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tion is flowing from the water purifier in my house RAW novel - Chapter 177
우리집 정수기에서 물약이 흐른다 178화
47. 정해진 결말(3)
예전에 순둥이가 내게 걸어주었던 그 마법이다.
도저히 견딜 수 없는 무게감에 천사들은 지상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순둥이도 도와줄게! 얍!”
내 가슴에 있는 베르니아의 손 위로 순둥이의 자그마한 손이 얹어진다.
세 명의 드래곤 하트가 공명하며, 단숨에 마법진이 완성되었다.
수많은 고대마법들이 발동되었다.
더 이상 부활할 수 없도록 영혼은 제자리에 속박되었고.
신체는 보이지 않는 손에 붙잡힌 듯 움직여지지 않았으며.
하늘에서 내리쬐는 손전등의 빛과 함께 들려오는 아름다운 노래는 몸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었다.
“성자님이 함께하신다!”
사람들은 그동안 경험한 적 없는 기적을 경험하며 전선을 휘저었다.
“이 몸은 더 이상 관여하지 않겠다.”
내 가슴에서 손을 뗀 베르니아가 뒤로 살짝 물러났다.
저 말만 몇 번째일까. 저렇게 말하면서도 현실에 남아 과거가 개변되지 않도록 노력해주었을 그녀를 생각하자니 미소가 나왔다.
“고마워, 베르니아.”
“뭣…….”
순둥이가 엄마, 아빠라고 부르며 따르는데 한쪽이 일방적으로 존대하는 것은 이상하게 느껴질 것이다.
그녀는 잠시 주춤하더니 팔짱을 끼며 몸을 돌렸다.
“……마음대로 하거라.”
확실한 쐐기를 박기 위해서 또 다른 능력을 사용하기로 했다.
세 가지 가능성.
첫 번째는 용의 능력을 사용했으니,
당연히 그 다음은 마왕의 능력이다.
부웅! 부웅!
내 손에 들어온 뾰족이가 반갑다는 듯 진동한다.
어릴 적의 나와 놀았던 그 때를 떠올리며 외쳤다.
“정의의 검, 뾰족이 앞에 무릎 꿇어라!”
정의라기엔 마검이었지만, 상관없었다.
뾰족이에 한데 모여 있는 마왕의 근원들이 요동친다.
마왕의 기운에 노출된 마물들의 모습이 바뀌었다.
그저 단순한 잡몹이 아닌, 하나 같이 상대하기 까다로운 엘리트 마물이었다.
“너희들도 나와야지.”
-끄륵! 끄르륵!
내게 테이밍되었던 마물들이 아공간에서 튀어나왔다.
와이번.
그 옛날에 상상만 했던 일을 실현할 때가 왔다.
-끄륵! 끄륵!
와이번들이 요란한 비명과 함께 헌터들에게로 향했다.
혹시 공격이라도 하는 걸까.
긴장하던 그들에게 와이번들은 고개를 내밀었다.
“이건…….”
이번엔 인간들이 반격 할 차례다.
와이번의 등에 올라탄 헌터들이 허공을 향해 한 번에 부유했다.
“성기사분들에겐 좀 더 특별한 거로 준비했어요.”
-끼엑!!!
보통 와이번과는 크기 자체가 남다른 블랙 와이번들이 줄지어 섰다.
이들이 착용하고 있는 갑주만 해도 그 무게가 엄청났으니까.
“우와…….”
“……멋진데?”
일행들이 감탄했다. 나 또한 그랬다. 블랙 와이번의 등 뒤에 타 있는 성기사들은 마치 동화 속에 나올 법한 용기사처럼 보였으니까.
“그 동안 많이도 늘어났네.”
총합 백 명의 성기사들이 한 손에 거대한 망치를 들고 돌격했다.
-카르페 디엠. 영국 지부. 성자님께 보고 드립니다.
-카르페 디엠. 미국 지부. 성자님께 보고 드립니다.
과거 개변으로 인해 사라졌던 사람들도 원래대로 돌아왔다.
각 나라에서도 현재를 지키기 위한 싸움을 계속하고 있을 것이다.
“이 정도면 문제없겠는데?”
그렇다. 더 이상 지상은 문제없을 것이다.
이제 남은 것은 하나뿐이다.
“성자님. 저도 함께…….”
“아니, 너희들은 지상을 지켜줘. 내가 마무리 지어야 할 일이니까.”
성좌들이 사용하는 신력. 그것에 대한 정체를 이제야 알 수 있었다. 온 우주로 퍼졌던 유일신의 힘. 그 일련의 파편을 손에 넣은 것이다.
“그런 놈들이 사용할 수 있는 게 아니야.”
남을 지배하기 위한 힘이 아니다.
아버지가 지니고 있던, 소중한 사람들을 지키기 위한 힘이다.
“아버지가 내게 남기신 거니까, 돌려받으러 가야겠지.”
내 양쪽 어깻죽지에 날개가 돋아났다.
한쪽은 마기로 이루어진 흑색의 날개였으며.
다른 한쪽은 신력으로 이루어진 순백의 날개였다.
각각의 가능성을 전부 받아들인 결과가 서서히 내 몸에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인간으로의 가능성. 마나.
마왕으로의 가능성. 마기.
용으로의 가능성. 드래곤 하트.
세 가지의 가능성을 손에 넣었다.
이제 남은 것은 하나뿐이다.
신력.
그것을 전부 손에 넣으면, 더 이상 사람들은 고통 받지 않을 것이다.
뒤를 돌아보자, 일행들이 어째선지 가라앉은 표정으로 날 보고 있었다.
“왜들 그래요? 멀리 떠나는 사람 보는 것처럼.”
“……그게. 그냥 그런 기분이 들어서요.”
“해연 씨 감은 틀린 일이 좀 많지 않았나?”
“…….”
“하하. 농담이에요. 농담.”
정말로. 내게 있어서 과분한 사람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에게 평범하고 행복한 삶을 선물해주고 싶었다. 이들이 내게 주었던 것처럼.
“자자, 다들. 금방 다녀올 테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저 배고픈데, 갔다 오면 모여서 밥이라도 먹자고요.”
“이런 상황에서 밥 타령이에요?”
“하핫. 뭐야 그게. 서진이, 너다워서 좋긴 하네.”
내 미소를 보자, 다들 안심이라는 듯 따라서 웃는다.
‘조용.’
다행이었다.
개방품 같은 것이 없어도, 미소를 짓는 것만큼은 익숙했으니까.
나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을 새기듯이 오랜 시간을 쳐다보고는 말했다.
“다녀올게요.”
* * *
“……심각해.”
지상을 내려다보며, 저주의 신이 얼굴을 구겼다.
이제는 유일신의 자리에 오르게 된 그는 현 상황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어째서 밀리고 있는 것이지?”
끝없이 흘러나오는 신력. 그것을 받아들여 신의 뜻을 행하는 천사들.
신의 사자가 고작 평범한 인간들에게 진다는 것은 말이 안 되었다.
“……대체 저 마물들은 왜 인간들을 도와주고 있는 것이고?”
지구상에 있는 대부분의 신력을 흡수하고, 유일신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고 생각한 그였지만, 막상 그 힘의 운용이 시원치 않았다.
저주의 신.
한때는 사이먼이라는 이름이었던 사내는 오랜만에 느끼는 불안함에 중얼거렸다.
“괜찮아. 아직 미숙한 것뿐이야. 얼마 지나지 않으면, 이단자들은 모두 정리 되고, 내 세상이 찾아올 거다.”
멸망한 행성에서 살아남기 위해 결사대와 함께 타 차원으로 넘어왔다.
우주를 떠돌던 도중 발견한 신비로운 힘.
그것을 이용해서 지구라는 곳을 발견하고, 지배할 수 있었다.
신력.
그야말로 신이 될 수 있는 힘. 전지전능한 일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사용해보니 너무도 제한이 많았다.
“신의 힘이라기엔 무언가 어색해.”
고작해야 지상에 있는 인간들에게 메시지와 자그마한 힘을 전달할 수 있을 뿐.
힘의 사용이 너무도 어색했다.
창조로 만들어낸 회귀자도 그렇다.
원래대로라면 과거에 있는 모든 걸 파괴했어야 했다.
“…….”
아니, 사실 알고 있었다. 제 그릇이 부족해서일 뿐이라고.
온 우주에 퍼진 유일신의 파편들을 손에 넣을 수 있었지만, 그 힘을 다루기 위한 자격이 없었다.
어처구니없게도, 그 자격이란 것을 가진 자는 따로 있었다.
고작해야 이런 변방의 행성에서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가고 있던 인간.
“……이서진.”
그 사내가 진짜 유일신의 후계자였다.
끝을 모르는 거대한 그릇.
고작해야 인간이 가지고 있을 리가 없는 것이었다.
“……어떻게 할까.”
방법은 두 가지뿐이다.
지구를 포기하고, 타 행성으로 도주한 후에 그곳에서 신력을 천천히 받아들이거나.
“그릇 자체를 바꿔 버리거나.”
그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보유하고 있는 이서진의 가능성 자체를 빼앗는다.
사이먼에게 있어서 그것 외의 선택지는 없었다.
그때였다.
지직!
지지직!
오직 신만이 출입할 수 있는 공간에 균열이 일어나고 있었다.
곧이어 그곳에서 한 사내가 걸어 나왔다.
사이먼이 그토록 찾던 유일신의 후계자였다.
“누구 멋대로 빼앗는다고?”
“……?”
사이먼은 믿을 수 없었다.
그동안 베일에 쌓여 그 실체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었지만, 직접 마주하게 된 이서진은 그야말로 터무니없는 존재였다.
‘말도 안 돼.’
몸 안에 가득 들어찬 세 가지 기운.
마나와 마기 그리고 신력.
우주상에 존재하는 모든 힘이 그에게 깃들어 있었다.
“왜 말이 없어? 그릇을 빼앗는다니 뭐니 했잖아?”
생각을 읽혔다.
빼앗는다는 것 자체가 오만이었다.
반대였다.
유일신의 적법한 후계자가 자신이 가진 모든 신력을 집어 삼키기 위해 이곳으로 온 것이다.
‘도망가야 한다.’
지구에서의 신력의 공급은 끊기겠지만, 지성체가 살아 숨 쉬는 곳은 이 행성만이 아닐 것이다.
최소한의 자격은 손에 넣었다.
다른 곳에서 이 힘을 갈무리 한 후에 찾아오면 승산은 충분하다.
곧바로 이탈하려는 사이먼의 눈에 시스템창이 떠올랐다.
신의 자리에 올랐음에도 제어할 수 없던 시스템.
[‘System’이 그 힘의 진정한 주인은 따로 있다며 좀도둑을 노려봅니다!]그것마저 손에 넣은 이서진이 천천히 다가왔다.
도망은 칠 수 없었다.
이미 이곳은 그의 영역이었으니까.
“웃기지 마!”
자신은 유일신이다.
여기까지 와서 순순히 내줄 생각 같은 건 없었다.
“이것은 온전한 나의 힘이다!”
끊임없이 샘솟는 신력을 이용한다.
다른 곳이라면 몰라도, 이곳은 신을 위한 공간이다.
한곳에 모여든 신력은 이내 길다란 창이 되었다.
그 어떤 존재라도 멸할 수 있는 죽음의 창.
“죽어라!”
이서진은 별다른 대응은 하지 않았다.
그저 가볍게 말했을 뿐이다.
“아이기스의 방패.”
거대한 순백의 방패가 나타난다.
죽음의 창은 그것에 맞아 흔적도 없이 소멸해 버렸다.
방패에는 아무런 흠집도 없었다.
그야말로 신의 방패나 다름없는 모습이었다.
“이게 전부야?”
이서진의 도발에 사이먼은 곧바로 미래를 예지했다.
앞으로 일어날 일을 미리 파악해서 선수를 칠 생각이었다.
-이게 전부냐니까?
“……?”
잠깐 본 미래에서 사이먼은 아무런 반항조차 하지 못하고 무릎 꿇고 있었다.
미래 예지 또한 사용할 수 없었다.
어떻게든 방법을 마련할 때까지 시간을 번다.
사이먼은 곧바로 이곳에 있는 공간을 한 행성보다도 넓게 만들었다.
“대, 대체 왜 이렇게 되는 거야!”
아무리 도망치려해도 거리가 벌려지지 않았다.
누군가가 간단한 눈짓 한 번만으로 공간을 압축시키고 있는 것이다.
신력을 이용한 공격이 제대로 통하지 않고 있었다.
그렇다면…….
“……모든 신력을 이곳에 바친다.”
신력을 전부 사용해서 두 사람을 같은 조건으로 만든다.
서로 인간의 몸을 하고 있으면, 죽이지 못할 리가 없었다.
쿵!
신의 위치에 오른 이후로 느껴본 적 없는 거대한 무게감.
분명히, 상대방도 이런 기분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죽어라!”
사이먼은 인간이었던 시절의 몸으로 이서진을 향해 칼을 휘둘렀다.
촤악!
이서진은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인간의 몸으로 격하되었다는 무력감 때문이 분명하다고 사이먼은 생각했다.
‘통한다!’
한 행성에서 적수가 없을 정도로 극에 달한 실력을 지니고 있던 사이먼의 공격이 통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좋았어!”
사이먼은 한 순간도 쉬지 않고 베고 또 베었다.
이서진의 몸은 완전히 만신창이가 되었다.
“이…… 게 무슨…….”
베이고 잘린 상처에서 흘러나오는 붉은색의 액체.
피 같은 것이 아니었다.
물약이었다.
그 어떤 상처라도 곧바로 치유할 수 있는 전설 속의 엘릭서.
신체는 곧바로 재생되었다.
온 힘을 다한 사이먼의 공격은 아무런 타격도 줄 수 없었다.
“아…….”
그제야 모든 것이 이해되었다.
신력을 이용해서 경지를 낮춘 것이 아니다.
인간의 몸으로 돌아간 것은 그 혼자.
이곳에 온 순간부터 사이먼이 보유한 신력들이 전부 이서진에게로 넘어가고 있던 것이다.
“안 돼…….”
이것은 처음부터 예정된 미래였다.
만물의 주인이란 곧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게 사랑받는 자.
그 존재를 위해 만들어진 힘으로 위해를 가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이 몸은 신이다! 모든 생명체 위에 군림할 유일한 신이라고!”
사이먼에게서 모든 신력을 빼앗은 이서진이 말했다.
“사라져라.”
사이먼의 몸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신 같은 것이 아닌, 침략자에게 있어서 어울리는 최후였다.
“……이게 아빠가 느끼던 감정이구나.”
인간을 초월한 절대적인 감각.
진정한 후계자를 찾은 신력이 내부에서 요동친다.
드디어 모든 가능성이 개화했다.
잠시, 눈을 감은 이서진이 상념에 빠졌다.
“…….”
유일신이란 말 그대로 유일하기에 그 존재가 성립된다.
남들과 같은 평범한 생활을 보내게 된다면, 그 의미는 퇴색되고, 언젠가 지구에 똑같은 참사가 벌어질 것이다.
“그래. 이거면 된 거야.”
이곳으로 오기 전부터 결심했던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아무런 걱정도 없는 세상을 만들어주자고.
마나, 마기 그리고 신력.
그 모든 힘을 한데 모은 이서진이 지상을 굽어보며 말했다.
“만물의 주인, 이서진이 명한다.”
하늘에서 빛이 터져 나왔다.
* * *
“저기 봐!”
“저건…….”
“……빛?”
지상에 있는 인간들은 하늘을 바라보았다.
강렬한 빛이 그들을 내리쬐고 있었다.
“천사들이 사라지고 있어.”
지상을 침공 했던 천사들이 사라지고 있었다.
정확히는 돌아가는 중이었다.
거짓된 신을 믿지 않는 평범한 인간의 모습으로.
“끝이다!”
“전쟁이 끝났다!”
모든 사투가 끝이 났다.
마물들 또한 원래 있던 마계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들이 그토록 바랬던 해방의 순간이다.
사람들은 이 모든 일을 주도했던 한 사람을 떠올리며 외쳤다.
“성자님 만세!”
“성자님 만세!”
서로를 부둥켜안으며 승리의 기쁨을 느끼고 있던 사람들이 문득 느껴지는 위화감에 중얼거렸다.
“……그런데 성자가 누구였지?”
* * *
“끄으응. 끝이다!”
전투에 지친 일행들이 기지개를 켜며 고개를 치켜들었다.
언젠가 보았던 빛이 지상을 향해 내리치고 있었다.
“하핫. 누가 성자 아니랄까봐. 또 요란하게 하기는.”
“또 하늘에서 ‘빛이 있으라!’ 하고 외치고 있는 거 아니야?”
“크큭. 형 돌아오면 거하게 놀려줘야겠는데.”
그들은 서로를 마주보며 웃었다.
이제 그 어떤 괴로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모두가 행복한 삶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좀 늦지 않아요?”
평소대로라면 지금쯤 속 편한 얼굴로 그들에게 왔어야했다.
“……그게 네 선택이느냐. 정말로 야속하구나. 반려자여.”
멸망용, 베르니아는 하늘을 보며 눈을 찌푸렸다.
그녀는 지금 온힘을 다해서 결계를 펼치고 있었다.
지금 있는 이 사람들에게만큼은 잊혀지지 않을 수 있도록.
“서진이는?”
“……서진 씨는 대체 어디 있는 거죠?”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이서진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 대신이라고 하듯이 일행들의 시야에 무언가가 나타났다.
“……탑?”
그것은 탑이었다.
하늘 높이 솟은 거대한 첨탑이 지상에 강림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