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tion is flowing from the water purifier in my house RAW novel - Chapter 84
우리집 정수기에서 물약이 흐른다 85화
26. 보잘 것 없는(8)
“아오. X바. 다시 운동을 빡세게 하던가 해야지, 원…….”
툴툴대며 제 이마에 맺힌 땀을 훔쳐낸 소성환이 막다른 길목에 서 있는 습격범을 응시했고.
도주를 그만두고 제자리에 멈춰선 복면남이 산만한 덩치의 사내를 주시했다.
사실 각성자에게 있어서 이런 담쯤은 문제없이 넘을 수 있지만…….
“하. 언제까지 X신처럼 도망만 칠 거냐?”
그 소리를 듣자니 계획에 차질이 생긴 것과는 별개로 짜증이 솟구쳤다.
자신을 쫓아오는 인물을 노려보며 복면의 사내가 중얼거렸다.
“머저리가. 질기게도 따라오는군.”
“뭐라는 거야? 여기 한국이니까, 한국말로 좀 쳐 말하지?”
그렇게 말하면서 소성환은 상황 파악에 들어갔다.
‘중국인인가. 리치 길드의 마켓에서 테러를 벌이는 간 큰 놈이 누군가 했더니.’
어디 소속일까.
온몸에 검은 쫄쫄이를 입고 있으니, 알 수가 있어야지, 원.
“무시하냐?”
한숨을 쉬는 소성환에게로 복면의 사내가 비웃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주 능숙한 한국어였다.
“아. 이거 실례했군. 웬 벌레가 말까지 하길래, 신기해서 구경하고 있었지.”
“오. 그래? 나도 웬 똥파리가 멋모르고 인간님 성질을 건들고 튀길래 신기해서 따라와 봤지.”
그러면서 뒤통수를 긁적거린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복면의 사내, 왕뢰화가 눈을 좁혔다.
‘……벌레는 아니야.’
길드에서 명을 받고 미친 과학자의 의뢰를 완수하기 위해 마켓 근처에 잠복한 허핑 길드의 전투 4조장 왕뢰화.
보통의 길드로 따지면 4조는 그 길드 내에서 네 번째 서열에 위치해 있는 전투조다.
중요한 임무를 고작 네 번째 서열에게 맡기는 건 이상하지 않으냐.
그런 말이 나올 수도 있지만, 그가 속한 길드의 전투조 구성은 전투력이 아닌 개인의 특기에 따라 배치된다.
왕뢰화가 소속되어 있는 전투 4조.
전투력과 더불어 보다 신속함과 은밀함을 요구한다.
잠입 및 테러를 전문적으로 담당하고 있는 길드의 그림자들.
그것이 왕뢰화가 이끌고 있는 4조였다.
그렇기에 그는 지금 상황이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어떻게 내 속도를 따라온 거지?’
무엇보다 기동성을 중요시하는 4조다.
그리고 왕뢰화는 그런 곳의 조장을 맡고 있는 길드의 핵심 인물.
그런 그가 진심으로 따돌리고자 했지만, 이 방정맞아 보이는 사내는 떨어지지 않고 질기도록 쫓아왔다.
“하…… 몇 번이고 먹어도 익숙하지가 않단 말이야. 무슨 색이 오줌물이라도 먹는 거 같잖아.”
그뿐만이 아니라, 습격 당시에 보았던 그 모습들.
자신의 조원들이 별다른 반항조차 하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제압당했다.
절대로 그렇게 쉽게 당할 수준의 부하들이 아니었다.
‘그 이상한 땅꼬마도 그렇고…….’
한국에 저런 각성자가 있었던가.
곰곰이 고민하던 왕뢰화는 이내 어떤 인물을 떠올렸다.
“그래. 생각났다. 거대한 도끼를 주 무기로 사용한다는.”
“오. 너도 아냐? 잔혹한…….”
“그래. 잔혹한 고릴라. 그게 네놈이었군.”
마치 통나무라도 되듯이 제 몸뚱이보다 큰 도끼를 휘둘러 마물을 도륙 낸다는 각성자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확실히. 외견이 고릴라와 흡사하군. 그런 이명이 붙는 것도 이해가 가.”
“……고릴라가 아니라 바이킹이다.”
그렇게 말한 왕뢰화가 허리춤에서 두 개의 단검을 꺼내 역수로 쥐었다.
“그런 무식한 걸 들고 다니는 놈이 내게 구애하는 건 그닥 취향이 아니다만…….”
소성환의 주위를 힐끗 쳐다본 왕뢰화가 제 손에서 단검을 빙글 돌렸다.
“아무래도 평상시에도 그런 걸 들고 다닐 수 있을 리가 없으니까.”
“내가 한국말로 쳐 말하라고 했지?”
미간을 구긴 소성환이 제 손에 들린 것을 보았다.
제 형이 이놈을 쫓기 전 자신에게 던져주었던 배낭.
‘이게 뭐길래…….’
그래도 언제나 특이한 행동을 하는 이서진이다.
이 가방에도 무언가 의미가 있겠지.
그것을 뒤적거리는 모습을 보며 왕뢰화가 복면 속에서 입꼬리를 올렸다.
저렇게 아담한 사이즈의 가방이라.
단검이라도 꺼내려는 것일까.
원래대로라면 틈조차 주지 않고 공격하는 것이 맞겠지만, 타 국가의 고위 각성자의 실력을 시험하고 싶었던 그는 얌전히 그 행동을 기다려 주기로 했다.
‘그래 봤자, 상대조차 되지 않겠지만.’
중국의 수많은 인구 중에서 이만한 위치에 올라온 것이 왕뢰화, 그였다.
실력에 대한 자부심만큼은 누구보다 강했다.
기동성을 중시한다뿐이지, 절대로 전투력이 낮은 것이 아니었으니까.
‘그 자식들과 비교하자면 아주 조금은 밀릴 수도 있겠지만.’
같은 길드 소속의 조장들을 떠올리던 왕뢰화가 생각을 털고 앞에 집중했다.
그곳에는 가방을 뒤적거리며 실실 웃고 있는 소성환이 있었다.
“흐하하. 햐. 이것 참 신기하단 말이야. 뭘 주나 했더니…… 우리 형은 참 신기한 걸 많이도 들고 다녀요.”
“……?”
가방의 입구 쪽에서 어떠한 무기의 손잡이가 튀어나왔다.
단검…….
그런 느낌이 아니었다.
천천히 모습을 드러내는 그것은 도저히 저런 자그마한 가방에서는 튀어나올 수 없는 흉측한 것이었다.
“잔혹한 바이킹, 소성환이 명한다. 나와라. 슈퍼 울트라 자이언트 액스.”
제 몸보다 큰 도끼 하나가 가방에서 빠져나왔다.
큰 소리로 웃으며 거대한 도끼를 제 어깨에 기댄 소성환이 크게 웃으며 말했다.
“닌 뒤졌다!”
“……이런 미친!”
황혼의 전투 1조장이 허핑 길드의 전투 4조장을 향해 달려들었다.
* * *
“……뭔가 이상한데.”
마켓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피어오르는 거대한 마나의 흐름.
당연히 마켓에서 그런 습격을 강행했던 놈들과 같은 패거리일 줄 알았다.
그렇기에 이놈들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이곳을 향해 달려온 것이었고.
막다른 골목. 그곳에 있는 한쪽 벽에서 푸른색의 연기가 미칠 듯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다른 벽돌과는 약간 모양이 다른 곳. 그곳 중에서도 7시 방향에 있는 작은 점에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그러고 있기를 잠시.
“씁…….”
손가락 끝에 정전기가 통하더니, 막다른 벽이 작게 열리며 이내 지하로 향하는 계단이 나타났다.
‘이건…….’
부산 한복판에 이런 게 숨겨져 있었다고?
그것도 마켓 근처에?
안쪽으로 들어가자마자 어째서 그토록 마나의 연기가 피어올랐는지 알 수 있었다.
“성자님. 이곳은 위험합니다.”
진지한 표정의 루비가 내 앞에 자리 잡았다. 무슨 용도일까.
많은 전자기기들이 있었지만, 그것들은 어떠한 날카로운 것에 전부 잘려 나가 있었다.
하나같이…….
‘지나치게 깔끔해.’
검. 혹은 그에 비견될 정도로 예리한 무언가. 더욱 안쪽으로 들어갔다.
이런 곳이라면 분명히 사람도 있을 거 같은데.
‘왜 아무도 없을까.’
그리고 꽤나 깊숙한 곳까지 들어왔을 때.
처음으로 누군가를 발견했다.
“성자님. 뒤로 물러나세요!”
로브로 온몸을 가리고 있는 수수께끼의 인물.
저 사람이 이곳을 이렇게 만든 건가?
“더 이상. 그 누구도. 저, 루비 앞에서 성자님을 노리는 것은 용납하지 못합니다!”
흥분한 루비가 그 자를 보며 크게 외쳤다.
흠칫.
그 말을 들은 로브 차림의 상대방이 당황한 듯 몸을 떤다.
저 사람이 우리를 공격한 것도 아니고, 아직 우리가 겪었던 습격과 연관이 있는지도 모른다.
내게 가해진 위협으로 인해 루비는 지나치게 흥분해 있었다.
말릴 새도 없이 그녀의 몸이 쇄도했다.
파앙!
순식간에 상대방의 앞에 도달한 루비가 손에 들린 철퇴를 횡으로 휘둘렀다.
“……!”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상대방의 몸이 완전히 뒤로 젖혀지며 그 공격을 피해냈다.
루비는 경로를 변경해서 재차 철퇴를 휘둘렀지만, 상대방은 계속해서 몸을 틀어 공격을 회피할 뿐이었다.
‘…….’
아무리 흥분하고 있다곤 하지만, 그 루비의 공격을 저런 식으로 피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 줄은 몰랐는데…….
“루비야. 그만해!”
지나친 집중으로 인해 내 말이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상대방은 그런 루비가 휘두르는 철퇴를 피하기만 하고, 별다른 공격은 하지 않았다.
저자에게서는 우리를 공격할 의도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당장 내 눈에도 미래시는 단 한 번도 발동되지 않았으니까.
“다시는, 다시는!”
점점 빨라지던 루비의 철퇴가 상대방의 왼쪽 팔을 타격했다.
“루비의 성자님에게 손을 대고자 하는 것들은 전부 용서하지 않을 것입니다!”
“……큭!”
가시투성이의 철퇴에 팔을 가리고 있던 로브가 찢겨져 나갔다.
로브의 천과 함께 무언가가 허공에 흩날린다.
“……!”
그것을 다급하게 반대쪽 손으로 가리며, 로브를 입은 의문의 인물이 내 뒤쪽을 향해 재빠르게 도주하기 시작했다.
“…….”
도망가기 위해서는 당연히 출구 방향에 있는 나를 배제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상대방은 전혀 그럴 생각이 없다는 듯, 아니, 그러고 싶지 않다는 듯 빈틈이 가득한 몸놀림으로 도망칠 뿐이었다.
나 또한 굳이 막지 않았다.
이윽고 내 옆을 스쳐 지나갔고, 어딘가 낯익은 복숭아 향기가 코끝에 맴돌았다.
“어디를 도망가는……!”
“루비야. 그만. 괜찮으니까.”
“성자님, 하지만……!”
“일단 저 애들부터 어떻게 하자.”
방금까지 치열한 공방으로 인해 보지 못했지만, 구석에 어린아이 다섯 명이 기절한 채로 쓰러져 있었다.
하나같이 몸 상태가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어린아이들의 입에 물약을 한 모금씩 먹이고 있자니 방금 보았던 어떠한 장면이 떠올랐다.
찢어진 로브.
그곳에서 익숙한 은빛의 털이 반짝이고 있었다.
“히잉…….”
애초에 아까는 민감하게 반응했던 순둥이가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은 것도 이해가 갔다.
휴대전화를 꺼냈다.
이곳의 정리를 위해서 마켓 쪽에 연락을 취한 후, 사진을 모아 놓은 앨범에 들어갔다.
사진을 찍는 것이 취미라고 했지만, 앨범에 사진이 많지는 않았다.
내가 알게 된 인연들과 엉뚱한 제자들.
그리고 이제는 확실하게 친하다고 말할 수 있는 내 몇 안 되는 친구, 이유지.
다소 우스꽝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는 그녀의 사진을 눌렀고.
“하아…… 넌 뭘 하고 다니는 거냐.”
정확히 내가 있는 곳에서 반짝이고 있는 이유지의 위치 정보를 보며 한숨을 푹 쉬었다.
* * *
우리가 묵고 있던 호텔 앞에서 기다리고 있자니, 멀리서도 알아차릴 정도로 불만 가득한 표정을 짓고 있는 소성환이 터벅터벅 걸어왔다.
“역시 소성환 조장님이에요. 잡았습니까?”
“아니, 놓쳤어.”
“……무슨 온갖 폼은 다 잡고 가더니, 그렇게 당당하게 말하고 있어요?”
“아니, 분명 다 잡아놨는데, 그 비겁한 새끼가 냅다 튀어버리잖아!”
쾅!
그러면서 제 어깨에 메고 있던 도끼를 바닥에 내려놓는다.
“……그걸 여기까지 들고 온 거예요?”
“그럼 어디다 놓는데.”
“다시 가방에 넣으면 되잖아요.”
“아. 그런 방법이 있었구나. 역시 형이야.”
가방 속에 자신의 애병기를 넣으며 오오-거리는 소성환을 보자니 헛웃음이 나온다.
저런 흉측한 걸 들고 왔으니, 체포라도 당하지 않은 게 다행이리라.
지금 마켓 쪽에 난리가 나서 그냥 넘어간 거지…….
마켓에서 확인한 결과.
테러범들의 신상은 파악할 수 없었다.
그 일대에 있던 CCTV들도 하나같이 먹통이 되어 있었고.
우발적인 게 아니라, 계획된 테러였다는 것이다.
‘테러라고 하기에도 그런가.’
다른 곳은 눈속임을 위한 것이고, 정말로 노리려던 것은 나 하나일 수도 있다.
……열성팬이라도 되는 건가?
내가 소중하게 여긴 물건을 가져가고 싶은 마음은 이해한다만, 저런 식의 행동은 좀 아니지.
마켓에서의 경매가 끝나고 며칠은 더 묵을 생각이었지만, 이제는 그러기가 애매해졌다.
소성환도 그 사실을 알고 있는지 울상을 짓고 있었지만, 어쩔 수 없다.
“일단 오늘은 자고 내일 바로 올라갑시다.”
“……그래. 그러자. 그 자식 때문에 피곤해 죽겠다.”
방으로 돌아가자마자 쓰러질 것 같이 피곤했다.
당장에 호텔 근처에도 투숙객의 안전을 위해서 각성자들이 경계를 서고 있으니 잠은 잘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방으로 들어가려 하자, 뒤에서 누군가가 내 옷을 꽉 붙잡았다.
돌아보자, 진지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는 루비가 있었다.
“성자님의 안전을 위해서, 저 루비는 지금부터 단 한 순간이라도 성자님에게서 떨어질 수 없습니다.”
“엉? 그건 괜찮을 거야. 밖에서 경계도 서고 있고, 여차하면 내가 있으니까.”
“절대로. 절대로. 떨어질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제가 말하지 않았습니까.”
루비가 고요한 눈동자로 소성환을 바라보았다.
“절대로 떨어지지 않겠다고.”
“……그, 그래.”
그 눈빛을 견디지 못한 소성환이 고개를 재빠르게 끄덕였다.
“성자님은 이쪽입니다.”
루비가 내 손을 잡았다.
어디에서 이런 힘이 나오는 걸까.
절대로 놓치지 않겠다는 듯 꽉 쥐어 잡은 손의 부드러운 감촉을 느끼며 소성환에게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조장. 안녕히 주무세요.”
“……그래.”
문을 닫는 소성환은 아까 보았던 것보다 더 큰 울상을 짓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