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tion is flowing from the water purifier in my house RAW novel - Chapter 83
우리집 정수기에서 물약이 흐른다 84화
26. 보잘 것 없는(7)
절차에 따라 경매 물품의 소유권이 넘어오기 위해서는 시간이 조금 필요하다고 한다.
그 시간 동안 무대 뒤에서는 두 명의 남성이 어색하게 서 있을 뿐이었다.
나는 주변을 확인하고 입을 열려다가 말았다.
‘서로 아는 사이란 걸 알려봤자 좋을 것도 없을 테니까.’
그 우려가 맞았는지, 등을 돌려 밖으로 나가던 62번이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어깨가 씩씩거리는 것이 무언가 화가 나 있는 것 같다.
걸음걸이도 조금 어색해 보였다.
맞지 않은 옷을 입고 있듯이 쩔뚝이고 있는데, 혹시 몸이 불편한가?
나란히 서 있는 우리 둘을 휙휙 둘러보던 62번이 입을 열었다.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
가면 너머에서 나는 목소리는 평범하지 않았다.
변조 프로그램이라도 사용한 듯한 기계음이 62번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어째서 내가 아니라, 저 사람한테!”
완성되지 않은 말들이었지만, 대충 이해는 깠다.
왜 자기가 아니라, 나한테 이걸 파냐는 것이겠지.
나는 힐끔 문어 가면의 사나이, 송도형을 쳐다보았다.
대답하지 않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그는 답을 해주었다.
“보다, 더 적합한 곳에 활용하실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랬습니다.”
“이해 안 가. 뭘 보고 그런 말을 하는 거야? 내가 저 사람보다 몇만 배는 더 가치 있게 사용할 수 있어.”
나를 한번 노려보고는 품에서 한 장의 백지 수표를 더 꺼낸다.
……이야. 돈도 많으신가 보네.
그럼에도 송도형은 고개를 저었다.
마음을 바꿀 생각은 없다는 것이다.
제 손에 있는 수표를 구기면서 62번이 다시 말했다.
“추가로 제안할게. 당신에게 어울리는 특별한 장비를 하나 제작해 줄게.”
“장비?”
“스미스. 들어보지 않았다고는 못 할 거야.”
Smith.
이전에 안지윤이 자랑했던 검 또한 저 사람이 만든 장비다.
당장 내가 신고 있는 민첩을 소폭 올려주는 신발도 그러했고.
평범한 장비들과는 다르게 그가 만든 물건에는 특별한 기능이 붙는다.
마치 아티팩트처럼.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제작 의뢰를 맡기길 원하지만, 그 방법조차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누구인지 모르니까.’
문득 든 의문에 나는 목소리 톤을 한 단계 낮추고는 그에게 물었다.
“그렇다면 당신이 그 스미스라는 말인가요?”
제작해 주겠다.
그렇게 말했으니까. 그것밖에는 없으리라.
“……지인이야. 나랑 엄청 친하니까 제작을 부탁하는 것쯤은 누워서 껌 먹기라고!”
누워서 껌을 왜 먹는단 거지.
기계음이라서 떨림은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가 당황했단 사실은 주춤하는 몸짓으로 알 수 있었다.
‘박명훈 팀장님이 말씀하셨던 게 이 사람이구나.’
말은 저렇게 해도 본인이겠지.
한국에서 마석의 숨겨진 활용법을 알고 있는 두 번째 인물.
왜 이런 마석 하나에 그토록 따라붙었는지 이제야 이해가 갔다.
스미스의 특제 장비라…….
‘조건이 좀 좋은데.’
솔직히 말해서 내 입장이라면 조금 혹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저도 추가로 제안할게요. 신성 길드에서 특별 생산한다는 ‘성수’. 그것의 지속적인 공급을 약속하죠.”
“……당신이 그걸 어떻게 하는데?”
“지인이에요. 저랑 엄청 친해서 그런 걸 부탁하는 것쯤은 누워서 떡 먹기죠.”
62번을 보며 씨익 웃었다.
물론 가면에 가려서 그 미소는 보이지 않았겠지만.
우리 둘의 유치한 행동을 지켜보던 송도형이 담담한 어투로 말했다.
“어떤 제안을 한다고 해도 이미 결정한 것을 무를 생각은 없습니다.”
“…….”
62번은 아무 말 없이 주먹을 꽉 쥐었다.
몸이 부들부들 떨리더니, 이내 발로 바닥을 신경질적으로 내리친다.
“……짜증 나. 짜증 나. 짜증 나!”
한 번 내리칠 때마다 이상한 쇳소리 같은 게 난다.
결국, 62번은 다시 밖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출구 앞에서 잠시 멈춰선 62번이 뒤를 돌고는 내게 삿대질하며 외쳤다.
“너, 기억하고 있을 테니까. 각오해!”
62번. 아니, 스미스가 사라진 것을 확인한 송도형이 어색하게 웃었다.
“……되게 특이한 분이시네요.”
그러게 말이다.
소문의 스미스가 어떤 사람일까 궁금했는데.
나는 당연히 과묵하고 수염이 엄청 난 근육질 남성을 생각했지.
저렇게 어린 애 같은 행동을 보일 줄은 몰랐다.
“아무튼, 원하시는 물건을 손에 넣으신 걸 축하드립니다.”
경매장에 들어오기 전, 송도형이 내게 했던 말이다.
“덕분에 잘 받아갑니다. 그런데 이거 이래도 되는 겁니까?”
“안 될 건 뭐 있겠어요. 거기다가…… 저는 정말로 이서진 씨가 더 가치 있는 곳에 사용해주실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나저나 위트 길드가 그 웨어울프의 주인이었구나.
“하하…… 숨기려 한 건 아니었습니다. 아무래도 경매에 물품을 등록한 사람에게는 비밀 엄수 조약이 있어서요.”
“당연한 소리인데요, 뭘.”
뻘쭘한 웃음을 지은 송도형이 웨어울프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이번에 저희가 공략하게 된 3층 던전의 보스에게서 이상 현상이 일어났거든요.”
“이상 현상?”
“예. 원래는 웨어울프가 아니라, 거대한 은빛 늑대였는데…….”
난데없이 보스가 진화라도 했다는 건가?
던전에 관해서 그렇게 잘 아는 건 아니지만, 저런 경우는 없다고 들었다.
‘아니, 없는 건 아닌가.’
비슷하지만, 공략의 난이도가 급상승한 경우가 있기는 했다.
한 때, 순둥이의 부화를 위해서 찾아갔던 4층 던전.
그곳에서 보았던 보스의 난이도는 분명히 4층 그 이상이었으니까.
“그보다 언제 적으실 거예요?”
“예?”
“이거요.”
나는 아직도 내 손에 들려져 있는 백지 수표를 들이 밀었다
그는 그것을 받고는 고민하지 않고 숫자를 썼다.
솔직히 얼마를 적든지 크게 상관은 없었다.
……아니, 그래도 조금은 봐주었으면 한다.
빙긋 웃은 송도형이 내 쪽으로 수표를 보여줬다.
적혀 있는 것은 0.
단 하나.
아무것도 받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자, 설명하듯이 내게 말한다.
“이서진 씨에게는 여러모로 도움받은 게 많으니까. 그건 선물로 드리겠습니다.”
“예?”
내가 도움을 준 게 많다고?
……딱히 생각이 안 나는데.
있어 봤자 전진우의 콧대를 몇 번 꺾은 것밖에는 없다.
“세이크리드 스트로베리. 저 같은 사람은 감히 따라 할 수도 없는 대단한 행동이었어요. 분명히 이번에도 그 마석을 얻으시고자 하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으시겠죠.”
“…….”
마치 성인聖人이라도 보는 눈빛으로 나를 보고 있다.
‘……별로 의미 같은 건 없는데?’
단순히 부탁을 받았고, 더 나아가서는 나한테 도움이 될 만한 아티팩트를 위해서 얻는 것뿐이다.
‘아무리 그래도 공짜로 얻을 수는 없지.’
경매품이 판매되면 주최 측에서 일정 금액을 수수료로 받아갈 테니까.
공짜는 곤란했다.
‘아까 중단되었던 금액이 105억.’
62번 또한 거리낌 없이 따라붙었으니, 이 정도로 끝난다면 최저 금액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내 의견을 전하자, 할 수 없다는 듯 송도형이 고개를 끄덕인다.
“거기다 제가 아까 말했던 건 그대로 받아주세요.”
“예? 무슨…….”
“성수.”
정확히는 정수기에서 나온 물약이지만, 황혼 길드에 납품해, 특정 인물들에게 판매되는 물건이다.
아마도 송도형은 그 대상에 포함되어 있지 않겠지.
“그렇지만 그런 귀한 걸…….”
“저도 선물이니까, 사양은 하지 말아주세요. 아, 돈은 확실히 받을 거니까요.”
그렇게 말하며 웃자, 송도형 또한 마주 웃는다.
가면을 벗은 우리는 마지막으로 인사했다.
“그럼 또 다음에 뵙겠습니다.”
곧이어 관계자가 고급스러운 함 하나를 들고 왔다.
안을 확인하자, 아까 보았던 그 마석이 그대로 들어 있었다.
그것을 보던 나는 잠시 남들의 눈을 피해 손을 꼬물거렸다.
함을 들고 밖으로 나왔다.
밖으로 나오자 소성환과 순둥이를 안고 있는 루비가 기다리고 있었다.
“오…… 그게 아까 보았던 그거야?”
“예. 이 안에 고이 들어 있어요.”
“구경해도 되지?”
“그건…….”
퍼엉!
내가 무언가를 말하려 할 때, 마켓의 근처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위잉! 위잉!
갑작스러운 상황에 미친 듯이 경보음이 울리며 순식간에 사람들이 혼란에 빠졌다.
“뭐야?”
‘테러?’
그것이 끝이 아니라는 듯, 이곳저곳에서 연막이 피어올랐다.
시야가 보이지 않는다.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소동은 금방 가라앉을 것이다.
이곳은 각 대형 길드에서 특별하게 관리하고 있는 리치 길드의 마켓.
누군지는 몰라도 아주 간 큰 짓을 하고 있는 것이다.
“성자님! 제게서 떨어지시면 안 됩니다!”
“뭐야, 어떻게 된 일인데?”
소성환과 루비의 말소리가 내 바로 옆에서 들렸다.
우리의 주변으로 무수한 발소리가 들린다.
대부분이 어딘가로 도망치기 위한 움직임이었다.
하나같이 불규칙적인 걸음 소리.
탁탁-
퍽-
누군가 내 어깨에 부딪힌다.
이런 상황에서는 별 이상할 것 없는 행동이었지만…….
“커헉!”
내가 반응하기도 전에 내 옆에서 손이 쭉 뻗어 나왔다.
경이로운 그 움직임에 연막이 조금 걷히며 잠시 시야가 드러났다.
루비가 검은 복면에 고글을 착용하고 있는 놈의 머리를 쥐어 잡고는 단숨에 바닥으로 꽂아버리고 있었다.
“…….”
“어디 성자님의 몸에 위해를 가하는 겁니까. 이 무례한 것!”
시야를 확인하기 위한 용도로 보이는 고글과 얼굴을 가리기 위한 복면.
확실히 이 상황에서 가장 의심스러운 복장이긴 했지만, 저렇게 곧장 내리꽂을 줄이야…….
“엉? 이 새끼들은 뭐야?”
“커헉!”
소성환 또한 같은 복장의 사람을 하나 붙잡은 상태였다.
……뭐 하는 놈들이지?
마켓을 나오자마자 우리를 습격했다.
추측할 수 있는 것은 하나. 아마도 노리는 건 이 마석인가.
또다시 연막 속에서 복면의 무리들이 튀어나왔다.
이번엔 한 둘이 아니었다.
“성자님!”
루비와 소성환 쪽에도 두 명의 습격자가 붙은 상황.
나는 그보다 더했다.
네 명이 동시에 내게로 달려들었다.
‘왜 가장 약한 나한테 이렇게 붙는 거야……?’
불만을 할 여유도 없었다.
나는 곧바로 정면을 향해 아이기스의 방패를 소환했다.
그러자 놈들은 앞에서 달려오던 동료의 등을 밟고는 곧장 방패 위를 향해 도약했다.
‘무슨…….’
어중이떠중이가 아니다.
혼란스러운 상황에서도 완벽한 팀플레이를 선보일 수 있을 정도로 훈련받은 놈들이다.
안쪽으로 파고든 습격자 중 한 명이 내게 날카로운 단검을 들이밀었고.
팅!
무언가에 막혀 튕겨 나갔다.
내게 칼을 내질렀던 사람의 몸이 허공으로 떠오른다.
그는 두 손으로 제 목을 움켜잡으며 고통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커헉, 케헥!”
누가 한 것인지는 명확했다.
‘순둥아. 안 돼.’
어느새 내 다리를 끌어안고 있는 순둥이의 짙고 검은 눈동자에 이채가 서려 있었다.
나는 앞에 있는 습격자를 무시하고, 재빨리 순둥이의 몸을 안았다.
내 가슴에 얼굴을 묻은 순둥이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칭얼거렸다.
“힝…… 그렇지만, 아빠한테 이상한 짓을 하려 했는걸!”
그 사이에 또 하나의 복면남이 순둥이를 안느라 바닥에 떨어뜨린 함을 낚아챘고.
휙!
옆에서 휘둘러진 철퇴에 그 몸이 저편으로 날아갔다.
“감히, 감히! 무슨 짓을 하는 겁니까!!”
분노 가득 한 루비의 목소리가 허공에 울려 퍼졌다.
그녀를 노리던 두 습격자는 이미 바닥에 엎어진 상태였다.
“하. X발. 돌게 만드네.”
마찬가지로 제압에 성공한 소성환 또한 신경질적으로 욕설을 내뱉었다.
“아, 안 되겠다. 형. 나 저 새끼들 좀 잡고 와야겠는데.”
저 너머로 도주 중인 일단의 무리들이 보였다.
가운데에 있는 사람은 내게서 빼앗아간 함을 들고 있었다.
나는 곧장 달려가려는 소성환에게 재빨리 가방 하나를 던졌다.
“조장, 받아요!”
“어, 엉?”
얼떨결에 그걸 받은 소성환은 상대를 놓칠까 재빨리 그들을 향해 달려갔다.
한 명만 조지겠다는 듯, 함을 들고 있는 가장 날렵한 움직임의 대장 같은 놈만을 쫓고 있다.
“성자님……!”
루비는 이도 저도 하지 못하고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나만을 바라보았다.
내게 위협을 가한 저놈들을 족치고는 싶은데, 곁에서 벗어났다가는 위험할 거라 생각하는 거겠지.
“괜찮으십니까!”
“응. 걱정 안 해도 돼.”
오히려 순둥이 쪽이 걱정이었다.
아까 보았던 그 모습은 분명히 평소와는 달랐으니까.
“저 마귀들이 훔쳐 간 물건. 성자님에게 있어서 소중한 물건이지 않습니까!”
“아, 그거?”
나는 두 손을 모아서 그림자를 만들었다.
그곳에서 무언가가 꼬물꼬물 튀어나온다.
―쿠앙!
루비에게도 미리 소개해 준 적 있는 꼬물이다.
정확히는 꼬물이 3호.
꼬물이 3호가 꾸엑거리더니 동그란 구슬을 뱉어냈다.
경매장에서 구매한 그 웨어울프의 마석이었다.
내가 바보도 아니고, 그걸 그대로 함에 넣어둘 리가 없지.
물론 만약을 대비해서 함 속에 마석을 넣어두기는 했다.
크기가 완전히 똑같은, 꼬물이 속에 넣어뒀던 마석 하나를.
정확히는 꼬물이가 아침밥으로 먹었던 것이다.
‘소성환은…….’
도주 중인 적을 쫓아가는 것은 위험한 행동이다.
하지만 딱히 소성환이 걱정되지는 않았다.
그가 얼마나 강한지는 잘 알고 있으니까.
“다들 움직여!”
“안전부터 확보해!”
주변을 보자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서 각성자들이 재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바닥에 엎어져 있는 놈들을 살폈다.
분명히 죽이지 않았는데도, 이미 숨이 끊어져 있었다.
의식을 잃기 직전, 무슨 짓을 한 것이리라.
가령 어금니 속에 숨겨 둔 무언가를 씹었다던가.
“저건…….”
저 멀리 하늘 높이 피어오르는 연기가 보였다.
단순히 화재나 연막탄으로 인한 것이 아니다.
내 눈에 보이는 것은 푸른색의 연기였으니까.
콘택트렌즈의 업그레이드 완료 후 보이게 된 마나의 흐름.
저곳에서 엄청난 양의 마나가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이번 일의 연장선인 걸까.
나는 루비를 보며 말했다.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