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tion is flowing from the water purifier in my house RAW novel - Chapter 82
우리집 정수기에서 물약이 흐른다 83화
26. 보잘 것 없는(6)
위트 길드의 송도형.
연회 당시에도 한 번 만나기도 했고, 그 이후로 던전에서 다시 조우해 전진우와 내기를 하기도 했었지.
던전이라는 환경이 워낙 험해서 그런지 그곳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대부분 성격이 사납다.
하지만 예외도 있었다.
송도형이 이끄는 위트 길드.
내가 던전을 돌아다니던 때, 가장 대하기 편했던 사람들이었다.
그 이후로 따로 접점은 없었는데, 고맙게도 저쪽에서 날 기억해 주는 것 같았다.
……하긴.
그렇게 얼굴을 팔고 다녔는데 모르면 더 이상한 건가.
“뭐야, 누군데?”
내 뒤에 있던 소성환이 앞으로 나왔다.
“지인이에요. 아니, 그 전에 연회에도 왔던 사람인데 모릅니까?”
“……나야, 뭐. 연회에선 할 일이 많으니까…….”
눈을 돌리고 말을 흘린다.
연회에서 바쁘기는 무슨.
음식이 산처럼 쌓인 접시를 와구와구 씹어 먹고 있었으면서.
“소, 소성환 전투조장님!?”
누군가의 열띤 목소리가 들린다.
그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눈을 빛내고 있는 안경의 사내가 있었다.
……누구였더라?
“위, 위트 길드의 임상욱입니다! 만나 뵙게 되어서 정말 영광입니다!”
허리를 90도로 숙이고 두 손을 앞으로 내민다.
내가 아니라, 머리를 긁적이고 있는 소성환에게로.
“어…… 예. 반가워요.”
부산에 도착한 후, 여러 번 이런 상황이 있기는 했다.
루비와 나, 순둥이를 알아보고 꺅꺅대며 다가왔던 사람들이.
그런 와중에도 소성환은 단 한 번도 주목을 받지 못했었다.
-아, 경호원이시구나!
악의 없는 여고생의 말에 소성환이 또 바닥에 꿇어앉기는 했었지만, 그건 뒤로 하고.
“지, 진짜로 소성환 전투조장님이야…….”
마치 조각상이라도 훑어보듯이 임상욱의 얼굴이 소성환에게로 계속해서 가까워진다.
그런 그를 뒤에 있는 여성이 잡아당겼다.
“얘는 무슨. 나한테 맨날 예의니 뭐니 할 때는 언제고, 자기가 이러고 있네.”
“……이거 놔. 이런 기회가 또 언제 있을 거라 생각하는 거야.”
“어이쿠. 노려보는 거 봐라. 도형…… 아니, 길드장. 이놈 어떻게 해?”
“……미주 하나로도 벅찬데, 상욱이도 저럴 줄이야.”
“야, 송도형! 내가 어떤데!”
살짝 몸을 뒤로 뺀 소성환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
“뭐야, 내 팬이야?”
그러자 영광이라는 듯 눈을 빛내며 TMI를 시작한다.
“예! 그 유명한 소성환 전투조장님이잖아요! 평소 들고 다니는 슈퍼 울트라 자이언트 액스를 휘둘러, 눈앞의 적을 모조리 도륙 낸다는 황혼의 잔혹한 바이킹!”
“……윽.”
그를 잡고 있던 윤미주라는 여성이 그를 벌레 보듯 쳐다보며 다급하게 손을 놨다.
그리고는 품에서 세정제를 꺼내더니 손에 들이붓는다.
……세상에.
저런 말을 눈앞에서 하는 사람이 있을 줄이야. 그 대상이 내가 아님에도, 얼굴이 화끈해진다.
그것은 소성환도 마찬가지였는지 눈이 커졌다.
“……그렇지? 그치! 내가 소성환이야! 그 황혼의 전투 1조장, 잔혹한 바이킹 소성환이라고! 흐하하!”
아무래도 부끄러운 게 아니라 신나 하는 것 같았다.
“형, 봤어? 봤냐고. 이게 나다~ 이 말이야. 어? 나 절대로 인기 없다거나 그런 게 아니라니까?”
“아, 예…….”
관심이 많이 부족했던 거 같은데.
괜히 반성하게 된다.
저렇게 좋아하는데, 평소에 칭찬이라도 많이 해줄걸.
소성환이 내 등을 두드리는 걸 본 세 사람이 의문에 찬 표정을 짓는다.
“……형?”
“아. 인사해. 인사해. 우리 형이야.”
“……신성 길드장님이 전투조장님보다 형님이셨습니까?”
“……그거 진짜 질리지도 않고 하시네요.”
“하하하! 사실인 거 어떻게 해!”
칭찬한다는 말 취소다.
위트 길드 사람들의 얼굴이 살짝 굳는다.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대충 예상이 갔지만, 더 이상 설명하고 다니기도 지쳤기에 가볍게 무시했다.
“그러고 보니 인사가 늦었네요.”
연회에서 첫 만남 때가 떠오른다.
그때는 분명히 이렇게 소개했었지.
-무소속. 이서진입니다.
“신성 길드장, 이서진입니다.”
이제는 어엿한 직장이 있다, 이거야.
내 말을 들은 송도형 또한 그때가 떠오른 모양이다.
미소를 짓더니 다시 한번 손을 내밀면서 말했다.
“위트 길드장, 송도형입니다.”
맞잡은 두 손이 위아래로 흔들린다.
길드원들 분위기도 그렇고, 꽤나 마음에 드는 사람이란 말이야.
사람 자체가 순해 보이기도 하고.
“순둥이는 순둥이야!”
송도형의 다리를 잡아당긴 순둥이가 방실거리며 인사했다.
그것을 발견한 송도형이 마찬가지로 미소를 짓더니 몸을 낮춰 순둥이와 눈높이를 맞췄다.
“반갑습니다. 순둥 씨. 송도형입니다.”
“헛! 잠까안! 응! 고생이 많네!”
색다른 반응에 순둥이가 다급하게 두 손을 허리춤에 가져가며 고개를 치켜들었다.
아마도 드라마에서 본 행동이라도 따라 하는 모양이다.
“예. 덕분에 일이 잘 풀리게 되었습니다!”
“응응! 엣헴! 순둥이가 칭찬해 줄게!”
송도형은 순둥이의 그런 행동을 재치 있게 받아주었다.
어린아이임에도 태도는 내게 대하던 것과 별다를 바 없이 공손했다.
머리가 토닥여지고 있는 송도형이 내게 물었다.
“신성 길드장님께서는 이곳에 어쩐 일로 오셨나요?”
“편하게 부르세요. 벌써 몇 번이나 만났는데.”
“하하…… 그래도 될까요? 그럼 서진 씨로 부르겠습니다.”
나는 그에게 관광 겸 어떠한 목적 때문에 이곳에 찾아왔다고 했다.
“아…… 마켓은 처음이시라고요? 그렇다면 제가 안내를 해드려도 될까요?”
“정말요?”
“예. 저는 벌써 몇 번이고 와 본 곳이니까요.”
“길드장님. 탁월한 선택이십니다!”
소성환의 옆에 딱 달라붙어 있던 임성욱이 그 말을 반겼다.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 소성환의 입이 귀에 걸려 있는 것 같았다.
“이거 먹어봐요! 진짜 맛있으니까! 제가 마켓 올 때마다 먹는 거예요!”
“……!”
윤미주라는 사람도 루비가 귀여워 죽겠단 표정으로 먹을 걸 이것저것 조공하는 중이다.
뭐, 괜찮으려나.
“그럼 부탁드려도 될까요?”
“영광입니다.”
마켓은 꽤나 다양한 물건들을 팔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야 신기하게 본다지만, 나 같은 경우에는 당장 내 몸에 차고 있는 시계부터 팀장님이 보여줬던 아티팩트들.
이미 저 정도의 물건들로 놀라기에는 내 기준치가 너무 높아져 있었다.
그래도 꽤나 신기한 것은 있었다.
박물관이라고 해야 할까.
마물들의 사체를 이용해 생전 모습을 재현해 놓은 곳이 있었는데, 그 퀄리티가 매우 대단했다.
일반인들에게도 공개되는 곳인지라, 마켓에서도 가장 인기가 많은 곳 중 하나라 한다.
“누군지는 몰라도 더럽게 못 잘랐네. 분명히 실력 없는 놈이 죽였을 거야, 이거.”
“이런 식의 사살은 선호하지 않는 편입니다. 성자님을 보다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서는 한 방에 두개골의 파괴를 노리는 것이 더욱 이상적입니다.”
“…….”
웬일로 루비와 소성환이 진지하게 대화하나 했더니 역시 일선에서 뛰는 각성자라서 그런지 감상이 남달랐다.
“벌써 경매 시간이네.”
우리는 구경을 그만두고 마켓의 안쪽으로 들어갔다.
마찬가지로 경매에 참가하기 위한 사람들이 주변에 보인다.
이 사람들도 소식을 듣고 찾아온 건가.
‘마석.’
오늘 내가 낙찰해야 할 물건이다.
팀장님 말로는 그 가치를 알아볼 사람은 별로 없다곤 했지만, 이렇게나 사람이 많으면 경쟁자도 꽤 되지 않을까.
참가 희망을 밝힌 사람들에게 관계자가 따로 자리를 정해준 후다.
우리의 자리는 2층.
입구로 들어가려 하는데 옆에 있던 송도형이 멈춰 섰다.
“안 들어가세요?”
“저는 경매에 참가하지 않거든요.”
“그래요? 이왕 온 김에 구경이라도 하시지.”
“……그게. 사정이 있어서 참가 자체를 하지 못합니다.”
“그러면 어쩔 수 없죠.”
송도형이 내게 빙긋 웃으며 말했다.
“원하시는 물건을 손에 넣기를 기원하겠습니다. 신성…… 아니, 서진 씨.”
“오늘 안내해 주신 거 정말 고마웠어요.”
“별말씀을요. 오히려 제가 드려야 할 말 같네요.”
우리는 경매장 안쪽으로 들어가 자리에 착석했다.
주변을 둘러보는데 사람들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미리 이곳에 오기 전 관계자가 건네준 가면을 쓴 상태다.
왜 굳이 이런 걸 써야 하나 싶었는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맞는 것 같기도 하다.
리치 길드.
그들이 주최하는 자본가들의 경매.
대한민국에서 가장 돈을 중요시한다는 곳이다.
경매에서 그것을 사려는 사람이 누구인가는 상관없다는 의미로 이 가면을 쓰는 거겠지.
‘막말로 수호 길드장 같은 사람이 손을 들면 다른 사람이 포기할지도 모르니까.’
가면은 의외로 평범했다.
분위기는 무슨 불법적으로 행해지는 암시장 같은데 정작 얼굴에 쓰고 있는 건 귀여운 동물 가면이니까.
소성환은 무슨 곰 가면을 쓰고 있었고, 순둥이는 도마뱀 가면을 쓰고 있었다.
용도 도마뱀과 비슷한 거니까, 어찌 보면 맞는 가면을 쓴 건가…….
루비는 햄스터 가면.
평소에 보던 작고 귀여운 모습과 매우 어울렸다.
“신사, 숙녀. 흘러넘치는 돈을 주체하지 못하시는 여러분들! 저희 리치 길드에서 주최하는 경매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이윽고 경매가 시작되었다.
처음 나온 것은 어떤 마물의 전리품이었다.
“4층 던전에서 나온 정예 마물, 드레이크입니다!”
비록 보스급은 아니지만, 드레이크의 경우 그 부산물의 인기는 대단하다.
일단 가죽 자체가 매우 질겨 방어구로 만들기도 용했으며, 이빨, 발톱 같은 것들은 몸에 치장하기 위한 장식품으로 만들어지곤 했다.
역시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손에 들려져 있던 번호 팻말을 들어 올린다.
소성환도 관심 있는 듯 내 어깨를 툭툭 쳤다.
“오. 형. 우리도 저거 살까?”
“어디다 쓰시려고요?”
“그냥. 맨몸으로 망토처럼 두르고 다니면 조금 폼 나지 않을까?”
코웃음 치고도 남을 말이지만, 소성환의 근육질 몸매를 확인한 바가 있던 나는 속으로 꽤나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도…….
“저런 거 쓰고 다니면 해연 씨가 조장님을 걷어차지 않을까요.”
“……그렇지? 사실 나도 마음에 안 들었어.”
하이라이트라도 되는 걸까.
우리가 찾고 있는 물건은 도통 나오지 않았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이번에 소개해드릴 것은 이 지구상에서 단 한 번 등장했던 보스급 마물의 전리품입니다!”
사회자는 곧바로 천으로 가려져 있던 물건을 공개했다.
윤기 나는 털.
날카로운 이빨과 손톱.
아까 마켓에서 보았던 것처럼 생전 모습을 그대로 복원한 마물의 모습이 사람들의 앞에 드러났다.
저 마물을 본 나는 단번에 그 이름을 알 것 같았다.
“여러분께 공개합니다! 보스급 마물, 웨어 울프입니다!”
“……뭐야?”
“저런 마물이 있었나?”
사람들이 웅성거린다.
솔직히 겉모습 자체는 익숙했지만, 나도 처음 보는 형태의 마물이다.
소성환에게 묻자 그가 대답했다.
“10년 전인가? 중국에서 단 한 번 나온 적이 있었던 것 같아.”
기본적으로 던전에서 보스가 나타나는 것은 단 한 번뿐이다.
하지만 균열에 패턴이 있듯이 던전에도 패턴이 있다.
매번 새로운 마물이 나오지는 않는다.
다른 던전에서 이전에 보았던 보스급의 마물을 볼 수도 있고, 그보다 높은 층에서 정예 마물로서 나타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저런 식으로 단 한 번 나오고 그 후로 발견되지 않는 희귀한 마물들이 있다고 한다.
그것이 저 웨어울프라는 마물.
세상에 두 번째로 나타난 마물의 전리품.
이곳에 있는 모두가 탐낼 만했다.
‘……가치를 모르기는 무슨.’
경매장에 있는 사람들이 재빠르게 제 번호 팻말을 들기 시작했다.
가격이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진다.
“저거 노리는 거 아니야? 형은 왜 안 들어?”
웨어울프가 목적인 것은 맞다.
박명훈이 구해다 달라던 것도 저것이고.
“62번 고객님.”
“57번 고객님.”
“20번 고객님.”
번호표를 한 번 들 때마다 억 단위로 가격이 높아져 간다.
저들이 노리는 것은 저 희귀한 마물의 신체 부위다.
하지만 내가 노리는 것은 그 안에 숨겨져 있는 마석.
웨어울프의 가죽과 다른 신체 부위의 낙찰이 끝이 났다.
마물의 희소성 때문인지 보스급 마물이라고 해도 지나치게 높은 액수가 책정되었다.
‘62번.’
내 좌측에 오랑우탄 가면을 쓴 사람이다. 그는 낙찰이 퍽 만족스러웠는지 다리를 꼬며 뒤로 몸을 젖혔다.
‘저 사람도 이 마물의 전리품을 노리고 왔나 본데.’
“마지막으로 웨어울프의 마석에 관한 경매를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방금 봤던 위엄 있는 웨어울프는 사라지고, 구슬 모양의 마석 하나만이 유리 상자 안에 진열되어 있었다.
그토록 팻말을 들어대던 사람들은 이내 관심이 사라진 듯 움직이지 않았다.
‘역시…….’
가치를 알아볼 사람이 없다고 했나.
전부 다 마물의 신체에만 신경 써서인지 마석에는 관심이 없었다.
경매장에 들어오고, 처음으로 팻말을 들었다.
“65번 고객님.”
경매 시작가는 1억.
희소한 마물의 마석이라고는 하지만, 결국은 마석이다.
동력원 혹은 물약의 재료로 사용할 것이라면, 다른 마석을 사용하는 것이 더 싸게 먹힌다.
몇 번 정도 간을 보던 사람들 또한 서서히 떨어져 나갔다.
6억 5천이라.
못 먹는 감 찌르기라도 하려는 건지, 가격을 올려대던 사람 때문에 쓸데없이 높아졌다.
“6억 5천입니다. 7억, 7억 없으십니까? 셋을 셈과 동시에 경매 마감하겠습니다. 셋, 둘…….”
낙찰됐구나.
그런 생각을 하며 팻말을 내리려고 할 때.
“62번 고객님!”
아까 보았던 그 사람이 내 쪽을 보며 팻말을 들고 있었다.
나도 반사적으로 팻말을 들었다.
“65번 고객님.”
“62번 고객님.”
“65번 고객님.”
수그러들던 분위기가 단숨에 달아올랐다.
62번과 65번.
둘만의 미칠 듯한 경쟁이 시작되었다.
어느새 경매가는 10억을 넘어섰다.
이제는 한 번 팻말을 들 때마다 억 단위로 금액이 올라간다.
그럼에도 우리 둘은 멈추지 않았다.
“혀, 형. 이거 이쯤에서 그만둬야 하는 거 아니야?”
소성환이 벌벌 떨며 내 어깨를 잡는다.
다른 사람들의 반응도 그러했다.
고작 마석 하나를 가지고 10억을 넘어선다?
정신 나간 놈이 아니고서야 낙찰할 리가 없다.
하지만 지금 이곳에는 정신 나간 놈이 두 명이나 있었다.
“46억 없으십니까? 셋과 함께…….”
솔직히.
낙찰을 하지 않아도 상관없다.
박명훈의 부탁이라고는 하지만, 어차피 이것으로 만들어질 아티팩트는 내 것이 될 테니까.
그 또한 너무 큰 액수가 된다면 낙찰받지 못한다고 해도 괜찮다는 말을 마지막에 했었고.
결국 선택해야 하는 건 난데…….
‘저 사람이 박명훈 팀장님이 말한 사람인가?’
그놈한테만은 뺏기고 싶지 않다.
얼마가 올라가든 여유롭게 팻말을 들어 올리는 62번.
그 모습을 보자니 괜히 오기가 생겼다.
힐끗-
가면으로 드러난 두 눈동자가 나와 마주친다.
순간이지만 그 눈이 호선을 그리는 것을 본 나는 곧바로 팻말을 들었다.
그러자 그쪽에서도 곧바로 반응한다.
“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야.”
사회자가 말하는 금액은 듣지도 않고 계속해서 손을 들었다.
결국 경매가 중단되었다.
참가했던 사람들은 밖으로 나가고, 62번과 나는 경매가 이루어지던 무대 위로 올라섰다.
“상품의 가격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게 되고, 상호 간의 구매 의사가 완고할 경우 경매품을 제출한 분의 선택에 따라 낙찰자가 정해지게 됩니다.”
정부에서 정한 법인 걸까.
아니면, 마켓만의 규칙인 걸까.
음지가 아닌, 양지의 시장이라서 그런가.
이미 100억을 넘어 선 상황이었기에 나로서도 조금은 부담감을 느끼던 차였다.
‘고작’ 마석 하나 가지고 그 정도 가격이 책정될 수는 없는 것이니까.
옆에서 62번이 나를 노려보는 시선이 느껴진다.
너는 뭔데, 저런 마석 하나에 이렇게까지 하냐는 의미가 쏙쏙 전해졌다.
오랑우탄의 날카로운 눈빛을 무시하며 앞을 보았다.
이 웨어울프의 마석을 경매에 내놓았던 사람도 지금 이곳에 있는 걸까.
잠시 기다리자, 저 멀리서 가면을 쓴 누군가가 이곳에 걸어오고 있었다.
그가 도착하자마자 옆에 있던 62번이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고 그에게 내밀었다.
‘저놈 봐라.’
백지 수표.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자신을 고르라는 어필이었다.
나 또한 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당연히 나는 백지 수표를 낼만큼 돈이 썩어나지 않는다.
물약 판매로 돈이 많다고 해봤자, 그것의 한계는 존재하니까.
―길드장님께서는 자신의 위치를 잊으실 때가 너무 많습니다.
웃으며 그런 말을 하던 신백준이 떠올랐다.
내가 꺼낸 것 또한 백지 수표.
이서진으로서가 아닌, 대형 길드, 신성의 수장으로서의 재력은 그야말로 상상 이상이었다.
“크윽…….”
옆에서 이를 악무는 소리가 들린다.
이제 선택은 눈앞에 있는 사람에 의해 정해진다.
그렇게 앞을 보았을 때, 무언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가면을 쓰고 있는데도, 내 직감은 이 사람이 내가 알고 있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이 마석의 판매를 결정지을 자.
문어 가면을 쓰고 있는 그의 두 눈동자가 나를 보고 있었다.
그가 손을 내민 것은 내 쪽이었다.
익숙하게 휘어지는 허리.
공손하게 내밀어지는 손.
어쩐지 어떠한 멘트가 들리는 것 같았다.
‘위트 길드장, 송도형입니다.’
이서진의 인생 철학 제3장 6페이지.
[역시 인맥은 최고다.]‘신성 길드장, 이서진입니다.’
나는 그 손을 마주 잡고 흔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