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tion is flowing from the water purifier in my house RAW novel - Chapter 163
우리집 정수기에서 물약이 흐른다 164화
45. 성좌와 성자의 싸움(2)
톡톡.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리자, 반대편에 앉아 있는 사람이 흠칫하고 몸을 떤다.
“하아…….”
나는 곧바로 행동을 그만두고, 한숨을 푸욱 쉬었다.
그러자 반대편의 여성이 곧바로 고개를 숙이며 외쳤다.
“자, 잘못했습니다!”
“…….”
나는 옆자리에 앉아 있는 루비에게 눈짓했다.
대체 뭘 하면 나를 저렇게 신기하다는 듯이 볼 수 있을까.
누가 보면 신이라도 직접 마주한 줄 알 것이다.
루비가 내게 눈짓으로 대답했다.
이것이 당연한 반응 아니겠습니까.
“……그래. 잘했다.”
“성자님이 기쁘시다니, 루비 또한 기분이 매우 좋습니다.”
……이거 비꼰 거거든?
‘52%인가.’
지지부진하던 진행률이 단번에 50%를 넘어섰다.
처음과 달리 단순히 사도의 몸에 있는 신력을 흡수한다고 해서 효과가 그리 크지 않았다.
‘아무래도 다른 방법들이 꽤나 유효한 모양인데.’
―성좌들은 사람들의 관심을 먹고 사는 것 같더군요.
신태웅이 내게 알려준 것이다.
왜 그렇게 기를 쓰고 인간들의 환심을 사려한 것인지 이해가 갔다.
“갑작스럽게 찾아오게 되어서 죄송합니다.”
“아, 아닙니다!”
갑자기 허공에서 균열이 열리며 사람이 걸어 나왔으니 저런 반응이 당연한 것인가.
괜히 미안했다.
“……일단 긴장부터 푸시는 게 좋겠네요.”
나는 앞에 있는 사람을 향해 능력을 사용했다.
“아…….”
‘평온무사’
방석의 업그레이드가 완료됨과 동시에 나타난 특수 능력이다.
언제나 나와 주변 사람들을 편안하게 해주던 방석의 능력.
다른 개방품들 처럼 화려한 특수 능력을 가진 건 아니었지만.
“……몸이 편해졌어.”
그 어떤 극한의 상황일지라도 불안한 감정을 억제하고 마음에 안정을 주는 효과.
기존에 있던 능력의 범위와 위력의 증폭.
어떻게 보면 다소 섬뜩한 면이 있는 능력이다.
‘전쟁터 같은 곳에서 이런 각성제를 사용한단 걸 들은 적이 있었는데…….’
생각해보니, 나 또한 공포심을 느끼게 된 지 오래된 것 같다.
분명히 죽을 상황은 여럿 있었음에도 말이다.
이제야 조금 편해진 듯 상대방이 내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다시 한번 인사드리겠습니다. 저는 하세가와 레나. 일본에 있는 반反성좌 세력의 대표입니다. 이서진 성좌님.”
“예, 반갑…….”
“성좌가 아니라, 성자님입니다. 이것은 중요한 부분입니다. 모쪼록 주의해주시길.”
“죄, 죄송합니다.”
엄격한 표정의 루비가 말했다.
성좌면 어떻고, 성자면 또 어떻겠는가.
애초에 지금 이렇게 신력을 모으는 이유도 위에 있는 놈들과 같은 위치에 서기 위해 그러는 것인데.
지금 내가 이곳에 앉아 있는 이유도 그랬다.
‘그런데…….’
잠시 주변을 휙휙 둘러보았다.
‘장소가 조금…….’
한 세력의 우두머리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좁고 허름한 곳이다.
비밀스러운 만남을 위한 공간이라고 해도 최소한의 설비는 갖춰져 있을 줄 알았는데…….
사실상 폐허나 다름없었다.
“내부 사정이 그렇게 좋진 않아서요. 주기적으로 장소도 바꿔줘야 하고요. 원활한 활동을 위해서는 자금이 필요한데, 그걸 구할 방법이 마땅치가 않거든요. 던전은 전부 배신의 신을 따르는 각성자들이 독점하고 있고…….”
한국과는 사정이 다를 것이다.
던전은 성좌들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서 계속해서 코어를 수거하고 있었고, 각성자와 헌터들을 위한 도시 또한 한창 건설 중이었으니까.
대한민국에서 던전의 입장을 위한 조건은 그저 살아남고자 하는 의지 하나뿐이다.
“그, 그런 곳이 있다고요? 말도 안 돼…… 정말 대단해요.”
“그렇죠. 대단하죠.”
‘대단한 사람이긴 하네.’
하세가와 레나.
눈이 죽지 않았다.
이런 환경에서도 꿋꿋하게 제 의지를 관철하는 사람이다.
이거 참…….
“탐이 나네요.”
“뭐?”
“예?”
어느새 내 옆에 누군가가 앉아 있었다.
다크서클이 짙은 여성이 눈을 빛내더니 속사포처럼 입을 열었다.
“하세가와 레나. 성역聖域에 꼭 필요한 인재예요. 부디 한국으로 넘어와 저희와 함께 일할 생각 없으신가요?”
냉철한 사업가의 눈빛이 레나를 응시한다.
어디선가 본 얼굴인데…….
“앗! 일동 기립!”
척! 소리와 함께 뒤쪽에 있던 정체 모를 사람들이 오와 열을 맞춘다.
“성자님께 경례!”
“빛이!”
“있으라!”
“…….”
내가 모르는 얼굴들이다.
하나같이 꽤나 강력한 내력을 품고 있는 각성자들.
한국에 이런 세력이 있었던가?
“성자님! 인사가 늦었습니다! 성역의 회장, 방혜은이라고 합니다! 오랜만에 만나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방혜은. 방혜은.
뭔가 떠오를 것 같으면서도, 기억이 안 난다.
순둥이한테 왔던 거대 선물 박스에 그런 이름이 적혀 있던 것 같긴 한데…….
“아하. 성자님은 바쁘시니까, 그러실 만도 합니다. 그럼 제가 직접 한 곡 올리겠습니다! 들어주세요!”
“다들 합창할 준비해!”
“회장님께서 먼저 길을 여신다!”
한 곡?
“아아~ 성자님을 믿으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성자님을 믿으면 재산이 풍부해지고~”
“……기억났으니까, 그만.”
옛날에 악수회를 할 때 들었던 그 쪽팔린 노래다.
성역聖域.
내 팬클럽의 이름이었다.
“음! 몇 번을 들어도 매우 좋은 노래입니다!”
“역시! 성녀님과 성자님이 알아주실 줄 알았습니다!”
매우 흡족하다는 듯 루비가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했다.
루비는 그녀와 함께하게 된 경위를 내게 설명해 주었다.
“각 나라에 성자님의 뜻을 더욱 잘 전달할 수 있도록 이분께서 많은 도움을 주셨습니다. 참으로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아니에요, 성녀님! 저희 성역 일동은 그저 성자님의 뜻에 따라 할 일을 했을 뿐이랍니다!”
……난 그런 뜻 말한 적 없는데?
“아아! 이 어찌 거룩한 행동입니까! 루비는 감격에 눈물을 흘릴 것만 같습니다!”
두 여성이 서로를 마주 보며 동시에 외쳤다.
“성자님의 뜻대로!”
“성자님의 뜻대로!”
‘또 시작이네.’
평소에는 얌전해도 이런 이야기를 할 때마다 흥분하는 루비다.
꽤나 교류가 있었는지 저 팬클럽 회장님이랑 죽이 척척 맞는다.
‘어쩐지 마계에 신경 쓰는 동안에 루비가 바빠 보인다 했더니…….’
나 몰래 따로 이런 일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아마도 아스모데우스가 따로 균열을 열어줬겠지.
‘어쩐지.’
각 나라.
단순히 일본 하나만으로 끝이 아니라는 뜻이다.
어째서 진행률이 실시간으로 계속 오르고 있나 했더니…….
“성자님. 저 하늘에 있는 침략자들에게 불만을 품은 분들은 많습니다.”
침략자.
맞는 말이다.
그들은 지구에 갑자기 쳐들어와 제집 행세를 하는 불한당들이다.
“성자님뿐만 아니라, 보다 많은 사람들이 성좌들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여러모로 노력하고 있는 중입니다. 부디, 혼자서 짊어지려고 하지 말아주세요.”
나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좋았다.
그런 사람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일은 더욱더 수월하게 진행될 테니까.
순수하게 감사를 표하기로 했다.
“고마워.”
“나중에 루비에게 보상을 내려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당당한 표정으로 보상을 요구한다.
보상이라고 해봤자, 단순히 어리광이라서 상관은 없었지만.
……애초에 저게 목적이었던 건 아니겠지?
‘설마.’
나는 잡념을 지우고 레나에게 말했다.
“어때요? 저도 제안 드리고 싶은데. 이쪽으로 넘어오실 생각 없으세요?”
“……아마도 더 이상 집단의 유지는 불가능하겠죠.”
성좌에 맞서 싸운다는 일념하에 모였지만, 이들은 보잘것없는 힘을 가진 사람들이다.
“이 둘이 넘어갔다면, 다른 중요 인물들도 전부 회유되었다는 뜻이니까.”
그녀는 뒤쪽에 기절해 있는 두 사내를 힐긋 보았다.
믿었던 자에게 배신당했다는 분노보다 그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더욱 짙게 느껴지는 눈빛이다.
“원래 저런 사람들이 아니었어요. 각자 가정도 있고, 상황이 상황인 만큼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거겠죠.”
잠시간의 고민을 끝마친 레나는 고개를 저었다.
“제가 사는 곳은 여기니까요. 제안은 감사합니다만, 아무래도 안 될 것 같아요. 분명히 좋은 기회겠지만, 이곳엔 아직 타인을 믿는 사람이 남아 있을 테니까.”
확고한 결의가 담긴 그 말과 함께 레나가 덧붙였다.
“아, 하지만 그 성역이라는 곳에는 꼭 가입하고 싶네요.”
“그래요, 그럼. 어쩔 수 없죠.”
“예. 오늘 일은 정말로 감사했습니다! 다음에 뵙게 된다면, 그때는 제가…….”
쿠구궁!
“지, 지진?”
우리가 있던 허름한 지하가 서서히 그 모습을 바꾸어간다.
투박한 벽은 매끄러운 대리석으로 변했고, 곳곳에 있던 잔해들은 사라지고, 보기 좋은 인테리어가 뿅! 하고 나타난다.
“에……?”
한순간에 5성급 호텔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뒤바뀐 공간.
이곳을 방치하고 떠날 생각은 없었다. 꽤나 그럴듯한 생각이 들었으니까.
“자본이 부족하다고 했죠?”
성좌와 적이라면, 내게 있어선 아군이나 마찬가지다.
‘아주 기고만장하단 말이야.’
성좌는 후원이라는 명목하에 지상에 있는 신도들에게 힘을 내려준다.
‘나라고 불가능한 건 아니지.’
이것은 성좌와 성자의 싸움.
누군가를 후원할 수 있는 건, 그들뿐만이 아니다.
“예……?”
멍한 표정으로 날 쳐다보고 있는 하세가와 레나에게 웃으며 말했다.
“제가 당신의 후원자가 되어드리도록 하죠.”
* * *
“아주 좋은 풍경이로구나. 서로를 배신하고, 끝없이 의심한다.”
더 이상 불신밖에 남지 않게 된 땅을 내려다보며 웃는다.
이제는 하등 종족을 초월해, 행성 ‘지구’에 있는 일본이라는 나라의 신으로서 자리 잡게 된 존재.
“결국엔 저 미천한 것들이 믿을 것이라곤 하늘에 있는 나밖에는 없겠지.”
배신의 신.
그 호칭이 썩 마음에 들었다.
한낱 피조물이었던 시절일 때의 이름보다 훨씬 듣기 좋은 울림이었다.
“역시 배신으로 고르길 잘했어. 더 좋은 땅들은 뺏기고 말았지만, 신력은 잘 쌓여가고 있으니까.”
배신의 신이 제 몸을 내려다보았다.
기껏해야 주먹만 하던 몸은 어느새 인간의 신체와 다를 바 없는 크기가 되었다.
“마음에 들어.”
지상에 있는 인간들이 제 신명을 부르며 기도할 때마다, 온몸에 충만한 기운이 흘러들어온다.
“아주 좋아…….”
이 신력이라는 것은 알면 알수록 매력적인 힘이었다.
정말로 신이라도 된 듯한 기적을 내릴 때마다 온갖 희열이 느껴졌다.
“다른 놈들은 어떻게 하고 있을까.”
중국, 미국, 러시아, 영국 등.
각각 자신과 같이 신으로서 추앙받는 자들이 존재한다.
“푸후훗.”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한국이라는 나라를 떠올리자 웃음이 나왔다.
“아무리 생각해도 웃기단 말이지.”
아집의 신.
제 영역에서 쫓겨났다고 했었나?
정말로 웃기는 일이다. 신을 자칭하는 자가 한낱 인간 따위에게 밀려나다니.
배신의 신이 비웃음과 함께 중얼거렸다.
“하긴 그 녀석은 원래부터 멍청한 새끼였지. 그딴 좁아터진 땅을 가진 것으로도 모자라서 제대로 해내지도 못하다니.”
더 자세한 정보를 파악하며 깔깔 웃고 싶었지만, 아는 것이 없었다.
같은 곳에서 왔다지만, 서로 간의 교류는 별로 없었다.
그들은 서로 경쟁자나 마찬가지였으니까.
“……이런 좁은 행성에 신이 너무 많지 않겠어?”
처음에는 일본이라는 나라만으로도 충분했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추앙받고, 보다 드높은 경지를 추구하고 싶어졌다.
“더.”
이것은 비단 배신의 신만이 하는 생각은 아니었다.
지구에 있는 모든 신이 그러했다.
자신밖에 생각하지 못하며, 다른 영토를 차지하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다.
신이라고 부르기에는 상당히 저열한 모습이었다.
“더 많은 신력이 필요해.”
지금도 충분히 많은 신력이 공급되고 있었지만, 훗날을 위해선 더없이 부족했다.
좀 더 획기적이고 직관적인 방법이 필요했다.
인간들은 제 눈에 보이지 않으면 믿지 않는 경향이 있으니까.
“……그래. 그게 좋겠어.”
원래라면 불가능했겠지만, 신력이 충분히 쌓인 지금이라면 가능하다.
강림降臨.
하늘에 있는 고귀한 신이 인간 세상으로 내려가는 행위.
진짜 신의 존재를 마주하게 된다면, 그동안과는 비교할 수 없이 많은 신력이 들어올 것이다.
물론 단순한 인간 형태로 내려갈 생각은 죽어도 없었다.
“어디 보자. 어떤 형태가 좋을까.”
일본에서는 요괴와 관련된 신화가 유명하다고 했었나?
“야마타노오로치.”
환상 속의 괴물이 나타난다면 그 누구라도 믿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직접 내려가는 것엔 상당히 리스크가 있겠지만.”
가령 지상에서 상처를 입으면, 신력을 잃는 것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타격을 입게 될 것이다.
“푸훗. 그럴 리가 있나.”
이미 모든 게 장악이 완료된 배신의 신의 땅이다.
지상에 신을 위협할 존재가 있을 리가 없었기에 그는 비릿하게 웃으며 강림 준비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