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tion is flowing from the water purifier in my house RAW novel - Chapter 19
우리집 정수기에서 물약이 흐른다 020화
7. 동업자(4)
미확인 균열 작업은 꽤나 수월하게 진행되었다.
알의 정화도 꽤 많이 진행되어, 이 정도라면 제시간에 맞출 수 있을 거고.
여러모로 평화롭다면 평화로운 날들이다.
……얼마 전에 조금 부끄러운 일이 있긴 했지만.
그와 관련된 기사라도 날 줄 알았는데 별 반응은 없었다.
그 난리를 펼쳤는데도 조용하니까 오히려 무섭네.
균열 관리부의 이태영 또한 일이 잘 풀리는지 근래 표정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
“근래 발생한 미확인 균열들을 분석한 결과, 일정한 패턴이 있단 걸 알아냈어요.”
균열 관리부에서는 점차 미확인 균열에 대해 감을 찾기 시작했고, 동시에 균열이 열리는 것은 점차 뜸해졌다.
이유지가 진지한 표정으로 이태영에게 말한다.
“야, 이태영. 아무래도 이건 인력 낭비인 것 같다.”
“예?”
“어차피 균열에서 나오는 놈은 나 한 명으로도 충분하니까, 넌 다른 곳 가서 일해라.”
“아니, 선배! 그런 게 어디 있어요! 자기 혼자만 꿀 빨……! 읍!”
요 삼 일간 균열은 발견되지 않았고, 나는 이유지와 단둘이 거리를 돌아다니게 되었다.
계속해서 붙어 다닌 탓에 어색하다거나 그런 건 없었다.
그냥 털털한 친구 한 명과 먹거리 탐방하러 다니는 기분이라고 해야 하나.
“저거 좀 먹고 가죠. 출출해 죽겠네.”
왜 저 말이 안 나오나 했네.
유독 먹성이 강한 이유지다.
평소에도 균열 탐색을 하는 도중에 이렇게 길거리에서 무언가를 사 먹곤 한다.
“와아! 솜사탕이다!”
앞 차례의 꼬마가 받은 솜사탕을 보면서 살짝 침을 흘린다.
저렇게 좋을까.
“자, 솜사탕 나왔습니다.”
당연하다는 듯, 1인 1 솜사탕이 나왔다.
……솜사탕이 왜 이렇게 커?
이걸 혼자 다 먹으라고?
이유지는 마치 그것이 당연하다는 듯,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으음~”
달콤한 솜사탕이 입에 들어가자, 좋아 죽겠다는 듯 행복한 표정으로 뺨을 만진다.
‘리액션 좋네.’
사람들이 방송을 보는 이유가 이런 것 때문인가.
야금야금 뜯어 먹으며 이유지의 먹방을 감상하고 있는데,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으아앙!”
바닥에 떨어진 솜사탕.
방금 보았던 그 꼬마였다.
“으이구. 조심 좀 하지.”
이유지는 자신이 들고 있던 솜사탕을 꼬마에게 내밀었다.
“언니가 이거 줄 테니까 그만 울어.”
“……정말요?”
“응. 난 먹는 거 별로 안 좋아해.”
떨리는 손으로 아이에게 솜사탕을 건넨다.
무슨 저런 표정을 지으면서 그런 거짓말을 하냐.
이유지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잠시 기다렸고, 곧이어 부모로 보이는 사람이 와서 감사 인사를 했다.
“예쁜 언니. 안녕!”
“그래. 또 맛있는 거 먹겠다고 엄마 손 떨어뜨리지 말고. 이 먹보야.”
이유지는 아이가 사라지자마자 곧장 솜사탕 점포를 다시 찾았다.
“아저씨. 여기 솜사탕 하나만 더 주세요.”
“이거 미안해서 어쩌지. 지금 기계에 문제가 생겼는지 작동을 안 해서 말이야.”
“아아…….”
낙담하는 그녀에게 솜사탕을 내밀었다.
어차피 나 혼자서는 다 먹지도 못하는 양이니깐.
그녀가 푹신푹신하게 흔들리는 솜사탕을 멍하니 보더니, 이내 흐뭇하게 웃었다.
“흐응. 그쪽 의외로 괜찮은 사람이었네요?”
먹을 거 하나 줬다고 사람 인상이 휙휙 바뀐다.
그러면 지금까지는 아니었다는 건가?
“으음! 달아~”
처음에 보았을 때는 좀 사나운 느낌이 강한 사람 같았는데.
며칠 같이 지내다 보니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단 말이야.
“저 원래 착해요. 성격이 이래서 다들 몰라보는 거지.”
“그런 걸 보통 자기가 말하나?”
“틀린 말을 한 것도 아닌데요. 뭘.”
수난을 겪는 이태영의 모습이 잠시 스쳐 지나갔다.
그러고 보니 그녀가 딱히 이태영을 제외하고 말을 거는 모습을 못 봤다.
“능력 때문인지, 아무래도 다가오는 사람이 적어서 그래요. 짐승 같은 팔다리. 보통은 다 징그러워하잖아요?”
수인화를 한 후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가느다란 팔이 위아래로 휘적거린다.
그녀가 킥킥 웃었다.
“그래서 친한 사람한테 더 막 대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사실 그러면 안 되는 건데. 그쵸?”
원래 소중할수록 더 잘해줘야 하는 법이다.
소중한 사람이라…….
내게는 조금 까마득하게 느껴지는 말이다.
이참에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기로 했다.
“수인화라는 게 단순히 육체 변화만 일으키는 건가요?”
“음. 기껏해야 팔 하나, 다리 하나 바꾸는 거면 그렇긴 한데요. 아무래도 힘을 많이 쓸수록 성격이 아주 약~ 간 사나워지는 거 같기도 하고…… 원체 착해서 별로 티는 안 나지만.”
균열에서 나온 마물을 웃으며 찢어대던 그녀를 떠올리자, 등골이 오싹했다.
그게 ‘조금’이라고?
그냥 약간 솔직해지는 거지, 뭐…….
이유지가 변명하듯 중얼거렸다.
“그러니까 수인화 된 상태에서는 다른 사람이랑 되도록 접촉 안 하려 해요. 고양이들 보면 제 주인한테도 못 만지게 하면서 까탈스럽게 굴잖아요?”
갸릉-
그녀가 오른손을 내 쪽으로 휘적거린다.
비유가 뭔가 좀 이상하면서도 맞는 것 같았다.
고양이.
이태영을 할퀴는 모습을 상상하자 웃음이 나왔다.
“이태영, 걘 제외야. 깐죽거리는 게 한 대 안 때리고는 못 참겠다니깐?”
평소와 같이 수다 떨기를 반복.
마침내 균열 한 개를 발견했다.
“여기 하나 있네요.”
“으. 지긋지긋해.”
막다른 골목의 깊숙한 곳.
십 분도 채 안 남은 균열 하나가 있었다.
그 앞에서 대기하고 있을 때.
부르르-
이유지의 휴대폰이 진동했다.
그녀는 문자를 확인하고는 내게 말했다.
“좋은 소식이네요. 아무래도 지금 이 균열, 저희 쪽에서 신호를 잡아낸 모양이에요.”
십 분 정도 남은 아슬아슬한 균열이지만, 잡아냈다는 것이 중요한 거다.
이로써 사람들은 균열로부터 조금 더 안전해질 수 있을 것이다.
이유지가 피곤하다는 듯, 기지개를 켰다.
“곧 있으면 이 동업도 끝날 거 같네요.”
“아아- 맛있는 것도 먹으러 다니고 좋았는데.”
그렇게 말하는 이유지의 표정은 좋아 보였다.
그 모습을 보자니 역시 선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쪽 덕분이에요. 이거 보답을 뭐로 드리면 좋을까~”
균열에서 나오는 마물의 시체들은 전부 내가 가져가서 알의 정화 과정에 사용하는 중이다.
그 외에도 균열에서 필요한 다른 재료들도 제공받고 있는 중이고.
가루로 만들어서 욕조에 있는 물약과 섞으면 끝이다.
마치 입욕제라도 탄 듯이 좋아하는 알을 보면 나도 모르게 아빠 미소가 나온다.
……아니, 아빠 미소는 무슨.
상대는 멸망용이다. 정신 차려라!
“놉. 그런 거로 퉁 칠 수는 없죠.”
원래 나 같은 외부인에게 균열의 마물을 넘겨주는 건 위험한 일이기에 그 정도로도 충분했는데…….
뭐, 더 준다니 사양할 생각은 없다.
서서히 골목의 끝에서 균열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또 어떤 놈이려나. 지긋지긋한 그룸은 아니겠지?”
마침내 균열이 열리고, 안쪽에서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여유롭게 기다리던 우리 둘의 얼굴이 이내 당황으로 일그러진다.
“……사람?”
“허억, 허억! 살았다! 저기요, 저 좀 도와주세요!”
균열에서 사람이 나온다고?
이제껏 마물만 나오던 균열이었기에 잠깐 당황했지만, 곧바로 정체를 깨달을 수 있었다.
당황한 이유지에게 다가가 귓속말을 했다.
“저거, 도플갱어에요.”
“정말요?”
도플갱어들이 어디서 나오나 했더니, 균열에서 튀어나오는 놈들이었군.
저런 식으로 미확인 균열을 통해 인간 사회에 숨어들 줄이야.
이유지는 내 말을 듣자마자, 사내에게 달려들더니 바닥에 눕혀 팔을 뒤로 꺾었다.
평소에 곧바로 사지를 찢던 것과는 다르게 친절한 제압이다.
“어디서 개수작이야.”
“컥! 지, 진짜란 말이에요! 저도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어요!”
“……이거 진짜 도플갱어 맞아요?”
이유지가 사내에게서 눈을 떼고 내 쪽을 보았다.
사내의 너무도 리얼한 반응.
균열에서 나온 마물들만을 상대한다는 생각의 고착화.
이미 제압이 완료된 균열 속에서 나온 존재.
이유지가 방심하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떨쳐낼 수 없는 꺼림칙함을 계속해서 가지고 있던 나만이 지금 일어나는 일을 가장 먼저 파악할 수 있었다.
골목의 양옆.
건물의 그림자에서 검은 존재들이 나오고 있었다.
그룸은 어둠 속에 숨어 사는 마물.
그림자 속에서 튀어나온 그룸들이 그녀를 응시했고, 바닥에 엎어져 있던 사내의 몸이 붉어지기 시작했다.
“위험……!”
위기의 순간이 오면, 세상이 느려진다고 했던가.
내 시간이 천천히 흐르기 시작했다.
‘어떻게 하지?’
자신과 다르게 이유지는 강인한 각성자다.
기습을 맞고도 충분히 버틸 수 있지 않을까.
‘맞아…….’
그에 비해 나는 고작해야 일반인과 다를 바 없는 몸뚱이다.
그래, 내 역할도 균열을 알려주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원래부터 그렇게 정해진 것이다. 내 시야에 당혹스러운 표정의 이유지가 보인다.
순간 그녀가 내 쪽을 보고는 눈빛으로 말한다.
도망치라고.
-우리 동업 하나 하죠, 어때요?
개소리.
내 몸만을 챙기기 위한 자기합리화에 혐오감이 느껴졌다.
순식간에 지나간 생각을 뒤로하고, 앞으로 뛰쳐나갔다.
그동안 꾸준히 했던 달리기 덕분에 거리는 금세 좁혀졌다.
“……미친!”
“숙여!”
이유지의 발밑에 있던 사내가 부풀어 오르는 것과 동시에 나는 그녀를 끌어안고 굴렀다.
그리고 외쳤다.
“아이기스의 방패!”
거대한 은빛의 방패가 엎드려 있는 우리 둘의 위로 나타났다.
퍼엉!
무시무시한 폭발음과 함께 몸이 흔들렸다.
방패가 깨지지는 않을까 걱정했는데, 역시 이거 성능이 대단하다.
“금조차 안 갔어.”
대신 내 몸에 압도적인 탈력감이 느껴진다. 마나가 단숨에 빠져나간 것이다.
고작 한 번 썼는데도 이 정도라니.
방패가 사라지는 즉시 마물이 덮쳐 온다면 나는 그대로 당하고 말겠지.
하지만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이, 이 X새끼들이!”
내 밑에 깔려 있던 이유지의 양팔과 양다리가 변하며 처음 만날 때 보았던 꼬리가 나타났다.
쫑긋!
머리카락이 위로 떠오르는가 싶더니 이내 앙증맞은 귀까지 돋아난다.
“네놈들 다 뒤졌어!”
분노한 이유지가 그룸들을 찢어버리기까지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일곱 마리의 그룸 시체 사이에서 이유지가 대자로 뻗었다.
땀에 젖은 그녀의 머리카락이 뺨에 붙어 있다.
힘이 빠진 모양.
이유지는 바닥에 누운 채, 입만 뻐끔거렸다.
“아까 그건 뭐예요?”
“제 능력이요.”
“탐색계 각성자라면서요?”
“그랬었죠. 뭐, 능력이 하나라는 보장은 없잖아요?”
담담한 내 말을 듣던 이유지가 킥- 하고 웃었다.
나는 누워 있는 그녀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하마터면 둘 다 죽을 뻔했는데, 왜 뛰어들어 왔어요?”
왜 뛰어들었냐라.
그거야 당연히.
“이게 동업자란 거니깐.”
뒤에서 지켜보기만 하는 사람은 동업자라고 부르지 않는다.
“하핫!”
바닥에 누워 있는 이유지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녀는 내 손을 잡으려다가 흠칫하고는 자신의 양손을 확인했다.
완전한 수인화.
평범한 인간의 팔 같은 건 없었다.
“징그럽진 않아요?”
“처음부터 말하고 싶었는데. 그 손 되게 멋진데요? 딱 내 취향이야.”
“그으래요? 보는 눈이 있으시네!”
끙차-
이유지가 내 손을 붙잡으며 일어났다.
예상대로 푹신푹신한 감각이 기분 좋았다.
“동업자. 그렇죠. 동업자.”
그 말이 좋은지, 몇 번이고 되새기던 이유지는 내가 활짝 미소 지으며 말했다.
“나, 동업자한테는 낯간지럽게 존댓말 안 하는데 그래도 되지?”
“……어어. 그래.”
갑자기 훅 치고 들어오네.
나야 이런 식으로 편하게 말하는 게 더 좋긴 한데.
의문이 있다.
“야. 그러면 그동안은 왜 존댓말 한 건데?”
그 말에 이유지가 당연하다는 듯, 팔짱을 끼며 말했다.
“당연히 내 맘이지!”
아, 그러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