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tion is flowing from the water purifier in my house RAW novel - Chapter 179
우리집 정수기에서 물약이 흐른다 180화
48. 정해지지 않은 마음(2)
이서진.
이제는 대부분이 기억하지 못하는 인간.
성자라고 불렸던 그는 근처 사람들에게 있어서 소중한 존재가 되었다.
그것은 성별과 나이를 불문하고 그러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특별한 관계가 있었다.
“순둥이는 아빠를 만나러 갈 거야.”
이서율.
인간의 자식으로 태어난 용.
이서진의 딸이 희망의 탑 앞에 섰다.
아무리 고개를 들어도 탑의 끝이 보이지 않았다.
“힝. 그래도 갈 거야.”
끙차!
혹시 놓고 온 건 없는지 꼼꼼히 검토를 시작했다.
어디 갈 때는 반드시 잘 확인하고 갈 것!
아빠가 가르쳐 준 것이었다.
“응! 준비 완료야!”
등 뒤에는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빵빵한 가방을 메고 있었다.
제 아빠가 배고플 것을 대비해 직접 준비한 도시락이었다.
언제나 해맑은 미소를 짓고 있던 이서율이 진지한 표정으로 탑을 바라봤다.
“순둥이는 아빠가 최고로 소중하니까. 다른 건 상관없는걸.”
제 아빠와 함께 있을 수만 있다면, 세계 같은 것은 멸망한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희망의 탑 안으로 진입하려던 이서율의 앞을 누군가 막아섰다.
-끄앙!
“꼬물이?”
언제나 옆에 있어 주던 그녀의 친구가 두 팔을 활짝 펼쳤다.
상대방을 위협하기 위한 동작이 아닌 친구의 도움이 되기 위한 동작이었다.
“꼬물이도 같이 간다아!”
2M를 훌쩍 넘는 도플갱어들의 군주가 눈앞의 주인에게 예의를 표했다.
“제1군단장, 꼬물이. 순둥이와 함께한다!”
희망의 탑의 근처로 무수히 많은 균열이 생성되었다.
그곳에서 튀어나온 마계의 군단장들이 일제히 나열했다.
“제2군단장, 아스모데우스. 순둥이 님과 함께하겠습니다.”
“제3군단장, 오르키안. 순둥이 님의 곁을 지키겠습니다.”
“제4군단장, 아몬. 순둥이 님의 앞길을 막는 모든 것을 파괴하겠습니다.”
“제5군단장, 벨제부브. 순둥이 님의 곁에 있겠습니다.”
“제6군단장, 엔비. 순둥이 님의 총애를 받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제7군단장, 루시퍼. 순둥이 님과 함께하도록 하죠.”
“우와아!”
“저도 왔어요. 순둥이 누나.”
“까망이도 왔구나아!”
제 67마계.
대마왕, 순둥이의 이름 아래에 통합된 모든 세력들이 희망의 탑 앞으로 집결했다.
“음. 첫 번째가 아니었군.”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수호 길드와 더불어 한국의 대형 길드들의 정예도 있었다.
거대한 대검을 바닥에 내리찍은 안환재가 호탕하게 웃었다.
“하하. 수호 길드는 모두를 지킨다. 아직 지키지 못한 사람이 있으니까 말이야.”
안환재의 뒤에 있는 그림자에서 도플갱어들이 튀어나왔다.
이제는 완전히 그림자들의 일원이 된 정해연이 웃으며 말했다.
“그렇죠. 어떤 철부지 마법사님을 만나러 가야 하니까요.”
“모쪼록 찾게 된 왕을 방치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
사삭!
수백 명의 은밀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온다.
저 하늘에 있는 보름달의 빛을 받으며, 짐승들이 도약해왔다.
“족장님. 이곳입니까?”
“그래, 이것들아! 저 안에 내 남자가 있다니깐!”
웨어울프족의 족장, 이유지가 씨익 웃으며 정해연에게 말했다.
“왜? 불만 있어?”
정해연 또한 웃으며 마주했다.
“아뇨. 당신이라면 올 것 같았어요. 누가 뭐라고 해도 제 라이벌이니까.”
“하핫! 네가 라이벌이니 뭐니 하니까 진짜 안 어울리는데!”
“다, 당신이 먼저 꺼낸 말이잖아요!”
쿵!
바닥이 울린다.
앞을 가로막는 그 어떤 적이라도 부숴버릴 것 같은 압도적인 존재감.
도합 백 명이 넘는 성기사들이 오와 열을 맞춰 걸어왔다.
“아직 한 명이 없는 것 같은데요?”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수녀님이라면…….”
그들의 머리 위로 무언가 떨어졌다.
“……응? 깃털?”
일행들이 고개를 들었다.
수녀복과 날개의 조화.
이곳에 있는 그 누구보다도 화려한 행색의 이루비가 천사들을 이끌고 도착했다.
“……당신은 언제 보아도 독특한 일을 하시네요.”
아무리 그래도 천사가 되어 나타날 줄은 몰랐다.
일행들의 눈빛에 이루비는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신님의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루비 또한 그에 걸맞은 존재가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마지막으로 도착한 것은 단 한 명이었다.
하지만 이곳에 있는 전원보다도 강렬한 힘을 내포한 존재이기도 했다.
“엄마!”
일 년 동안 인간계에서 사라졌던 베르니아가 모습을 드러냈다.
“조금 늦은 것 같구나. 가증스러운 정령왕과 한 가지 계약을 맺고 왔느니라.”
일행들의 곁으로 수많은 정령들이 꺄르륵거리며 모여들었다.
정령들의 숨결이 닿자, 몸이 가벼워지며 활력이 돈다.
“정령계를 멸망시키지 않는 대신 협조를 구했지.”
베르니아에겐 상관없는 일이었지만.
이곳에 있는 자들 중 한 명이라도 죽게 된다면 분명히 제 반려자가 슬퍼할 것이었다.
“물론, 힘은 사용하지 않겠다. 평소였다면 말이지.”
베르니아의 두 눈이 황금빛으로 빛난다.
언령.
그녀는 언어에 힘을 담아 말했다.
“감히 멸망용에게서 도망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말거라. 이 도둑놈.”
이곳에 있는 전원은 희망의 탑의 공략을 위해서 왔다.
신에 의해 정해진 결말.
그것이 그가 바라는 것이라면 눈앞에서 부정해 줄 생각이었다.
이게 옳은 일인지는 그 누구도 몰랐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아직 정해지지 않은 마음에 충실하기로 했다.
당신과 함께 있고 싶다고.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웃음소리가 섞인 말이 울려 퍼졌다.
“지금부터 성자님 납치 작전을 시작하겠습니다!”
* * *
“……야지.”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별로 확인하고 싶지 않았다.
이 푹신푹신하고 부드러운 감각은 도저히 포기할 수 없었으니까.
“서진아! 어서 일어나야지! 학교 늦겠다!”
어머니의 목소리였다.
나는 곧바로 이불을 얼굴까지 끌어올렸다.
“으으…… 5분만 더요…….”
“얘는 진짜! 당장 안 일어나!”
“어억!”
등으로 쏟아지는 강스파이크와 함께 나는 눈을 떴다.
“여긴…….”
낯선 천장이다.
당연하다.
이곳에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까.
오랜 시간 끝에 새로 생긴 우리 가족의 스위트 홈.
“……그래. 맞아. 이사 왔었지.”
부모님들의 사업이 잘 풀리는 덕분에 우리 가족은 좀 더 아늑하고 넓은 곳으로 이사 올 수 있었다.
“오. 서진아. 일어났니? 거기 문 앞에 신문 좀 가져다다오.”
방에서 나오자 아버지가 소파에 앉아계셨다.
자연스럽게 옆자리에 앉으려는데, 무언가 조금 이상했다.
‘이 소파가 이렇게 컸던가?’
마치 누군가가 하도 뒹굴거리는 탓에 엄청나게 크게 만든 듯한 사이즈다.
“냥!”
내 무릎 위로 고양이 한 마리가 올라왔다.
……우리 집에서 고양이를 키우고 있었나?
부모님이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는 걸로 보아선 그랬던 모양이다.
어디 보자, 얘 이름이 뭐였더라.
“냥냥아. 이리 온.”
“갸아아아악.”
“…….”
이름이 매우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내게 하악질을 하는 녀석.
위로 쭉 뻗은 꼬리를 만지작거리자 얌전해진다.
원래 고양이들은 이런 부위는 절대 안 만지게 해준다는데.
“완전 개냥이네.”
“냐앙. 냐아앙.”
내 목을 감싸고 도저히 놔주질 않는 고양이를 떼어내고 식탁으로 향했다.
아침밥이라기엔 임금님 수라상 뺨칠 정도로 호화로운 음식들이다.
나는 긴장 된 표정으로 갈비찜 하나를 뜯었고…….
“우와! 맛있어!”
그 환상적인 맛에 미칠 듯이 젓가락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빠도 얼른 드세요!”
“크큭. 너 많이 먹어라. 아빠는 괜찮으니까.”
“엄마! 오늘 요리 진짜 맛있어요!”
“여보, 그렇다는데? 하하……아니, 왜 그렇게 노려보고 그러오…… 사람 무섭게.”
아빠의 칭찬에 엄마는 미칠 듯이 노려보는 것으로 대답했다.
왜 저러는 거지?
“어디 보자…….”
아빠는 밥을 먹다 말고, 품 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담뱃갑이었다.
식사 도중에 담배를 피시거나 하는 분은 아니신데.
“하나도 안 남았군. 뭐, 상관없나. 더 이상 난 필요 없을 테니까.”
“필요 없어요? 이건 그럼 제가 가져갈게요.”
“아니, 그건 나중에 먹으려고 남겨놓은 건데…….”
아빠 앞에 놓인 초코케이크를 고스란히 챙겼다.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잠깐, 서진아.”
평소와 같이 학교로 향하려는데 엄마가 나를 불러 세웠다.
“잘 생각해 보니까, 이걸 안 해준 거 같아서.”
내 몸 전체를 감싸는 따뜻한 감촉이 느껴진다.
엄마는 나를 끌어안고는 속삭이셨다.
“우리 서진이는 뭐든 잘해낼 수 있을 거야. 넌 자랑스러운 내 아들이니까.”
“……나 부끄러운데.”
“어머. 호호. 엄마한테 무슨 말버릇이니?”
“사, 사랑해요!”
아침에 맞은 등이 아직도 얼얼하다.
나는 도망치듯 밖으로 나왔다.
강렬한 태양 빛이 날 비추고 있었다.
피곤한 몸이 치유되는 듯한 감각이었다.
묵직.
학교를 가기 위해 걸음을 옮기려는데 움직여지지 않는다.
“헤헤.”
아래를 내려다보자, 자그마한 햄스터 같은 것이 내 다리에 달라붙어 있었다.
“햄스터가 아니었네.”
“응! 난 순둥…… 아니, 서율이야!”
아마도 이웃집에 사는 꼬마였던 걸로 기억한다.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날 엄청나게 따랐지.
“서율아. 오빠는 학교에 가야 해요.”
“헤헤. 절대 안 놔줄 건데!”
찰싹 붙은 볼때기가 마치 찹쌀떡같이 눌러져 있다.
나는 케이크가 있다는 걸 기억하고는 검은색의 가방을 열었다.
“꾸엑.”
……?
무언가 가방을 휘젓는 감촉이 예사롭지 않다.
마치 어떤 생명체의 입처럼 따뜻하다.
나는 익숙하게 요리조리 휘저으며 케이크를 찾았다.
“초코케이크!”
그것을 내밀자 반짝거리는 두 눈동자로 받아든다.
“감샤합니다!”
누가 가르쳤는지 몰라도 엄청나게 예의 바른 꼬마란 말이지.
“안 먹어?”
서율이는 멀뚱히 케이크를 쳐다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좀 이따 아빠랑 같이 먹을 거야! 그동안 엄청나게 참아 왔는걸!”
“장하네.”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무척이나 좋다는 듯 방긋 웃는다.
언제나 그랬지만, 웃는 모습이 정말로 매력적인 아이다.
‘……언제나 그랬다고?’
나는 분명 이사 온 지 며칠도 되지 않았을 텐데.
왜 이런 생각이 드는 걸까.
‘조금 놀아줄까?’
“목말 태워줘!”
그건 노는 거랑 조금 다르지 않나 싶었지만.
뭐, 상관없겠지.
어린 애라고 해도 조금은 무거울지 알았는데 아무런 무게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응! 역시 여기가 최고로 좋은걸!”
기분 좋다는 듯 흥얼거리는 서율이.
그러고 있자니 누군가가 도도한 걸음과 함께 걸어왔다.
“어딜 그렇게 도망갔나 했더니. 이런 곳에서 아주 천하 태평하게 지내고 있던 모양이구나.”
지금 내게 목말을 타고 있는, 이서율의 어머니다.
이름이 니아라고 하셨나.
아마도 외국 분인 모양이다.
언제나 날 볼 때마다 표정을 구기곤 하신다.
내가 그렇게 마음에 안 드시는 걸까.
“……마음에 안 들면 이런 곳까지 찾아오지도 않았을 것이야.”
“헤헤. 다 모였다!”
“뭐? 우왁!”
내 뒤에는 아무것도 없는데도, 무언가 날 잡아당기는 느낌이 들었다.
다시 한번 포근한 감각이 느껴진다. 나는 그녀에게 안겨 있었다.
“죄, 죄송합니다!”
“다른 놈이었다면 존재 자체를 멸했을지도 모르는 짓이겠지만, 특별히 반려자라서 봐주는 것이니라. 조금 더 있도록 하거라.”
두근!
심장 박동이 이렇게 크게 들릴 정도로 가깝게 있다.
지금 이곳에 있는 세 사람의 심장 소리가 전부 들렸다.
‘……이상해.’
나는 그들에게 꾸벅 인사하고, 학교를 향해 가기 시작했다.
“앗! 싸부! 저예요! 싸부의 애제자 안지윤이 왔어요오!”
“야, 이 미친놈아! 누가 그렇게 대놓고 하래!”
도중에 무슨 이상한 소리가 들렸지만, 별로 신경 쓰이진 않았다.
이러다 늦겠다 싶어서 조금 속도를 냈을 때였다.
“죄송합니다!”
누군가와 부딪쳤다.
“아니에요. 괜찮아요. 제 쪽에서 부딪친 거기도 하니까요.”
딱 봐도 ‘저 성공한 커리어 우먼이에요’라는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붉은 머리의 화려한 여성이었다.
“저기요……?”
그런 사람이 나를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마치 눈에 스카우트라도 달린 듯이 아주 꼼꼼히도 본다.
“학생 모습의 서진 씨는 이렇게 생겼었구나…… 이것도 상당히 괜찮은 것 같은…….”
“저기요?”
뭐라 중얼거리곤 있는데 들리진 않는다.
그녀는 사무적인 웃음과 함께 내게 뭔가를 내밀었다.
명함이었다.
“황혼……?”
대한민국에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들어볼 굴지의 대기업이다.
“언제든 원할 때 전화하세요.”
“예? 그게 무슨…….”
“저, 지금 당신 스카우트하는 거예요.”
고작해야 학생에 불과한 나를 뭘 보고 스카우트한다는 말인가.
“음. 무언가 상상도 할 수 없는 거래도 해줄 것 같고, 인간적인 매력도 있을 것 같고, 제 생명도 구해줄 것 같거든요,”
……그게 뭐야?
그녀는 제 손에 들린 수첩을 보면서 피식 웃었다.
무언가 종이에 빼곡하게도 적혀 있었다.
아무래도 어린애 상대로 장난을 치는 모양이다.
나 또한 익살스럽게 물었다.
“그럼 어느 자리까지 주실 수 있는데요?”
“부사장 자리요. 원하면 그냥 나랑 공동으로 사장해도 되고요.”
봐봐.
역시 장난이었잖아.
“진짠데.”
오늘따라 조금 이상한 일이 많이 일어나는 것 같았다.
학교에 도착했다.
반으로 들어왔는데도 아무도 없었다.
잠시 앉아서 창밖을 쳐다보았다.
무언가 거짓 된 풍경을 보는 것 같은 이질감이 들었다.
내가 오늘 아침에 느꼈던 그 위화감들은 대체 뭐였을까.
드르륵-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 들어왔다.
같은 반이자 내 옆자리에 앉는 학생이었다.
이름이 이루비라고 했던가.
복장은 나와 같은 교복으로 평범했지만, 머리색은 아름다운 백색이었다.
“좀 더 다른 옷이 어울릴 것 같단 말이지.”
나도 모르게 속마음이 튀어나왔다.
혹시 들었나 싶어서 눈치를 보는데, 다행히도 아무 말 없이 내 옆에 앉는다.
“저기.”
“무슨 일이신지요.”
분명히 옆자리 짝꿍이 맞았던 것 같기는 한데…….
“조금 많이 가깝지 않나?”
내게 완전히 밀착한 채로 서서히 자리를 침범한다.
기어코 한 의자에 같이 앉고서야 그 움직임이 멈췄다.
“아뇨. 이 정도로는 부족합니다. 루비가 그동안 얼마나 참아왔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지금도, 무척이나 인내하고 있는 것입니다.”
동급생한테 존대를 하는 건 둘째치고 그 눈빛이 무서웠기에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나도 더 이상 학생들은 들어오지 않았다.
“루비가 이겼습니다. 평등하게 가위바위보로 정한 겁니다.”
그때, 교실의 불이 꺼지고, 칠판에 서서히 글자가 떠올랐다.
교실 앞에서 영상이 나오기 시작했다.
나와 똑같은 얼굴의 사람이 아르바이트 도중 심장을 움켜잡고 쓰러지고 있었다.
혹시 몰래카메라라도 하는 걸까.
내가 그 정도로 인기 있다곤 생각하지 않는데 말이야.
“……뭐, 수업이니까. 보도록 할까.”
영상은 계속되었다.
아무래도 저 세계는 이곳과는 조금 다른 것 같았다.
무서운 괴물도 나오고, 사람들이 이상한 능력을 사용하곤 한다.
‘내가 가장 이상해 보이긴 하네.’
그중에서도 압권인 것은 나였다.
평범해 보이는 물건을 가지고, 특별한 능력을 사용했다.
그는 그것을 이용해 여러 사람들을 도와주었다.
아까 보았던 커리어 우먼도 있었고.
집에서 보았던 고양이도 있었으며.
지금 내 옆에 앉아 있는 학생도 있었다.
‘즐거워 보이네.’
영상 속의 나는 상당히 즐거워 보였다.
여러 사람들을 만나며, 힘든 일도 있어 보였지만, 행복한 삶을 사는 것 같았다.
“…….”
어두운 교실이 서서히 밝아졌다.
옆을 돌아보았다.
그곳에 빛의 근원지가 있었다.
익숙한 수녀복을 입은 채로 등 뒤에 찬란한 날개를 달고 있는 루비가 있었다.
그 사실에 이상함을 느끼지 않았다.
나는 계속해서 영상을 보았다.
몇 시간이 지나도 움직이지 않았다.
어느새 영상은 끝이 났다.
“……기분이 이상해.”
아침부터 느꼈던 위화감이 점점 커져간다.
잠시 눈을 감았다.
지금 내가 있는 곳이 현실이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상관없지 않을까.
이곳에는 아무런 근심도 걱정도 없었다.
“……그래. 이곳에서 살아가는 게 맞는 거야.”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내 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무언가 소중한 것을 놓고 온 것처럼 가슴이 먹먹했다.
눈을 떴다.
“아.”
내 근처에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영상에서 보았던 그 사람들이다.
그곳에 있는 내가 그토록 소중하게 생각했던 사람들.
“그것은 저희도 마찬가지입니다, 성자님.”
모든 게 떠오를 것 같았다.
하지만 떠올라서는 안 된다.
지금 생각났다가는 모든 게 원래대로 돌아가게 된다.
‘안 돼. 다시 위험에 빠질 거야.’
이것은 완전한 유일신으로 거듭나기 위한 과정.
유일신에게 있어서 마음 같은 것은 필요 없었다.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시는 겁니까?”
“당신이 알려준 거잖아요? 서진 씨.”
“누군가의 옆에 있을 때, 이토록 편안하고 행복할 수 있을 수도 있단 걸 알게 되었어. 전부 네 덕분이야, 서진아.”
모르겠다.
그동안 많은 일을 겪어왔지만, 이번에는 알 수가 없었다.
무엇이 정답인지.
무엇이 옳은 일인지.
도저히 정할 수가 없었다.
잘못된 선택을 했다가는 돌이킬 수 없을지도 모르니까.
“그게 맞는 거야.”
“정답 같은 게 있는 건 재미없잖아요?”
“앞으로 있을 다양한 선택지들을 마주하면 되는 겁니다.”
내 몸으로 무수히 많은 손이 올라온다.
하나같이 따뜻하고 그리운 손길이었다.
“당신 혼자가 아니라, 저희와 함께.”
그 말과 함께 일행들은 사라졌다.
내가 있는 세계가 무너지고 있었다.
솔직히 지금도 이게 맞는 건지 모르겠다.
하지만 옳은 일진지는 둘 째 치고 한 가지는 알 수 있었다.
내 마음만은 정할 수 있었다.
“나도 함께 있고 싶어.”
그동안 수많은 물체들의 가능성들을 개방해 왔지만.
단 한 가지.
하지 않은 것이 있었다.
나는 내 몸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 외쳤다.
“개방.”
무지개색의 다채로운 빛이 공간을 가득 채웠다.
하나같이 아름다웠으며, 무수히 많은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다.
“…….”
그제야 눈을 뜰 수 있었다.
그토록 보고 싶었던 사람들이 있었다.
모두들 상처 입은 모습이었지만, 하나같이 나를 보며 웃고 있었다.
무슨 말을 먼저 해야 할까.
그래. 이게 좋겠다.
“다녀왔어요.”
내 말에 일행들은 환하게 웃으며 외쳤다.
“당장 묶어! 이러다가 또 뭔 짓을 할지 모르니까!”
“대체 얼마나 개고생을 한 지 알아요! 절대로 못 사라지게 꽉 잡아요!”
“넌 진짜 돌아가면 죽었어!”
……아무래도 잘못된 선택지를 고르게 된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