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tion is flowing from the water purifier in my house RAW novel - Chapter 147
우리집 정수기에서 물약이 흐른다 148화
41. 자식은 부모의 거울이다(1)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것을 어떤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인원이 마찬가지인 듯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그 대신, 내 눈앞에 어떤 ‘메시지’가 미친 듯이 떠오르고 있었다.
요즘 들어서 코빼기도 보이지 않던 상태창이 나타났다.
내 시야 전체를 가리는 붉은색의 경고 표시.
단순 시스템이라기엔 누군가가 적은 듯한 문장.
의문을 가질 시간은 없었다.
“어디 숨어 있나 했더니.”
상태창에서 시선을 떼고 고개를 들었다.
날 노려다 보는 흑발 흑안의 여인. 흔하디흔한 검은색은 아니었다.
감히 그 어떤 빛도 침범하지 못할 만큼 진한 흑빛.
언제나 내 배 위에서 몸을 둥글게 마는 어떠한 생명체와 똑 닮은 색깔이었다.
“배짱 한번 좋구나,”
‘……낭군. 절대로 저년이랑 눈 마주치지 마. 어떻게든 시간만 끌면, 내가 탈출할 방법을 마련해 볼게.’
아스모데우스가 내 머릿속으로 몰래 전음을 보냈다.
그녀는 현재 내 등에 숨어 최대한 은밀하게 힘을 운용하고 있었다.
“그게 가능할 거라고 생각하느냐. 내 눈을 보거라. 이 어리석은 피조물아.”
“……!”
분명히 나한테만 들렸을 텐데, 자연스럽게 대화 내용을 알아챘다.
억지로 돌렸던 고개가 재차 돌아간다.
그 어떤 인간보다 신비로움과 고풍스러운 매력이 흘러넘치는 외견.
눈에 있는 동공은 세로로 길게 찢어진 파충류와 같았다.
그럼에도 그것이 불쾌하다거나 느껴지진 않았다.
저 모습마저도 분위기와 어우러져 더없이 어울렸으니까.
황금처럼 빛나는 두 눈동자가 나를 응시했다.
그것만으로도 내 몸은 긴장으로 굳어버렸다.
‘……저게 또 다른 멸망용.’
멸망용의 새끼인 순둥이와 한 시도 떨어지지 않아서인지, 그 동안 확인 되지 않던 정보가 공개 되었다.
「멸망용, 베르니아」
언젠가는 만날 것이라고 생각했던 내 딸 서율이의 생물학적 부모.
물론 조금씩 각오는 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갑작스럽게 성사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감히 내 알을 훔쳐간 놈이 어떻게 생겨먹었나 했더니, 한심하기 짝이 없는 얼굴이로구나.”
“어머. 고작 파충류 주제에 감히 남의 낭군님 외모를 품평하고 있는 거야~?”
더 이상 숨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 했는지 아스모데우스가 투명화를 풀고 허공에서 내려왔다.
“흠. 누군가 했더니, 남의 피나 탐내고 다니던 모기 새끼인가. 내가 오랜 기간 잠에 든 건 확실한 것 같구나. 분명히 눈길 한 번만 줘도 도망쳤었는데 말이야.”
“똥이 더러워서 피하지. 무서워서 피하니? 안 그래도 덩치도 큰데 그 양도 어마무시할 거 아니야. 웩. 내 몸에 튀기라도 하는 순간 몸이 곧바로 녹아버릴걸?”
다소 유치해 보이는 폭언.
아무리 그렇다 해도 상대방은 고귀하다고 알려진 용족.
저런 단순한 도발에 걸려들 리가…….
“아무래도 네년이 죽고 싶은가 보구나.”
아주 확실하게 걸려든 모양이다.
멸망용이 한쪽 손을 들어 올리려는 순간.
그녀가 밟고 서 있던 땅이 흔들리더니 괴성과 함께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방금까지 잊고 있던 황소의 머리를 한 괴물이었다.
“크아아아아아아! 감히, 어떤 놈이냐!”
단번에 곤죽이 될 줄 알았던 분노의 마왕이 살아 있었다.
온몸을 피로 붉게 물들이고, 악에 받친 눈동자로 우리들을 쳐다본다.
“얄팍한 수를 쓰는구나! 아무리 인간일지라도 전사에 대한 예는 갖출 줄 알았거늘!”
……쟨 뭐라는 거냐.
아무리 머릿속에 전투 빼곤 들어 있지 않다고 해도 뭔가 이상했다.
아니나 다를까, 내 손목시계는 상대방의 말이 거짓임을 밝히고 있었다.
그렇다면 분노의 마왕이 저러는 이유는 단 하나다.
‘와. 진짜 이 악물고 안 쳐다보네.’
바로 위에 두둥실 떠 있는 베르니아를 어금니 다 박살 날 정도로 무시하며 우리를 향해 으르렁거린다.
“마왕끼리 손을 잡는 거로도 모자라 이런 기습을 하다니. 부끄럽지도 않으냐, 이놈!”
“……서진아, 쟤 왜 저래?”
마찬가지로 굳어 있던 이유지도 어이없는지 말문이 트인 모양이다.
자세히 보니까, 몸에는 피보다 식은땀이 더욱 많았다.
분노의 마왕, 아몬.
화를 절대 못 참을 것 같던 그 존재는 지금 그 누구보다 완벽한 분노 조절을 보여주고 있었다.
“전사로서 이런 비겁한 겁쟁이와는 싸워줄 수 없다! 다시는 내 앞에 얼씬거릴 생각도 하지 말거라!”
바닥에 처박힌 제 도끼도 버려둔 채 다급한 몸놀림으로 뒤를 돌고 걷기 시작한다.
분명히 방금 전까지는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할 무시무시한 포스를 뿜던 마왕이었는데…….
“잠깐.”
물론, 그냥 놔줄 생각은 없었다.
지금은 한 명이라도 더 있는 게 시선 분산에 좋을 테니까.
“야. 위에 봐봐.”
“겁쟁이와는 더 이상 할 말 없다.”
“위에 보라니까? 고개 조금만 들라고. 지금 너 땅바닥만 쳐다보고 있잖아.”
“미노타우르스 족의 위대한 전사, 아몬은 태어나고 지금까지 적 앞에서 고개를 숙인 적이 없다.”
도저히 말이 안 통한다.
아몬은 개의치 않고 뚫린 구멍을 통해 마저 걸어갔다.
물론, 그렇게 쉽게 될 리는 없었다.
“어딜 나가려 하느냐.”
쿠웅!
멸망용의 한마디에 아몬이 서 있는 일대의 땅이 깊게 파였다.
마왕 중에서 가장 강한 괴력을 소유했다는 건 거짓말이 아닌지, 저 무시무시한 압력을 버텨냈다.
“끄윽…….”
물론 그뿐이었다.
어마어마한 중력이 그를 짓눌렀고…….
쾅! 쾅! 쾅!
무차별로 바닥에 처박히게 되었다.
“지금 이 검은 숲 안에 있는 놈들은 단 한 마리도 밖으로 나갈 수 없다.”
……강할 거라고는 생각 했지만, 저게 말이 되는 건가?
“……이 검은 숲이 멸망용의 레어나 다름없는 곳이라서 그래. 사실 레어라기보단 감옥이라 부르는 게 맞긴 하지만.”
주변 풍경이 어느새 바뀌었다.
녹음이 가득 차 있던 숲은 사라지고, 그 어떤 생명도 살아갈 수 없을 만큼 흉흉한 장소가 되어 있었다.
아몬을 무시하고 내게 다시 시선을 돌리는 베르니아.
“이 몸이 널 얼마나 찾아 다녔는지 아느냐.”
“일부러 낭군님한테 붙어서 기척을 숨기고, 기회를 노리고 있던 거야.”
“나를 피해 그동안 꽤 잘 숨어 있던 모양이지만, 더 이상은 놓칠 생각이 없다.”
“이곳에서라면 낭군님을 확실하게 잡을 수 있을 테니까. ……역시 고대룡. 인정하긴 싫지만, 녀석의 작전에 우리가 당했어.”
베르니아와 아스모데우스의 말이 번갈아 들린다.
무언가 두 사람이 하는 말이 다르다.
“그게 아니라면 멍청이도 아니고, 낭군님을 못 찾아올 리가 없잖아?”
휙!
미래시를 통해 무언가 날아오는 것이 보였다.
내가 아니라, 아스모데우스를 노리는 공격이다.
그녀의 몸이 곧바로 연기처럼 흩어져 그것을 피해냈다.
아무런 제스처도 말도 없이 이루어진 공격이었다.
‘……이거 위험한데.’
숨 쉬듯 자연스러운 공격이 이쪽에게 있어선 단 한 순간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치명타다.
“내가 왜 네놈을 죽이지 않고 있는지 알고 있겠지?”
마음만 먹으면 이곳에 등장한 순간부터 내 몸을 터트렸을 것이다.
그러지 않는 이유는 단 한 가지.
“네가 훔쳐간 내 알…… 아니, 그곳에서 부화한 이 몸의 새끼는 어디 있지?”
순둥이다.
나는 내 배에 묶여져 있는 커튼을 꽉 잡았다.
이것이 흔들린단 건 까망이를 찾고 나올 준비가 됐다는 뜻이다.
“천 번을 찢어 죽여도 모자라겠지만, 마지막으로 기회를 주겠다, 아둔한 피조물아.”
멸망용, 베르니아가 목소리에 힘을 담아 말했다.
그것만으로도 말은 언령言靈이 되어 내 귓속을 파고들었다.
“당장 내 앞에 멸망용의 새끼를 두고 이곳에서 꺼져라.”
지금 이곳에서 순둥이를 넘긴다면, 정말로 보내줄지도 모른다.
상대방은 용이다.
자기가 내뱉은 말은 확실히 지킬 것이란 걸 은연중에 알 수 있었다.
“……그래?”
하지만 그런 선택지는 나한테 없다.
아빠라고 불리기에는 한참 모자라지만, 나는 이서율의 부모니까.
최소한 나는 딸을 버리는 아버지는 되지 않을 것이다.
거기다 상대는 멸망용. 생물학적 부모라고 해도 순둥이를 어떻게 할지 알 수 없었다.
“난 그럴 생각이 없는데.”
“그렇다면 죽어라. 어리석은 녀석.”
이 검은 숲 전체를 장악하고 있는 멸망용의 기운.
조금 힘들었지만, 적응할 시간은 충분했다.
“네가 진짜 부모라고 해도 상관없어.”
“내 딸은 절대 못 넘겨.”
땅에서 거대한 가시들이 솟아올랐다.
하지만 우린 이미 그곳에 없었다.
펄럭!
“나, 날개?”
양손에 이유지와 루비를 끌어안은 채로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펄럭!
왼쪽 등에 돋아난 검은 날개가 내 몸을 지탱했다.
“낭군. 괜찮겠어?”
“어. 괜찮아. 많이 해봤으니까.”
이곳으로 오기 전에 아무것도 안 한 것이 아니다.
몸에 자리 잡은 탐욕의 권능을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아스모데우스와 꿈속에서 수많은 연습을 했다.
이것은 그 권능 중 하나다.
욕망의 좌익左翼.
아직은 한쪽뿐이지만 비행하는 데에 큰 제약은 없었다.
“그 어떤 짓을 하더라도 벗어날 수 없다. 이곳은 멸망용의 둥지.”
나와 베르니아 사이의 거리가 순식간에 좁혀졌다.
“나, 멸망용. 베르니아가 묻는다.”
그녀가 움직인 게 아니라, 말 그대로 우리 둘 사이의 공간이 접힌 것이다.
“당장 내게 말해라. 내 새끼는 지금 어디에 있지?”
서로의 얼굴밖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서 서로의 눈이 마주했다.
그녀의 눈동자를 본 나는 흠칫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 마주하는 전설적인 생명체에 대한 두려움 때문은 아니었다.
“낭군? 지금이야!”
“……알았어.”
아스모데우스의 신호와 함께 준비해 두었던 걸 발동했다.
이 일대 전체를 장악하고 있던 멸망용의 기운이 흩어졌다.
[‘스윗 하우스’의 능력이 발동합니다!]마치 집 안을 재배치하듯이 베르니아와 우리 사이의 거리가 벌어진다.
그와 동시에 힘을 운신하는데 제약이 사라진 아스모데우스가 제 권능을 사용했다.
“매혹의 손길!”
그녀의 손가락에서 쏘아진 보랏빛 하트가 바닥에 쓰러져 있는 아몬에게 적중했다.
“원래라면 마왕급한테는 절대로 사용할 수 없을 테지만…… 후훗. 운이 좋았어. 지금이라면 가능해.”
분노의 마왕, 아몬.
기절해 있던 그가 서서히 바닥에서 몸을 일으켰다.
분노에 가득 찬 얼굴. 다만 아까와 다른 것이 있었다.
아몬의 눈동자가 아스모데우스의 것과 같은 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꿈속에서 내게 사용하려던 권능.
아몬의 육체에 대한 통제권이 아스모데우스에게 넘어갔다.
“크어어어어어!”
분노를 여과 없이 표출하며 아몬이 베르니아에게 달려들었다.
아까와는 달리 몸이 짓눌려진다거나 하는 것은 없었다.
영역 선포로 인해 이곳 일대의 통제권이 둘로 나누어졌고, 아몬 또한 마왕이라는 자리에 있는 존재였으니까.
콰앙!
엄청난 괴력이 담긴 주먹이 베르니아의 몸에 들이박혔다.
“성자님!”
“서진아!”
두 사람의 외침에 나는 그 둘을 허공으로 던졌다.
“아이기스의 방패.”
이전과는 달리, 허공에서 여러 개의 은빛 방패가 나타났다.
그것들을 발판 삼아 이유지와 루비 또한 베르니아를 향해 재빠르게 다가갔다.
철문조차 가볍게 부술 웨어울프의 다리가 복부에 꽂혔고.
양손에 들린 두 개의 철퇴가 오른쪽 팔에 적중했다.
평범한 존재라면 절대로 버티지 못할 합동 공격.
“……!”
곧바로 두 사람을 내 옆으로 이동시켰다.
피어오른 흙먼지가 가라앉자, 모든 공격을 다 받고도 아무런 상처 없이 고고히 서 있는 베르니아가 있었다.
“아무래도 말이 통하질 않는 모양이구나.”
그 정체조차 확인할 수 없는 고대 마법들이 우리를 향해 시전되었다.
“이건?”
“꺄악!”
아직 사용하지 않은 몇 가지 수단.
이곳에 존재하는 세 가지 마왕의 근원.
그 모든 것을 무시하고 멸망용의 마법은 우리들을 순식간에 무릎 꿇렸다.
퍼엉!
거대한 파공음과 함께 내 몸이 어느 거목에 처박혔다.
“커헉!”
주변을 둘러보니 나를 제외한 모든 인원이 기절해 있었다.
……진짜 터무니없네.
저 가공할 만한 능력은 이 장소에 한정된 것이 아니었다.
그저 그 자체로 강한 것이다.
멸망용, 베르니아.
명실상부 지금까지 본 그 어떤 존재보다 강력한 고대룡이 지상으로 내려와 내게 천천히 걸어왔다.
“말하고 싶지 않다면, 상관없다.”
거목을 등지고 있는 나를 내려다보며 베르니아가 말했다.
“저들 또한 소중한 것을 잃고 난다면, 이 몸이 무슨 기분인지 알겠지.”
이 숲 자체를 날려버릴 만큼 고밀도로 압축된 에너지.
그것을 담은 가느다란 손이 내 목에 닿는다.
내 몸속에 있는 마나와 마기 그리고 탐욕의 근원이 그 기운에 저항해보았지만, 소용없었다.
‘……신기하네.’
이런 상황에 할 말은 아니었지만, 어쩐지 내 앞에 있는 이 존재가 순둥이와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 돼!”
천천히 감겨가는 눈동자 사이로 아기자기한 목소리가 들렸다.
목을 잡고 있던 손이 떨어진다.
그와 함께 내 앞에 고작해야 초등학생 정도의 키를 가진 소녀가 두 팔을 벌리고 막아섰다.
“아저씨, 괜찮으세요?”
순둥이와 까망이가 밖으로 나온 것이다.
나는 까망이의 부축을 받으며 눈앞의 광경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두 멸망용의 만남.
부모와 자식 간의 재회.
“너는…….”
그녀가 알아보지 못할 리가 없었다.
이 세상에 단 둘뿐인 핏줄이었으니까.
베르니아가 아무런 힘도 담기지 않은 손을 조심스럽게 뻗었다.
탁!
나는 두 눈을 크게 떴다. 순둥이가 그 손을 쳐낸 것이다.
처음 듣는 순둥이의 앙칼진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빠를 괴롭히는 못된 아줌마! 순둥이는 너 싫어! 다가오지 마!”
나는 제 아빠를 지키려는 딸의 뒷모습에서 눈을 떼고 베르니아를 보았다.
아까 눈동자 너머로 보였던 감정은 착각이 아니었다.
이것은 멸망용이라는 생명체에게서 보이기에는 더없이 인간다운 감정.
순둥이의 말을 들은 베르니아가 충격에 빠진 표정을 짓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