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tion is flowing from the water purifier in my house RAW novel - Chapter 46
우리집 정수기에서 물약이 흐른다 47화
16. 순둥이(4)
[슈퍼 로보캅 출동한다! 자매품 조립식 드래곤 장난감도 있어요.]“우와아…….”
-@x%^
꼬물이를 오른손에 쥔 채로 텔레비전만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순둥이.
광고가 끝나고, 곧이어 새로운 TV 프로가 나왔다.
[아빠! 여기! 여기!]
흔히 아빠가 자식과 여행을 다니는 내용을 다룬 힐링 프로그램이었다.
제 부모와 밖에서 즐겁게 뛰어노는 것을 보는 순둥이가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았다.
‘난 왜 이런 몸인 걸까?’
어둠 속에서 벗어나고, 세상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을 때 처음 만난 존재가 있었다.
이제는 순둥이 본인이 아빠라고 철석같이 믿는 사람.
그렇다. 사람이다.
이러한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는 순둥이에게 이서진은 며칠 동안이나 자세하고, 상냥하게 설명해 주었다.
자칫 상처라도 받을까 조심스럽게.
“아빠가 사람이면, 나도 사람인데…… 힝.”
다시 텔레비전을 보았다.
아빠의 손을 잡고 오순도순 걸어가는 모습.
순둥이가 상상해 보았다.
자신이 이 몸으로 아빠의 손을 잡고 다니는 모습을.
“으응. 무언가 이상해!”
순둥이가 네발로 걸어 어딘가로 향했다.
아빠가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라고 알려준 물건.
거울 속에서는 눈이 크고 귀여운 검은색 해츨링만 보일 뿐이었다.
그 누가 본다고 해도 사람이라고는 부를 수 없는 존재.
[꺄하하하핫!]
텔레비전에서 흘러나오는 웃음소리를 들으며 순둥이가 자신의 모습을 뚫어져라 보았다.
나도 저렇게 아빠랑 같이 나가고 싶다.
나도 아빠랑 같은 모습이 되고 싶다.
아직 부화한 지 얼마 안 된 해츨링의 호기심은 멈추는 법이 없었고.
그 호기심은 이내 우주의 어딘가에서 [마법의 주인]이라고 불리는 용족에게 미칠 듯한 성장을 일으키고 있었다.
귀엽기만 한 모습에 이서진은 깊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순둥이는 엄연히 용이었다.
그때, 집구석에 있던 알의 껍질이 순둥이의 머리 위로 날아오더니 사이즈에 맞게 변경되고는 살포시 내려앉았다.
-끄앙?
시간이 흐르고 거울 앞에는 누가 보아도 인간 꼬마라고 부를 존재가 서 있었다.
옆머리에 있는 앙증맞은 머리핀은 덤.
인간 꼬마, 순둥이가 거울 속 모습을 보고는 밝게 웃었다.
어딘가 제 아빠를 닮은 외견이다.
-순둥아. 지금 모습으로는 아직 밖으로 나갈 수가 없어요. 아빠가 최대한 빠르게 방법을 찾아볼게.
“이거라면 아빠를 만나러 갈 수 있어!”
자신의 모습이 밖에 있는 인간들에게 낯설 수 있다, 라는 걸 인지한 용은 그들만의 고대 마법 ‘폴리모프(Polymorph)’를 자발적으로 터득하는 데 성공했다.
“아빠 만나러 가자!”
-끄, 끄앙?
그 말에 순둥이의 옆에 있던 작고 검은 생명체, 꼬물이가 놀란 소리를 내었다.
꼬물이는 밖으로 나가려는 순둥이의 다리에 찰싹 붙었다.
“꼬물이도 나가자고? 그래!”
-끄아아앙!!
급히 그림자 속으로 도망가려고 했지만, 순둥이의 손에 붙잡혀 버린 꼬물이.
아빠의 행동을 기억해 낸 순둥이가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순둥이의 첫 외출이었다.
* * *
[야.] [야야야야야. 서진서진서진.] [왜 이리 전화를 안 받아!] [나 심심해. 놀아주라, 응?] [우리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이태영 빼고!] [(기프티콘)] [어. 확인했다! 야. 보고 있는 거 다 알아!] 닭꼬치를 하나 입에 문 상태로 계속해서 메신저를 확인하고 있는 여성.이유지는 이내 다시 문자를 보내려다가 신경질적이게 외쳤다.
“얜 왜 답장을 안 해!”
일주일 전쯤이었나, 며칠간 어디로 가야 할 것 같다는 말은 들었다.
어디 간다고는 말하지 않았지만.
돌아왔다는 문자를 보자마자 어디 같이 놀러 가기라도 하려 했는데.
“흥이다. 누가 자기 말고 친구도 없는 줄 알아?”
입안에 가득 찬 음식을 꿀꺽 삼킨 이유지가 자신이 부를 만한 친구를 떠올리다가 이내 휴대전화를 집어넣었다.
“……나도 혼자서 잘 놀 수 있다, 뭐.”
이유지가 속한 균열 관리부에도 근래 여러 가지 일이 있었기에 그녀는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이렇게 시내로 왔다.
사실은 이서진의 집 근처를 어슬렁거리다가 이곳에 온 것이었지만.
‘그러고 보니 여기 근처에서 솜사탕을 먹었었지.’
문득 그때 자신이 했던 행동을 떠올린 이유지가 얼굴을 살짝 붉혔다.
“……솜사탕이 엄청 맛있어 보였던 거 같기도 하고?”
막상 생각하니까 먹고 싶어졌다.
이유지는 걸음을 옮겼고, 그때 봤던 그 솜사탕 가게를 발견할 수 있었다.
“여기 솜사탕 하나 주세요!”
“예. 여깄습니다.”
여전히 거대한 사이즈다. 이유지가 눈을 빛내며 그걸 먹으려 할 때, 그녀의 감각에 걸려드는 존재가 있었다.
‘꼬마네.’
동양인이라면 대부분 가지고 있을 검은색 머리와 눈이었지만, 이 꼬마의 눈과 머리는 그것보다도 더욱 짙은 색으로 보였다.
마치 심연과도 같은 빛깔.
자신이 들고 있는 솜사탕을 보면서 침을 흘리고 있는 아이.
오른손에는 어딘가 낯익게 느껴지는 인형 하나를 꼭 쥔 상태였다.
‘왜 인형이 땀을 흘리는 거 같지.’
방금 살짝 움직인 거 같기도 하고…….
에이, 인형이 어떻게 움직이겠어.
피식 웃은 이유지가 아이에게 말을 걸었다.
“꼬마야. 이 솜사탕 먹고 싶어?”
“꼬마? 누가 꼬마야?”
“여기에 귀염둥이 꼬마가 너 말고 어디 있겠어.”
“맞아! 나 인간 꼬마야!”
특이한 애네.
꼬마라고 불렀더니 기쁘다는 듯, 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는다.
이유지가 선뜻 자신이 들고 있던 솜사탕을 내밀었다.
“이거 먹을래?”
“이게 뭔데?”
“솜사탕. 엄~ 처엉 달콤해.”
“나 먹어도 돼?”
“그럼.”
아이는 조심스럽게 손을 들어 솜사탕을 한 입, 입에 집어넣었다.
솜사탕을 먹자마자 눈이 동그랗게 떠진다.
“이거 다 먹어도 돼.”
“진짜?”
넙죽 받던 아이가 이내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두 손을 공손하게 모아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아.”
“너, 진짜 예의 바르구나?”
부모님이 교육을 엄청 잘하셨네.
이유지가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런데 보호자는 어디 있는 거지?’
이리저리 살펴보아도 이 아이의 부모로 보이는 사람은 없었다.
솜사탕을 다 먹은 아이가 이유지에게 인사하고는 어딘가로 가려 한다.
“꼬마야. 어디 가?”
“아빠 만나러!”
이 근처에 있는 건가?
이유지는 걱정되는 마음에 조금 거리를 두고 따라가 보기로 했다.
걷는 폼이 아장아장거리는 게 엄청 귀여웠다.
말은 유창한데, 정작 걷는 폼은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아기 같다.
그렇게 아이를 따라가던 도중. 시민 틈에 가려져 아주 잠시 모습이 사라졌고.
“……어?”
그대로 어딘가로 사라져 버렸다.
이유지가 몰래 기감을 넓혔다가, 이내 당황했다.
“……왜 잡히질 않지?”
자신의 감각으로도 방금 보았던 그 꼬마의 기운이 잡히질 않았다.
말 그대로 어딘가로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
혹시라도 보호자랑 합류한 게 아닐까. 그런 생각도 들었지만, 이유지는 계속해서 그 꼬마를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시간이 좀 흘렀을까. 여전히 발견하지 못했을 때.
“응?”
의외의 인물을 발견했다.
왠지 모르게 아까 보았던 꼬마를 닮은 듯한 얼굴.
아니, 이럴 경우에는 그 꼬마가 얘를 닮았다고 해야 하나?
“바쁘신 내 친구가 여긴 왜 있대?”
“허억……허억…….”
“……뭐야. 너 괜찮아?”
다급한 얼굴의 이서진이 말했다.
“이유지. 나 좀 도와줘라.”
* * *
-끄앙! 끄앙끄앙!
“응? 돌아가자고? 안 돼! 아빠 만나야지!”
처음으로 밖으로 나오고, 순둥이의 눈에 보이는 것들은 하나같이 새롭고 재밌었다.
무언가 이질적인 기운이 섞여 있던 이쁘장한 인간이 준 솜사탕도 정말 맛있었다.
텔레비전으로만 보던 세상과는 전혀 달랐다.
“우리 꼬마 친구. 이런 데서 혼자 뭐하고 계신대.”
순둥이에게로 누군가가 다가왔다.
선글라스를 끼고, 어딘가 위험해 보이는 사내.
하지만 순둥이에게 있어서는 자신의 아빠를 제외하고는 하나같이 똑같은 ‘인간’일 뿐이었다.
아, 방금 만났던 인간은 좀 다를지도!
순둥이가 자신의 앞에서 웃고 있는 인간을 보았다.
일전에 보았던 웃음들과는 그 느낌이 달랐다.
‘이건 못 먹는 거.’
다른 곳으로 가려고 할 때, 순둥이의 이목을 끌 만한 대사가 나왔다.
“아저씨가 맛있는 거 다 사 줄게. 치킨은 좋아하니?”
“그건 먹을 수 있는 거!”
“응? 하하. 대신 조용히 따라와야 한다.”
손안에 들린 꼬물이가 이리저리 움직였지만, 이미 순둥이는 낯선 남자를 따라간 후였다.
* * *
어두컴컴한 지하.
그곳에 어린아이들이 서로 모여 몸을 떨고 있었다.
“애들아. 괜히 울고 그러면, 아저씨가 싫어한다. 알겠냐?”
“……히끅!”
흉터 가득한 근육질의 남성이 한 말에 아이들은 숨죽인 채로 울 뿐이었다.
그의 옆으로 다가온 부하 한 명이 물었다.
“형님. 이제 한 명 더 데려온답니다.”
“그래? 잘됐네. 이번엔 좀 괜찮게 받을 수 있겠어.”
부하는 아이들을 가리키며 물었다.
“그런데 쟤네들은 어디로 가는 겁니까?”
“왜? 막상 팔 때 되니까 불쌍하고 그러냐?”
“에이…… 저 먹고살기도 힘든데요, 뭘.”
“그래. 신경 끄고 살아. 우린 돈만 받으면 되니까.”
생체실험이니 뭐니 하는 말을 듣기는 했지만, 그로서는 별 상관없는 이야기였다.
자신은 저 핏덩이들을 팔고 돈만 받으면 끝이었으니까.
“형님. 저 왔습니다!”
“오냐. 한 명 더 데려왔다고?”
“예. 형님.”
형님이라고 불린 자는 부하가 데려온 아이를 보았다.
애라고 해봐야 이런 분위기 속에서는 겁을 먹는 게 당연한 일이었지만.
어째선지 이 아이는 방실방실 웃고 있을 뿐이었다.
“맛있는 거 어딨어?”
“꼬마야. 그런 게 어디 있겠냐. 너도 얼른 저쪽으로 가서 박혀 있어.”
“맛있는 거 없어?”
깊은 칠흑의 눈동자가 남성을 응시한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애 눈빛이 무슨……!’
자기가 이런 꼬마한테 겁을 먹었다, 이 말인가?
“한심한 자식. 애한테 쩔쩔매는 꼴하고는.”
“혀, 형님! 제가 언제 그랬습니까!”
“비켜.”
방금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무서운 인상의 사내가 겁 없는 꼬마를 보며 으르렁거렸다.
“꼬마야. 조금이라도 오래 살고 싶으면 애답게 굴어.”
“하핳! 못생긴 인간이다!”
“……이놈 애들 있는 곳에 박아놔.”
“예. 형님.”
찝찝한 표정의 부하가 말했다.
“형님. 저대로 괜찮겠습니까?”
“안 괜찮으면 뭐. 넌 상품에 흠집이라도 낼 생각이냐?”
“그, 그건 아니죠.”
“곧 애들 데려갈 놈 올 거 같으니까, 준비해.”
“예.”
아이들이 모여 있는 철창. 여기저기서 울음소리가 들린다.
“엄마아…….”
“히끅! 살려주세요…….”
순둥이는 그들 사이에 섞여 신기한 눈동자로 아이들을 보았다.
분명히 텔레비전이란 거에서 봤을 때는 이런 얼굴이 아니었는데?
어린애들은 좀 더 밝고 행복해 보이는 표정이었다.
“안녕!”
순둥이가 울고 있는 아이 한 명에게 인사했다. 현재 상황에 걸맞지 않은 밝고 쾌활한 목소리였다.
“……응?”
-같은 또래의 아이를 만날 때는 항상 웃으면서 인사하는 거야.
아빠가 알려주었던 사실이다.
원래라면 자신의 이름을 먼저 소개하라고는 했지만…….
순둥이는 기억나지 않는 척 그 과정을 건너뛰었다.
“으, 응. 안녀…….”
“어이, 꼬마들. 나갈 시간이다. 그만 질질 짜고 일어나.”
“아, 아저씨. 잘못 했어요!”
“엄마 보고 싶어요!”
“하. 자식들.”
아이들을 데리러 온 부하가 손을 들었다. 가볍게 말을 듣게 하는 정도는 괜찮겠지.
“폭력은 안 돼!”
소년의 앞을 순둥이가 막아섰다.
자신의 아빠가 말하기를 폭력은 나쁜 거라고 했다.
“이게 진짜 뒤지고 싶나!”
대신이라고 하듯이, 순둥이에게로 손이 날아온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하라고 했더라.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순둥이에게 있어서, 사회에 있는 모든 지식은 자신의 아빠로부터 들은 것들이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이서진이 제일 먼저 가르친 말이 있었다.
“아, 맞다!”
순둥이가 외쳤다.
“싫어요! 안 돼요! 하지 마세요!”
지하에 폭발이 일어났다.
* * *
“내 이놈 자식들을 그냥…….”
“……일단 진정해. 흥분해 봤자 되는 건 없으니까.”
평소와 같으면 반대되는 입장이다.
이유지가 불같이 화내고, 나 혹은 이태영이 그것을 말리고.
하지만 그런 걸 신경 쓰지 않을 만큼 화가 나 있었다.
도중에 위치를 확인했을 때, 집에 있단 사실에 안심하고 이후 확인을 소홀히 한 내가.
당연히 나가고 싶을 텐데, 그 맘을 헤아려 주지 못한 내가.
“별일 없을 거야.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
“……그래.”
실제로 움직이지 않고 있었으니까.
다만, 궁금한 것은 순둥이가 밖으로 나왔는데도 어떻게 아무런 소란이 없었냐는 것이다.
‘만약에…….’
저들이 순둥이를 비싸게 팔릴 마물로 착각해서 감금했다면…….
그때는 내가 이놈들을 싹 다…….
콰앙!
그때, 건물의 지하에서 폭발음이 들렸다.
“……!”
그 소리를 듣자마자 이유지와 나는 속도를 높였다.
신속의 물약을 따로 안 챙겨놓은 게 아쉬울 정도로 급박한 사태.
“콜록! 콜록!”
연기에 눈이 가려져서 앞이 잘 안 보인다.
순둥이는……?
설마…… 그 폭발과 함께……?
“순둥아! 순둥아!”
다급하게 이름을 부르자, 연기 너머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아빠!”
아마도 이 사태의 주범으로 생각되는 녀석들. 싸움은 피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이미 그들은 온갖 신음 소리를 내며 바닥에 엎어져 있었다.
“으으…….”
“살…… 려줘…….”
연기가 걷히고 실루엣이 드러났다.
서로를 부둥켜안고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짓고 있는 아이들.
주위에 펼쳐진 정체 모를 푸른 막 같은 것이 그들을 폭발로부터 보호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순둥이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꼬마가 해맑게 웃으며 내게 손을 흔드는 중이다.
“아빠아~”
“…….”
예상과는 전혀 다른 현장의 모습에 나는 문득 어떠한 생각이 떠오르고 말았다.
-나, 순둥이 아닌걸!
우리 순둥이.
정말로 순하기만 한 건 아닐지도 모르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