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tion is flowing from the water purifier in my house RAW novel - Chapter 169
우리집 정수기에서 물약이 흐른다 170화
46. 어느 옛날이야기(3)
“다들 잠시만 나가 있도록 하죠.”
“누구야아? 할아버지야?”
“순둥아. 잠시 자리를 비워주도록 하자꾸나.”
갑작스러운 상환 전환에 나와 같이 텔레비전을 보고 있던 사람들이 자리를 비웠다.
도저히 화면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대체 어떻게 아버지가 만물의 주인에 대해 알 수 있는 걸까.
진지한 표정의 아버지가 어떤 말을 먼저 꺼내야 할 지 모르겠다는 듯, 잠시 고민에 빠졌다.
“아빠. 아빠예요?”
“아버지…….”
가슴이 울컥해지려는 찰나.
“…….”
진지하던 분위기가 팍하고 식어버렸다.
화면 속에 있는 아버지가 익살스럽게 웃었다.
“……참. 한결같으시네.”
그 동안은 알지 못했던 진실을 알게 되는 순간임에도 무겁지 않았다.
아버지는 언제나 제 아들과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 장난을 많이 치시곤 했다.
지금도 그랬다.
내 몸은 아무런 긴장도 되지 않았다.
‘……실시간은 아니구나.’
이것은 말 그대로 아버지가 내게 남긴 영상 편지였다.
물론 평범한 편지는 아니었다.
부모님이 돌아가신지 벌써 10년도 넘었으니까.
[아마도 내 나이 같은 것은 훨씬 넘어섰겠지.]“아니, 그 정도는 아니거든요?”
[혹시 아니라면 미안하다. 아무리 내 아들이라고 해도 그 정도로 재능 있진 않을 것 같아서 말이야. 넌 매번 잘 넘어지곤 했으니까. 하하하!]“이거 진짜 녹화된 거 맞겠지……?”
미래의 내게 보내는 과거의 편지.
‘대체 어떻게 아빠가?’
화면 너머로 보이는 느껴지는 저 압도적인 기운.
지금껏 만났던 그 어떤 마왕과 신보다도 강력하다.
탐욕의 마왕.
드래곤 하트.
신력.
인간을 넘어선 경지에 이르러서야 아버지가 건 잠금이란 것이 풀린 것이다.
단순한 고유 능력은 아니다.
아버지는 각성자가 아니었으니까.
‘만약 그렇다면.’
……나를 완전히 꿰뚫고 있다.
[서진이, 넌 매사 궁금한 게 많았어. 그런 것치고는 절대로 먼저 물어보진 않았지만 말이야. 매번 끙끙거리면서 혼자 알아내겠다며 고집을 부렸지.]피식.
“그랬었나.”
자식들은 금방 잊어버려도 부모님은 죽을 때까지 잊지 않는다 했던가.
방금 것은 뒤에서 잠들어 있는 과거의 나를 보며 한 말이다.
물론 들리진 않았을 것이지만, 그것으로 충분한 듯 다시 한번 앞을 본다.
씨익.
고민하는 척하면서, 히죽 웃으신다.
저런 걸 말할 사람이 아니란 건 알고 있다.
우리 아버지였으니까.
“나도.”
물어볼 것이 많았다.
아빠의 정체는 무엇인가.
대체 이 힘은 어디서 온 것인가.
왜 마계에 첫 번째 생일선물이 있던 것인가.
하지만 그런 이야기는 우리 부자 사이엔 어울리지 않는다.
아버지는 지금 내게 무엇이 필요한지 정확하게 알고 계셨다.
“예.”
[너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는 일일 거야. 그렇지?]“네.”
[그렇다면 아비 된 자로서 하나뿐인 아들에게 도움을 줘야겠지. 우리가 살던 곳. 지하실로 오거라. 그곳에 널 위한 선물을 준비해 둘 테니까. 정확히는 미래의 너에게 말이다.]예전에 살던 허름한 집.
……그곳에 지하실이 있었다고?
아버지가 내게 말했다.
[직접 만나서 이야기하자꾸나.]* * *
곧바로 내가 살던 곳으로 향했다.
“여기 오랜만이다. 그치?”
“그러게.”
언젠가 이유지와 막 친구가 됐을 당시에 이곳에 봉사 차원으로 찾아왔던 적이 있다.
그 때도 쟤는 지금처럼 담장 위를 걸어 다녔었지.
“……저 빼고 그런 걸 했다고요?”
옆에서 이야기를 들은 정해연이 뾰로통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만족스러운 표정의 이유지와는 달리 정해연은 내내 기분이 안 좋아 보였다.
“그땐 서진이한테 말 한마디도 제대로 못 걸었다면서 뭘 바라?”
“내, 내가 언제 그랬다고 그래요!”
내가 살던 허름한 달동네.
그 동안 몇 번이고 찾아왔지만, 지금 가는 길은 매우 오랜만이었다.
“저기가 성자님이 살던 곳입니까?”
“응. 옛날에 중학교 때까지는 저기서 살았지.”
정확히는 부모님이 돌아가시기 전까지였다.
원래라면 다른 사람이 살고 있겠지만, 2차 대격변 이후 이 근처 일대를 전부 사들였다.
‘왜 그랬을까.’
다시는 찾아오지 않겠다고 했었는데. 미련이라도 있었던 모양이다.
똑똑.
나도 모르게 노크를 해버렸다.
“시, 실례하겠습니다아…….”
모두들 사뭇 긴장한 표정이었다.
“여기 이제 아무도 없다니까.”
“그렇지만…….”
“서진이 너의 부모님이 살았던 곳이라면…….”
말을 하다말고 두 사람이 서로 눈치를 보았다.
갑자기 머리를 정돈하고, 거울을 보기에 먼저 들어왔다.
“여기가 성자님이 어린 시절에 살았던 곳.”
잠시 눈을 감고 두 손을 모은 루비와 다르게 나는 오랜만에 돌아온 집을 천천히 눈에 담았다.
‘뭔가 낯서네.’
오래전에 살았던 곳이니까.
안쪽에는 아무런 가구도 없었고, 그저 허름한 방 하나만이 있을 뿐이었다.
“이런 곳에 지하실이 있다는 게 믿기지 않는데.”
이곳으로 오기 전 USB를 이용해 어릴 적 기억들을 샅샅이 검토했다.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꼬마였고, 평범한 가정이었으며, 평범한 집이었다.
“최소한 함부로 갈 수 있다는 뜻은 아니야.”
그렇다면 하나뿐이었다.
내가 시전하지 않았음에도, 제멋대로 발동된 능력.
“역시 여기에 뭐가 있긴 한가 본데.”
스윗 하우스를 통해 내 사유지로 변하자, 지하실이 어디 있는지 알 수 있었다.
“터무니없네, 진짜.”
집구석에 아주 작은 쥐구멍이 있었다.
능력을 사용해 사이즈를 키우자, 사람도 들어갈 수 있는 크기가 되었다.
“어디선가 많이 본 형태인데요.”
“당연하죠. 던전이니까.”
“예, 예?”
예전부터 던전 내부가 다른 세상과 이어진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아마도 이 지하실이라는 곳은 지구에 있는 것이 아닐 것이다.
“성자님, 이건.”
자격이 있는 자.
만물의 주인을 말하는 것이다.
“아무래도 나 혼자 들어가야 할 것 같은데.”
“그렇습니까…… 저희는 이곳에서 기다리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루비가 머리핀을 톡톡 쳤다.
나도 피식 웃으며 목걸이를 톡톡 쳐주었다.
“둘이 뭐 하는 거야?”
“그런 게 있어.”
쥐구멍을 향해 천천히 발을 옮겼다.
혹시 모를 위협 같은 것은 생각하지 않았다.
이곳은 아버지가 내게 남긴 장소였으니까.
“콜록! 콜록!”
잠시 후, 지하실이 나타났다.
잔뜩 쌓인 먼지에 기침이 나온다.
기존에 생각하고 있던 것과는 조금 달랐다. 이곳은 정말로 지하실 그 자체였으니까.
다만, 어두컴컴한 지하에 어울리지 않는 게 하나 있었다.
“너였구나.”
“위험하기는 무슨. 너 제대로 말 안 하냐?”
[‘System’은 ‘만물의 주인, 이서진’을 직접 마주하는 것에 당혹감을 느낍니다!] [>_<;;]거대한 화면에 떠오른 귀여운 이모티콘.
언제나 내게 상태창을 보여주던 장본인이 이곳에 있었다.
* * *
[‘System’은 ‘이서진’에게 좀 더 뒤로 갈 것을 권장 드리는 바입니다.] 대체 어떻게 된 구조일까.가까이서 유심히 지켜보고 있자니, 내 앞에 상태창이 나타났다.
“정말로 네가 맞구나.” [‘존재를 지워 버리는 커튼’이 당신을 노려봅니다!]
노려보기는 무슨. 지금 커튼은 이곳에 없었다. 순둥이의 목에 달려 있는 게 노려보길 뭘 노려본단 말인가.
[:(]“알았어. 떨어질 테니까, 기분 풀어라.”
[:)]사람들이 각성을 하게 된 순간부터 있던 것이다.
각성자는 원할 때마다, 제 능력치를 상태창을 통해 볼 수 있었고.
어떠한 특수한 상황마다 상태창이 나타나 가이드라인을 제시해 주곤 했다.
‘이상하지.’
그것에 의심을 가지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애초에 각성 자체도 원래라면 말도 안 되는 것일 테니까.
이것은 게임으로 치면 NPC 나 다름없는 존재였다.
“그런 넌 뭔데?”
[‘System’은 자신을 ‘관리자’라고 소개하며 어깨를 으쓱거립니다.]어깨를 으쓱거리기는 무슨.
관리자.
“뭘 관리하는데?”
사실 어렴풋이 예상은 하고 있다.
아마도 지구를 넘어서 이 우주 전체의 관리자를 맡고 있을지도 모른다.
제 17우주.
마계를 통합할 때 나왔던 것과 비슷하다.
분명히 그때도 제 67마계라고 떴었다.
위험이니 뭐니.
이탈을 적극 추천이니 뭐니.
베르니아와의 첫 만남 때 보였던 다급한 상태창도 얘가 한 것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이 있었다.
상태창은 말 그대로 상태를 표기하는 창일 뿐이다.
주변에 물어봐도 그렇다.
오직 나에 한정해서 상태창은 마치 ‘감정’이라도 있는 듯 행동하곤 했다.
더 이상 보이지 않는 것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랜만의 필터링이 나타났다. 나는 당연히 그것에 대해 물어보았다.
“그래, 그래.”
말해주지 않을 줄 알았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직접 만나서 들으면 될 일이니까.
“그래서, 여기에 아버지가 내게 남긴 것이 있다는데. 그건 어디 있어?”
허공에서 무언가가 뿅! 하고 나타났다.
리본으로 묶어져 있는 선물상자.
딱 봐도 그것이 부모님이 내게 남긴 것이란 걸 알 수 있었다.
-자, 하나 둘 셋 하면 개봉하는 거야?
언제나 내게 무언가를 줄 때마다 그냥 주는 법이 없었다.
상자에 들어 있는 것을 열 때마다 무엇이 나올까.
그런 기대감을 심어주었다.
“지금 생각하면 내 고유 능력과 비슷해.”
만물의 주인.
이것 또한 평범한 물건에 어떤 능력이 나올까.
그런 마음으로 개방하고 그랬으니까.
조심히 리본을 풀고, 상자를 열자 나온 물건.
“모래시계.”
생뚱맞은 물건이었지만, 이것이 아버지가 내게 남긴 물건이다.
그렇다면 내가 할 일은 정해져 있었다.
상관없었다.
개방권을 대체할 것이 내게 존재했으니까.
“신력은 곧 개연성이나 다름없다, 라고 했지?”
창조創造,
내 몸에 가득 들어찬 신력들이 단숨에 빠져나갔다.
이런 작은 물건에 다수의 개방권이 소모된단 게 이해가 되었다.
모래시계를 들어보았다.
안에 있는 모래가 거꾸로 역류하고 있었다.
대충 이것이 무엇인지 예상이 갔다.
뾰족이에겐 미안하지만, 이것은 내가 받은 것 중 최고의 선물이 될 것이다.
“시간을 거슬러 가는 모래시계.”
과거로 향할 수 있는 수단을 손에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