크하핫! 대박이야, 신님 아주 대박이라고!”
프랑스에 있는 조엘은 한 대형 길드의 수장으로서 이 상황이 미치도록 반가웠다.
사람들은 대재앙이라고 불렀지만, 그가 생각하기엔 전혀 그렇지 않았다.
“대체 벌어들인 돈이 얼마야?”
각 알짜배기 던전들에서 나온 고품질의 전리품들을 떠올리면 웃음이 떠나가질 않았다.
우연이라도 되는 걸까.
그 신이라는 존재를 더 깊게 믿고, 신실하게 기도할수록 그러한 던전에 당첨될 확률이 높아졌다.
물론, 단순히 기도만 한 것은 아니다.
“흐흐. 신이라는 작자들이 그렇게 융통성 있을 줄이야.”
예를 들어, 프랑스에 있는 비탄의 신을 위한 동상을 세운다거나, 그를 위해 만들어진 종교에 헌금을 낸다든가 하는 행동 말이다.
당장 어젯밤 꿈속에 로또 번호라도 알려주듯이 신의 목소리가 직접 들렸기 때문이다.
―이곳으로 간다면 네가 원하는 것을 얻게 될 수 있을 것이다.
“어이쿠. 신님한테 이런 말투를 쓰면 안 되지. 아, 이제는 성좌라고 부르라고 했었나.”
신이란 것이 인간들에게 받아들이기 힘들단 것을 알기라도 하는 걸까.
그들은 자연스럽게 자신들을 성좌라고 칭하기 시작했다.
“성좌. 썩 괜찮은 울림이란 말이야.”
인간들에게 힘을 내려주며, 금은보화나 다름없는 던전을 내려주기도 한다.
혹시 대격변 사태와 던전들이 신들과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 의심을 하는 사람은 많았지만, 입 밖으로 꺼내는 자는 없었다.
그 신이라는 게 추상적인 게 아니라, 실제로 존재하고 있으니까.
밉보이기라도 하면 큰일인 것이다.
“뭐, 나야 좋으니까.”
뭣 모르는 것들이나 그들을 거부하는 것이지.
이것은 축복이나 다름없었다.
조엘은 이 신이란 종족들이 너무도 마음에 들었다.
“자아, 그럼 이번엔 던전 안에서 뭐가 나올지 확인해 볼까요. 흐흐.”
혹시 황금 고블린이라도 나오는 거 아니야? 그런 기대를 품고 비탄의 신이 알려준 장소로 향한 조엘은 믿기 힘든 광경을 목격했다.
“이, 이게 뭐야!”
던전이 붕괴하고 있었다.
이것은 던전 꼭대기 층에 있는 코어가 파괴되었을 때만 일어나는 일이다.
“기, 길드장님. 큰일 났습니다!”
이곳뿐만 아니라, 길드가 보유한 던전들이 하나둘 무너져 간다.
“이런 미친!”
이것은 비단 프랑스에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니었다.
성좌들을 따르기로 결정한 각 나라의 던전들이 조금씩 붕괴되고 있었으니까.
그것도 전리품이 잔뜩 나오는 알짜배기들만 골라서 말이다.
“아, 안 돼!”
조엘이 비명을 질렀다.
“좋아. 이걸로 열 개.”
그 비명 속에서 한 사내가 부서진 던전의 코어를 재활용 쓰레기봉투 안에 넣고는 히죽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