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tion is flowing from the water purifier in my house RAW novel - Chapter 63
우리집 정수기에서 물약이 흐른다 064화
22. 성자님의 말은 언제나 옳다(2)
“오늘의 Hit! 오늘 모셔보실 분은…… 이야. 이거 정말로 나와 주실 줄은 몰랐는데요.”
“누군데 그러시죠?”
“요즘 이 사람보다 유명한 사람이 한국에 있을까요?”
“혹시……?”
“예. 그렇습니다. 오늘의 Hit. 게스트, 신성 길드장님이십니다!”
두 MC가 자리에서 일어나 멀리서 걸어오는 신성 길드장을 향해 인사했다.
‘……우와.’
오늘의 Hit의 메인 MC를 맡고 있는 나지현은 광고 속에서만 보던 신성 길드장의 모습에 남모르게 감탄했다.
슬랙스에 와이셔츠라는 간편한 복장.
신성 길드의 이미지 때문에 그럴까.
성직자 같은 차림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의 외견은 다른 연예인과 비교하더라도 전혀 꿇리지 않았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야.’
셔츠 같은 것으로는 숨길 수 없는 넓은 어깨와 등.
길게 뻗은 다리와 완벽한 비율의 몸.
훈훈한 외모.
유명 프로의 MC를 맡고 있는 만큼, 연예인과 각성자들을 많이 봐왔던 그녀였지만, 이런 신체를 가진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역시 길드장이라면 남다르긴 하구나.’
그래도 신성의 길드장이니 저래 보여도 좀 과묵하지 않을까.
그런 예상을 할 뿐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프로다.
그런 사람들을 상대로 방송 분량을 뽑아내는 것이 그들의 일.
“예! 오늘은 신성 길드장, 이서진 님과 함께하게 될 텐데요…….”
곧이어 그의 뒤를 따라 나오는 인물을 보자마자, 공동 MC인 채상준의 말이 멈추었다.
프로로서 보여서는 안 되는 모습이었지만…….
“상준 씨, 상준 씨!”
“……아! 예. 사실 한 명의 게스트분이 또 계십니다!”
“요즘 이분을 모르면 말이 안 되죠! 화제의 인물. 세이크리드 스트로베리의 메인 모델인 이루비 씨도 함께합니다!”
나지현은 이루비라는 이름의 소녀를 보자마자, 그의 옆에 있는 채상준이 순간 말을 멈춘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다.
‘……진짜 대박이긴 하네.’
깔맞춤이라도 한 걸까?
신성 길드장과 비슷한 복장을 하고 있었지만, 그런 것으로는 감출 수 없는 묘한 성스러움이 그녀에게 있었다.
MC들이 출연자들에게 미소를 보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지금 나지현은 자신도 모르게 진심으로 웃고 있었다.
이런 생각을 하면 안 되지만.
‘……완전 귀여워.’
저런 분위기를 가진 소녀가 신성 길드장의 옆에 착 붙어서 함께 이동하고 있었다.
눈썰미가 좋은 나지현이기에 알아챌 수 있었다.
무심한 표정으로 걷고 있었지만, 온 신경은 옆에 있는 신성 길드장의 걸음걸이에 맞춰 있다는 걸.
그녀에게는 그 모습이 마치 새끼 오리가 제 어미의 걸음을 따라 하는 것처럼 보였다.
두 게스트가 자리에 착석하고 서로 간의 인사가 오고 간 뒤, 본격적인 인터뷰가 진행되었다.
‘이분한테는 죄송하지만…….’
아마도 시청자들이 가장 궁금해하던 건 이 사람이 아닐까.
MC들이 가장 먼저 질문한 것은 이루비였다.
“이루비 씨라고 하셨나요? 오늘도 신성 길드장님과 함께해 주셨는데요. 혹시 신성 길드와는 무슨 관계이신지 대답해 주실 수 있으신가요?”
질문을 받은 이루비가 잠시 옆으로 고개를 돌려, 신성 길드장과 눈을 마주쳤다.
나지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 하는 거지?’
신성 길드장이 익숙한 듯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
그제야 이루비가 입을 열었다.
“루비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예. 신성에서 이번에 계약한 전속 모델이라는 소문이 있었는데요. 사실인가요?”
“저는 모델 같은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현재 연예계에서 가장 핫한 인물이다.
어떠한 대답이 나올까.
두 MC도. 그것을 찍고 있는 카메라맨과 스태프들도 그녀의 입을 지켜봤고.
특유의 무덤덤한 표정으로 이루비가 말했다.
“저는 그저, 성자님의 뜻에 따르는 충실한 종일 뿐입…… 읍.”
마치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재빠른 움직임이었다.
신성 길드장이 이루비의 입을 자연스럽게 막고는 말을 이었다.
“……제 개인 비서라고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따로 모델은 아니고, 광고 촬영 동안 어색해하는 저를 위해서 같이 찍어준 것뿐이에요.”
“……예에.”
방금 종 어쩌구 하지 않았나?
그 후로 몇 번이고 MC들이 이루비를 향해 질문을 던졌으나, 대답은 하나같이 본인이 아닌, 옆에 있는 신성 길드장과 관련된 것뿐이었다.
“현재 광고로 인해 엄청난 인기를 누리고 계신 데요! 소감 한번 들어볼 수 있을까요?”
“광고…… 성자님과 함께할 수 있어서 무척이나 뜻깊은 시간이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혹시 차후 다른 광고라거나, 작품에 참가하실 의향이 있으신가요?”
“제가 있을 곳은 언제나 성자님의 곁뿐입니다.”
“……그 성자님- 이라는 건 신성 길드장님을 가리키는 말인 거죠? 무슨 의미로 그렇게 부르는지 알려주실 수 있으신가요?”
“어려운 질문이군요. 성자님은 성자님이기에 그렇게 부르는 것뿐인데, 왜 그러냐고 묻는다면…….”
대부분의 답변이 이런 식이었다.
그럴 때마다, 옆에 있던 신성 길드장이 질문들에 관한 답을 해주었다.
‘약간 사차원 컨셉 같은 걸 잡고 있는 건가……?’
간혹 출연자들 중에 그런 사람들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촬영 도중 보이는 저 맹목적인 모습은 도저히 지어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이쯤 되니깐, 오히려 그들의 관심은 옆에 있던 신성 길드장에게로 옮겨갔다.
이서진.
신성 길드장이라는 자리에 위치하면서도, 고지식해 보이지 않고, 행동과 말 또한 무언가 친숙하다.
‘거기다가…….’
유명한 사람들을 만나는 MC라고 해도, 길드장이라는 위치에 있는 사람과 인터뷰를 하는 것은 처음이다.
당연히 몸이 긴장할 수밖에 없겠지만.
‘어쩐지 몸이 편해.’
그의 앞에서는 긴장하기는커녕, 평소보다 더욱 가벼운 기분으로 대할 수 있었다.
그제야 그의 진면모가 제대로 보이기 시작했다.
단순히 화면 너머로 보는 것이 아니라, 직접 만나봐야 드러나는 진가.
이후의 관심이 전부 이서진으로 향했지만, 옆에 있는 소녀는 불만은커녕, 당연하다는 듯, 연신 추임새를 넣을 뿐이었다.
“성자님의 말이 옳습니다.”
‘이해가 돼.’
옆에 있는 저 소녀가 저렇게 따르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 후 여러 가지 질문들이 오갔다.
현재 상황이 상황인 만큼, 두 명의 MC가 언급을 피하고 있던 주제 또한 이서진 측에서 먼저 꺼냈다.
마석병을 불러일으키는 악마의 음료.
그레이트 그레이프.
그리고.
“……정말로 세이크리드 스트로베리에 그런 효과가 있다는 거죠?”
광고에서도.
정부에서도.
여러 번 그 사실을 알려왔지만, 그러한 물건을 직접 제작한 신성의 길드장이 말하는 것은 역시 설득력 자체가 달랐다.
MC.
카메라맨.
스태프.
그들은 어느새 자신들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차우 길드에 대한 논란.
길드에 속해 있던 인물들에 대한 비난에 관한 의견을 밝혔을 때도 내심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이전에도 저런 소신 발언을 한 사람들이 어떤 질타를 받았는지 알고 있으니까.
-네가 뭐라고?
저 사람에게 그런 말을 뱉을 수 있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신성 길드에서 자체적으로 제작한다는 ‘성수’.
물약으로도 치료할 수 없는 마석병을 완치할 수도 있는 물건이라면 대체 얼마의 값어치를 가질까.
그런 물건을 음료수에 섞어 헐값에 판매한다.
방송이 끝나갈 때가 되었을 때는 현장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그를 선망의 눈빛으로 바라봤다.
“……성자.”
왜 이루비가 그렇게 말했는지 이제야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다.
저 사람은 실존하는 성자다.
모두의 마음에 그런 생각이 자라났고. 여전히 고개를 끄덕이는 루비의 말이 스튜디오 내에 울려 퍼졌다.
“성자님의 말은 항상 옳습니다.”
* * *
방송 외에도 몇 번의 야외 활동을 하게 되었다.
악수회.
라고 보면 될까.
정부 쪽 인사가 고개를 숙여 가며 부탁하던 일이다.
정부가 시민들에게 무상으로 지급하게 될 세이크리드 스트로베리.
그것을 내가 직접 그들에게 나눠줬으면 좋겠다는 게 그쪽 의견이었다.
연탄을 나르듯이, 직접 찾아간다는 건 아니고.
가벼운 이벤트처럼 나를 만나고 싶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악수와 가벼운 대화 정도를 나누고 받아가는 형식이었다.
“……가벼운 이벤트라면서?”
끝이 안 보이는 줄을 보고 있자니, 입이 턱하고 벌어진다.
“안녕하세요!”
“영광입니다!”
사람들은 나와 가벼운 악수를 나누고, 음료수를 받아가기 시작했다.
“성자님. 힘들지는 않으십니까?”
“응.”
루비도 내 옆에 자리했다.
사람들은 나와 악수를 하면서도 종종 힐끗- 다소곳하게 앉아 있는 루비를 쳐다봤다.
거, 입이 벌어지다 못해 떨어지시겠네.
하지만 의외로 내게 관심이 있는 사람도 많았다.
“방송에서 하시던 말씀. 감명 깊게 들었습니다. ……사실 저도 최근에 몸에서 마석이 발견됐거든요,”
그는 두 손으로 내 손을 포개면서 밝게 웃었다.
“누군가를 원망하지 않으면 버틸 수 없을 것 같았는데, 방송을 보고 나니까 알 것 같더라고요. 저렇게 우리를 위해 노력해 주시는 사람도 있는데, 그런 마음을 가지면 안 되겠구나. 하고요.”
나와의 인사를 끝내고, 그도 아쉬운 표정으로 옆을 슬쩍 바라보았다.
아닌 척하면서도, 루비와 인사하지 못한 게 아까운 모양이네.
루비는 처음부터 끝까지, 내 옆에 묵묵히 앉아 있기만 할 뿐이었다.
그가 떠나면서 말했다.
“그럼…… 고마웠습니다. 성자님.”
아니. 대체…….
저런 오글거리는 말은 누가 퍼뜨리고 다니는 건가?
……그래. 방송에 나왔다고 했었지.
편집이라도 해줄 줄 알았는데…….
루비가 아닌, 평범한 사람에게서 저 말을 듣자니, 나도 모르게 얼굴이 확 하고 붉어진다.
요즘 좀 익숙해졌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지금 보니까 전혀 아니었다.
“……성자님?”
그 말에 반응한 루비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떠나가던 남성을 붙잡았다.
“그쪽 신도분. 루비하고도 악수를 나눠주실 수 있으신지요.”
“예, 예?”
루비가 뻗은 아담한 손을 영광이라는 듯이 두 손으로 조심스럽게 잡는다.
표정이 금방이라도 울 것 같다.
……아니, 나랑 할 때는 저런 표정 안 지었잖아?
그것을 지켜본 뒷사람들 행동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성자님. 이렇게 알현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성자님. 저희에게 이런 은총을 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아…….’
하나같이 저런 오글거리는 말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입으로 뱉고 있다.
내 얼굴색은 점점 세이크리드 스트로베리의 그것처럼 변해갔다.
그들의 목적은 뻔했다.
저들이 저런 말을 할 때마다 루비의 기분이 눈에 띄게 좋아지는 게 보였으니까.
자신을 칭찬할 때는 꿈쩍도 하지 않던 그 얼굴이 나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는 흐물흐물 풀어진다.
그중에서도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던 건 한 20대 여성이었다.
준비라도 해온 것일까. 나에 대한 찬송가를 아주 열창하시는데, 결국 루비의 얼굴이 흐물거리다 못해 어떤 변화가 일어났다.
“우와…….”
“……화면이랑은 완전 다르잖아?”
“성녀님…….”
앞쪽에 줄을 서 있던 사람들이 하나같이 입을 벌린다.
“뭐, 뭐야! 무슨 일인데?”
“우리도 보여줘!”
루비는 금세 평소의 무표정으로 돌아왔지만, 나와 악수하는 여성은 기어코 살짝 눈물을 흘리면서 이상한 말을 내뱉었다.
“저, 팬카페 관리 정말 열심히 할게요…….”
……뭐라는 거야?
* * *
“집이다아!”
“와아! 집이다!”
일과가 끝나고,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온 나는 대자로 바닥에 뻗었다.
집으로 돌아온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황혼의 연구실에서 자고…….
그게 아니면, 신성 길드에서 머무르고…….
역시 스윗 하우스라고 해야 할까.
내게 있어서는 이곳이 가장 편안한 곳이었다.
“순둥아. 아빠 무겁다.”
“여기가 좋은걸!”
피식 웃으며 제 가슴에 머리를 대고 있는 순둥이를 쓰다듬었다.
어린 나이에 하나씩 있는 버릇 같은 거라고 할까.
요즘 순둥이는 저런 식으로 다른 사람들의 가슴팍에 안기곤 했다.
-으응. 이게 아닌걸!
금방 그런 소리를 하면서, 다시 내 품에 안기긴 했지만.
내심 내 품을 좋아하는 거 같아서 뿌듯하고 그렇다.
요즘 운동을 한 보람이 있다니까.
가슴이 탄탄한 게 안기는 맛이 있을 것이다.
하하.
일은 순조롭다. 마석병에 걸린 사람들도 점차 줄어들고 있고.
‘……그런데 내 마석은 왜 그대로인 걸까?’
다시 한번 병원에 찾아가 봤지만, 내 마석은 작아지기는커녕, 오히려 조금 더 커져 있었다.
그렇다고 몸에 마기가 퍼지는 건 아닌데…….
그 누구보다 물약을 많이 먹는 나다. 사라진다면 진작 사라지고도 남았어야 할 마석.
“에휴. 모르겠다.”
“하핳. 간지러워!”
이렇게 순둥이를 안고 있으니, 그동안 있던 피로가 한 번에 밀려오는 기분이다.
나는 옷을 벗는 것도 잊어버린 채로 잠에 들고 말았다.
* * *
“아빠 잔다!”
어느새 해츨링의 모습으로 돌아온 순둥이는 이서진의 가슴팍에 머리를 가져다 대었다.
두근.
두근.
그의 가슴에서 느껴지는 익숙한 감각에 순둥이의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남들에게서는 느낄 수 없는 감각이다.
순둥이는 자신의 가슴팍에 자그마한 손을 가져다 대었다.
두근.
두근.
조금 전 느꼈던 것과 같은 두근거림이 느껴진다.
평범한 심장 고동 소리가 아니었다.
자세한 건 잘 모르겠지만…….
이 사람이 아빠라는 사실을 증명해 주는 소중한 것이었다.
자신과 같다.
항상 남들과 다른 모습에 불안해하던 순둥이에게 이것은 큰 위안거리였다.
‘순둥인 아빠만 있으면 되니까! 꼬물이도!’
위잉- 위잉-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품에 안겨 있는데, 무언가 훼방을 놓는다.
순둥이가 작달막한 두 손을 머리에 가져갔다.
“안 벗겨져!”
순둥이의 머리에는 어느새 제 머리 크기에 맞게 알껍질이 포개져 있었다.
폴리모프를 할 때면 머리핀의 형태로 변하는 알껍질.
자신의 머리에 있는 게 맘에 들지 않는지 순둥이가 투정을 부렸다.
껍질이 이상한 소리를 내며 진동한다.
이윽고 순둥이의 눈에 이상한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순둥이가 허공을 노려보며 두 볼을 힘껏 부풀렸다.
“이상한 거! 아빠가 관심 주지 말랬어!”
아직 태어난 지 1년도 되지 않은 해츨링으로서는 알 수 없는 메시지를 무시하며.
순둥이는 제 아빠의 품에서 소곤소곤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