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tion is flowing from the water purifier in my house RAW novel - Chapter 36
우리집 정수기에서 물약이 흐른다 37화
14. 내기의 승자(2)
“제가 도전해도 될까요?”
도전자치고는 상당히 예의 있는 말투다. 안지윤은 손을 든 사람의 모습을 확인했다.
이번 도전자가 마지막이다.
자신에게 있어서 이것은 단순히 답답함을 풀기 위한 반항 같은 것이니까.
곱상한 외모를 가지고 있는 남성.
‘……전체적으로 몸 밸런스는 좋네.’
좋다.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그 근처에 있는 누구보다도 몸의 형태가 좋았다.
다만, 검 자체를 휘두른 것이 오래되지는 않아 보였다.
그것은 손을 보면 알 수 있었다.
‘마지막 상대로는…….’
그럭저럭 괜찮으려나.
안지윤은 물을 한 입 들이켜고는 말했다.
“좋아요. 올라오세요.”
* * *
“여기 대련용 목검입니다.”
링 위에 올라가자 누군가가 내게 목검을 내밀었다.
맨 뒤에서 팔짱을 끼고 링 위를 지켜보던 사람이다.
여기 체육관 관장인가.
이런 식으로 주목을 받게 되었으니 그로서는 좋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목검을 집어 들면서 능력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확인했다.
손에서 느껴지는 익숙한 감각.
응. 능력은 확실하게 적용되고 있네.
“몸 풀 시간이 필요하면 그래도 되는데요?”
“그러면 사양 않고 조금만 할게요.”
기초적인 자세로 조금만 몸을 풀어주기로 했다.
소성환. 그가 알려준 검술에는 투박한 면모가 있다.
직접적으로 검을 배운 것이 아닌, 실전을 통해서 익힌 것이기에 그러리라.
소성환말고도 정해연에게도 잠시 교육을 받은 적이 있었다.
받는 입장인 나보다도 몸이 굳어 있기에 그렇게 많이는 못 했지만…….
검을 사용하는 그녀이기에, 도움이 되는 정보를 많이 얻었다.
“오…….”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데?”
내가 몸을 풀기 위해 검을 움직이는 것을 본 관중들이 제각각의 소감을 풀어냈다.
잠깐의 시간이 흐르고, 몸이 적당하게 예열되었다.
‘물약은…….’
마시지 말도록 하자.
어디까지나 연습이니까.
신속환.
얻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없다고 해도 그렇게 아쉬운 상황은 아니었다.
“그럼 시작할까요?”
“예.”
시작과 동시에 자세를 잡고 눈에 힘을 주었다.
“……!”
팅!
서로의 목검이 부딪치며 둔탁한 소리가 났다. 역시 예상대로 몸놀림이 빠르다.
하지만…….
‘어째, 할 만한 거 같기도 한데.’
소성환.
이루비.
그가 최근 계속해서 보았던 사람들에 비하자면 눈이 못 쫓아갈 정도의 속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역시 단 한 순간도 긴장을 풀 수는 없었다.
계속해서 들어오는 쾌검에 나는 별다른 수 없이 막기에만 집중했다.
중간중간 막지 못해 허용된 유효타에 살갗이 아려왔다.
그래도 물약 마시면서 폭풍 운동한 효과가 있긴 하네…….
그럭저럭 버틸 만하다.
“승부가 안 되네.”
“완전히 밀리고 있잖아?”
당연하다. 내가 소성환에게 배운 것은 대부분 내 몸을 지키기 위한 방어 동작이었으니까.
애초에 내가 그것을 요구하기도 했고.
짧은 시간 동안 검을 배웠다고, 이리저리 휘둘러 무쌍이라도 한다면 그게 소설이지, 현실이겠는가.
검에 대한 이해도가 극도로 상승한다.
검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을 뿐이다. 그걸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에는 꽤나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다만.
‘보인다. 오른쪽.’
방금과 같은 궤도. 손목을 노리는 것으로 보였지만, 오른쪽 허벅지다.
이제는 살짝 구분할 수 있게 된 미래시도 내가 생각했던 것과 같은 미래를 보여주었다.
-끝부분을 보지 말고, 공격이 시작되는 곳을 주시해.’
언제나 장난기 섞인 소성환이지만, 교육을 할 때만큼은 진지했다.
물체를 탐색하는 콘택트렌즈의 영향 때문일까.
상대방의 움직임이 보다 선명하게 보였다.
여전히 공격은 하지 못했지만, 점차 내 움직임은 자연스러워졌다.
아, 여기서는 이렇게만 움직이면 피할 수 있겠구나.
이 공격은 단순한 눈속임이구나.
진짜는…….
“……!”
이쪽.
내가 휘두른 검에 이제까지와 같이 맹렬한 기세로 들어오던 공격이 한 타이밍 늦춰졌다.
그 순간.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한 걸음 앞으로 나갔다.
이제까지는 하지 않던 공격.
‘역시 공격은 못 하겠네.’
나름 회심의 한 방이라고 생각했는데, 아주 쉽게 막혀버렸다.
끼엑- 거리던 마물들이랑은 반응 자체가 다르다.
그 이후에도 공방이 이어졌다.
“……이거 끝나긴 하는 건가?”
“어이, 거기! 조금 더 적극적으로 나가 봐!”
자기 아니라고 막말하고 있네.
내가 저 정도의 실력자를 어떻게 이기겠나.
애초부터 이곳에 온 목적 자체가 달랐다.
나보다 강한 상대로부터 오래 버티는 법.
이 잠깐의 움직임에도 새로운 것을 배워가고 있었다.
거기다가 보라.
“……하아.”
계속된 대련으로 인해 지친 모양인지, 처음과 같은 날카로움이 줄어들어 있었다.
미안하지만, 체력 하나만큼은 징그럽다고 말할 정도로 높이고 있거든.
공격도 이제는 완전히 눈에 익었다.
이거 어쩌면 이길 수 있을지도.
그런 생각을 했을 때, 뒤로 잠시 물러나 있던 상대방이 달려들었다.
다만 아까와 다른 것이 있다면.
“뭐, 뭐야?”
“몸이 여러 개잖아?”
마치 증식이라도 된 듯이 늘어나, 좌우로 퍼진 포니테일의 여검사.
하하…….
이건 반칙 아니냐.
다섯 개의 검이 내 몸을 향해 쇄도했고…….
“항복.”
내가 외쳤다.
* * *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후련한 표정을 하고 있는 도전자에 비해, 승자인 안지윤의 표정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덕분에 좋은 것 많이 배우고 갑니다!”
이서진은 잽싸게 그곳을 벗어났다.
결투 내내 자신이 했던 소극적인 방어에 질타라도 먹을까 봐 그런 것이다.
사실상 경험치만 빼먹고 도망가는 것이었다.
“……저기, 잠깐!”
뒤늦게 안지윤이 사라지는 이서진을 향해 외쳤지만, 그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좌중의 분위기도 미묘했다.
“12…… 연승 맞지?”
“그렇지. 능력을 사용하지 말라는 말은 안 했으니.”
그렇다.
시작할 때부터 고유 능력을 사용하지 말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실제로 안지윤이 앞서 상대하던 각성자들은 전부 본인들의 능력을 사용했으니까.
다만, 안지윤은 능력을 사용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해 쓰지 않은 것뿐이다.
“그래도 대단하네. 결국 버티고 버티다가, 최후까지는 가긴 했잖아?”
“응. 어디 길드 소속이지 않을까.”
자신의 몸에서 빠져나간 마나를 느끼며, 안지윤은 마지막 장면을 떠올렸다.
네 개의 환영. 한 명의 본체.
마나로 이루어진 환영체는 겉으로 보기엔 하나같이 진짜처럼 보인다.
당연히 이 능력을 처음 보는 사람이라면 당황할 수밖에 없으나.
‘……분명히 날 봤어.’
검이 쇄도하는 그 순간.
분명히 상대방과 자신의 눈이 마주쳤다. 환영이 아니라, 본체의 자신.
마치 모든 걸 꿰뚫어 보는 듯한 그 검은 눈동자에 안지윤은 자신도 모르게 검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우연이 아니다.
그 눈빛에는 확신이 담겨 있었으니까.
만약에 상대가 환상체에는 직접적인 데미지가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심지어 고유 능력조차 끝까지 사용하지 않았다.
이겼는데도, 가슴이 답답하다.
‘이러면 마치 내가 진 거 같잖아…….’
“그럼 신속환은…….”
“혹시 다시 도전자를 받을 생각은 없으십니까?”
“제가 도전하겠습니다!”
안지윤이 지친 것을 확인 한 각성자들이 너도나도 손을 들었지만, 그녀는 그들을 무시하고 밖으로 향했다.
신속환.
소중한 할아버지가 자신에게 선물한 귀한 물건이다.
할아버지는 같은 자리에 있던 오빠한테는 아무것도 선물하지 않았다.
그저, 언제나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던 손바닥으로 어깨 한 번을 툭 쳐줬을 뿐이다.
복용자의 스탯을 올려주는 알약.
“나도 이런 것보다…….”
띠링!
양반은 아닌지, 그 빌어먹을 오빠 놈한테서 문자가 왔다.
[야, 안지윤. 어디야?]
[안 알랴줌.]
[뭐?]
계속해서 울려대는 휴대전화를 주머니에 넣었다.
흥. 이제야 조금 속 시원하네.
안지윤은 또 다른 체육관을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자신의 얼굴을 매만지는 바람을 느끼며 안지윤이 중얼거렸다.
“……신속환은 보관해 두도록 할까.”
* * *
“자, 그럼 오늘도 즐거운 훈련 시작해 보자고!”
이제 앞으로 일주일인가.
소성환이 앞에서 몸을 풀고 있는 이서진을 바라보았다.
엄청난 성장세다.
비록 4층 던전에 간다고 해도 활약할 일은 없을 테지만, 꾸준하게 훈련을 반복한다면 황혼의 전투조에도 꿇리지 않을 게 분명했다.
‘뭐, 그런 거랑은 별개로 내기는 내기지만.’
자…… 이제 이 주 조금 지났나.
상당한 승부욕의 이서진이다.
힘 조절을 해가며 훈련을 하고 있지만, 매일 그 힘이 달라지고 있다.
가파른 성장세. 만약에 시간이 더 주어졌다면, 자신에게 유효타 정도는 넣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그게 이번 내기에는 아니겠지만.’
날카롭다 해봤자, 어차피 초심자의 그것이다.
“그럼 오늘도 대련해야지?”
“…….”
대답을 하지 않는다.
매일 같이 당하기만 하니까, 대답할 힘도 없나 보구만, 하하!
평소와 같이 소성환 쪽에서 들어간다.
‘역시…… 피하는 것 하나만큼은 대단해.’
공격은 아직 미숙하지만, 회피만큼은 마치 어디를 공격할지 아는 것처럼 이리저리 잘도 피한다.
역시나 오늘도 힘 조절을 다시 해야 한다.
목검을 휘두르며 공세를 이어갔다.
점차 이서진의 힘이 빠지는 것이 보인다.
계속되는 대련 때문인지, 이제는 언제쯤 이서진의 힘이 빠지는지 알 수 있었다.
방어 자세가 허술해지고, 서서히 몸에 목검이 스치는 횟수가 많아지고 있다.
이렇게 힘이 다하는 순간이 오면, 지금까지 방어만 해오던 이서진은 공격을 해오게 된다.
온 힘을 실은 마지막 어택.
‘이번에도 똑같네.’
내기의 조건은 몸을 스치기라도 하면 성공이다.
즉, 그러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방어가 아니라, 공격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것을 위한 행동이리라.
이서진이 휘두른 검이 소성환의 가슴 앞을 아슬하게 스쳤다.
‘끝이네.’
“오. 예리해. 예리해.”
실실 웃은 소성환이 몸에서 힘을 뺐다.
“그래도 오늘은 조금 아슬아슬했어?”
“…….”
어지간히 힘든지 말조차 안 나오는 모양이다. 이제 다가가서 살살 놀려주면서 등이라도 치면 되겠네.
그 순간.
“……꿀꺽.”
‘뭐지? 목 넘김 소리……?’
던전을 수없이 넘나들며 터득한 위험감지 센서.
설명할 수 없는 싸한 느낌을 받은 소성환은 곧장 거리를 벌리기 위해 뒤로 도약을 했지만.
“뭐, 뭐야? 벽?”
뒤에 벽이 있을 리도 없건만, 무언가에 막힌 소성환.
그리고 그에게로 이서진의 목검이 몰아쳤다.
마치 처음과 같은 재빠른 움직임이다.
“자, 잠깐만! 야! 타이이임!”
소성환이 그리 외쳤고, 이서진의 목검이 멈췄다.
물론 그 말을 듣고 멈춘 것은 아니었다.
“닿았네?”
소성환의 가슴팍.
그곳에 이서진의 목검이 확실하게 닿아 있었다.
* * *
이야. 드디어 해냈네.
그제야 소성환의 뒤에 나타났던 아이기스의 방패가 사라졌고.
기대고 있던 게 사라진 소성환이 뒤로 넘어갔다.
내가 뭘 당한 거지…….
그런 표정을 짓고 있는 소성환에게로 나는 천천히 다가갔다.
‘아. 입에 머금고 있느라 혼났네.’
삼키지도 못하고, 격렬하게 움직이면서 입에 물약을 머금고 있자니 힘들어 죽는 줄 알았다.
이걸 위해서 따로 연습까지 했던 걸 생각하면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온다.
하지만 바닥에 앉은 채로 허망한 표정을 짓고 있는 소성환을 보자니, 그동안의 묵은 체증이 확 내려가는 것 같았다.
소성환은 능력을 쓰지 말라느니, 그런 규칙은 따로 말하지 않았다.
연습 도중에 물약과 능력을 사용할 이유 같은 건 전혀 없으니까.
하지만 이걸 어쩌나.
나한텐 연습이 아니라, 실전인데.
사용할 수 있는 거라면, 사용하는 게 맞다.
아이기스의 방패로 퇴로를 막고, 물약을 삼켜 몸을 단숨에 회복하며 재빠르게 공격한다.
단 한 번만 사용할 수 있는 내 필살기다.
만약에 실패했다면, 두 번 다시 성공하지 못했겠지.
내기에서 이겼으니 무엇을 부탁하면 좋을까. 전진우처럼 바닥이라도 기게 해야 할까?
아니면…….
-내기라도 하나 하는 건 어때?
-난 간단한 거로 부탁할게.
-내가 이기면 형이라고 부르는 거야.
-쫄?
응. 역시 이거밖에 없네.
나는 소성환에게 손을 내밀면서 그 어느 때보다 상쾌한 웃음을 지었다.
“성환아.”
“……어. 어?”
“형이라고 불러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