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tion is flowing from the water purifier in my house RAW novel - Chapter 33
우리집 정수기에서 물약이 흐른다 34화
13. 던전에서 만난 사람들(2)
진주인가 뭔가가 다가올 때보다 더욱 압도적인 긴장감이 나를 감싼다.
“성자님.”
오 마이 갓.
렌즈야.
이럴 때 발동하려고 능력 개방된 거 아니었니?
제발 무슨 미래라도 좀 보여줘 봐!
“성자님? 괜찮으십니까?”
하지만 미래 같은 건 보이지 않았다.
보이는 거라곤 진심으로 날 걱정하고 있는 이루비뿐이다.
위기의 순간.
즉, 피에 물든 철퇴를 든 저 미치광이가 날 죽일 생각은 전혀 없다는 뜻이다.
“……역시. 사악한 저주에 당하신 것이로군요. 걱정하지 마시지요! 마귀가 죽는다면 저주는 풀릴 것입니다!”
“끄억…….”
옆구리가 깊게 파여 나무에 박혀 있는 박진주.
그런 공격을 받고도 정신을 잃지 않은 것이 용하다.
그녀는 이루비가 뒤를 돌자마자 미친 듯이 몸을 떨기 시작했다.
“으읍! 읍!”
말도 제대로 안 나오는 듯 그저 자신에게 다가오는 죽음을 공포 가득한 눈으로 지켜볼 뿐이었다.
“이야! 잘 잤다!”
저 눈빛.
정말로 죽일 생각으로 보였기에 일단은 일어났다.
“성자님! 몸은 어떠십니까!”
다시 타겟을 바꾸어 나한테 온다.
……그냥 놔둘 걸 그랬나.
등에서 식은땀이 미친 듯이 흐른다.
만약 여기서 날 공격한다면 이길 수 있을까?
내 몸에 두르고 있는 수십억의 장비들.
아이기스의 방패.
미래시.
장비째로 몸이 박살 나겠고.
방패는 과자처럼 부서질 테고.
미래시는 1+1처럼 내 죽음을 두 번이나 보여주겠지.
어느 것 하나 저 미친 철퇴 앞에서는 소용없을 것이다.
이럴 땐 역시 하나뿐이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
뻔뻔하게 나가겠다.
“예. 전 괜찮습니다.”
“저는 성자님이 잘못되신 줄 알고 정신이 어떻게 되는 줄 알았습니다!”
응. 나도 내가 어떻게 될 줄 알았다.
‘일단…….’
박진주를 제외한 나머지 인원의 입에 물약을 살짝 흘려주었다.
“감사합니다…….”
“고, 고맙수.”
송민창과 나봉팔이 내 뒤에 있는 이루비의 눈치를 본다.
방금 그런 모습을 봤으니 그럴 만도 하다.
애초에 지금까지 나온 마물들에는 이루비가 나설 것도 없이 끝났으니까.
“저 사람은 어떻게 하죠?”
정신을 차린 나봉팔이 박진주를 가리켰다.
순간 나도 모르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죽여야 하나?’
우리 모두를 죽이려던 놈이다. 당연히 죽이는 게 맞지 않을까?
톡톡-
누군가 내 어깨를 조심스럽게 터치했다.
“성자님. 표정이 어두우십니다. 역시 아직도 마귀의 저주가…….”
철퇴를 휘두르던 그 광기 어린 눈빛은 어디 가고 아까와 같은 신비로운 눈동자만이 남아 있다.
그걸 보자니 정신이 들었다.
“어차피 저 상태로 움직일 수도 없으니까, 밖으로 데려가서 넘기도록 하죠.”
“……저희는 한 것도 없으니, 원하시는 대로 하셔도 됩니다.”
“이런 놈이랑 똑같은 놈이 될 수는 없으니까요. 우리 손만 더러워지는 거잖아요. 그렇죠?”
“그렇군요. 그런 말씀이셨군요. 성자님의 뜻이 그러하다면, 저는 따르겠습니다.”
괜히 더 엮이고 싶지 않다.
죽인다고 해봤자 내 마음이 개운해지기는커녕 불쾌하기만 할 테니까.
이런 놈은 그냥 죽는 것보다 평생 감옥에 썩는 게 더 어울린다.
“…….”
송민창은 여전히 믿기지 않는다는 듯, 박진주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황급히 고개를 돌린다.
저 양반도 좋은 교훈이 됐을 거다.
“그럼 나갈까요?”
* * *
던전의 옆.
1층 던전, 고블린의 숲을 담당하고 있던 공무원에게 안에서 벌어진 일을 설명했다.
그는 피를 토하고 있는 박진주를 보더니 안색이 노랗게 변했다.
‘아무렴 저런 모습을 보면 누구라도 저러겠지.’
“일단 경찰에 연락하죠.”
“상태가 저래도 꽤 실력 있는 각성자인 것 같던데, 평범한 경찰로 괜찮겠어요?”
“경찰 쪽에 각성자에 대응하기 위한 전담반이 있다니까 괜찮을 겁니다.”
내가 전화기를 들자, 공무원이 기겁하며 소리쳤다.
“제, 제가 하겠습니다!”
하긴, 다른 시점에서 본다면 우리 넷이 범죄자고 박진주가 피해자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세요, 그럼.”
얼마 안 있어 네 명의 건장한 남성이 도착했다.
“각성자 범죄 전담반 소속 홍산호입니다.”
자신을 소개한 홍산호는 대표로 앞에 나오더니, 자세한 설명을 요구했다.
우리 넷은 안에서 벌어진 일을 거짓 하나 없이 전했다.
“그렇군요. 일단 이 사람은 저희 쪽에서 데려가도록 하겠습니다.”
“저희는 따로 안 가도 됩니까?”
박진주는 현재 기절해 있었다. 던전 안에서의 상황을 확신할 수 없는 만큼. 저들 입장에서는 우리는 전원 용의자일 텐데.
“우선 이분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다음에 출석을 위해 연락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예…….”
조금 찝찝한데.
“혹시 경찰 공무원증 한번 보여주실 수 있으세요?”
그 말에 나를 바라보던 홍산호는 이내 웃으며 공무원증을 꺼냈다.
“여깄습니다.”
……과민 반응이었나.
그들은 박진주를 태워 어딘가로 떠났다.
……그런데 이 사람들 왜 아무 말도 없냐.
나는 빠른 정리를 위해 밝게 말했다.
“그럼 몫은 4등분 하면 되는 거겠죠? 그래도 입이 하나 줄었네요.”
아무리 돈이 많다 해도 금전 문제는 원래 철저하게 해야 하는 법이다.
순둥이가 태어나면 필요한 용품들도 아주 많을 거고.
내 말을 들은 나봉팔이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저는 오늘 정산에서 빠지겠습니다.”
“예?”
나봉팔은 내게 고개를 숙이고는 말했다.
“아까 저희 입에 흘려주신 그거, 물약 맞으시죠? 그런 걸 먹어 놓고 뻔뻔하게 제 몫을 요구할 수는 없습니다.”
옆에 있던 송민창도 말했다.
“나도 빠지겠수다. 그리고…… 안에서 했던 망언들 정말 미안했소.”
그러면 남은 게 나랑 이루비뿐인데…….
“제 몫은 필요 없습니다, 성자님. 그저 성자님 옆에 같이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제게는 그 무엇보다도 값진 보상입니다.”
아니. 그럴 수는 없지.
여기가 중요하다.
원래 끝맺음을 제대로 해야 하하 호호 하고 헤어질 수 있는 법이다.
그리고 각자 갈 길 가는 거지.
정부 소유 던전이라서 다른 곳에 팔거나 할 수는 없었다.
아까 보았던 공무원은 어디로 갔는지 없고, 다른 사람이 와서는 배낭 속에 있는 마물의 가죽, 마석을 가지고 갔다.
잠시 기다리자, 정산이 끝났다며 우리에게 찾아왔다.
얼마 안 나올 줄 알았는데, 정예 마물에 마석까지 나와서 그런지 액수가 상당했다.
‘800만 원…….’
괜히 각성자들이 던전에 들어가는 게 아니구나.
이루비와는 정확히 N등분을 했다.
계속해서 거절했지만, 금전 문제로 꼬투리가 잡히면 안 된다.
우리는 서로에게 인사하고, 각자 돌아갔다.
“오늘은 고생 많으셨습니다. 성자님.”
성자.
하루 종일 들어서인지 이제는 익숙해진 그 말을 들으며 이루비에게도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어차피 하루 동안의 인연이다.
그 살벌했던 모습도 며칠이 지나면 사라지겠지.
“그쪽도 고생 많았어요.”
그래. 만나서 반가웠고, 다시는 보지 말자.
* * *
“……그년. 내가 반드시 죽여 버릴 거야.”
박진주.
본명 전혜영인 그녀는 이를 갈며 물약 하나를 꺼내 들었다.
옆구리에 절반을 바르고, 나머지는 단숨에 마셨다.
“……X발.”
물약을 사용했는데도 아직도 옆구리가 욱신거린다.
사실상 죽지 않은 것만으로도 천운이라고 봐야 하리라.
1층 던전, 고블린의 숲에 배정된 공무원 한 명과 내통하고 그곳에서 각성자들을 등쳐먹는 것까지는 좋았다.
어차피 던전에서 죽는 애송이 각성자들은 널리고 널렸다.
용의주도하게 기한을 두고 하는 작업인 만큼, 걸릴 만한 요소도 없었기에 그녀는 안심하고 이 놀이를 즐겼다.
자기가 뭐라도 되는 줄 아는 놈들이 살려달라고 비명 지를 때 그 모습은 그녀에게 있어서 쾌락이었다.
고작해야 1층 던전.
각성자들의 수준도 보잘것없었기에 자신이 당할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런 땅꼬마 같은 년한테 이런 꼴을 당하다니.”
온몸에 희귀 장비를 두른 부잣집 도련님 옆에 꼭 달라붙어 있던 흰머리 꼬맹이 하나.
고작 그런 년 때문에 일이 이렇게 망쳐질 줄이야.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야…….”
그녀를 데리고 간 사람들은 각성자 범죄 전담반 소속이 아니다.
마땅한 돈을 지불하고 사용하는 뒷골목의 심부름꾼들이지.
물약값.
심부름값.
자신에게서 나갈 돈을 떠올린 전혜영이 이를 악물었다.
화를 주체할 수가 없었다.
“안 되겠어.”
전혜영은 밤이 되었을 때, 사람이 별로 다니지 않는 골목길로 들어갔다.
이곳에서 자신의 스트레스를 풀어줄 누군가를 기다릴 속셈이다.
CCTV도 없는 구역.
누가 걸려들지는 모르겠으나, 그 땅꼬마한테 받은 굴욕을 조금이나마 풀어주리라.
또각-
누군가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어둠에 잠겨 모습이 잘 보이지 않지만, 크기를 보아하니 자신을 철퇴로 후려쳤던 그 년과 비슷해 보인다.
전혜영이 희열에 찬 웃음을 지었다.
마침 잘 됐어.
어둠 속에 있던 인물이 점차 다가오고, 꺼져 있던 가로등이 켜졌다.
얼굴이 드러나고, 상대를 확인한 전혜영의 눈이 커다래졌다.
“너, 넌!”
“성자님은 그리 말씀하셨지만. 그분을 모시는 자로서 성자님에게 해가 될 수도 있는 자를 가만히 놔둘 수는 없는 법이지요.”
흰머리 꼬맹이와 비슷한 체구일 줄 알았는데, 본인일 줄이야.
당황하던 전혜영의 눈빛이 매섭게 변했다.
‘방심했던 것뿐이야. 이런 어둠 속에서라면 내가 질 리가 없어.’
그녀의 고유 능력은 어둠 속에 있을 때 빛을 발한다.
직접 복수할 수 있게 됐단 사실에 전혜영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꼬맹아. 제 발로 찾아온 걸 후회하게 해줄게.”
“성자님에게 위협을 가한 죄는 속죄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작은 체구를 이용해서 빠르게 달려드는 전투 스타일.
한 번은 당했지만, 이번에는 방심하지 않는다.
“하! 속죄는 무…….”
전혜영이 입을 다물었다.
대체 언제?
자신은 능력으로 어둠 속에 있는 자의 움직임을 알 수 있다.
그렇기에 그녀는 지금 상황에 심각하게 당황했다.
“수녀님.”
루비에르트의 뒤로 세 명의 성기사가 나타났다.
흰 갑주를 입고 전혜영과는는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거대한 괴물들.
“이런 일을 맡기게 되어 정말 죄송하게 됐습니다.”
“아닙니다. 수녀님. 저희는 신을 지키는 방패.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입니다.”
방패란 더러운 것들로부터 뒤에 있는 사람을 지키는 것.
성기사들은 자신들의 수녀를 지키기 위해 앞으로 나섰다.
루비에르트는 아까 전 성자님이 하던 말씀을 떠올렸다.
-우리 손만 더러워지는 거잖아요, 그렇죠?’
“사악한 마귀를 상대할 때, 자신도 모르게 물들 수도 있으니 조심하라는 뜻. 잘 알아들었습니다. 성자님.”
루비에르트가 두 손을 모아 짧게 기도했다.
“확실한 참회의 시간을 가져주시길.”
“자, 잠깐! 사, 살려주…… 커헉!”
인적이 드문 골목길에서 무언가 뒤틀리는 소리가 조용히 울려 퍼졌다.
* * *
아침에는 훈련.
오후에는 던전.
정부 소유의 던전은 예약하기가 까다로웠기에, 타 길드가 보유한 던전에 이용비를 지불하고 참가하기로 했다.
안에서 얻은 부산물은 가질 수 없었으며, 무려 70%의 수수료를 떼고 돈으로 환산된다.
말 그대로 순수하게 던전을 체험하기 위한 사람들만이 이용하는 시스템이다.
딱히 돈이 아쉬운 게 아니었기에 나는 닥치는 대로 던전에 참여했다.
1층 던전.
혹시 다른 곳은 어떨까 했는데 전부 다 비슷비슷한 수준이었다.
천공 부리새의 깃털로 만든 신발.
지하 두더쥐의 부리로 만든 가슴 보호대.
하늘 사슴의 가죽으로 만든 건틀릿.
등등.
내 몸에 착용 되어 있는 것들은 전부 보스 혹은 정예 마물들의 사체로 만든 장비다.
하나같이 착용자의 민첩을 올려준다는 말도 안 되는 옵션을 가진 물건들.
방어보다는 기동성을 살리자는 의미에서 구매한 것들이다.
그렇다고 내구도가 낮단 것도 아니다.
엄연히 보스의 사체로 만들어진 장비니깐.
“신기하단 말이야…….”
제작과 관련된 고유 특성을 가진 장인이 만든 물건이라는데, 과장 좀 보태서 장비에 개방권을 사용하는 게 아닌가 의심도 했다.
덕분에 통장에 있는 대부분의 돈이 빠져나갔지만, 돈은 계속해서 들어올 것이기에 상관없었다.
오늘도 던전에 향하면서 첫 던전에서 있던 일을 떠올려보았다.
만약 이루비의 도움 없이 박진주를 상대해야 했다면 어땠을까.
기습이라는 확실한 선택지를 골랐지만, 지금이라면 일대일을 한다고 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마물이 아니라, 사람이랑도 연습을 해보긴 해야 하는데…….”
소성환이랑 대련을 하고 있긴 하지만, 그것은 대련이라기보다는 총알 피하기…… 뭐, 그런 느낌의 훈련이지.
“2층 던전에서는 뭐가 있을까.”
요 며칠 닥치는 대로 던전을 공략한 결과 내 각성자 등급은 한 단계 높아졌다.
그 덕분에 2층 던전의 출입도 가능해졌고.
더 빠른 등급 상승을 위해서.
좀 더 제대로 된 던전을 느껴보기 위해서 2층 던전으로 가는 중이다.
물론 2층부터는 대부분 길드 소유였기에, 이용비를 지불했지만.
1층 같은 경우에는 돈을 지불하고까지 던전을 이용하는 각성자는 없었는데, 역시 2층이라 그런지 나 같은 사람이 꽤 있었다.
자신의 실력을 높이기 위해 던전으로 향하는 사람들.
“반갑습니…… 다?”
나는 던전의 앞에 먼저 도착해 있는 일단의 무리에게 인사를 하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디서 본 얼굴인데…….
“어! 이서진 씨 아니세요?”
“아, 그…….”
“송도형입니다. 저번에 연회에서 뵌 적 있으시죠?”
아, 기억났다.
송도형.
뱀인지 뭔지 기분 나빴던 놈과 엮이면서 만났던 순한 인상의 사람.
아마 위트 길드의 길드장이었단 걸로 알고 있는데.
“던전 공략하러 오신 거예요?”
“예. 훈련 겸해서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길드장이라고 하지 않으셨어요? 보통 본인 길드가 소유한 던전들을 이용하던데.”
“하하…….”
내 말에 송도형이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무래도 저희가 보유한 던전의 수가 적어서요…….”
“아…… 죄송합니다.”
“아뇨, 아뇨! 별로 틀린 말도 아닌데요! 거기다가 여긴 몇 안 되는 비행 타입의 마물이 나타나는 곳이거든요.”
오…….
그건 몰랐는데.
4층 던전의 메인 보스가 비행 타입으로 추측되는 만큼 미리 비슷한 놈을 겪어보면 좋을 것이다.
“이게 다 우리 길드장이 무능하기 때문이다, 이 말이야~”
“윤미주. 이 정도 위치까지 올라올 수 있던 것도 전부 길드장 덕분이야. 말조심해라.”
“장난이지, 장난. 하여간. 진지충이라니까.”
송도형의 뒤에 있던 두 인물이 말을 주고받았다.
같은 길드 사람인가?
“위트 길드의 임상욱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윤미주예요. 연회에 갔다 온 뒤로 울 길드장이 대단한 사람을 봤다면서 흥분해 있던데. 혹시 본인이세요?”
고지식해 보이는 안경을 쓴 사내와 약간은 말괄량이 같은 여자.
윤미주 쪽에서 길드장을 놀리면, 임상욱이라는 자가 주의를 준다.
송도형은 둘 사이에서 어찌할 줄을 모르고 어색하게 웃고 있을 뿐이었다.
꽤나 자유로운 분위기의 길드다.
마치 오래전부터 같이 지낸 듯이 서로 간의 어색함은 전혀 없어 보인다.
“저희 셋은 어렸을 때부터 친구거든요. 각성도 나란히 얍! 하고 되어버렸고. 그래서 이참에 길드나 만들자~ 하고 만든 게 위트 길드예요. 언제나 위트 있게! 어때요. 제가 지은 건데, 꽤 괜찮죠?”
어쩌다 보니 길드 탄생 이유까지 알게 되었네.
TMI가 꽤나 충실한 사람이구만…….
“죄송합니다…….”
“아뇨. 분위기 좋은데요, 뭘.”
던전에서는 대부분 처음 보는 사람과 행동한다.
그 때문인지 분위기가 딱딱하다 못해 굳어버리기 일쑤다.
어차피 전부 다 던전에서 나오는 마물들이 목적이지, 친목을 다지러 온 게 아니니깐.
마물도 마물이지만, 여러모로 사람 때문에 숨 막히는 곳이 던전이다.
셋이서 티격태격하고 있는 위트 길드 사람들을 보자니 그래도 오늘은 꽤나 느낌이 좋았다.
‘……이루비도 안 보이는 거 같고.’
하루 동안의 인연이라고 안심하던 것도 잠시.
그 이후 세 번에 한 번꼴로 같은 던전에서 마주치게 되었다.
-성자님. 오늘도 안녕하신지요.
매번 같은 표정, 같은 대사를 뱉는 소녀.
그래도 첫 던전 같은 사건은 없었는지라, 그 날과 같은 임팩트는 받지 못했지만…….
원래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 가장 무서운 법이다.
‘그래도 그 폭탄이 나한테 터지진 않을 거 같아서 다행이지.’
성자님. 성자님.
이제는 내가 진짜 성자인 건가 싶을 정도로 익숙해진 호칭.
누구에게나 그렇게 말하는 줄 알았더니 다른 사람에게는 말조차 걸지 않는다.
대화 상대라고는 오직 나 혼자뿐이다.
‘길게 생각하지 말자.’
어차피 이 과정도 전부 4층 던전을 위한 발판일 뿐이다.
던전에서 같은 각성자를 만나는 게 신기한 일도 아니고.
그저 아주 낮은 확률로 여러 번 겹친 거뿐이겠지.
“앞으로 몇 명 더 오나요?”
“2층 던전의 정원이 열 명이니까…… 앞으로 여섯 명이 더 오겠군요.”
여섯이라…….
조금은 밝은 분위기를 가진 사람이면 좋겠네.
“하. 이게 누구야?”
익숙한 목소리를 가진 일단의 무리가 이곳으로 걸어왔다.
“……스네이크의 전진우네요.”
송도형이 작게 속삭였다.
그냥 지나가는 게 아닐까, 그런 기대를 했지만, 전진우를 포함한 다섯 명이 이곳으로 정확히 걸어왔다.
‘벌써부터 한숨 나오네…….’
저놈들이랑 같이 들어가야 한다고?
한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리고 있는데, 손가락 틈으로 마지막 한 명이 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아름다운 백색 머리칼이 이리저리 흔들린다. 검정과 흰색의 조화가 어우러지는 옷.
수녀복을 연상시키는 의상을 입은 인물이 나를 보며 언제나와 같은 표정으로 말했다.
“성자님. 오늘도 안녕하신지요.”
하하. 돌겠네. 진짜.
나는 두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