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tion is flowing from the water purifier in my house RAW novel - Chapter 170
우리집 정수기에서 물약이 흐른다 171화
46. 어느 옛날이야기(4)
겨우 하루 남짓 흘렀을 뿐인데도, 상황은 상당히 안 좋게 기울고 있었다.
카르페 디엠에 속한 사람들은 하나 둘 사라져 가는데, 반대로 사도들의 세력은 더욱 늘어만 갔다.
그뿐만 아니라, 내 주변 사람들에게도 몇 가지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황혼 길드장. 아니, 이제 그렇게 부를 수도 없겠군.”
“과거에서 아주 신나게 난동을 부리고 있나 보네요.”
“이제 어떻게 할 건가?”
카르페 디엠의 주요 간부들이 한곳에 모였다.
간부라고 해봤자, 나와 평소에 교류가 잦던 사람들이었다.
안환재, 신태웅, 신백준, 정해연, 이루비, 이유지, 이태영, 전진우, 소성환, 안지윤, 안지훈.
더 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최대한 간추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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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거슬러 가는 모래시계」
설명: 【만물의 주인】 이서진이 사용할 경우, 일정 시간 동안 과거로 돌아갈 수 있게 된다.
*과거에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은 인원수에 비례해 줄어들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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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한이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모든 인원을 투입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렇기에, 최대한 실력 있는 사람들을 뽑았다.
“하. 드디어 이 몸의 위대함을 알아챈 모양이군. 뭐, 간절하게 부탁한다면 도와주지 못할 것도 없다. 간단하게 네 놈 목숨 하나만 내놓으면 특별히 도와주도록 하지.”
“……저 사람은 여기에 대체 왜 있는 거예요?”
“저번에도 그렇고, 온갖 불만은 다 말하면서 꼬박꼬박 참석한단 말이야…….”
“저 재수 없는 놈이 혼자 좋은 걸 독식하지 못하게 이 전진우 님이 친히 감시할 뿐이야.”
사실 멤버의 선택 중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있었다.
그 사람이 나의 대한 신뢰도가 얼마나 높냐에 따라서 개방품의 효율이 달라진다.
좀 더 과거에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이 길어지는 것이다.
“……뭘 보는 거지?”
“아냐. 아무튼, 와줘서 고맙다.”
“쯧. 재수 없는 녀석. 단지 신기해서 왔을 뿐이다.”
말은 저러면서 결국 날 믿긴 한다는 거다.
웃기긴 했다.
그토록 날 싫어하던 녀석이 이런 중요한 순간까지 함께하게 되었으니까.
“과거로 돌아간다니…… 조금 떨리는데요.”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생사를 가르는 전투를 해온 자들이다.
하지만 그동안 겪어봤을 리 없는 시간여행은 긴장 될 수밖에 없겠지.
‘조금 애매한데.’
이 정도 인원도 많다고 볼 수 있었다.
그곳에서 머물 시간이 얼마나 될지 알 수 없었으니까.
“나는 패스하도록 하지.”
“저도 이곳에 남도록 하겠습니다.”
안환재와 신태웅이 뒤로 빠졌다.
“자네가 언제 돌아올지 모르지 않은가. 혹시 마계에 갔을 때처럼 시간의 흐름이 다를 수도 있고 말일세.”
“과거를 바꾼다고 해도 현재가 무너지면 소용없겠죠. 저희는 이곳에 있는 사람들을 지키겠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신태웅의 몸은 실체가 없기에 조금 신경 쓰였으니까.
만약에 아직 그림자들의 도시가 없었던 시절로 간다면 그의 몸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었다.
“그러면 이제 서로 함께 갈 사람들을 정해야 하는데…….”
“나는 혼자 가도록 하지.”
자신만만하게 말하는 전진우.
입가가 히죽거리는 게 대충 무슨 생각일 지 뻔했다.
“……제가 이 사람과 같이 갈게요. 서진 씨.”
“고마워요. 해연 씨라면 믿고 맡길 수 있겠죠.”
“……나를 무슨 애완동물 취급하는 건가?”
전진우와 정해연.
“나! 나는 무조건 서진이 너랑 갈래!”
“루비는 성자님과 함께 가도록 하겠습니다.”
“미안하지만, 나는 혼자 갈 거야.”
이미 저들의 짝은 정해져 있었다.
“아, 진짜! 직장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짜증나 죽겠는데, 이태영 얘랑 과거로 여행까지 가라고?”
“……선배. 진지하게 한 대만 쳐도 됩니까?”
이유지와 이태영.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성기사단장님.”
“……알겠습니다. 수녀님.”
이루비와 신백준.
나를 힐끔 보며 아쉬운 듯 시무룩해 보이는 루비와는 달리 신백준은 꽤나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제 얼굴을 가득 채운 흉터를 한 번 만진 신백준이 내게 고개를 숙였다.
“맡은 바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겠습니다, 길드장님.”
언제나 통통 튀는 루비지만, 신백준이라면 믿을 수 있다.
“자, 그럼 다들…….”
“자, 잠깐! 잠깐만! 아직 나 남았다고!”
“아…….”
소성환이 주변을 휙휙 둘러보았다.
남은 사람은 안씨 남매와 소성환. 딱 봐도 짝이 정해져 있었다.
“설마 나 혼자야……?”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이었기에 나는 진지한 표정으로 그에게 말했다.
“형.”
“혀, 형?”
“성환이 형은 여기 있는 사람 중에서 가장 어른스러운 사람이잖아요. 형이 아니면 맡지 못할 일이 있어요.”
“그, 그래? 그럼 어쩔 수 없지! 잔혹한 바이킹은 혼자서도 충분하다고!”
그 모습을 본 일행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우리 단순한 소성환이 최고다.
이미 그가 향할 곳은 정해두었다. 한순간도 쉬지 않고 도끼를 휘두를 마물들이 반기게 될 것이다.
이런 날을 위해서 그동안 분노의 마왕과 눈물겨운 훈련을 해온 것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후훗. 낭군. 걱정하지 마. 마계는 내가 확실하게 지키고 있을 테니까.”
“부탁할게. 아스모데우스.”
“하지만 결계는 유지하기 힘들 거야. 기본적으로 신들의 이목을 속일 수 있던 건 전부 낭군님의 힘 덕분이었으니까.”
우리가 과거에 가 있는 동안 한국이 신들에게 노출된다는 의미였다.
과거와 현재.
둘 다 중요했기에 어느 것도 포기할 수 없었다.
이곳에 남는 사람들의 역할이 중요했다.
“우린 우리의 역할을 하면 되는 거야.”
기존에 있던 개방품이 서로 시너지를 일으켰다.
이것으로 단순히 과거로 가는 것이 아닌, 원하는 시간대와 장소로 갈 수 있을 것이다.
자, 그럼 이제부터다.
“다들 각자의 과거에서 힘내고, 현재에서 만납시다.”
모래시계가 뒤집히며 우리의 몸이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 * *
“우와. 정말로 사라졌어.”
일행들이 단체로 현재에서 사라지는 것을 보며 안지윤이 감탄사를 내뱉었다.
“야. 진짜로 괜찮겠냐?”
“응. 애초부터 네가 먼저 말한 거잖아?”
“그야, 너라면 과거로 가고 싶어 할 줄 알았으니까. 그리고 네가 아니라, 오빠라고 했지.”
안지훈과 안지윤.
두 사람은 과거로 가는 대신, 현재에 남는 것을 선택했다.
“신기하긴 하겠지. 과거로 가서 짜증 나는 부모님 엉덩이도 빡! 하고 차주면 시원하겠고 말이야.”
“아, 인정. 그건 좀 재미있을 거 같은데.”
안씨 남매.
이서진의 하우스에서 살아가는 입주민인 두 사람은 현재에 남는 것을 선택했다.
마지막까지 고민하긴 했지만, 역시 이게 맞을 것이다.
“왜냐하면, 사부랑 싸부들이 전부 자리를 비웠으니까.”
“그래. 이게 맞겠지. 너랑 내가 지킬 곳은 여기니까 말이야.”
가장 중요한 사람들이 자리를 비웠다.
그렇다면 이곳을 노리지 않을 리가 없었다.
“미레. 아무래도 저기가 맞는 것 같지?”
“미라. 네 말이 맞아. 저기가 광신도들의 본부라고!”
서로 똑같이 생긴 두 사람이 스윗 하우스의 건물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보통의 존재감과는 달랐다.
본능적으로 안씨 남매는 저들이 사도란 것을 알 수 있었다.
“날개.”
“싸부 거랑은 조금 다르네.”
그뿐만이 아니었다.
미레. 미라.
두 사도의 등 뒤에 흰색의 날개가 펼쳐져 있었다.
천족.
충만한 신력을 받은 사도들은 종의 한계를 넘어 다음 단계로 진화하는 데 성공했다.
“어라. 둘뿐이야?”
“어라. 실망인데?”
현재 다른 곳에도 이런 놈들이 등장했을 것이다.
지금 이곳을 지킬 사람은 안지윤과 안지훈뿐이었다.
“아무리 봐도 평범한 인간들인데, 저런 놈들이 우리를 막을 수 있을까, 미레?”
“그럴 리가 없잖아, 미라. 곧바로 본거지를 초토화시키자!”
“응! 그러자!”
명백히 무시하는 그 말투에 안씨 남매의 이마에 핏줄이 돋았다.
“빌어먹을 동생아. 쟤네 뭐라는 거냐?”
“빌어먹을 오빠야. 아무래도 우리 무시당하고 있는 것 같은데?”
주변에 강한 사람들이 수도 없이 많다.
비록 사부와 스승들에 비하면 부족할지도 모르지만, 그들은 절대 훈련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스승이 어디 가서 무시당하고 살지 말랬는데.”
“사부가 어디 가서 무시당하고 오면 각오하라고 했단 말야.”
지금 이곳을 지키고 있는 것은 단순한 각성자가 아니다.
인류 최강의 각성자들이 직접 가르친 두 명의 제자였다.
“야. 너희 우리가 누군지 알고나 그런 말 하는 거냐?”
물론 그것뿐만은 아니었다.
그들에게 있어서 이곳을 반드시 지켜야 할 이유가 있었다.
“푸훗. 너희가 누군데?”
“푸훗. 너희가 누군데?”
재수 없는 쌍둥이 사도의 웃음을 마주하며 두 남매가 동시에 외쳤다.
“이곳 세입자시다!”
* * *
마치 폭풍 속에 떠다니는 것 같이 몸이 두둥실거린다.
자칫 잘못하면 이 시간의 파도에 휩쓸릴 것만 같았다.
내 목에 걸어놓은 동그란 알 모양 기계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일명 다마고치.
작은 화면에서 익숙한 이모티콘이 떠오른다.
“……넌 왜 온 거냐?”
[‘System’은 시간을 여행하는 것은 처음이라며 설렌다고 말합니다.]시스템.
지하실에 있던 녀석은 나를 따라서 과거로 왔다.
그 거대한 화면을 포기하고, 이런 작은 다마고치로 들어오면서까지 말이다.
……얘 팔도 있는 건가?
의외긴 했지만, 오히려 내게 있어선 좋은 일이라고 볼 수 있었다.
나는 남들과 다르게 시스템에 의지하는 경우가 많다.
만약에 과거로 갔을 때, 이용하지 못한다면 상당히 골치 아플 것이다.
서서히 흐름을 타기 시작했다.
이제 곧 있으면 정해진 과거에 도착할 것이다.
되도록 가까운 과거는 일행들에게 맡겼다.
더욱 깊은 곳으로 갈수록 몸에 가해지는 부담이 심해질 테니까.
“나는 더 깊은 곳으로 간다.”
가장 먼저 향하는 곳은 약 칠 년 전.
내가 능력을 각성하기도 전의 세계다.
한창 살기 위해서 여러 가지 일을 하고 있을 때다.
휘익!
사람이 없는 골목길에서 내 몸이 서서히 형체를 이루었다.
손과 발을 움직여보았다. 다행히 별다른 부작용은 없었다.
“일단 빨리 움직이자.”
지금 이 시간대로 찾아 온 이유.
나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자의 미래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되게 어색하네.”
길가를 돌아다니는 각성자들의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단순히 칠 년 전임에도 장비의 질과 수준이 눈에 띌 정도로 차이가 났다.
“색도 탁하고.”
각자 들고 다니는 물약도 그랬다.
기껏해야 절반의 순도도 안 될 것들을 최고급이랍시고 소중한 듯 껴안고 있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보급용으로 주어지는 것도 저것보다는 훨씬 색이 맑고 투명할 것이다.
“내가 잘 맞춰왔나 보네.”
당연할 것이다.
지금 이 시대에는 물약의 혁신을 일으켰던 길드가 부재되어 있었다.
황혼.
정해연이 세운 길드는 뒤바뀐 과거로 인해 사라져 있었다.
다행히도 길드의 핵심 인물들은 베르니아 덕분에 무사했지만.
“어디 있지?”
내가 이곳에 온 이유는 과거의 정해연을 도와서 원래의 미래로 다시 바꾸는 것이다.
-그 날이 제가 한국에 처음 온 날이에요.
정해연이 말해주었던 것을 떠올리며 휴대 전화를 열었다.
결국 두 사람 다 같은 정해연이었기에, 앨범의 추적기능은 유효했다.
-한국으로 오자마자 던전 하나를 매입했는데, 그게 대박이 나서 황혼의 밑바탕을 제대로 다질 수 있었죠.
황혼이 그렇게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
본가에 있는 에이든과의 계약으로 자금 지원을 받았던 것도 있었겠지만, 결과적으로는 정해연의 과감한 결단력으로 인해 그럴 수 있던 것이다.
“예? 분명히 이 던전은 제가 매입하겠다고 했잖아요!”
“수호 길드에서 구매 의사를 밝히는 탓에. 저는 책임자가 아니라서, 뭐라고 하셔도 어떻게 해드릴 수가 없습니다.”
만약에 정해연이 모종의 이유로 첫 단추를 잘못 끼우게 된다면, 황혼이라는 길드는 한 나라를 대표하는 기둥으로서 클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하아…….”
잔뜩 움츠린 채로 터벅터벅 걸어가는 정해연.
그동안 봐왔던 그녀의 당찬 모습과는 완전히 달랐다.
……도플갱어의 성격이 왜 그렇게 기세나 했더니.
“저게 예전의 정해연 성격이었나 보네.”
주변 눈치를 살피고, 자신감이 없어 보였다.
미국에서의 생활이 그녀의 자존감을 바닥까지 낮춘 것이다.
“어떻게 할까.”
과거는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내가 과하게 개입하려 한다면 분명히 영향이 생길 것이다.
“그게 좋겠다.”
키다리 아저씨.
나는 지금부터 그녀만의 은밀한 성좌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