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tion is flowing from the water purifier in my house RAW novel - Chapter 70
우리집 정수기에서 물약이 흐른다 071화
24. 노력의 보답(3)
“아. 진짜. 지윤아. 너 무슨 짓을 저지른 거야!”
꽈악!
곰돌이 잠옷을 입은 여성이 거대한 곰 인형을 미칠 듯이 쥐어짜고 있다.
-저 어떻게 하면 좋아요……?
안지윤의 머릿속에서는 울먹이는 한 여자가 남자의 소매를 부여잡고 눈물을 글썽이고 있었다.
팡팡!
이불이 터지는 소리가 방 안에 울려 퍼졌다.
세상에 저 여자가 나라고?
“아아악!!”
낯선 남자 앞에서 그런 식으로 펑펑 울다니!
안지윤은 도저히 이불을 차는 것을 멈출 수가 없었다.
마치 가련한 여주인공이라도 되듯이, 그녀는 우는 정도가 아니라 아주 오열을 하고 말았다.
“이상해. 진짜 이상하다고!”
평소라면 절대로 말하지 않았을 본심이다.
심지어 제 할아버지 앞에서도 이런 짓은 한 적이 없는데…….
이서진.
그 남자가 옆에 있자, 어째선지 마음속에 깊게 묻어놨던 근심과 걱정들이 한 번에 쏟아져 나와 버렸다.
“……이상해.”
복잡한 기분이었다.
내 몸은 부끄러워서 당장에라도 뛰쳐나가고 싶은데 마음만큼은 속이 후련했으니까.
“내가 마지막으로 울어본 게 언제였더라?”
너무 까마득해서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녀는 기억을 떠올리다가 이내 얼굴을 찡그렸다.
“……절대로 그 빌어먹을 오빠한테는 들키면 안 돼.”
안지훈.
그놈한테 들켰다간, 어떤 놀림을 받을지 상상조차 가지 않았다.
끼익-
그때, 안지윤의 방문이 열리며 누군가 들어왔다.
“안지윤.”
“……제가 문 열기 전에는 반드시 노크하라고 했을 텐데요. 아니, 그보다 제 방에 찾아오지 말라 했죠.”
“쯧. 누굴 닮아서 애가 이리 모났는지. 제 어미를 닮은 게 분명해.”
방금까지 짓고 있던 부끄러움 가득한 표정은 어디 가고, 싸늘한 눈빛의 안지윤이 문을 열고 들어온 인물을 주시했다.
안병호.
자신의 생물학적 부모.
하지만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은 어느 가정에서 볼 법한 부녀간의 만남 같은 것은 아니었다.
그는 방을 둘러보더니, 침대 위에서 곰 인형을 끌어안고 있는 안지윤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그런 유치한 취미는 전부 정리하라고 했을 텐데?”
“신경 쓰지 마세요. 누가 뭘 하든.”
“……이래서 덜떨어진 것은. 하. 그나마 다행이지. 지훈이 그놈만은 내 바람대로 잘 크고 있으니까.”
안지윤이 곰 인형을 옆으로 치우고 안병호를 노려봤다.
“지금까지 키워준 것만으로도 고마워해야 할 거다. 아버지가 아니었다면, 너 같이 무능한 자식은 진작 어디 내다 버렸을 테니까.”
부모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심한 폭언.
저것이 안지윤, 그녀의 아버지였다.
제 자식을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한 도구로만 보는 쓰레기.
“그래도 어딘가 쓸모 있는 구석은 있겠지.”
그가 침대 위로 무언가를 던졌다.
이름과 전화번호가 적혀 있는 명함.
“유명 판검사 집안의 장남이다. 내일 약속을 잡아놨으니 실수할 생각은 하지 마라.”
그 말을 한 의미는 간단했다.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훈련은 집어치우고 집안을 위해 정략혼이라도 하라는 뜻.
그 말에 안지윤은 별다른 대답은 하지 않았다.
“……제 아비를 죽이기라도 하려는 거냐?”
아주 간단하게, 자신의 마나를 외부로 방출시켰을 뿐이다.
안지윤, 안지훈과 달리 그 부모는 각성자가 아니었기에, 힘을 받아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고작 이 정도 가지고 쩔쩔매면서, 왜 저렇게 센 척을 하는 거야?’
“아, 아무튼 그리 알아두도록 하거라.”
그는 도망치듯, 안지윤의 방에서 뛰쳐나왔다.
“…….”
홀로 남은 안지윤이 제 손에 들린 명함을 확인했다.
아마도 오늘 어떠한 말이 아니었다면, 이 주선을 받아들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때는 정말로 모든 걸 포기하고 싶었으니까.
명함을 갈기갈기 찢은 안지윤이 다시 곰 인형을 끌어안았다.
-저희 둘이서 그놈 한번 이겨볼래요?
누군가의 터무니없는 말이 떠오른다.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모든 힘을 쏟아부었음에도 털끝조차 닿지 못했던 사람.
강한 척만 하는 쓰레기와는 다르게 정말로 강인한 남자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무너진 자신에게 승리를 가져다준다고 말했다.
과연 이게 맞는 선택일지는 잘 모르겠지만.
“응. 해보자.”
누군가 자신에게 같이해 보잔 것은 처음이었다.
고민을 끝낸 안지윤이 내일 있을 약속을 위해 잠에 빠졌다.
* * *
“음…… 역시 신기하단 말이야.”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무구에 개방권을 사용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런 고민을 가지고 검의 능력을 개방했었다.
그렇게 나온 것이 ‘도검의 달인’
자신이 사용하는 모든 검에 대한 이해도가 극도로 상승한다.
지금껏 특이한 능력들을 보여주던 다른 물건들과는 느낌이 달랐다.
업그레이드 후는 더욱 그랬다.
단순한 강화가 아니라, 명칭 자체가 바뀌었다.
「도검의 주인」
마치 만물의 주인이 떠오르는 이름이다. 다른 효과가 더 생겨났나 했으나, 설명 자체는 업그레이드 전과 다를 게 없었다.
하지만.
‘……정말 검술 교관이라도 된 기분이네.’
내 앞에서 안지윤이 진지한 표정으로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한 번 휘두를 때마다, 뒤로 묶은 포니테일 또한 같이 흔들린다.
그것을 잠시 지켜보다가, 그녀를 향해 입을 열었다.
“방금 했던 그 동작 다시 해볼래요?”
“이 부분이요?”
“예. 방금 거기서 보폭을 조금만 줄이고, 오른쪽 어깨를 살짝 낮춰요.”
“이, 이렇게요?”
“아뇨. 그게 아니라…….”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안지윤의 뒤로 다가갔고.
그대로 멈춰 있는 그녀의 어깨를 손으로 살짝 눌러줬다.
“이렇게요. 한번 휘둘러 봐요.”
부웅!
방금보다 더욱 날카로운 파공음이 들려왔다.
“우와…… 됐어요!”
눈을 크게 뜬 안지윤이 폴짝 뛰며 기뻐한다.
그 모습을 보자니, 어쩐지 가슴이 욱신거렸다.
너, 검을 잡은 지 일 년도 안 되지 않았냐.
그런 놈이 자신보다 훨씬 강한 사람을 상대로 훈수 두고 있는 게 말이 되냐.
그런 말들이 내 귓가를 향해 넘실거리고 있는 것 같다.
물론 그걸 말하고 있는 건 내 양심이다.
‘……그런데 전부 보이는 걸 어떻게 해.’
개방된 물체끼리 발생하는 시너지 효과.
‘도검의 주인’과 ‘물체를 탐색하는 콘택트렌즈’가 서로에게 반응했다.
아니, 정확히는 ‘미래를 탐색하는 콘택트렌즈’와 반응했다.
미래를 탐색하는 콘택트렌즈.
일전에 텔레비전과 콘택트렌즈가 서로에게 반응하며 추가된 기능이다.
미래시.
내게 다가올 위기 혹은 절호의 순간을 렌즈를 통해 보여준다.
즉, 이미 두 개의 물체끼리 시너지가 완료된 상태였지만…….
‘이러면 삼중 효과인 건가?’
세 개의 개방된 물체가 서로에게 반응하여 시너지를 일으키고 있었다.
그 결과 내 눈에는 안지윤이 휘두르는 검의 미래가 보이기 시작했다.
절호의 순간.
검을 휘둘렀을 때 나타날 완벽할 미래가 내게 미래시로 보이고 있었다.
그렇다면 내가 할 일은 간단하다.
완벽한 미래와 현재의 차이를 비교하고 그것을 말해주기만 하면 된다.
물론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집중력이 필요하긴 했지만.
‘……그런데 좀 많이 잘하네.’
솔직히 내가 도와준다거나 할 수준이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몸에 밴 버릇 같은 것은 고치기 쉽지 않다.
자신이 옳다고 믿고 있던 것을 바꾸는 것이니깐.
하지만 안지윤은 내가 말하는 족족 한 치의 의심도 없이 그것을 받아들이고 바꿔나간다.
그 결과 안지윤은 매 순간 실력이 늘어가고 있었다.
‘재능 어쩌고저쩌고하더니…….’
역시 있는 놈들이 더하는 법이다.
“잠시 휴식하죠.”
“네!”
땀에 젖은 안지윤이 소파에 앉았다.
“자요.”
내가 건넨 음료수를 벌컥 마신 그녀가 푸하-! 하고 숨을 뱉었다.
“이제 좀 살겠네요!”
어제 보았던 우울한 모습은 어디 가고 쾌활한 말괄량이가 이곳에 있었다.
“기분은 좀 어때요. 이제 괜찮아요?”
“흠흠! 아, 여기 왜 이렇게 덥지?”
음료수 캔을 입에 문 안지윤이 붉어진 얼굴을 손으로 부채질했다.
이리저리 몸을 돌리던 안지윤이 궁금한 것을 질문한다. 화제를 돌리려는 것이 뻔히 보이는 행동이었다.
“그런데 이런 건 어떻게 알고 계신 거예요? 전에 따로 누구 가르치거나 한 적 있으신가.”
누군가를 가르치긴 했다.
주로 순둥이에게 자기 전에는 양치를 해야 한다든가.
뭐, 그런 것들.
“비슷하죠.”
“우와…… 그럼 이전에 보여주셨던 것도 전부 다 저한테 맞춰주셨던 거잖아요! 진짜 미쳤다! 완~ 전 소름 돋아요!”
안지윤이 양손으로 제 팔뚝을 쓸어내렸다.
이전에 보여줬던 것.
처음에 나와 만났을 때를 말하는 것이다.
“일부러 그렇게 못하는 척 연기 하시고! 원래 자기 실력을 숨기는 게 가장 어렵다고 하던데! 완전 짱이다!”
……이건 좀 아프네.
숨기기는커녕, 엄청 열심히 했던 거다.
‘솔직히 좀 억울한데.’
나는 소파 옆에 기대어진 목검을 원망 섞인 눈동자로 째려보았다.
이번에 새로 얻은 능력은 내게는 적용되지 않았다.
엄연히 미래시다.
내 시야에 보이는 미래를 보여주는 것.
혹시나 해서 거울을 마주 보며 검을 휘둘러봤지만, 쥐뿔도 발동하지 않았다.
……진짜로 서포터라도 되라는 건가.
이래서 평소에 말을 조심하는 건데.
화려하게 검을 휘두르는 내 모습을 상상하다가, 이내 한숨을 쉬며 흩어냈다.
음료수를 전부 마시고 쌩쌩해진 안지윤이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진짜 대단해요. 마치 미래라도 보고 온 것처럼 족집게 강의라니까요!”
미래에서 보고 온 것이 맞다.
“저 혹시 저한테 검술 시범 한 번만 보여주실 수 있으세요?”
초롱초롱한 눈동자로 나를 쳐다보는 안지윤에게서 눈을 돌렸다.
시범은 무슨.
대련이라도 하는 순간, 순식간에 들통나 버릴 게 뻔하다.
그렇게 온갖 폼을 다 잡아놓고 그럴 수는 없었다.
“그렇지만 계속 이렇게 혼자서 연습할 수는 없잖아요. 대련 상대가 필요할 것 같은데…… 안 그래요?”
맞는 말이다.
결국, 안지윤의 목적은 그녀가 말했던 누군가와 대련해서 이기는 것이니까.
‘나는 안 되고.’
안지윤은 각성자 중에서도 상당한 실력자다.
그런 사람의 성장을 위한 대련.
그녀와 비슷하거나 혹은 한 수 이상 높은 실력을 가진 사람이어야 할 텐데…….
“아.”
“왜요? 아! 직접 해주시려는 거구나!”
“아뇨. 직접은 아니고.”
안지윤의 모든 공격을 받아줄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실력자이자, 지금 당장 부를 수 있을 정도로 나와 가까운 사람.
나는 휴대전화를 꺼내 능숙한 손놀림으로 문자를 작성했다.
[혹시 지금 내가 있는 곳으로 와줄 수 있을까?]
문자를 보내고 삼 분 정도 지났을까, 답신이 도착했다.
[디금 가겟읍니다. 성댜님.]
* * *
“……이분이 제 대전 상대라고요?”
“이분은 누구십니까, 성자님.”
두 명의 여성이 서로를 마주 보았다.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의 안지윤과 평소처럼 무표정한 루비.
한 명은 올려다보고, 한 명은 내려다보는 광경이다.
‘체격 차이가 조금 많이 나네.’
체육관으로 찾아온 것은 루비였다.
신성 길드에서 대기 중일 줄 알았던 루비는 문자를 보낸 지 삼 분만에 체육관에 도착하는 묘기를 보여주었다.
안지윤이 내게 속삭였다.
“이런 말 하긴 그렇지만, 정말 이 사람이 맞아요?”
루비가 내게 속삭였다.
“성자님. 어제부터 계속 이분과 함께 있으셨던 겁니까?”
내 양쪽 귀에 두 명의 숨결이 흘러들어온다.
나는 내게 동시에 달라붙어 귓속말을 하고 있는 두 사람을 보며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얘네 지금 뭐 하는 거야?
본인들도 그 꼴이 우스웠는지, 금방 내게서 떨어졌다.
“흐, 흐흠! 그래서 오늘 저를 도와주신다고……?”
“제가 이분을 도와드리면 되는 겁니까. 성자님.”
“응. 부탁해도 될까? 그냥 간단한 대련 정도면 돼.”
“성자님의 말씀이시라면.”
앞으로의 대련은 내가 아니라, 루비가 맡아주게 될 것이다.
링 위에 오를 때까지, 안지윤은 내 쪽을 계속해서 힐끗거렸다.
마치, 이거 농담이죠?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링 위에 올라서고, 둘 다 무기를 들었다.
“루비야. 그걸로 괜찮겠어?”
“한 번도 사용해 본 적 없는 것이긴 합니다만. 괜찮을 것 같습니다, 성자님.”
언제나 철퇴를 들고 다니던 루비다.
저렇게 목검을 쥐고 있는 모습은 무언가 신선했다.
나야 루비가 무기를 들고 있는 모습을 자주 봤으니, 그리 어색하지 않았지만, 안지윤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안지윤의 키는 대략 170은 넘어 보이는 장신이다.
루비와 비교하자면 최소 10㎝ 이상 차이가 난다.
결투에서 체격 차이는 절대적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큰 영향을 끼친다.
자세를 잡고, 루비와 마주 보면서도 긴가민가한 표정의 안지윤.
이해한다.
처음 보는 사람이라면 저런 가녀린 소녀가 무기를 들고 있단 것 자체에 의문을 가질 테니까.
익숙하지 않은 듯, 여러 번 목검을 고쳐 잡던 루비가 고개를 끄덕였다.
“준비됐습니다.”
“……저도 준비됐어요.”
나는 링 밖에서 결투의 시작을 알리며 손을 들었다.
동시에.
치잉!
주저하면서도, 선공을 위해 움직이려던 안지윤의 검이 천장에 닿을 정도로 높게 떠올랐다.
순식간에 빈손이 된 안지윤이 허망한 표정으로 자신의 목에 들이 밀어진 목검을 보며 무릎 꿇었다.
검을 목 끝에 겨눈 상태로 루비가 내게 물었다.
“이런 느낌이면 되겠습니까. 성자님.”
“…….”
내 눈에 비친 루비의 움직임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했다.
마치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이, 내게는 단 한 순간의 미래도 보이지 않았다.
이것은 하나의 의미를 가진다.
‘도검의 달인’이 판단하건대, 방금 움직임이 그 순간에 펼쳐질 수많은 미래 중에서 가장 완벽하다는 뜻.
무릎 꿇은 안지윤이 눈을 끔벅거리며 루비를 올려다보았다.
아까 전과는 정반대의 상황이다.
안지윤의 입에서 갈라진 목소리가 튀어나온다.
“……당신은 저분의 제자인가요?”
“제자. 제 인생의 모토가 성자님인 만큼 틀린 말은 아닙니다.”
안지윤의 눈동자가 또르르 구르더니 내 쪽을 향했다.
마치 하늘에 있는 별을 보듯이, 경외가 가득 담긴 눈빛이 된 안지윤이 맹세하듯 말했다.
“저, 생각났어요.”
자신이 마주하고 있는 이 상황이 둘도 없을 기연인 것처럼, 혹시라도 도망가진 않을까 또박또박.
“호칭을 어떻게 해야 할까. 쭉 고민하고 있었거든요.”
안지윤이 마치 무인의 그것처럼 주먹을 감싸며 내게 꾸벅 고개 숙였다.
“스승님.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