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tion is flowing from the water purifier in my house RAW novel - Chapter 15
우리집 정수기에서 물약이 흐른다 016화
6. 저게 왜 보이냐(2)
처음에는 착각인 줄 알았으나, 이전보다 향상된 시력은 빌어먹게도 저것이 균열이라는 확신을 주고 있었다.
“뒤에 뭐가 있나?”
“아무것도 없는데?”
다른 사람들은 내가 바라보는 곳을 보며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당연하다. 그곳엔 ‘아직’ 아무것도 없으니까.
내 눈에 보이는 예고 메시지.
나는 어지럽다는 핑계로 잠시 내려와 한쪽에 있는 렌즈를 빼냈다.
왼눈과 오른눈을 번갈아 보기를 반복.
이것이 왜 일어난 것인지 알 수 있었다.
“남들은 볼 수 없는 특이한 것을 볼 수도 있다더니…… 이런 거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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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체를 탐색하는 콘택트렌즈」
설명: 【만물의 주인】 이서진이 착용할 경우 눈에 보이는 물체를 탐색할 수 있다.
*렌즈 착용 시 착용감과 시력 보정 효과가 적용됩니다.
*타인은 볼 수 없는 특이한 현상을 탐색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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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집을 나오기 전, 개방권을 사용해 능력을 해방한 물건이다.
콘택트렌즈.
시력이 안 좋았기에 안경과 렌즈 사이에서 어떤 것을 개방할지 고민했다.
결국 선택한 것이 콘택트렌즈.
이유는 별거 없다.
나한테 안경이 안 어울리니까.
누가 들으면 고작 그런 이유라고 할 수 있겠지만, 나 같이 평범한 사람에게는 그런 마이너스 요소를 최대한 줄이는 게 중요하다.
어쨌든 다행스럽게도 렌즈에서 내가 바라던 기능들이 나왔다.
착용감과 시력 보정 효과.
선명하게 보이는 건물들과 착용하지 않은 듯한 착용감.
그리고 이름부터 알 수 있듯이 물체를 ‘탐색’하는 능력.
……솔직히 쓸모없다고 생각했다.
누가 돌이 돌인 걸 모른단 말인가.
모르는 것만 해도 요즘은 인터넷만 검색하면 다 나온다.
하지만 애초부터 시력 보정이 목적이었으니 만족하고 넘어갔었는데.
“균열이 보인다니.”
탐색 및 탐지 스킬을 가진 각성자들은 많다.
타인의 상태창을 훔쳐보던가, 주변의 숨겨진 함정을 밝혀낸다든가.
하지만 아직까지도 균열을 탐지할 수 있는 각성자는 없다.
‘오직 나만이 균열이 일어날 것을 알고 있다.’
“이제 좀 괜찮으십니까?”
“아. 예. 잠깐 빈혈기가 있어서.”
“그래요? 각성자가 빈혈이 일어나는 건 흔치 않은 일인데.”
이 균열에 대해 말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결심했다.
아무래도 사람 목숨이 달려 있는데 말해야지.
“저기…….”
부웅-
“아. 잠시만요.”
진동이 울리는 휴대폰을 받은 이태영의 얼굴이 심각해져 간다.
“예. 예. 당장 그쪽으로 가겠습니다. 주변 민간인 통제하고, 나머지 분들도 신속하게 움직여 주세요.”
전화를 끊은 이태영이 날 보았다.
“아무래도 수상식은 여기서 끝내야 할 것 같습니다. 지금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인 균열 발생이 일어났다고 하네요.”
이유지 또한 분위기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는지, 단상에서 내려와 이쪽으로 다가왔다.
“뭐야? 뭔 일인데?”
“선배. 지금 당장 가보셔야 할 것 같은데요.”
이태영의 말을 들은 이유지가 얼굴을 찌푸렸다.
“하여간. 이놈들은 적당히가 없어요. 적당히가. 미확인이면 미확인만 나올 것이지, 동시에 튀어나오는 건 뭐야?”
“이전에 나왔던 균열들이라 다행이긴 한데, 하나같이 중형급 이상 균열이에요.”
“이번에 대처 잘못하면 우리 진짜 ㅈ 되는 수가 있어.”
“무슨 말을 그렇게…….”
“뭐. 맞잖아.”
쯧-
혀를 찬 이유지가 나를 보며 말했다.
“그…… 균열 막아주신 건 감사하고요. 방금 대화 들으셨죠? 아무래도 개 같은 균열 때문에 가봐야 할 것 같네요. 그쪽도 조심해서 가세요.”
이제 기자들은 내게 관심조차 없었고.
주변에 있던 사람들도 제각기 빠르게 철수하고 있었다.
이곳은 구석진 공터.
얼마 안 있으면 아무도 남지 않게 될 것이다.
그리고 탐지되지 않은 균열에서 튀어나온 마물이 이 일대를 돌아다니겠지.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예? 저희 바쁜…….”
“대략 삼십 분 뒤에 이곳에서 균열이 열릴 겁니다.”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얼굴을 찌푸린다.
이유지가 옆에 있는 이태영의 옆구리를 치며 물었다.
“야. 이태영. 지금 여기서 균열 열린다는 신호 온 거 있냐?”
“아뇨. 이 근처에는 없어요. 그보다 지금 빨리 가봐야 한다니까요?”
“흠. 그렇다는데요.”
이거 뭔 내 눈을 대신 보여줄 수도 없고, 증명하라면 딱히 증명할 방법이 없다.
정해연에게 연락을 할까?
아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균열에서 튀어나온 마물을 상대할 수 있을까.
물약은 가지고 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엔 어쩐지 꺼림칙하단 말이야.’
동시다발적인 균열 생성.
그리고 마치 시선 돌리기라는 듯, 이런 구석진 곳에 나타나는 미확인 균열.
마치 누군가가 ‘계획’한 것 같은 짜임새다.
“흠.”
내가 의견을 굽히지 않자, 이태영이 알겠다는 듯 어딘가로 전화를 건다.
“경찰에게 따로 연락을 해둘게요. 소형 균열에서 나오는 마물 정도면 총기로도 충분히 제압이 되니깐.”
내가 이전에 상대했던 샤프 하운드 또한 그랬다.
민간인과 다를 바 없는 나도 처리한 마물이다.
분명 그 정도로도 충분하겠지만…….
하는 수 없지.
“제가 미확인 균열을 감지할 수 있는 고유 능력을 가지고 있어서 그럽니다.”
“뭐, 뭐라고요? 그걸 지금 믿으라고…….”
균열을 감지할 수 있는 건 맞으니까 거짓말이 아니다.
물론 그동안 나온 적 없는 능력이기에 믿기는 힘들겠지.
그때 돌연 이유지가 앞으로 나왔다.
“그래? 내가 여기 남지, 뭐.”
“예? 선배!”
그렇게 정하기로 한 이상 그걸로 끝이라는 듯,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는다.
“하…… 대체 무슨 근거로 여기 남겠다는 건데요?”
그 말에 이유지는 당연하다는 듯, 팔짱을 끼며 말했다.
“당연히 내 감이지.”
* * *
열리기 직전인 중형급 균열 앞에 선 이태영이 얼굴을 찌푸렸다.
‘사람 그렇게 안 봤는데.’
균열을 탐지할 수 있는 탐지계열 각성자라고 했나.
믿을 가치도 없는 거짓말을 한 그에게 실망했다.
“말이 되는 거짓말을 해야지.”
자신이 속한 곳은 균열 관리부다.
대한민국을 대표한다고 해도 될 만큼 탐지계열 각성자가 많은 곳.
그런 곳에서 근무하는 이태영이기에 그들에 대한 것은 샅샅이 알고 있었다.
타인의 정보를 캐내기 위해 눈을 굴리는 걸 쉬지 않는 족속들.
그러나 이서진은 자신에게 집중은커녕, 오히려 포도맛 음료수에 더 관심이 있어 보였다.
거기다가 결정적으로 탐지 계열 스킬도 스킬이다.
사용하려 한다면, 어떻게든 마나의 흐름에 변동이 있게 마련이다.
협회에 등록되지 않은 각성자.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그런 존재를 자신이 눈을 뗄 리가 없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그는 스킬을 사용하는 낌새조차 없었다.
“그럼 역시 목적은 선배인가.”
자신이야 옆에서 온갖 히스테리한 짓을 많이 봤다지만, 외모만큼은 기관 내에서 소문이 자자한 그녀다.
처음 만난 그에겐 충분히 매력적으로 느껴졌을 터.
“뭐, 그게 거짓말이란 게 들통 나는 순간 그런 생각은 곧장 없어지겠지만.”
마물이 아닌, 이유지를 제압하려고 쩔쩔매는 경찰을 상상하면서 이태영이 폰을 들었다.
어느새 올라온 이서진과 관련된 뉴스.
댓글난에 간단한 말 하나를 쓴다.
-이 사람 순 거짓말쟁이던데.
그는 올라가는 추천 수를 확인하고는 피식 웃었다.
* * *
“…….”
“……”
아무도 없는 공터에 있는 두 명의 남녀.
마찬가지로 아무런 말도 없는 상황에 나는 부담스럽게 자리에 앉아 있었다.
‘이거 진짜 나오는 건 맞겠지?’
양반 다리를 하면서 눈을 감고 있는 이유지를 보자니, 균열이 나타나지 않으면 큰일이 날 것만 같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삼십 분이 지났을 무렵.
허공에서 서서히 균열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나무뿌리가 뻗은 듯, 복잡한 모양.
분명 삼십 분 전에 봤던 그 균열이 맞았다.
‘그런데 아직 경찰이 도착 안 했는데?’
이곳에 있는 것은 싸움은 할 줄도 모르는 평범한 남성 하나와 마찬가지로 균열 ‘관리’부 소속의 팀장뿐이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이곳에 전투 병력은 아무도 없다는 걸 알 수 있다.
그 증거로 이유지는 균열이 발생하고 있는 줄도 모르고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다.
“저기요. 지금 균열이…….”
나타난 것은 소형 균열.
이태영의 예상대로 무장을 한 경찰이라면 충분히 제압 가능한 마물들이 나오는 구멍이다.
하지만 균열에서 나온 것은 익숙한 검은 형태의 마물이었다.
그룸.
어둠 속에서 살아가는 마물.
-!@x$%
균열 밖으로 나오자마자 알 수 없는 말을 내뱉는 놈.
그 존재는 재빨리 다른 곳으로 이동하려다가 공터에 앉아 있는 우리와 눈이 마주쳤다.
-@x$&
재빠르게 경계 태세를 하는 모습.
이전에도 느꼈지만, 이성이 있는 놈이다.
소형 균열에서는 나올 수 없는 종류의 마물.
‘……이거 위험한데.’
손전등을 가져왔으면 모르겠으나, 지금은 아무것도 없었다.
거기다가 아직 태양이 떠 있는 오후.
그룸이 공격을 할 수 있는 밝은 곳이었다.
나는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물약을 빨면서 짱돌로 내려치는 거로 해결될 놈이 아니다.
그건 본능에 충실한 마물이었기에 가능했던 꼼수.
지금이라도 이유지를 데리고 도망쳐야 한다. 그렇게 결심했을 때, 그녀가 천천히 눈을 떴다.
“도망……?”
그녀의 눈을 보자마자, 나도 모르게 숨을 들이켰다.
마치 짐승의 눈을 연상시키는 길고 날카로운 호박색 눈동자.
그녀가 히죽 웃으며 입을 열었다.
“뭐야, 진짜였네?”
만약 거짓말이었으면 어땠을까.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들떠 있는 말투.
“이성을 가진 놈이에요. 경찰이 올 때까지 시간을 끄는 게 낫지 않을까요?”
이유지가 천천히 기지개를 켰다.
“읏차! 경찰?”
이어서 보이는 장면은 눈동자 같은 것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신기한 현상이었다.
그녀의 다리가 짐승의 털로 뒤덮이며 엉덩이 부위에 기다란 꼬리가 나타났다.
“나 혼자면 충분해.”
경계 태세를 하고 있던 그룸이 그림자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 도망쳤다.
그리고 동시에 이유지의 몸이 총알처럼 튀어나갔다.
순식간에 뒤를 잡힌 마물이 제압당한 채로 바닥에서 버둥거린다.
뿌득- 뿌드득!
팔 다리가 비틀리는 기괴한 소리.
-!@x!@$
사지가 부러진 그룸을 뒤로한 채, 이유지가 천천히 다가왔다.
뒷걸음질 치던 내게 얼굴을 들이밀며 그녀가 웃었다.
“우리 동업 하나 하죠. 어때요?”
사냥감을 발견한 포식자와 같은 미소.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고개를 끄덕이는 것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