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tion is flowing from the water purifier in my house RAW novel - Chapter 159
우리집 정수기에서 물약이 흐른다 160화
44. 최초의 개방품(2)
“그래서 말이야…… 푸웁! 어? 어어어?”
“아이 씨. 야! 내 밥그릇에 다 튀었잖…… 어어어?”
아무리 심각한 상황일지라도 아침은 거르지 않는다.
언젠가부터 정한 내 삶의 방침 중 하나다.
“……더러워 죽겠네, 진짜.”
안지윤과 안지훈의 입에서 나온 밥풀이 반찬과 밥그릇에 모조리 튄 걸 보면서 방침을 바꿀 때가 온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뭐, 놀랍긴 하겠지.’
일선에서 물러났던 안환재가 공식적으로 복귀 의사를 밝혔다.
더욱 놀라운 건 따로 있었다.
“삼촌이다!”
“어, 어떻게?”
공식 회견 자리에서 안환재의 옆을 지키고 있는 사내, 신태웅을 보며 두 사람이 입을 벌렸다.
안지윤은 더없이 좋아했으며.
안지훈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혼란스러워 하고 있었다.
―내 손녀에게는 얘기하지 말아 주게나.
안지윤은 그동안 신태웅의 죽음을 알지 못했다.
오랜 가족과도 같은 그의 사망을 그녀가 견디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스승. 혹시 알고 계셨습니까?”
물론 안지훈은 달랐다.
안환재의 성격을 많이 닮은 그는 예전부터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상처를 받지 않은 것이 아니다.
그렇기에 저렇게 놀라는 것이겠지.
“응.”
“대, 대체 어떻게…….”
“직접 물어보지 그래?”
“……직접이요? 아, 예. 당장 가보겠습니다. 스승.”
“잠깐만! 나도 같이 가! 싸부, 아침 잘 먹었어요!”
아침 식사를 완전 개판으로 만들어놓고 도망가려는 두 사람의 손을 붙잡았다.
“싸부! 저희 바빠요!”
“기다려 봐. 곧 있으면 올 것 같으니까.”
“예? 온다니 누가…….”
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초대받은 두 사람이 나타났다.
“에에?”
“자네, 해도 해도 너무한 것 아닌가? 그런 곳에 우릴 버려두고 가다니 말이야.”
“뭐, 살아 계시네요. 그럼 된 거죠.”
“끄응…… 이거 완전히 박준호 놈과 비슷한 취급이로군.”
‘완전히 처음 만나는 기분이네.’
내가 처음 만났을 때부터 이미 신에게 세뇌 받던 것이나 다름없었으니까.
진짜 그를 만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 맞으리라.
나는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신태웅 씨.”
안환재의 오른팔.
더불어 내 충실한 신하가 된 그림자의 일원이 고개를 숙였다.
“처음 인사드리겠습니다. 그림자들의 왕이여.”
* * *
“대체 이게 어떻게 가능한 거예요?”
식사는 물 건너갔으니 간단한 다과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아, 저거?”
안지윤이 텔레비전을 가리켰다.
화면에선 안환재가 지금도 열심히 차후 계획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다.
참고로 저건 실시간 라이브로 진행 되는 기자 회견이었다.
“어, 어떻게 할부지가 둘이지?”
대체 뭘 신기해하나 했더니 별 신기한 것도 아니었다.
지금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것은 안환재가 아니라, 그의 도플갱어다.
본격적으로 안환재와 함께 활동을 시작한 모양이다.
물론, 두 사람이 워낙 비슷했기에 알아차릴 사람은 아무도 없겠지만.
‘그보다…….’
……애초에 여기서 살면서 모르는 사람이 있는 게 이상한데?
아무리 서울 탈환 당시에 없었다고 해도 말이다.
“넌 그럼 저게 뭐라고 생각했는데?”
“저거요?”
내가 가리킨 곳에는 소파에 앉은 순둥이에게 치즈마냥 쭉쭉 늘어지고 있는 도플갱어, 꼬물이들이 있었다.
“귀여운 장난감?”
……뭐, 틀린 말은 아니네.
원래 이쯤이면 안지훈이 제 동생을 한심하다는 듯 쳐다봤어야 했는데 반응이 조금 달랐다.
안환재를 닮아서일까, 외부에선 이미지 관리가 철저한 안지훈이다.
지금 쟤가 표정 관리 하고 있단 사실이 훤히 보였다.
“너도 몰랐냐?”
“……면목 없습니다, 스승.”
“봐요! 저 말고도 모르는 사람 있었네, 뭐!”
“하아…… 이 멍청한 놈이랑 같은 취급을 받게 될 날이 올 줄이야.”
“뭐? 야!”
“허허. 항상 이렇게 시끌벅적하게 보내고 있는 겐가? 나쁘지 않군.”
아무래도 남매끼리의 전투 센스는 할아버지 앞에서도 그대로인 모양이다.
그 모습을 보며 신태웅이 흐뭇하게 웃고 있었다.
“건강하게 자라신 것 같아 다행입니다, 아가씨.”
“삼촌! 제가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알아요? 나한텐 말도 없이 엄청 먼 곳으로 일하러 가고! 연락도 안 받고!”
“걱정하지 마세요. 다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테니까.”
내 휘하에 있는 그림자라면 두 번 다시 신에게 현혹당할 일은 없을 것이다.
그것이 아니더라도 안환재가 곁에 있다면 괜찮겠지.
“도련님도 씩씩하게 자라셨군요.”
“……고작해야 일 년 남짓인데요, 뭘.”
“하하, 그랬나요? 고작해야 그 정도였는데, 저에겐 꽤나 길게 느껴지더군요.”
안지훈 또한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앞으로 쭉 곁에 있을 것이기에 별로 중요한 사실은 아니었다.
‘그래도 괜찮아 보이네.’
안환재.
이제야 완전한 그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단순히 옆에 한 사람이 버티고 서 있을 뿐이건만, 그 위압감이 이전과 차원이 달랐다.
“두 명의 주군을 모시게 됐으니까요. 앞으로 더욱 열심히 해야겠죠.”
신태웅의 합류는 나에게도 꽤나 유의미한 정보를 가져와주었다.
“신이 다스리는 구역이 없다면, 힘이 약해진다.”
“정확히는 각각의 성좌들을 숭배하는 신도가 많을수록 더 많은 신력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왜 남극에는 신이 없고, 그들이 큰 영토를 원하는 지 알 것 같았다.
그렇다면 한국이라는 거점을 잃은 아집의 신은…….
“예. 저한테 건넸던 신력이 마지막이었습니다. 이제는 완전 빈털털이겠죠.”
그래서 신태웅을 이용해 안환재를 유혹하고, 다시 한번 한국에 자리를 잡으려고 했던 건가.
꽤 다급했는지 이런저런 정보를 전부 이야기해 준 모양이다.
그나마 마지막에 허겁지겁 회수해갔으니 이름표 정도는 붙이고 있을 수 있겠네.
그럼 이제 어떻게 할까.
내가 잠시 고민하고 있자 웃음 섞인 말소리가 들려왔다.
“그래서 말인데, 그림자들의 왕이여. 제가 생각해 본 게 있습니다만.”
“네?”
신태웅.
오랜 세월 안환재를 보좌한 책사가 말했다.
“그 신도란 것들. 저희가 전부 빼앗아오는 게 어떻겠습니까?”
‘……이 사람 화났네.’
안환재와 오랜 친우라는 게 납득이 되는 무서운 웃음이었다.
* * *
“가만히 있거라.”
[빙룡, 트레일리의 마석을 흡수하였습니다!]드래곤 하트의 개방을 위한 두 번째 조건을 달성했다.
그러나 단순히 흡수한다고 해서 끝이 아니었다.
후처리를 하지 않는다면, 제대로 된 성능 향상을 기대할 수 없다고 한다.
그걸 위해서 현역 드래곤인 베르니아가 날 도와주기로 했다.
그녀가 순순히 도와준다는 건 꽤나 의외였지만.
“별로 움직이지도 않았…….”
“닥치거라.”
……뭔 말을 못 하게 하네.
“어떻게 된 몸뚱이인지. 몇 번을 보아도 신기하구나.”
베르니아가 내 가슴에 손을 올리며 꾸짖듯 말했다.
“원래 이렇게 쉽게 성장시킬 수 있는 기관이 아니거늘…….”
타 종족의 심장과는 다르게 용족의 심장은 그곳에 머문 것이 사라지지 않는다.
축적 된 에너지는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농후해지며, 감히 인간은 넘볼 수 없을 정도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게 된다고 한다.
마계에는 대기 중에 마기가 흐르고.
지구에는 대기 중에 마나가 흐른다.
‘괜히 고등 종족이라고 부르는 게 아니란 말이지…….’
드래곤 하트는 그 두 가지 힘을 차별하지 않고 동시에 수용한다.
더불어 마나, 마기의 친화력 또한 최상급이라 남들과는 성장 속도 자체가 달랐다.
그런 것이 내 몸에 생겨난 것이다.
“단순히 자리 잡은 것뿐만 아니라, 마치 원래부터 용이었다는 듯 완벽하게 들어맞아 있구나. 너, 정말 인간이 맞는 것이냐?”
그 무엇일지라도 탐하고자 하는 탐욕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원래부터 그랬어.’
그 이전에도 내 몸은 어떠한 변화일지라도 쉽게 받아들였다.
그렇기에 마나와 마기 그리고 신력이 함께 공존하는 것이겠지.
원래대로라면 탐욕의 권능도 내 마음대로 취할 수 있을 것이 아니었다.
‘그것도 별 부작용이 없었지.’
아마도 이것은 그것 때문일 것이다.
「만물의 주인」
내가 처음으로 얻었던 기적과도 같은 힘이다.
하지만 의심이 들었다.
과연 이것이 각성을 했다는 이유 하나로 가능한 일인 것일까?
보통의 인간과는 다른 신체.
두려움을 느낄 만도 했건만, 내 심장은 지나치게 고요했다.
두근!
두근!
조금 다른 의미로 콩닥거리고 있기는 했다.
잔뜩 미간을 찌푸리고 있음에도 베르니아의 미모는 빛을 잃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마저도 매력적으로 느껴질 만큼 아름다웠다.
이전에는 좀 이질적인 감이 있었는데, 요즘 들어서 뭔가 더 인간답게 변한 것 같다고 해야 하나?
정확히 말하면 내 취향과 점점 더 일치하고 있었다.
저 외견은 그의 본체가 아니라 폴리모프로 변신한 것이다.
자연스럽게 변했을 리는 없고, 베르니아가 직접 바꾼 것이 틀림없을 텐데…….
“착각이니라. 내가 조용히 하라고 하지 않았느냐.”
“그런데 오늘은 그거 안 해도 되는 겁니까?”
“그거라니. 무슨 소리지?”
분명히 전에는 드래곤 하트의 공명을 위해서 몸을 최대한 밀착했었다.
“……단순 접촉만으로 충분하니라.”
한숨을 쉰 베르니아가 중얼거렸다.
“……용답지 않게 순간적인 감정에 치우치다니. 한심한 행동을 하고 말았구나.”
“예?”
“이제 나가거라. 이제부터 순둥이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야 하니까 말이야.”
“죄송하지만, 오늘 순둥이는 사랑하는 아빠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싶다네요.”
“뭣…….”
순둥이가 사용하는 마법은 여러모로 유용하다.
투명화 마법.
공간 축소 마법.
중력 마법.
부끄럽지만, 유능한 내 딸의 조력을 받는 편이 훨씬 일이 수월할 테니까.
“아니면 같이 가실래요?”
그렇다면 나야 고맙지.
내 말에 베르니아가 퉁명스럽게 답했다.
“됐다. 이 몸은 바쁜 몸이니라. 네 놈이 가자고 한다면 쉽게 따라갈 존재로 보이는 것이냐?”
“예, 예.”
베르니아의 방을 나오고 마계로 갈 준비를 하고 있자니, 문득 떠오르는 게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제 나한테 하찮은 피조물이니 하등 종족 같은 말을 사용 안 하네?
* * *
나태의 마왕, 벨페고르.
모든 마왕을 하나로 통합시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포섭해야 할 존재다.
“정말로 괜찮겠어, 까망아?”
“예. 저도 제 한 몸 지킬 정도는 되니까요. 걱정하지 마세요.”
탐욕의 권능을 모조리 잃었지만, 까망이에게 남은 것이 있었다.
까망이의 등 뒤로 여러 개의 촉수가 튀어나온다.
―끄르르르…….
―끄르릉!
“옳지. 착하다.”
예전에도 보았던 것이다.
균열에서 튀어나와 날 공격했던 그 검은 촉수.
까망이가 말하길, 숙주의 몸에 기생하는 기생체라고 한다.
“유독 저를 잘 따르는 것 같아서요. 엄청나게 귀엽죠?”
에르푸스라고 직접 이름까지 지어줬다고 한다.
저렇게 보이지만, 이전에 마물들을 단번에 집어삼킨 것을 생각하자면 전투력도 상당하리라.
……별로 귀엽진 않은데.
“엄청 귀여운데. 순둥이 누나도 귀엽다고 해줬어요.”
순둥이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그럼 갈까?”
“예.”
이번 일은 순둥이와 나 그리고 두 명의 마왕이 함께하기로 했다.
“낭군. 왔어?”
“응. 여기야?”
아스모데우스와 연결 된 균열을 통해서 마계에 진입했다.
언제 오더라도 새로운 곳이다. 지금 내가 있는 곳은 늪지대였다.
“이곳에 나태의 마왕이 있다고?”
내가 현실에서 작업을 하는 동안, 아스모데우스는 이곳에서 나태의 마왕을 찾아 다녔다.
“으응~”
피곤한 듯 날개를 퍼덕이며 날아온 아스모데우스가 내 목에 팔을 둘렀다.
“낭군. 나 힘들어.”
“고생했어.”
어깨를 몇 번 토닥여주자 그녀가 짜증이 가득 담긴 말투로 말했다.
“애초에 왜 그런 녀석을 마왕이라고 불러야 하는지 이해를 못 하겠다니까.”
나태의 마왕, 벨페고르.
마왕이라는 꽤 그럴듯한 호칭을 가지고 있었으나, 주목해야 할 것은 따로 있었다.
나태.
“휘하에 존재하는 병력도 없고, 그렇다고 본신의 무력이 강한 것도 아니야.”
나태란 곧 게으름을 말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벨페고르는 타 마왕과 비교하자면 그 존재가 조금 초라했다.
“……하지만 그 권능 자체는 꽤 강력하단 말이지.”
어떤 것을 행하고자 할 때 가장 골치 아픈 것이 나태다.
아스모데우스 또한 그렇게 자신했지만, 그 녀석을 찾는데 시간이 걸린 이유가 그것 때문이다.
“그 동안 다른 마왕들도 나태의 마왕을 잡으려고 했지만, 하나 같이 실행 단계에서 포기하고 말았으니까요.”
까망이 또한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누군가가 나태의 마왕을 찾으려고 한다면 곧바로 잊고 싶을 정도로 귀찮아 진다고 한다.
딱히 정신 공격도 아니었기에 쉽게 막을 수 있는 종류도 아니었다.
‘사기네.’
까망이의 말대로라면 그야말로 최고의 방패라고 볼 수도 있는 능력이었다.
길가에 있는 돌멩이처럼 아무런 관심도 주지 않는 단 거니까.
“후훗. 하지만 낭군님과 내가 합치면 못 찾을 것은 없겠지.”
탐욕과 색욕은 어떤 것을 소유하고 싶어 하는 욕구다.
혼자라면 불가능할 것도 둘이라면 가능했다.
“역시 낭군님이랑 나는 천생연분이라니까?”
내 얼굴에 제 뺨을 비벼대는 아스모데우스를 무시하고 앞에 있는 잎사귀를 보았다.
그곳엔 달팽이 하나가 매우 느린 속도로 움직이고 있었다.
“나 혼자라면 절대로 못 찾았겠네.”
이게 바로 나태의 마왕, 벨페고르다.
한 손으로 집어 들어도 아무런 반응이 없다.
“우와! 미끌미끌해!”
자연스럽게 순둥이의 손에 얹어주며 아스모데우스에게 물었다.
“그러고 보니 전에 뭐 상황이 꼬였다고 하지 않았나?”
“아, 그거 말이야?”
그런 것 치고는 표정이 그렇게 어둡지도 않았다.
별로 심각해 보이지도 않았기에 대수롭지 않게 넘기려던 그 순간.
“네 놈이 새로운 탐욕인가?”
“내가 먼저 찾았다, 루시퍼. 건방지게 앞서 가지 말도록.”
“맛있는 걸 준다길래 와봤더니. 꽤 군침이 도는 녀석들이잖아?”
거대한 위압감을 내뿜는 세 존재가 나타났다.
각각 사자의 얼굴과 개의 얼굴 그리고 돼지의 얼굴을 한 채로 말을 하는 짐승들.
“후훗, 낭군. 흔한 이야기 아니겠어~? 남아 있는 떨거지들끼리 손을 잡는 건 당연한 거라구?”
교만의 마왕, 루시퍼.
질투의 마왕, 엔비.
식탐의 마왕, 벨제부브.
내 안에 있는 탐욕이 꿈틀거린다.
나는 그들을 보며 피식 웃었다.
“꽤 재밌네.”
마계에 있는 모든 마왕이 한곳에 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