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tion is flowing from the water purifier in my house RAW novel - Chapter 176
우리집 정수기에서 물약이 흐른다 177화
47. 정해진 결말(2)
“사격 개시!”
우렁찬 목소리와 함께 하늘을 향해 총알이 빗발친다.
마나를 듬뿍 머금은 마탄.
그 두꺼운 트롤의 가죽마저도 꿰뚫을 정도로 예리한 총알이다.
“저게 천사인가.”
“공격이 통한다! 모두 사격을 멈추지 마!”
한 쌍의 날개가 달린 존재들이 헌터들의 총을 맞고 무참히 떨어진다.
신의 가디언, 천사.
천사라고 하지만 원래라면 그들과 같은 인간이다.
방아쇠를 당기는 손가락이 더없이 무거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저건 더 이상 인간이라고 할 수 없겠지.’
하늘에서 내려온 빛의 기둥을 맞으면 뭉개진 육체가 곧바로 재생된다.
지상을 향해 떨어졌던 천사들이 서서히 떠올랐다.
이내 천사들은 상처 하나 없는 몸으로 재차 달려들기 시작했다.
‘……저건 괴물이야.’
성좌들의 꼬드김에 넘어가 신을 모시기 위한 육체를 얻은 자들.
천사라는 거창한 호칭으로 불리고 있었지만.
그저 하늘에 있는 신의 명령을 받고 인간을 죽이려 드는 마물일 뿐이었다.
‘아니…….’
어느 면에서는 마물보다도 섬뜩했다.
그들에게서는 감정 같은 게 느껴지지 않았으니까.
저것은 생명체가 아니라, 단순한 꼭두각시일 뿐이다.
“전원, 사…… 격……?”
갑자기 그들의 움직임이 멈췄다.
고장이라도 난 것일까.
그런 게 아니었다.
천사들이 양쪽으로 갈라지며, 그 가운데로 누군가 날아왔다.
“불쌍한 인간들아.”
경계 태세를 하고 있던 헌터들이 긴장된 표정으로 앞에 있는 천사를 마주했다.
방아쇠를 당겨야 하지만, 도저히 당길 수가 없었다.
감히 그런 짓을 할 수가 없다. 라는 게 맞을 것이다.
지금껏 보았던 천사들보다도 훨씬 성스러운 모습.
한 쌍의 날개를 가진 천사들에 비해, 눈앞의 존재는 세 쌍의 날개를 등에 달고 있었다.
“나는 대천사 라미엘. 너희 인간들에게 자비를 내려주기 위해 이곳으로 왔다.”
대천사, 라미엘.
한때는 러시아를 다스리던 후회의 신이라고 불리던 존재.
“내리쳐라.”
라미엘의 근처로 빛의 기둥이 사납게 내리쳤다.
그 경이로운 광경에 인간들이 제 무기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우리와 함께하라. 그러면 영광의 순간에 함께할 수 있을 테니.”
저 천사의 한 마디 한 마디가 뇌리에 꽂히듯 전해졌다.
저런 존재에게 대항하는 것이 맞는 것일까.
인간들이 무력감을 느끼며 서서히 입을 열었다.
“저, 저희는…….”
고고고-!
그때, 천사들의 사이에 있는 공간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이건……!”
지구에 사는 인간이라면 모를 리가 없었다.
균열이 나타날 때 보이는 징조.
잠시 후, 예상했던 대로 균열이 생성되었다.
인간들이 숨을 죽이며 균열을 바라보았다. 저곳에서 나오는 마물이 곧바로 인간을 공격할 것이었다.
“…….”
하지만 그곳에서 나온 것은 단순한 마물이 아니었다.
개의 얼굴을 한 짐승이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이런 개고생을 하게 되다니. 나는 마계를 지배하는 마왕 중 하나인 엔비란 말이야!”
질투의 마왕, 엔비.
근원을 빼앗기고, 마왕의 좌에서 내려가게 된 그는 이서진의 명령을 듣게 되었다.
무려 대마왕의 아버지.
거역은 할 수 없었다.
그의 명령을 지키기 위해 엔비는 지구로 귀환했다.
“이런 더러운 마물이!”
대천사 라미엘이 눈앞에 나타난 짐승을 향해 성스러운 창을 내뻗었다.
“감히 신의 사자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냐!”
“……하기 싫지만, 어쩔 수 없지. 이걸로 아스모데우스가 조금은 다시 봐 줄 테니까.”
탁!
손가락을 튕기자, 곳곳에서 균열이 일어났다.
하나가 아니었다.
셀 수도 없이 많은 균열들.
대마왕의 직속 부하.
마계 제 6군단장, 엔비의 명령에 따라 마계에 있는 대마왕의 수하들이 지구로 몰려들고 있었다.
-크르르르.
“이,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야?”
그제야 정신이 돌아온 인간들은 당황 어린 눈동자로 주변을 살폈다.
그동안 인류의 적이던 마물들이 인류의 편에 서서 신의 병사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물론, 그것만으로 끝이 아니었다. 다른 곳에서도 지원군들이 도착했다.
“그림자들이여. 일어나라.”
스스스-
곳곳에 있는 그림자 속에서 도플갱어들이 튀어나온다.
적은 하늘에 있다.
그에 반해 그림자들에게 비행수단은 없으니, 제대로 된 싸움이 불가능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가지고 있지 않다면, 뺏으면 될 뿐이다.
“우리들은 도플갱어. 지금부터 천사들의 포식에 들어간다.”
도플갱어.
포식한 상대방의 능력을 카피할 수 있는 특수한 종족.
펄럭!
천사들을 집어삼킨 도플갱어들의 뒤로 그림자처럼 흐릿한 날개가 돋아났다.
“왜? 조금 섬뜩한가요?”
포식을 끝마친 빙해연이 제 본체를 향해 히죽 웃었다.
“아뇨. 어차피 저도 이제는 그쪽 일원이니까요.”
“조금 정도는 내 본체에 어울리는 말을 하게 된 것 같네요. 맘에 들어요.”
도플갱어와 본체는 서로의 존재를 공유하게 된다.
정해연의 등에도 자그마한 날개가 돋아났다.
“이제야 당신 곁에 있을 자격이 조금 정도는 생긴 것 같네요.”
아직 이곳에 오지 않은 키다리 아저씨를 떠올리며, 정해연이 화염을 내뿜었다.
* * *
“전열을 지켜라!”
“수호 길드장의 뒤를 따라라!”
갑작스러운 신들의 침략이었지만, 인류는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이 모든 사태를 예견하고 준비한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저게 철혈의 노장.”
헌터, 장봉식은 자신도 모르게 시선을 빼앗기고 말았다.
최전선에서 대검을 휘두르며, 천사들을 마구잡이로 도륙하고 있는 사내.
철혈의 노장, 안환재.
“……그렇게나 몸 좀 신경 쓰라고 말씀드렸는데.”
시원하게 날뛰고 있는 제 친우를 보면서 신태웅이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었다.
“나의 사도여!”
그런 신태웅에게 날아오는 자가 있었다.
익숙한 목소리다.
두 쌍의 날개를 가지고 있는 천사.
“이런 곳에 있던 것이구나! 내 얼마나 너를 친히 찾아다녔는지 알기나 하는 것이냐!”
“아집의 신?”
마찬가지로 한 때 아집의 신이라고 불렸던 존재.
다시 한번, 신태웅을 회유하기 위해 이곳에 찾아온 것이다.
“나와 함께하거라. 곧 영광스러운 시대가 시작될 것이니!”
아집의 신의 눈은 정상이 아니었다.
다른 천사들에 비해선 나은 편이었지만, 무언가에 의해 세뇌라도 당한 것처럼 보였다.
저주의 신이 모든 신력을 흡수해 유일신의 위치에 서게 되며, 자신을 위한 수족으로 만든 것이다.
신태웅이 작게 중얼거렸다.
“마침 잘 찾아왔어. 꼭 한 번쯤은 직접 만나보고 싶었거든.”
“나도 그렇다! 내 사도여!”
저 멀리서 이곳에는 시선도 주지 않는 제 친우가 보인다.
서로 믿고 있었기에 굳이 볼 필요가 없었다.
더 이상 실망시킬 생각도, 흔들릴 생각도 없었다.
힘으로 나란히 설 수 없다면,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같이 가면 되는 것이니까.
“그동안 잘도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아주셨어.”
전투 없이는 하루도 못 사는 안환재.
그런 자의 친우가 그저 당하고만 사는 성격일 리가 없었다.
“그 아집으로 가득 찬 머리를 갈기갈기 찢어주지.”
* * *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마계와 인간계 그리고 신계가 한데 모인 전쟁이 계속되었다.
처음에는 우위를 잡던 인간들이었지만.
끝없이 흘러나오는 신력을 이용해 힘을 보충하는 신계가 서서히 인간들의 세력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신의 가디언들이여! 전진하라. 신께서 함께하신다!”
상당히 위험한 상황이다.
결국, 저 위에 있는 신이라는 작자를 끌어내리지 못하면 이 전쟁은 끝나지 않는 것이니까.
위기의 순간임에도, 사람들은 흔들리지 않았다.
이럴 때마다 믿음직스럽게 찾아오는 성자가 한 명 있었으니까.
“빛이……!”
전장의 한복판에 광채가 퍼졌다.
저 하늘에 있는 신의 것은 아니었다.
가만히 들여다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희망의 빛.
계속되는 전투로 인해 지쳐있던 인간들의 몸이 단숨에 회복된다.
“저기 봐요!”
하늘에서 익숙한 형태의 사내가 떨어지고 있었다.
이서진이었다.
휙!
그의 충실한 수녀, 이루비가 그를 잡기 위해 재빨리 달려갔다.
하지만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다.
사뿐히 바닥에 내려앉은 이서진이 현재의 이루비를 안아 들고는 웃었다.
“다녀오셨습니까, 성자님.”
“응. 다녀왔어.”
일행들이 한데 모여 있었다.
한발 먼저 도착한 시스템이 그의 도착 사실을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드디어 오셨네요.”
정해연의 눈앞에 어디선가 본 듯한 메시지가 떠올랐다.
“……갑자기 이상한 게 머릿속에 떠오른다 했더니. 대체 과거에서 뭘 한 거예요?”
“하하…… 다들 잘 지냈어요?”
성자, 이서진이 현실로 돌아왔다.
과거에 있는 사이에 꽤나 시간이 흐른 것 같았다.
다들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회포라도 나누고 싶었지만, 지금은 먼저 처리할 것이 있었다.
하늘을 뒤덮은 천사들을 보며 이서진이 쓴웃음을 지었다.
“아무래도 저것들부터 전부 어떻게 해야겠네요.”
“자, 이거 받아.”
“이건…….”
“필요할 것 같아서. 내가 먼저 구해놨어. 잘했지?”
“고마워.”
“히히. 고마우면 알지? 다 끝나면 각오해. 절대로 안 봐줄 테니까.”
딱 필요하던 참이었다.
이유지에게서 마석을 받아든 이서진이 그것을 한 손에 꽉 쥐었다.
드래곤 하트의 개방을 위한 마지막 퍼즐이 맞춰졌다.
수룡, 토룡, 빙룡, 화룡, 뇌룡.
총 다섯 가지의 드래곤 안에 있는 마석을 흡수했다.
그럼에도 드래곤 하트는 개방되지 않았다.
또 다른 조건이 있는 것일까.
하지만 지금 와서 찾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당연한 것이겠지. 그런 하찮은 이무기들의 도움을 받는다고 해서 될 것이 아니니까. 가장 중요한 것이 빠졌느니라.”
베르니아가 천천히 걸어왔다.
그녀의 손이 서서히 이서진의 가슴팍으로 올라온다.
드래곤 하트가 자리 한 곳이었다.
대체 무엇을 하려는 걸까. 일행들의 시선을 무시하며 베르니아가 작게 속삭였다.
“이 세상에 있는 거라곤 너 하나뿐이니,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이니라. ……그러니 착각하지 말거라.”
베르니아는 황금빛 눈동자로 이서진을 바라보았다.
“나, 베르니아는 모든 고대룡들의 대표로서 맹세하겠다.”
고대룡의 유일한 생존자, 베르니아만이 기억하고 있는 고대 언어.
용의 언어는 특별하다. 그것은 거역할 수 없는 힘을 가진다.
그중에서도 용들이 일생에 단 한 번만 할 수 있는 말이 있다.
“이자를 평생을 함께하게 될 반쪽으로 받아들일 것을.”
드래곤 하트란 곧 용의 모든 것.
상대를 한 치의 거짓도 없이 믿을 수 있는 상대가 아니면 결속은 할 수 없다.
단순히 딸을 위한 속임수 같은 것이 아니었다.
이것은 베르니아의 진심을 담은 맹세의 서약.
당연히 그런 것을 구구절절 설명할 생각은 절대로 없었다.
어차피 인간이라면 이 말을 알아듣지 못했을 테니까.
“……뭘 그렇게 뚫어져라 보는 것이지?”
“아무것도 아니에요.”
베르니아는 눈을 찌푸렸다.
이서진의 드래곤 하트 속에 가득 들어찬 용들의 기운이 은밀하게 시전된 고대 마법을 간파했다.
베르니아의 양쪽 볼에 드러난 홍초를 보며 그가 피식 웃었다.
이서진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언어를 이해할 수 있었다.
물론 베르니아는 모르는 사실이었다.
‘말하진 않을 거지만.’
저 부끄럼쟁이 멸망용은 그 사실을 아는 순간 세상을 파괴하려 들 것이니까.
가슴 속에 있는 드래곤 하트가 진동한다.
위대한 용이 아니라면 사용할 수 없는 고대의 마법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이서진의 근처로 수많은 마법진이 그려진다.
하늘에 가득 들어찬 천사들을 향해 이서진이 명했다.
“떨어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