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tion is flowing from the water purifier in my house RAW novel - Chapter 68
우리집 정수기에서 물약이 흐른다 069화
24. 노력의 보답(1)
대부분의 일이 일단락되고, 일상이란 것이 찾아왔다.
물에 약을 타는 놈이라든가, 이상한 약을 하는 놈이라든가…….
그런 놈들이 없는 생활은 매우 안락했다.
“이제야 좀 조용한 거 같네.”
-성자니이이임!
-루비야아아! 얼굴 좀 비춰주라!!
분명 안락했어야 하는데……?
“……혹시 저희 길드에서 뭐 잘못한 거라도 있습니까?”
“하핫. 아니요. 전부 다 신성 길드에 들어오고 싶다는 사람들이에요.”
“……여길요?”
한창 마석병이 퍼지고, 그 원인에 대한 규명이 제대로 되지 않았을 때.
각 길드 앞에는 저런 식으로 사람들이 죽치고 앉아 있곤 했다.
지금 신성 길드 하우스 앞에서도 비슷한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그때와는 완전히 다른 의미로 있는 것이지만. 지끈거리는 머리를 잠시 진정시키고, 나와 대화를 나누고 있던 사람을 쳐다보았다.
정장을 입고, 두 손을 앞으로 모아 미소 짓고 있는 안내원.
단순한 안내원이라고 하기에는 그 외모가 두드러진다.
뭐, 당연한가.
원래는 모델이었던 사람이니까.
“일은 좀 어떠세요?”
“정말 마음에 들어요. 길드 하우스에 계신 분들도 전부 친절하시고요.”
“다행이네요.”
신미란이 내게 살며시 미소 지었다.
前차우 길드 소속 전속 모델, 신미란.
그녀는 내 권유를 받아 신성 길드에서 일하게 되었고, 1층에 있는 안내 데스크에서 업무를 보게 되었다.
대인기피증이 보이는 그녀를 위해 다른 편한 일을 준다고 했지만, 그녀가 선택한 것은 그 누구보다 사람을 자주 만나는 안내 데스크 직원이었다.
“제가 감당해야 할 일이니까요. 피하기만 해서는 될 것도 안 되잖아요?”
마음이 강한 사람이다. 신미란의 얼굴은 이전에 스튜디오에서 보았을 때보다 훨씬 생기 있어 보였다.
아직도 그녀를 욕하는 사람들은 많았지만 반대로 옹호하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었다.
내가 나선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나아지겠지.
“길드장님 오셨습니까.”
“아. 신백준 씨.”
성기사단장, 신백준.
그의 등장에 신미란이 자신도 모르게 놀란 표정을 지었다.
“죄송해요…… 아직 익숙하지가 않아서…….”
“저희 식구들이 좀 한 덩치하시긴 하죠.”
길드 하우스 내부에서도 갑주를 벗지 않는 그들이다.
나조차도 아직 익숙하지 않은데, 그녀라고 별수 있겠는가.
“밖에서 무슨 소란이 일어난 것 같아 나와 봤습니다만…….”
“아, 그게요.”
신백준에게 현재 상황에 대해 말해주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신성에 들어오고 싶다면, 굳이 거절할 필요는 없겠죠.”
“예? 그래도 되는 거예요?”
“이전에도 이곳에 들어오고 싶어 하는 분들은 많았습니다.”
하긴 대형 길드에다가 사회적으로 이미지도 좋은 곳이니까.
그런데 그런 것치고 길드 하우스 내에 상주 중인 인원이 너무 적지 않나?
“그럼 입사를 위해 따로 지원이라도 받나요?”
“사무직에 경우 인원을 모집하는 경우가 있습니다만. 저런 식으로 길드 앞에 있는 사람들이 바라는 것은 대부분 전투직입니다.”
“전투조…….”
길드의 꽃이라고도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이다.
신성 길드에서는 성기사라고 불리는 자들.
성기사단장, 신백준 휘하에 있는 성기사의 인원은 총 스무 명.
내가 이곳에 온 이후로도 인원에 변동은 없었다.
신백준 씨의 말을 들어보면, 이전에도 별다를 것은 없었다고 하는데…….
타 길드에서는 상시 전투조를 늘리기 위해 따로 스카우터들도 존재하는 것에 비해, 신성에서는 전투조 증원을 위한 별다른 행동을 취하지 않는다.
신성의 전투원이 되고 싶은데, 될 방법은 없으니 저렇게 앞에서 시위라도 하는 것이다.
“명색이 신을 지키는 방패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쉽게 받을 수는 없는 법이죠. 아주 간단한 테스트를 거칠 뿐입니다.”
“테스트?”
“길드장님께서 원하신다면, 기존에 하던 절차대로 하고자 합니다만. 어떠십니까?”
“예. 저도 그게 좋을 거 같아요.”
신성의 길드장 자리를 내가 이어받았다고는 해도, 길드와 관련된 일은 대부분 신백준 씨가 맡고 있는 상황이다.
내가 이래라저래라 하기보다는 그에게 믿고 맡기는 것이 맞겠지.
그가 밖으로 나가기에 나도 뒤를 따라갔다.
“이서진이다!”
“얌마. 길드장님이겠지!”
“아니야. 성자님이라고 부르라던데?”
내가 나가자 바깥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주목되었다.
그러나 내게 말을 걸려던 사람들은 내 옆에 있는 인물을 보고는 흠칫- 멈춰섰다.
“성기사…….”
“실제로 보니까 말도 안 될 만큼 크잖아……?”
굳어 있는 사람들에게 강대한 성기사가 입을 열었다.
“이곳에 신에게 충성을 바치고 싶은 자, 누가 있는가.”
……응?
갑자기 말투가 변했다.
마치 옛날에 길에서 봤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다.
신백준 씨가 힐끔 내게 고개를 돌렸다.
투구에 가려 보이지 않았지만, 그의 뜻은 전해졌다.
‘컨셉…….’
아무래도 이렇게 행동하는 편이 더욱 편하긴 하겠지.
실제로 저런 몸으로 저런 말투를 쓰니까 의외로 어울렸다.
……나는 못 할 거 같네.
“오오……!”
“멋지다……!”
역시 사람들의 반응도 폭발적이었다. 공포심은 사라지고, 그들은 열렬히 고개를 끄덕였다.
“충성을 바치고 싶습니다아!”
“신의 방패가 되기 위한 길은 간단한 것이 아니다. 몇 가지 시련을 통과해야만 진정한 성기사가 될 수 있는 법. 자네들이 그것을 감내할 수 있겠는가?”
“감내하겠습니다!!”
“그럼 따라와라.”
길드 앞에서 죽치고 있던 스무 명의 신체 건강한 남녀들이 하우스 내부로 들어왔다.
그들이 향한 곳은 성기사들이 평소에 사용하는 훈련장.
신백준이 말하는 시련이란 다름 아닌 체력 테스트였다.
문득 각성자 등록을 하던 때가 생각났다. 이곳에 들어오고 싶다는 것이 거짓말은 아니었는지 이들은 전원 각성자였다.
그들은 시련이 단순한 체력 검사라는 말에 자신만만한 웃음을 보였고…….
“허어억!”
“주, 죽는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 명도 빠짐없이 훈련장의 바닥을 기게 되었다.
“한심하군. 고작 이 정도로 신의 방패가 되려 하였는가.”
“…….”
‘간단한’ 테스트를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봤던 나는 그들을 보면서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저 사람들이 수준 미달인 것이 아니다.
그냥 이 테스트라는 것이 말도 안 될 정도로 힘들 뿐이었다.
옆으로 다가온 신백준이 내게 말했다.
“음. 별로 힘든 것은 아닙니다. 저희가 매일 하는 훈련에 비하면, 저 정도는 스트레칭에 불과하니까요.”
……저게 스트레칭이라고?
“우웨엑!”
“커헉!”
스트레칭이라기엔 너무 심한데……?
바닥에 엎어져 있는 사람들의 얼굴에 한 가지 감정이 떠올랐다.
좌절.
그들은 다시 일어날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아마도 다시는 성기사가 되고 싶다는 말은 하지 않겠지.
‘아깝긴 하네.’
하나같이 타 길드의 스카우터들이 본다면 눈독을 들일 만한 수준의 사람들이다.
‘뭐. 전투조와 관련된 건 내가 관여할 게 아니니까.’
엄연히 신백준 씨의 관할이다.
신미란이 그들에게 에너지 드링크를 하나씩 나눠줬다.
세이크리드 스트로베리.
현재 대한민국에서 불티나게 팔리고 있는 에너지 드링크였다.
“하아…….”
“이제 좀 살겠다…….”
음료수를 벌컥 마시고, 어느 정도 체력이 돌아온 그들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곳에는 그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 성기사들 또한 훈련을 하고 있는 중이었고.
성기사들의 훈련 강도는 그들이 방금 한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혹독했다.
“무리야…….”
“이런 걸 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역시 포기하려는 모양이다.
그들이 신미란의 안내를 받아 훈련장의 밖으로 나가려 할 때, 누군가 안으로 들어왔다.
성기사들의 흰갑주를 연상시키는 순백의 머리카락.
“성자님. 이런 곳에 계셨군요.”
칙칙한 분위기의 훈련장은 루비가 들어오자마자 한결 화사해졌다.
루비는 자연스럽게 내 곁으로 천천히 걸어왔다.
옆으로 지나가는 그녀를 보며, 성기사 지원자였던 사람들의 눈이 저절로 돌아간다.
“루, 루비 님…….”
“진짜 성녀님이다……”
“저는 성녀 같은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성자님을 모시는 수녀일 뿐이지요.”
무표정한 루비의 말에 그들이 흠칫 몸을 떨었다.
그러고는 시선이 내게로 향한다.
눈빛이 부담스러웠기에, 나는 그들 대신 루비를 바라보았다.
‘……저건 뭐지?’
평소와 같은 루비였지만, 뭔가 다른 점이 있었다.
아무런 장식도 없던 루비의 머리에 앙증맞은 딸기 모양 머리핀이 있었다.
“제가 해드린 거예요. 어때요, 굉장히 잘 어울리죠?”
“…….”
신미란이 내게 속닥였다.
순둥이는 달걀 모양 머리핀을 하더니, 루비는 딸기야?
‘……뭐. 잘 어울리긴 하네.’
“이런 건 원래 말로 표현해야 하는 법이에요. 자자. 빨리요.”
신미란이 내 등을 툭툭 쳤다.
……막상 입 밖으로 뱉으려니까 되게 어색하네.
평소에 이런 말을 해봤어야지.
내 시선을 느낀 루비는 자신의 손을 머리로 가져갔다.
“역시 성자님을 모시는 자로서 이런 거추장스러운 것은 불필요하겠지요.”
머리핀을 떼는 손동작에 내가 곧바로 말했다.
“아냐. 그. 되게 잘 어울리네, 머리핀. 응. 너한테 딱이다.”
“그렇습니까.”
다시 차분하게 두 손을 앞으로 모은 루비가 이내 입구에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물었다.
“저들은 무슨 일로 이곳에 오신 겁니까, 성자님?”
“아무래도 길드에 들어오고 싶다는 모양이야. 그것도 성기사를 지망한다는데.”
“성기사입니까.”
가만히 서서 이쪽을 쳐다보고 있던 사람들에게로 루비가 걸어갔다.
“아주 바람직한 행동입니다. 신을 지키는 방패가 되기 위해서 몸소 이곳까지 찾아와주시다니.”
“예? 예! 그렇습니다! 저는 성자님을 지키기 위한 성기사가 되기 위해서 이곳에 왔습…… 아.”
루비가 하도 성자님, 성자님. 그러다 보니까 저들에게도 옮은 것 같다.
신이 아닌, 성자를 지킨다고 말해 버린 남성이 다급하게 말을 바꾸려고 할 때.
루비의 흥분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렇습니까! 성자님을 지키기 위한 성기사가 되기 위해 이곳에 찾아와주신 겁니까!”
그의 앞에서 두 손을 모은 그녀를 본 상대방이 어쩔 줄 몰라 한다.
“신도님의 마음에 감복했습니다. 그런 숭고한 생각을 하고 계시다니! 혹시 뒤에 계신 분들도 전부……?”
난데없는 상황에 그들은 서로의 눈빛을 교환했고. 기회를 포착했다는 듯,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저희들 모두 성자님을 지키기 위한 성기사가 되기 위해 이곳에 왔습니다!”
“아아! 어찌 이리도 고결할 수 있는지!”
한 명 한 명이 모두 귀중한 사람이라는 듯이, 루비가 손을 맞잡는다.
“저, 루비가 당신들을 응원하겠습니다!”
밖으로 나가려던 그들이 휙-하고 몸을 돌렸다.
좌절은 사라지고 불타는 눈동자가 되어 훈련장을 노려본다.
“으아아! 얼른, 얼른 다시 테스트를 보게 해주십시오!”
“성기사가 된다! 루비……아니, 성자님을 지키기 위한 성기사가 되겠습니다아아!”
“그것입니다! 모두들 큰 소리로 외치는 겁니다! 성자님을 위해서!”
“성자님을 위해서!”
이전에 악수회에서 들었던 성자님 찬양곡을 다 같이 부르기 시작한다.
그 가운데에서 즐거운 듯, 손을 번쩍 들고 있는 루비.
‘……이상한 곳에서 흥분하는 경향이 있다니까.’
두 손으로 얼굴을 덮고 있자니, 신백준이 내 옆으로 다가왔다.
“아무래도 저희 식구가 늘어날지도 모르겠군요.”
흐뭇한 웃음이 섞인 목소리였다.
공감이었다.
……아마도 한두 명으로 끝나지 않을 것 같은데.
* * *
“오. 이제는 그럭저럭 잘 피하는 거 같은데?”
하루 종일 미친 듯이 구르는 예비 성기사들을 보며 자극받은 걸까.
나도 그동안 하지 못했던 운동을 오랜만에 하고 있는 중이었다.
“자. 간다.”
여기서 왼쪽.
그리고 오른쪽.
이전에는 미래시를 보고도 피하지 못했던 주먹들은 이제 아슬아슬하게나마 흘릴 수 있게 되었다.
맨 처음 훈련을 시작할 때부터, 내 목적은 단 하나였다.
회피.
상대방의 공격을 흘리는 것에 초점을 집중했다.
그리고 드디어 성과가 나오기 시작했다.
“이야…… 이게 어떻게 되지?”
연신 주먹을 내지르던 소성환이 감탄 섞인 말을 뱉었다.
“그럼 이건 어때. 이건. 이건.”
방금까지 본 스피드가 장난이라는 듯이, 더욱 날카롭고 빠른 주먹이 내 뺨을 스친다.
“아. 좀! 그거 하나 피한 게 그렇게 억울해요?”
“아니. 형이 하도 잘 피하길래…….”
“그 형 소리도 좀 그만하고요!”
“아니, 형을 형이라 부르지. 그럼 형 말고…… 누나?”
“아!”
오랜만에 하는 소성환과의 훈련 시간이다.
못 보던 사이 깐죽거림을 모아오기라도 한 건가. 점점 내 속은 타들어 가기만 했다.
“웅?”
“하아…….”
마음 같아서는 정말로 한 대 때리고 싶은데.
“그럼 내기 한 번 더 하는 건 어때? 저번이랑 내용은 똑같이.”
“안 합니다. 제가 미쳤다고 그걸 합니까.”
“아니, 왜!”
저번 내기에서는 소성환의 방심을 유도해서 겨우겨우 유효타 한 방을 넣었던 것뿐이다.
그 방심을 위한 게 내가 사용할 수 있던 모든 것들.
아니, 유효타도 아니지.
그냥 목검만 톡 가져다 댔을 뿐이니까.
“저 궁금한 거 하나 있는데, 물어봐도 됩니까?”
“응? 형도 모르는 게 있나?”
“……자기보다 강한 사람이랑 싸웠을 때, 이길 수 있는 방법. 아세요?”
안환재의 손녀딸과 했던 대련. 아마 소성환과의 내기 전날에 했었지.
나름 비등비등한 싸움을 한 것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다르다.
나는 막는 것에 급급했고, 그녀는 열 번이 넘게 연속으로 했던 대련으로 인해 상당히 지쳐 있었으니까.
-다음에 그때 보았던 체육관으로 와 주세요.
단순히 같이 운동하잔 건 아닐 거다.
아마도 대련.
이번에는 몸도 쌩쌩하게 진심으로 오겠지.
솔직히 져도 큰 상관은 없겠지만, 이왕 하는 거 쪽팔리진 않아야 하니까.
내 말에 계속해서 고민하던 소성환이 말했다.
“글쎄. 나보다 강한 사람이 별로 없어서.”
아, 그러셔.
그런데 이거 어쩌나.
“바로 옆에 있잖아요.”
“뭐? 힉! 아니…… 네가 여기 왜 있어!”
“뭐가? 난 여기 있으면 안 돼?”
어느새 훈련실로 들어온 정해연이 팔짱을 끼며 소성환에게 눈을 좁혔다.
“너보다 강한 사람이 없어? 우리 성환이 그사이에 훈련 열심히 했나 보다.”
“아, 진짜 이런 게 어딨어! 형, 나 좀 살려……!”
와우…….
방금까지 내가 있던 링에서 소성환과 정해연의 즉각적인 스파링이 시작됐다.
스파링이라 부를 거창한 것까지는 아니고…… 손을 이용해서 서로의 공격을 주고받는 간단한 캐치볼 느낌의 놀이……?
미래시로도 따라가지 못할 화려한 손놀림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정해연한테는 꼼수고 뭐고 안 통하겠는데?
“야, 야! 내 손. 손 꺾인다!”
날 가지고 놀던 소성환이 저렇게 쩔쩔매는 걸 보니, 역시 정해연이 최고다 싶었다.
소성환의 팔을 한번 꺾은 정해연이 후련한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어때요. 서진 씨도 한번 해보실래요?”
승부란 게 되나……?
“그래. 형도 해봐. 얘가 얼마나 무식하게 힘만 센 놈인지, 형도 알아야 한다고! 악! 손가락 진짜 부러질 거 같아!”
“……그럼 살살해 주세요.”
내가 조심스럽게 두 손을 들어 올렸고, 마찬가지로 손을 앞으로 내민 정해연이 내게 말했다.
“아까 말씀하셨죠. 강한 상대에게 어떻게 하면 이길 수 있냐고.”
“예.”
나름대로 틈을 노리며, 정해연에게 손을 놀려보지만 단 하나도 닿질 않는다.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서진 씨라면 한 가지 방법이 있긴 해요.”
“오…… 정말요?”
“예. 그럼요.”
순간 빈틈이 보였다. 그쪽으로 내 손이 뻗어져 나간다.
하지만 그 빈틈이란 것이 오히려 함정이었다.
가만히 있던 정해연의 손이 마치 춤을 추듯, 나에게 쇄도했다.
“어……,”
“그보다 더 강한 상대를 자기편으로 만든다. 오로지 서진 씨만이 할 수 있는 일이죠. 굳이 직접 싸우실 필요가 어디 있겠어요. 안 그래요?”
정해연의 손이 내 손을 움켜잡았다. 서로의 손가락이 얽히고, 이내 내 손은 옴짝달싹 못 하게 되었다.
이대로 제압하는 건가 했는데, 앞서 소성환에게 하던 것과는 완전히 다르다.
그 상태로 가만히 있는다.
이건…….
……깍지 끼기?
“최소한 전 서진 씨한테는 못 이길 것 같거든요.”
정해연이 손깍지를 잡은 상태로 해맑게 웃었다.
“제가 졌어요. 어때요, 강한 상대에게 이기는 법. 간단하죠?”
“하여간…….”
훈훈한 분위기 사이로 소성환의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진짜 서러워서 죽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