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tion is flowing from the water purifier in my house RAW novel - Chapter 151
우리집 정수기에서 물약이 흐른다 152화
42. 수많은 가능성(1)
“침입자다!”
“신에게 대항하는 이단자가 이곳에 있다!”
내게로 향하는 수많은 적의.
앞에 있는 사람들이 날 분해시키겠다는 듯 노려보고 있었지만, 그것보다 더 짜증 나는 것은 의기양양하게 팔짱을 끼고 ‘어때?’ 하는 표정으로 날 보고 있는 베르니아였다.
‘진짜 한 대만 쥐어박고 싶네.’
순둥이가 귀엽다면, 베르니아는 얄미웠다.
“네놈이 한국의 이서진이 맞나?”
잔뜩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데, 이 무리의 대표로 보이는 자가 앞으로 나왔다.
겉으로 보기엔 평범한 인간처럼 보였지만, 안에 품고 있는 기운이 조금 낯설면서도 익숙했다.
“고통의 신의 사도 토렌.”
마치 정의의 편이 악을 처벌하기 전에 자기소개를 하듯이 이름을 밝힌다.
나는 얼굴을 굳히고 상대방을 노려보았다.
쓸데없이 진지하게 말하길래, 나도 모르게 ‘나는 대한민국의 이서진이다’라고 뱉을 뻔했다.
‘안 되지.’
가뜩이나 요즘 들어서 나 자신을 주체할 수 없을 때가 많은데, 여기서 흑역사가 더 늘기라도 했다간 큰일 난다.
“……너, 꽤 대단한 놈이구나?”
아마 그것이 저놈의 수작일 것이다.
역시 신의 사도쯤 되는 놈이면 전부 저 정도 되는 걸까.
절대로 얕봐선 안 된다고 굳게 마음먹었다.
“당연하다. 나는 고통의 신의 사도. 신의 뜻에 거역하는 놈들을 벌하기 위해 이 지상으로 내려온 하수인이다.”
“아아, 고통의 신이시여!”
“저희를 구원하소서!”
“성좌님이시여! 저희에게 저 무지한 자를 벌할 힘을 주소서!”
토렌인가 뭔가 하는 놈이 한마디 뱉자, 옆에 있던 놈들이 하나같이 황홀한 듯 신을 찬양한다.
마치 광신도의 그것을 보듯이 썩 기괴한 광경이었다.
‘어디 보자…….’
일단 상대방의 겉모습을 살폈다.
신의 사도라고 해서 마물 같이 모습이 특이하다거나 그럴 줄 알았는데 의외로 평범했다.
‘익숙한 것도 보이네.’
하지만 그의 몸속에서 느껴지는 기운은 인간이 가진 마나와는 달랐다.
신력神力.
저 하늘에 있는 존재.
이제는 인간 세상에서 성좌라고 불리는 자들의 것을 가득 담고 있었다.
‘꽤 괜찮네.’
그 당시 서울에서도 느꼈던 것이지만, 나도 모르게 경건한 마음을 가지게 될 것 같은 수상한 힘이다.
저 빛을 쐰 놈들은 죄다 머리가 이상해졌었지……?
“흐흐흐…….”
저 사도라는 놈 주변에 있는 놈들도 확실히 정상은 아니었다.
“그동안 각 나라의 성지들을 돌아다니며 신께서 인간들에게 내려준 은총을 훔쳐간 짓. 전부 너의 짓인 걸 정말로 모를 줄 알았나?”
“아니, 별로.”
솔직히 이 지구상에서 그런 짓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나 말고는 없었다.
그저 지금같이 귀찮은 상황이 오는 것이 싫어서 최대한 은밀하게 행동했을 뿐이다.
‘……나쁘진 않을지도.’
굳이 이쪽에서 먼저 쳐들어갈 이유도 없었지만, 쳐들어가지 않을 이유도 없었다.
무엇보다 신력이란 것에 관심이 있었다. 던전의 코어에서도 은근하게 느껴지던 기운.
‘조금 더 느껴보고 싶은데?’
위험한 상황이라고까지는 생각되지 않는다.
세계 곳곳의 털리고 있으면서 고작 이놈 하나만 온 것 보면 어찌 답을 알 것도 같으니까.
내가 가진 힘을 얕보고 있거나.
저 신들이란 놈들도 어지간히 단합이 안 된다거나.
아마 둘 다겠지, 뭐.
그 아집의 신인가 뭔가가 어디로 도망갔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떤 대접을 받고 있을지는 알 것 같았다.
“그런데 훔쳐갔단 건 조금 어감이 불편하단 말이야.”
“네놈의 행동을 부를 말에 도둑질 외에 무엇이 있지?”
‘흠. 저놈 말을 꽤 마음에 들게 하는구나. 상을 주고 싶은 심정이야.’
베르니아가 보내는 전음은 무시했다.
“나는 그 자리에 있는 던전을 정당하게 클리어했을 뿐이야.”
“그건 신께서 직접 만드신 선물. 너 같은 이단자가 아니라, 신실한 신도들에게 내린 구원이다.”
“그 선물이란 것 때문에 인간들이 죽어 나간 건 생각 안 하나 보네?”
“그 선물이란 것 덕분에 인간이라는 종이 더욱 성장할 수 있었단 건 생각 안 하나 보군.”
……그럴듯한데?
아까부터 느끼는 건데, 저놈 괜히 사도라는 자리를 먹은 건 아닌 모양이다.
“개소리하네.”
하지만 정말로 인간을 생각했다면, 그딴 식으로 행동하진 않았겠지.
병 주고 약 주는 것도 아니고.
갑작스럽게 지구에서 대격변을 일으키고, 신이라는 존재를 믿게 하기 위해서 최악의 상황을 연출해 냈다.
그저 자신들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행위일 뿐이다.
“거기다가 고통의 신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구원 어쩌구 하는 건 좀 웃기지 않냐?”
“……뭣!”
“아니, 지을 거면 좀 그럴듯한 이름으로 짓던가. 꽁지 말고 도망친 놈은 아집의 신이고, 이번엔 무슨 고통의 신이냐?”
“이놈!”
그토록 냉정한 척하던 놈도 제 신을 욕하니까 흥분을 감추지 못한다.
“이왕 이것도 인연인데 직접 하나 지어줄게. 내가 또 이름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 짓거든. 비겁한 행동만 하니까 비겁의 신? 쫄아서 튀기만 하니까 쫄튀의 신? 아니면…….”
베르니아를 도발하던 아스모데우스를 떠올리며 한쪽 입꼬리를 비릿하게 들어 올린다.
“간단하게 병신은 어때?”
“감히 신을 모욕한 죄. 죽음으로 갚아야 할 것이다! 신이시여 제게 힘을!”
토렌의 몸에서 무언가 뒤틀리는 소리가 들린다.
동시에 하늘에서 빛의 기둥이 내려왔다.
그때 서울에서 보았듯이 저것에 맞은 마물은 각성이라도 하듯이 강해지곤 했다.
“아아!”
기분 좋은 소리를 내는 놈을 무시하고 외쳤다.
“영역 선포!”
이 근처 일대가 일시적으로 내 영역으로 변하면서 하늘에서 내려오던 빛의 기둥도 뚝 하고 끊겼다.
“시, 신이시여?”
토렌이 당황한 듯 소리친다.
그 진심 어린 당혹감을 마주한 나는 생각하고 있던 것이 들어맞았단 걸 알 수 있었다.
“설마 하긴 했는데, 정말로 최소한의 정보도 공유하지 않았나 보네.”
아집의 신이 다른 신들에게 주의를 줬다면, 이것에 걸려들 일은 없었을 것이다.
“네놈 짓인가! 이 성스러운 순간을 방해하다니……!”
빛의 기둥을 받은 그 잠깐 동안 토렌의 힘은 상당히 증폭되어 있었다.
저것을 노렸다.
‘아주 농익었네.’
아예 빈 것을 들고 가봤자, 별로 성과도 없을 것이다.
아마 이다음부터는 바보가 아니라면 당해주지 않을 테니까.
“용서하지 않겠다!”
저 멀리서 순둥이가 두 손을 입가에 모아 확성기처럼 만들곤 입 모양으로 말했다.
아빠, 도와줄까?
나는 고개를 저었다.
‘꽤나 신중하게 해야 할 것 같으니까.’
단번에 제압하는 것이야 간단하겠지만, 그래서야 저놈에게서 느껴지는 신력이 단숨에 사라질 것이다.
“빠르네.”
재빠른 속도로 토벤이 내게 달라붙었다.
옛날이었다면 반응하지 못했을 테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오랜만의 전투다.
엔돌핀이 도는 것이 느껴졌다.
심장에서 마나를 뽑아냈다.
동시에 몸에 자리한 마석에서 또한 마기를 쥐어짰다.
두근!
처음 듣는 고동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림자에서 꼬물이가 뱉은 창을 곧바로 잡고는 앞으로 내질렀다.
“크윽?”
토렌이 몸을 비틀어 그것을 피했다.
상관없었다.
이미 던전을 공략하면서 물약은 마셔 둔 상태다.
내 몸에 들어찬 두 가지 기운이 상대방을 압박했다.
미래시를 통해서 상대의 빈틈을 노린다.
팅!
토렌의 몸에 창이 적중할 때마다 반발력이 느껴졌다.
저 신력이라는 것이 내 공격을 흘려내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것도 아주 잠시일 뿐이었다.
괜히 검이 아니라, 창으로 고른 것이 아니니까.
가장 긴 사거리를 이용해서 상대방과 ‘접촉’하기만 하면 된다.
“몸이?”
창끝에 담긴 마기가 상대방의 몸 안으로 침투했다.
나도 모르게 내뱉었다.
“멈춰라.”
토렌의 몸속으로 들어간 마기는 내 의지에 반응해 그를 제자리에 멈춰 세웠다.
‘지금.’
토렌의 명치에 창을 적중시켰다.
죽인 것은 아니다.
이 녀석에게서 뽑아낼 게 얼마나 많은데 죽이겠는가.
원래라면 이렇게 간단하게 쓰러질 놈이 아니었다.
내 마기가 몸으로 들어간 것이 매우 효과적이었던 모양이다.
“당연히 그렇겠지. 그것을 알고 사용한 것 아닌가?”
상황이 끝났다고 생각했는지 베르니아가 다가왔다.
“네놈들은 모두 이곳에서 사라지거라.”
그 말 한마디와 함께 나머지 잔당들의 모습이 사라졌다.
베르니아를 물끄러미 바라보자, 그녀가 변명하듯 말했다.
“그렇게 큰 힘을 사용한 것이 아니다. 죽인 것이 아니라, 추방. 위에 있는 놈들도 알아차리지 못했을 것이야.”
하지만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그런 게 아니었다.
“잘못했습니까, 안 했습니까.”
“……뭐라?”
* * *
기절한 토렌과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내 방으로 베르니아와 순둥이를 데리고 왔다.
그리고 목소리를 깔고 다그치듯 조용히 말했다.
“잘못했습니까. 안 했습니까.”
“무엄하구나! 감히 이 몸에게 이런 짓을 하고도 그냥 넘어갈 수 있을 거라고…….”
“엄마! 아빠한테 혼날 때는 손 번쩍 들어야 해!”
나를 노려보며 점차 황금빛으로 물들던 눈동자가 서서히 검게 돌아간다.
베르니아가 제 옆에서 싱글벙글 웃으며 두 손을 번쩍 들고 있는 순둥이를 보며 한숨 쉬었다.
물론 베르니아도 똑같은 자세였다.
“이전에도 그렇고, 네놈은 내게 이런 폭거를 행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느냐? 내 말 한마디면 이 일대는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사라질 것이니라.”
“잘못을 했으면 벌을 받는 게 당연한 사실이잖아요. 아니면 뭐, 그냥 넘어갈까요?”
“잘못을 했으면 반성을 해야 함! 꼬물이도 손 번쩍!”
―끄앙?
“…….”
잠시 곁에 있는 순둥이를 힐끗 쳐다본 베르니아는 군말 없이 손을 들었다.
물론 다 큰 어른을 저렇게 놔두는 것도 아니다 싶었지만, 내 나름대로 두 사람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서 한 행동이었다.
‘그래도 이제는 필요 없어 보이네.’
협박이라도 하듯이 말했지만, 베르니아의 표정은 그리 나빠 보이지 않았다.
내가 없는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순둥이는 완전히 마음을 연 것처럼 보였다.
애초에 둘은 모녀 관계다.
아무리 티격태격 싸운다 하더라도 결국엔 가족이다.
‘가족이라…….’
제 엄마의 옆에서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는 순둥이를 보자니 조금 질투가 나긴 했다.
마음으로 낳은 자식이라고 해도 결국엔 종족의 차이가 있었으니까.
“아빠도 얼른 와서 손들어!”
“어?”
“엄마가 말해줬는데, 말을 제대로 전달 안 한 아빠도 잘못이 있대!”
“그 말이 맞다. 처음부터 내게 좀 더 간단한 방법을 제시했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 아니냐.”
……버튼을 누르는 것보다 쉬운 일이 어디 있다고.
“내게 힘을 사용하지 말라고 말했어야지.”
“아니, 분명히 자기 입으로 여기 있는 동안에는 힘 안 쓰신다면서요?”
“그랬었나? 용은 자신이 한 말은 반드시 지키는 법. 아마도 네놈이 착각하고 있는 것 같구나.”
돌겠네.
나도 어쩔 수 없이 그쪽으로 가 무릎 꿇고 손을 들었다.
“……난 왜 이러고 있어야 하는 거야?”
순둥이를 가운데 두고 양쪽에 베르니아와 내가 있는 형태.
그것이 무척이나 기분 좋은 지 순둥이가 연신 콧노래를 부른다.
“흐흐흥~”
두근!
순둥이의 몸에서 힘이 흘러나왔다.
그 근원지는 내부에 있는 드래곤 하트. 순둥이를 안아 들 때마다 느껴지던 용의 심장이나 다름없는 곳이다.
두근!
마치 공명이라도 하듯이 베르니아의 드래곤 하트 또한 진동하기 시작했다. 이제껏 본 적 없던 현상이다.
세상에 단 둘뿐인 존재가 만나서일까, 그 광경은 사뭇 아름답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두근?
그런데 이상했다.
나 또한 그들과 공명을 함께하고 있었다.
이것은 드래곤 하트를 지닌 용족끼리만 가능한 행위다.
욱신!
“커헉?”
“아빠!”
그동안은 느낀 적 없는 고통이 느껴진다.
내 몸은 무너지듯 바닥에 쓰러졌다.
‘아니, 느껴본 적 없는 게 아니야.’
예전에 한 번 겪어본 적 있는 상황이다.
“흠. 설마 했지만, 역시나 너는 다른 하등 종족들과는 조금 다른 것 같구나.”
베르니아만은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고 있다는 듯 침착한 어조였다.
“검은 숲에서 보았을 때는 불완전했었는데 말이야.”
나 또한 이 현상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내 근처에서 나타난 꼬물이들이 제 입에서 물약을 꺼내더니 내게 부으려 한다.
“기다리거라.”
―끄앙?
그것을 베르니아가 막아섰다.
다급한 순둥이의 표정을 보고도 저러는 걸 보니 그냥 날 방치하려고 저러는 건 아닌 것 같았다.
“멍청하구나. 그런 걸 부었다가는 오히려 방해만 될 것이야. 그것은 네놈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욱 예민한 기관이니까.”
베르니아의 손이 내 심장. 정확히는 그 옆으로 얹어졌다.
예전에 마석병으로 인해 심장 옆에 돋아난 마석이 있는 방향이다.
“터무니없구나. 대체 어떻게 인간의 몸에 이것이 생겨날 수 있는 것이지.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닌 것 같고, 내 딸과 함께 지내며 변해온 것인가?”
내 정신이 점점 흐려져 간다.
“……세상에 둘밖에 남지 않을 줄 알았거늘.”
착각일까.
내게는 보여주지 않던 미소가 베르니아에게 엿보였다.
그녀의 손에서 느껴지는 따스한 기운과 함께 나는 의식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