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tion is flowing from the water purifier in my house RAW novel - Chapter 23
우리집 정수기에서 물약이 흐른다 024화
9. 별들의 연회(2)
“……여기가 연회 장소.”
길드 ‘위트’의 송도형은 잔뜩 위축된 모습으로 전방에 있는 빌딩을 응시하였다.
“우리 길드 하우스랑은 차원이 달라.”
주변에 돌아다니는 사람들 또한 어디서 한 번씩 봤던 사람들이다.
‘……나도 한 길드의 대표로 이곳에 온 거야.’
하지만 연회에 초대받은 건 처음이었고, 긴장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대체 왜 우리 길드한테 초대장이 온 거지?’
그게 의문이었다.
위트 길드.
길드장인 자신을 포함해서 열 명밖에 없는 소수 길드다.
길드라고 부를 수조차도 없을 정도의 처참한 규모.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이건 기회야.”
자신을 믿고 따라와 주는 길드원들을 위해서라도 이곳에서 성과를 거두리라.
후아-
심호흡을 크게 하고 걸음을 내디뎠다.
툭-
그때 누군가가 그의 어깨에 부딪혔다.
자신이 부딪친 게 아님에도, 송도형은 즉각적으로 사과를 위해 몸을 틀었다.
이 통로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각 길드의 수장급이니깐.
“죄송합니다.”
“아뇨. 저야말로.”
남성은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송도형에게 고개를 숙였다.
“반갑습니다. 전진우라고 합니다.”
전진우…… 전진우…… 딱히 들어본 기억이 없었다.
혹시 이 사람도 처음 온 건가?
자신과 같은 처지를 발견한 게 기쁜 건지 송도형이 밝은 얼굴로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송도형입니다!”
“어디 길드 소속이신가요? 연회에서는 처음 보는 얼굴인 것 같은데. 혹시 누군가의 대리인이신가요?”
“아뇨! 저는 위트 길드의 길드장입니다. 이번에 처음 초대받은 것이 맞아요.”
“……위트 길드?”
“예.”
“쯧. 뭐야. 쓰레기였잖아.”
“……예?”
송도형은 이질적인 목소리에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미소는 그대로였으나, 전진우의 목소리는 한없이 차가워져 있었다.
아직 내부가 아니다. 보는 눈이 많다.
전진우는 웃는 표정을 유지하며 작게 속삭였다.
“들어보지도 못한 똥통 길드가 감히 내 어깨를 치고 그냥 가려 하네?”
“예? 제가 친 게 아니라 그쪽이 친 거잖습니까!”
“이제는 거짓말까지 하려고? 위트 길드라고 했지? 난 스네이크의 부길드장이다. 똑똑히 기억했어.”
스네이크 길드.
들어본 적 있는 이름에 송도형의 얼굴이 굳어갔다.
질이 안 좋은 녀석들이다.
“모처럼 좋은 날이라 웃고 가려는데 안 되겠네. 너 때문에 내 어깨가 빠진 거 같은데 어떻게 할까? 나도 하나 뽑아줘야 마음이 풀릴 거 같은데.”
“그, 그게…….”
툭!
“아이씨. 또 누구야!”
전진우가 짜증 가득한 소리를 내었다.
이번엔 어떤 놈이지?
“뭐야. 안 부러졌네.”
이놈도 처음 보는 얼굴이다.
전진우는 끓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다시 영업용 미소를 지었다.
“혹시 어디 길드 소속이세요? 전 스네이크 길드의…….”
“난 길드 없는데.”
“……예?”
“무소속이라고. 무소속.”
그 말에 화가 머리끝까지 차오른 전진우가 주변이고 뭐고 제 성질을 드러내려 할 때, 남성이 말했다.
“여기서 난리 치려고?”
“…….”
멀리서 걸어오는 사람이 보인다.
본 적 있는 얼굴이다.
자신의 길드보다 높은 순위의 길드장.
전진우는 이를 물고는 등을 돌렸다.
“너, 얼굴 기억했어. 좀 있다 봐.”
전진우가 사라지고, 송도형이 사내에게 고개를 숙였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뇨. 도와준 건 아니고…….”
어깨로 길을 막고 있길래.
그렇게 말하며 살며시 미소 짓는 사내에게 송도형이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저 때문에…… 괜찮으시겠어요? 왜 그러신 거예요? 상대는 스네이크의 부길드장인데…….”
“그냥 웃겨서요.”
“예? 뭐가요?”
“진짜로 강한 사람은 겸손이 몸에 배어 있는데, 저런 놈이 저렇게 행동한다는 게요.”
“……강한 사람이요?”
“아니에요.”
그는 누군가를 생각하는 건지, 피식 웃더니 연회가 열리는 건물로 걸어갔다.
저 사람도 연회에 초대된 사람이다.
처음으로 자신에게 호의를 가지고 대해준 인물.
길드가 있든, 없든 상관없었다.
“위트 길드의 송도형입니다!”
걸어가던 남성이 말했다.
“무소속. 이서진입니다.”
* * *
겉으로 봤을 때도 근사했지만, 안으로 들어오자 감탄을 멈출 수 없었다.
마치 궁전을 보는 듯한 화려한 실내.
이런 곳에 오는 것은 처음이다.
나는 내 복장을 내려다보았다.
이전에는 입어본 적 없는 양복 풀 세팅.
옷이 날개라고 했던가, 내 모습은 나 자신이 보아도 꽤 봐줄 만했다.
이 정도면 꿀리지는 않겠지.
……양복 안주머니가 살짝 튀어나온 게 흠이었지만. 이건 어쩔 수 없다.
‘순둥아, 미안하다.’
오늘을 위해서 알에게 사용하고 있던 손전등을 가져왔다.
물약의 성능이 더욱 높아져서 그런지, 손전등이 없어도 무슨 일이 일어난다든가 하는 건 없었다.
남아 있던 모든 사체들도 전부 주고 왔으니, 집으로 돌아갔을 때 귀여운 새끼가 태어나는 건 아닐까?
그건 좀 기대되네.
뭐, 아직 부화 시간이 며칠은 남아 있지만.
“이쪽으로 오시죠.”
입구에 서 있자니, 누군가 와서 나를 안내해 주기 시작했다.
HH.
황혼의 사람이다.
나를 안내하면서도, 내가 누군지 궁금하다는 듯 힐끔힐끔거린다.
고위 각성자? 정치인? 연예인?
그런 물음이 얼굴 위로 떠오르는 것 같다.
미안하지만, 일반인이다.
끼익-
도착한 곳에서 처음 느낀 것은 세상에 이렇게 유명한 사람들이 많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었다.
하나같이 아는 사람들이다.
내가 아는 사람들이란 건 아니고…….
대부분 대중매체에서 본 사람들이지.
외국인들도 있었다.
맛있는 음식들도 많이 준비돼 있다더니 확실히 그랬다.
간간이 보이는 음식들은 내게도 낯익었다.
저번에 한식집에서 먹었던 거랑 비슷해 보이는데.
나도 간단하게 음료수 정도 마시면서 시작해 볼까.
‘음. 내 특제 주스보다는 맛없네.’
그렇게 홀짝거리며 사람 구경을 하고 있자니, 정말로 내가 아는 인물을 발견할 수 있었다.
황혼 길드의 정해연.
그녀는 여러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실내 출입이 허락되는 몇 안 되는 기자가 그녀를 인터뷰하고 있었고, 그녀는 웃으며 대화를 이어나간다.
“역시 대단하네.”
종종 독특한 모습을 보여줘서 잊기 쉬웠지만.
정해연은 황혼이라는 거대 길드의 수장이다.
그것도 이란 연회를 연 장본인이고.
그녀가 웃으며 이야기할 때마다, 카메라가 쉴 새 없이 터진다.
일반인들에게는 공개되지 않는 연회다 보니, 얼굴 사진이나 몇 개 올라가겠지.
……아니. 저 사람 셔터 손놀림이 왜 저래.
애초부터 얼굴 사진 말고 다른 건 찍을 생각이 없는 거 같은데?
이해는 한다.
냉철하고 도도하다는 헛소문이 나 있는 그녀다.
정해연의 웃는 모습을 찍는 게 쉬운 일은 아니겠지.
……음, 그런데 아쉽네.
“저 각도보다 왼쪽에서 찍는 게 더 예쁘게 나올 텐데.”
“저 각도보다 왼쪽에서 찍는 게 더 예쁘게 나오시는데…….”
“……?”
“……?”
내가 작게 중얼거린 소리가 메아리치듯이 울려 퍼졌다.
아니, 울린 게 아니라 내 옆에서 똑같은 말을 한 사람이 있었다.
가슴에 있는 명찰을 보니 ‘한미나’라는 이름이었다.
그녀는 내 옆에 서서 매우 진지한 표정으로 정해연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크흠.”
“흠흠.”
우리는 서로 어색한 눈웃음을 짓고는 다시 앞을 보았다.
이럴 때가 아니다. 보기 힘든 장면인데 많이 봐 둬야지.
이래 보여도 정해연 팬클럽 회원 중에 하나다.
인터뷰를 하고 있는 사람도. 사진을 찍는 사람도 하나같이 얼굴이 헤벌쭉하다.
정해연의 미소에는 그만한 가치가 있다.
그런데 자세히 볼수록 미소가 살짝 어색했다.
일전에 보았던 나이에 걸맞은 순박한 웃음이 아닌, 꾸며낸 듯 완벽한 미소다.
얼굴도 평소보다 지쳐 보인다.
가까이에서 여러 번이고 세심하게 본 사람이 아니면 못 알아챌 정도의 페이스 컨트롤.
이만한 규모의 연회다.
당연히 여러 가지 신경 쓸 것이 많았겠지.
그래도.
“좀 더 밝게 웃는 게 더 매력적인데.”
“조금 더 밝게 웃으면 훨씬 귀여우신데…….”
“……?”
“……?”
이 사람…….
웃음을 지우고 서로를 탐색하듯 눈싸움을 하기를 잠시.
누군가 나에게 손을 흔들며 다가왔다.
“오. 이거 음료수남 아니야.”
접시에 올라가 있는 음식의 산.
떨어뜨리지도 않고, 걸어 다니며 자연스럽게 먹는 묘기를 부린다.
근처를 보면 전부 귀공자라도 되는 듯이 분위기가 답답했는데.
이 사람은 쓸데없이 너무 자유롭다.
“그때 복부 얻어맞으신 분? 맞죠?”
“이야…… 알았어요. 음료수남이라고 안 할 테니까. 평범하게 얘기해요. 누가 정해연 지인 아니랄까 봐 한마디를 안 지네…… 이거 진짜 서러워서 살 수가 있나…….”
“해연 길드장님 지인이시라고요?”
옆에 있던 사람이 깜짝 놀라며 입을 가렸다.
“어머. 어머. 세상에.”
그러면서 제자리에서 발을 미칠 듯이 구른다.
이모티콘이라느니.
문자의 주인공이라느니.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던 그녀가 내게 산뜻한 미소로 손을 내밀었다.
“해연 길드장님 개인 비서 한미나라고 해요!”
방금까지 탐색을 하던 기색은 어디 가고, 귀한 손님이라도 맞이하듯이 깍듯하게 대한다.
어쩐지 정해연에 대해 잘 안다고 했더니, 개인 비서였나.
“잘 부탁드려요!”
“예. 잘 부탁드립니다.”
악수를 나누고 있자, 소성환이 입에 있는 음식을 우물거리며 물었다.
“정해연이 초대한 거예요?”
“예. 그렇죠.”
안주머니에 넣어놨던 초대장을 건네자, 그가 갸우뚱한 표정을 짓는다.
“이건 우리가 단체로 발송한 초대장이 아닌데…….”
소성환이 반짝거리는 초대장을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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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장☆
황혼 길드가 주최하는 별들의 연회에 당신을 초대합니다!
본 연회에서는 그동안 경험한 적이 없던 서비스와 만찬이 제공되며, 오직 당신만을 위한 무대가 준비될 예정입니다!
귀찮으시다면 오실 필요는 없으시지만…… 그래도 부디 와주셨으면 하는 바에 초대장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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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이리 길어?”
“기껏해야 ‘별들의 연회에 당신을 초대합니다.’ 하나만 보내는 거 아니었어요?”
“무슨 별까지 그려져 있네.”
“저거 직접 그린 거 같은데요?”
원래 다 이런 거 아니었나?
초대장이 거기서 거기지 뭐.
저쪽에서 이야기하던 정해연이 모여 있는 우리를 발견했다.
순간 눈동자가 커지며, 이곳에 오고 싶다는 분위기를 마구 뿜어댄다.
‘안 되지.’
정해연에게는 이미 언질을 해둔 상태다.
되도록 이 연회에서는 아는 척을 하지 말자고.
E급 축하 사태는 정해연 쪽에서 손을 써두었는지, 뉴스 같은 게 따로 뜨지는 않았지만.
이 연회에서 내 정수기에서 나온 물약을 공개할 예정이라고 했다.
그동안 본 적 없는 무소속의 남자와 즐겁게 대화하는 정해연.
사실 밝혀져도 크게 상관은 없겠지만, 이미 황혼 길드와 독점 거래를 한 상태니, 다른 길드가 몰려드는 것 같은 귀찮은 일은 사양이었다.
그 대신 잔뜩 시무룩해하고 있는 햄스터 이모티콘 폭탄을 받았지만.
약속대로 정해연은 내 쪽으로 오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곧장’ 이쪽으로 오지 않았다는 게 맞았다.
“안녕하세요. 이 주최를 맡게 된 황혼 길드 정해연이라고 합니다.”
“허억!”
그녀는 내부를 돌아다니며, 한 명, 한 명한테 인사를 나누기 시작했다.
주최자로서 이곳에 초대된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는 것은 아주 평범한 행위.
그녀는 이내 대부분의 사람과 인사를 끝마치더니 내 쪽으로 오기 시작했다.
몹시 즐거운 표정이다.
“안녕하십니까. 레이디. 저는 스네이크의 부길드장…….”
그녀가 오는 길목에 다른 사람이 있었음에도,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 발걸음을 멈추지 않는다.
“소성환 전투조장님. 이런 곳에 있으셨군요.”
“저, 전투조장님?”
소성환이 먹고 있던 음식을 재빨리 삼켰다.
마치 그렇지 않으면 당장에라도 뱉을 것 같다는 듯이.
“제 비서 한미나 씨도 여기 계셨군요. 연회는 즐기고 계신지요. 음? 이분은 누구시죠?”
이야.
아주 자연스러운 연기다.
세상에 곧장 영화 한 편 찍어도 되겠네.
“아니, 얘가 며칠 밤 동안 연회 준비하다가 미쳤나. 네가 초대해 놓고 뭔 새삼스레 모르는 처…… 아악!”
“왜 그러시죠? 몸이라도 안 좋으신 것은 아니신지?”
“아니, 네가 발을…….”
“제가요?”
“아뇨. 제가 음식을 먹다가 그만 발을 씹었다고요…….”
정해연이 마치 날 처음 만난 사람처럼 내게 인사했다.
“반가워요. 저는 황혼 길드의 정해연이라고 해요. 드레스 코드가 매우 멋지신데요?”
하여간…….
나도 그 장단에 맞추기 위해 손을 들었는데, 또 다른 손이 끼어들었다.
“이거 못 들으신 모양이군요. 반갑습니다. 저는 스네이크의 부길드장인 전진우라고 합니다. 레이디.”
“…….”
정해연의 얼굴이 한순간 썩었다가, 이내 펴졌다.
그녀는 그가 내민 손을 잡았다.
“예. 반가워요.”
“영광 입…… 아니, 왜 손에 손수건을 감싸고 계신 거죠?”
“제가 손에 땀이 좀 많아서.”
어느새 꺼낸 손수건을 손에 감아 악수를 끝마친 정해연은 그것을 벗고선 내게 다시 손을 내밀었다.
나는 그 손을 맞잡았다.
“반가워요.”
손에 땀 같은 것은 없었다.
전진우는 계속해서 정해연에게 말을 걸었다.
“이번 연회는 정말 규모가 대단하군요.”
“다른 길드 주최일 때도 이랬어요.”
“정해연 길드장님만의 독특한 개성이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글쎄요. 당신 입은 좀 독특한 거 같긴 한데.”
물론 계속해서 말은 하고 있지만, 대화는 되고 있지 않았다.
전진우는 남몰래 입술을 물더니, 이내 나를 보았다.
좋은 생각이 났다는 듯, 그의 얼굴에 미소가 번지더니 이야기를 꺼냈다.
“여기 계신 분들 수준도 하나같이 대단한 분들 아닙니까.”
황혼의 전투조장 소성환.
황혼의 길드장 정해연.
그녀를 보좌하는 개인 비서 한미나.
그는 다른 사람에 대한 칭찬을 계속하더니 본론을 꺼냈다.
“유독 이 파티에는 각성자분들이 많더군요. 하하. 뭐, ‘길드 간의 모임’이니 당연한 것이겠지만요.”
길드 간의 모임이란 걸 왜 강조하지.
설마 나 들으라고 저러는 건가?
“여기 계신 정해연 길드장님만 해도 초기 각성 등급으로 S를 받으신 분 아닙니까. 그 옆에 계신 소성환 씨도 A+를 받으신 분이구요.”
그는 부끄럽다는 듯이, 자신을 가리키고 말했다.
“저 또한 A라는 등급을 받았습니다. 여기 계신 사람들에 비하면 매우 부끄럽습니다만…….”
그는 표정을 지우고는 나를 ‘공손히’ 가리키며 말했다.
“아! 그러고 보니 이곳에 한 사람이 더 계셨군요. 이서진…… 씨라고 부르면 되겠습니까?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어느 길드 소속인지 여쭤 봐도 되겠는지요?”
“무소속이라니깐요? 아까 얘기도 나눠놓고 뭐 처음 듣는 것처럼 포장하고 있어요?”
“크흠. 그, 그랬군요. 제가 잊어버린 모양입니다. 아무래도 사소한 것 하나하나 다 기억할 수는 없는 노릇인지라.”
주최자 앞에서 이렇게 나올 줄은 몰랐는지, 당황한 기색이다.
그래. 나 백수다. 이 자식아. 불만 있냐?
“그렇다면 각성자 등록은 하셨는지요?”
“했죠.”
“어느 등급이신지?”
“E급이요.”
“어디 보자 E급…… 하하. 정말이십니까?”
그제야 한 건 잡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보며 입꼬리를 올린다.
“이거, 이거. 아무래도 능력은 그다지 좋지 못하신 듯하군요. 너무 걱정하지 마시지요. 세상은 넓으니, 당신을 원하는 사람은 어딘가에 있을 겁니다. ‘E급’이라도 말이죠.”
그가 자신의 재밌는 농담을 자랑하듯이 주변을 살폈지만, 그 누구도 웃는 사람은 없었다.
“그, 그러고 보니. 정해연 길드장님도 철저하게 실력자 위주로 길드를 키우셨다고 했죠? 혹시 길드가 원하는 인재상이라도 따로 있으신지요?”
곧장 분위기를 살핀 전진우가 말을 돌렸다.
그것이 통했는지, 이번에는 정해연도 대답을 했다.
“매력적인 인재상 말이죠?”
“예. 그렇습니다.”
“흠…….”
그녀는 잠시 고민하더니, 나와 눈을 한번 마주치고는 이야기했다.
“아무래도 외견은 평범했으면 좋겠네요. 사는 곳도 겉으로 보면 허름해 보였으면 좋겠고.”
무슨 그런 인재상이…….
주변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가 말을 이어갔다.
“기왕이면 제 목숨도 구해줄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고, 상상도 할 수 없는 거래를 요구할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어요. 그러면서도 인간적인 매력이 있었으면 좋겠고요.”
“하하…… 황혼 길드는 원하는 인재상이 뚜렷하군요.”
정해연이 한 가지 까먹었다는 듯 덧붙였다.
“아. 그리고 등급은 E급 정도면 괜찮겠네요.”
그녀가 웃었다.
현수막을 펼칠 때 봤던 그 미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