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tion is flowing from the water purifier in my house RAW novel - Chapter 3
우리집 정수기에서 물약이 흐른다 004화
2. 텔레비전도 이상하다(1)
“물약 팝니다. 아주 신선한 물약입니다.”
“뭐야? 웬 물약이래.”
던전의 앞.
누군가가 자리를 잡고 물약을 판매하고 있었다.
병은 고급졌으며, 담겨 있는 액체의 색도 빨강.
겉으로만 보자면, 완벽한 체력 물약이었다.
“혹시라도 물약을 안 챙겨 오신 분이나, 더 필요하신 분들은 던전에 들어가기 전에 하나 장만하세요. 특별히 특가로 모시겠습니다.”
“이게 물약이라고요?”
“예. 그렇습니다. 손님. 때깔 보시죠. 이게 물약이 아니면 무엇이겠습니까. 무려 HH 길드에서 만든 체력 물약입니다!”
그 유명한 HH의 물약.
평범한 각성자들은 구매할 수도 없는 물건이기에, 관심은 커져갔다.
“HH의 물건이 여기서 왜 팔리고 있습니까?”
“사실 이건 공식적으로 파는 물건은 아닙니다. 하나같이 약간의 하자가 있어서, 폐기 처분되기 전의 물건을 들여온 것이죠.”
사내는 말조차 더듬지 않으며 입을 놀렸다.
“하자가 있다고 해도 걱정하지 마시죠! 그래 봤자, 사용하는 것에는 이상 없는 것들입니다!”
반응이 없자, 그가 외쳤다.
“오늘 준비한 물량은 이게 전부입니다! 선착순으로 모시겠습니다!”
“하나 줘보세요.”
선착순이라는 말에 물약을 사기 위해 각성자 한 명이 손을 들었고, 사내가 씨익 웃었을 때.
누군가가 앞으로 나섰다.
“이게 진짜 물약이라는 말이지?”
“그럼요! 이 때깔부터 고운 걸 보세요!”
“확인해 보도록 하지.”
그 말을 한 각성자는 돌연 자신의 팔뚝에 단검을 그었다.
“……!”
“세상에.”
갑작스러운 행동에 사람들이 입을 다물었고, 그가 좌판 위에 올려져 있던 유리병을 낚아챘다.
“지금 뭐 하시는 짓입니까!”
“물약을 확인할 때 이만한 방법이 없지.”
“귀, 귀한 물건입니다! 이런 식으로 헛되게 사용하실 생각입니까?”
“그거야 이게 진짜라면 속이 좀 쓰리긴 하겠지.”
꿀꺽-
목 넘김 소리가 들리고, 사람들은 사내의 상처에 주목했다.
유리병 안의 내용물을 먹었음에도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가짜군.”
“그, 그게…….”
“가끔가다 있지. 너 같이 각성자들 등골 빼먹으려는 놈들.”
“히익!”
자신의 뺨을 스친 단검에 가짜 물약을 판매하던 사내가 뒤로 넘어갔다.
“다신 얼씬거리지 마라.”
“예, 예!”
그는 가짜 물약들을 챙기지도 않고 줄행랑을 쳤다.
각성자들도 단순한 해프닝에 웃으며 흩어지려는 찰나.
짙은 빨간색의 액체가 들어간 페트병.
그것을 들고 있는 인물이 보였다.
사내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그에게 물었다.
“당신도 물약을 판매하러 온 건가?”
“……예? 아니요. 이건 그냥 음료수예요. 음료수.”
“그렇군요. 죄송하게 됐습니다. 아무래도 방금 이런 사건이 있었던 터라, 예민하게 반응했습니다.”
“아뇨. 그럴 수도 있죠. 이해해요.”
페트병 가득 채워져 있는 빨간색의 액체.
방금 사기꾼이 내보였던 가짜의 색보다도 짙은 붉은 색이었다.
사내는 던전으로 향하면서 피식 웃었다.
“저런 게 물약일 리가 없는데 말이야.”
1.5ℓ 크기의 병에 담겨 있는 물약이라…….
저런 색, 저만한 양의 물약이 존재한다면 그야말로 생명이 몇 개나 있다고 해도 되리라.
* * *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네.”
단순히 현장을 탐색한다는 의미로 와본 것이었지만, 역시나 이런 곳에서 물약을 판매한다는 것은 안 될 것 같다.
“저런 사기가 의외로 자주 일어나나 보구나.”
아까 보았던 그 사기꾼의 물약은 꽤나 그럴듯해 보였었다.
그런데도 각성자들의 예리한 눈빛은 피해갈 수 없었지만.
그에 반해 자신은 어떠한가.
복장은 추리닝이요.
물약 또한 페트병에 담겨 있었다.
“저런 사기꾼들도 실패하는데, 내가 판매한다고 하면 몰매라도 맞겠어.”
멋스러운 병에다가 옮겨 담는다고 해도 통할 것 같지는 않다.
아니, 통해도 문제다.
이 물약이 진짜라고 판단한 순간, 그들은 돌변할지도 모르니까.
직접 와보고서야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이 행동은 너무 위험하다.
그럼 이건 어쩌지.
어쩌긴 뭘 어째.
마셔야지.
“크으. 맛있긴 하네.”
어제까지만 해도 물약은 구경조차 못 했는데.
이렇게 가득 담아 마시고 있는 상황이라니.
“이왕 이렇게 된 거 운동이나 하면서 갈까.”
마석병으로 인해 운동은 함부로 하지도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물약이라는 최고의 진통제가 있다.
좋은 기회다 싶어서 냅다 뛰기 시작했다.
얼마 뛰지도 못해 숨이 헉헉거린다.
“꿀꺽!”
곧바로 페트병에 있는 물약을 마셨다.
지쳤던 몸에 활기가 돌고 금방 숨이 정상으로 돌아온다.
“……이거면 운동은 걱정 없겠는데?”
그 누가 숨이 찬다고 귀한 물약을 이온음료 마시듯이 하겠나.
남들은 누리지 못하는 호사(?)를 누리고 있을 때였다.
집으로 가는 길목.
그 한복판에 갑자기 노이즈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저건…….”
지직-
서서히 허공이 갈라진다.
현대 사회에서 허공이 갈라지는 이유는 단 하나다.
던전과는 다르게 자그마한 통로를 만들며 나타나는 재난.
-크르르륵.
균열.
균열이 발생하면 그곳에서 마물이 튀어나온다.
던전과는 다르게 마물의 위험도가 그리 크지는 않지만.
‘ㅈ됐다……!’
그거야 각성자들에게나 해당되는 거지.
나 같은 일반인들에게는 아니었다.
원래대로라면 균열의 징조를 파악하고 그 근처에 각성자가 배치되었겠지만.
이상하게도 근처에 대기 병력 같은 건 없었다.
“일단 튀자.”
곧장 뒤로 돌아 도망가려고 하는데, 괴물의 눈이 균열 옆에서 벌벌 떨고 있는 꼬마에게 돌아갔다.
“아…….”
“오빠아…….”
인형을 안고 겁에 질려 있는 어린 소녀.
그런 소녀의 앞을 비슷한 또래의 어린 소년이 막고 있었다.
그런 모습을 보니 도망칠 수가 없었다.
저런 꼬마도 자기 동생 살리겠다고 저러는데, 다 큰 어른인 내가 도망간다고?
“야, 이 똥개 새끼야!”
-크륵?
내 외침에 사나운 개의 모습을 한 마물이 나를 돌아보았다.
“그래. 너 이 새끼야! 뭘 그리 처먹었길래 네 아가리 냄새가 여기까지 나냐! 이 똥개 새끼야!”
-크르르륵!!!
내가 하는 말을 알아듣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화난 모습을 보니 대충 의미는 전해진 모양이다.
앞에 있던 아이들을 내버려 두고 나를 향해 잽싸게 달려온다.
‘X발……! 빠르잖아?’
달려오는 걸 보자마자 옆으로 굴렀다.
그래 봤자 겨우 한번 피한 것뿐.
괴물은 곧바로 경로를 틀더니 목을 물어뜯으려 했다.
나는 급하게 왼쪽 팔을 들어 개의 아가리를 막았다.
말이 좋아 막았다지, 그냥 왼팔이 물어뜯기고 있는 거다.
“아아악!”
산채로 짐승에게 물어뜯기는 고통.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날 정도였다.
이대로 있다가는 팔이 산채로 뜯겨나가리라.
“그, 그래……!”
나는 급히 오른손에 들고 있던 페트병을 입에 물었다.
그러고는 이빨로 뚜껑을 까 내용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크르?
마물이 이상하다는 듯 소리를 낸다.
금방이라도 뜯어질 거 같던 내 팔이 실시간으로 재생된다.
신경이 마비됐는지 고통은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이젠 이판사판이다.
“이게!”
바닥에 있던 짱돌 하나를 주웠다.
그리고 내 팔을 물고 있는 괴물의 머리에 쾅! 하고 내리쳤다.
-깽!
그러자 더 강하게 무는 녀석.
나는 입술을 질끈 씹으며 녀석에게 말했다.
“마음껏 물어뜯어라. 이 똥개 새끼야.”
네가 죽나 내가 죽나 해보자.
내 가방에는 아직도 두 개의 페트병이 남아 있었다.
* * *
“혀, 형! 정말 감사합니다!”
“오빠…… 훌쩍! 고, 고맙습니다!”
“어…… 그래. 위험하니까. 얼른 돌아가라.”
“네!”
진작에 도망간 줄 알았던 아이들이 싸움이 끝나자 내게 다가와 감사 인사를 전했다.
사실 싸움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난장판이었다.
똥개 새끼는 내 팔을 계속해서 물어뜯었고.
나는 페트병을 입에 물고서 짱돌을 내리쳤다.
하지만 끝내 서 있는 사람은 나였다.
“끄윽…….”
트림이 나왔다.
마물이랑 싸우고 배불러서 힘들어하는 사람은 나뿐일 거다.
뒤늦게 경찰이 도착했다.
“균열 감지 시스템에 오류가 있었다고 합니다! 각성자님 아니었으면 큰일 날 뻔했습니다!”
나 각성자 아닌데.
싸늘하게 죽어 있는 마물을 보고는 날 각성자로 오해한 모양이다.
그도 그런 게.
내 몸은 상처 하나 없었다.
대신이라고 하듯 옷은 이리저리 긁혀 넝마가 되어 있었지만.
‘……이거 집까지 어떻게 가냐.’
“타시죠. 제가 댁까지 모셔다드리겠습니다.”
“오. 그거 고맙네요.”
“무슨 소립니까. 시민의 안전을 지켜주신 영웅에게 이 정도는 해드려야죠.”
집으로 도착하고 그는 내게서 연락처를 받아갔다.
이번 일에 대한 감사패와 포상금이 지급될 때 연락을 준다고 한다.
물약도 못 팔고 빈털터리로 온 내게는 환영할 일이었다.
샤워를 마치고, 자리에 앉아 한숨을 쉰다.
“에휴. 이 물약은 대체 어떻게 파냐.”
집으로 돌아와 다시 정수기를 확인한 결과.
물약은 계속해서 나왔다.
막상 물약이 줄줄 나오는 건 좋았지만. 팔 방법이 마땅치 않았다.
“이게 진짜 물약이란 걸 밝히는 방법은 쉽지.”
아까 그 각성자가 했던 대로, 내 팔에 상처라도 내면 될 것이다.
하지만 관뒀다.
“잘못 엮였다간…….”
물약이 든 1.5ℓ 페트병을 잔뜩 가지고 다니는 사람.
거기다 특별할 것도 없는 평범한 외견.
주변에는 각성자들이 가득.
어디 던전에 끌려가 죽더라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다.
“기업 같은 곳에 맡길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나는 물약을 공급하고, 기업 측에서 고급스러운 병에 넣어 판다.
어차피 정수기에서 물만 담으면 됐기에 내가 하는 일도 거의 없다.
“그런데 그런 곳이랑 내가 연을 어떻게 맺어?”
날 호구처럼 대하지 않을 곳.
내게 호의를 가지고 공정한 계약을 맺어줄 사람.
이런 인물을 구할 방법이 마땅치가 않았다.
“아, 몰라. 몰라.”
머리가 아파져 왔다.
이만한 물건을 가지고도 팔 수가 없다니.
나는 한숨 돌릴 겸 텔레비전을 켰다.
크기가 아담한 옛날식 텔레비전.
이것 역시 이전에 있던 집에서 가져온 물건이다.
========================
[Ch.1]
[속보입니다. 17일 오후 5시경. 던전 공략을 위해 들어갔던 황혼 길드 소속 전투원들이 던전 내에서 전멸했다고 합니다. 조사한 바에 따르면, 던전에 진입한 길드원 중에 도플갱어가 있던 것으로 파악…….]
========================
“쯧. 무슨 저런 일이 다 있냐.”
도플갱어는 인간의 형태로 변신할 수 있는 마물이다.
어떻게 잠입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들키지 않고 던전에 들어갔다면 게임 끝이다.
“던전 안에서 한 명이 대놓고 트롤 했으면 결과는 뻔하지…….”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곳이 던전이다.
그런 곳에서 등을 맡긴 동료가 도플갱어다?
단번에 전멸하기 딱 좋았다.
“불쌍하네. 도플갱어란 걸 알기만 했어도 저리되진 않았을 텐데.”
의태 능력이 뛰어나서 그렇지 본신의 무력은 그렇게 강하지 않다고 평가되는 마물이다.
웬만한 마물보다는 강하겠지만, 황혼 길드 소속 전투원들이라면 금방 제압했겠지.
“에휴. 다른 거나 봐야지.”
가뜩이나 우울해서 텔레비전을 켰는데, 화면 속에서도 암울한 이야기가 나온다.
채널을 바꾸려고 리모컨을 눌렀다.
그런데 다른 채널로 넘어가지지 않는다.
그 채널에서 황혼 길드가 도플갱어에게 당했다는 소식만 반복해서 나온다.
“어우. 이 고물.”
이것 또한 오래된 물건이었기에 그럴 만했지만, 채널 하나만 나오는 건 또 뭔가.
“아니, 잠깐만.”
계속되는 뉴스를 보다 보니 무언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황혼 길드가 참사를 당한 것은 17일 오후 5시.
시간을 확인하니 오후 5시가 맞긴 했다.
하지만 한 가지 다른 점이 있었다.
“……오늘은 16일인데?”
텔레비전 속 뉴스는 하루 뒤의 소식을 보여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