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tion is flowing from the water purifier in my house RAW novel - Chapter 99
우리집 정수기에서 물약이 흐른다 100화
29. 과거를 마주하는 방법(2)
“아이씨…… 지금 이럴 때가 아닌데…….”
공아 일보의 김본규는 자신을 이곳으로 보낸 선배를 생각하며 인상을 구겼다.
그는 이틀 전에 있던 그 충격적인 발표를 떠올렸다.
신체 강화의 영단.
허핑 길드의 그 기적과도 같은 물건이 공개되면서 세상은 전부 그들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평범한 사람도 각성자처럼 행동할 수 있지 않을까.
그들이 만들어 낸 영단은 이제껏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던 환상적인 것이었다.
‘신성 길드에서 만들었던 그런 음료수랑은 비교도 안 되지.’
물론 마석병의 치료제인 세이크리드 스트로베리 또한 대단한 물건이었지만, 이것은 급이 달랐다.
평범한 사람들도 영화에서 보던 슈퍼 솔저처럼 만들어줄지 모를 것이었으니까.
“무슨 얘기를 하려는 걸까?”
“새로 나타난 던전에 관한 내용 아니야?”
“세이크리드 스트로베리에 관한 신제품 발표일지도 몰라.”
간단한 발표를 하기 위한 기자 회견.
신성 길드에서 그렇게 말했기에, 그 누구도 특별한 기대는 하지 않았다.
‘아마도 모든 주목이 허핑 길드 쪽으로 향하니 조금이라도 시선을 돌리려고 이런 기자 회견을 연 것이겠지.’
다른 동료 기자들은 영단에 관한 기사를 끊임없이 써 내리고 있을 텐데, 자기는 왜 이런 곳에 있는 건지…….
그러한 불만을 가지며 구시렁거리고 있을 때, 누군가 강당에 나타났다.
“신성 길드장이다!”
“빨리 찍어!”
지금 모든 사람들의 관심이 허핑 길드 쪽으로 향해 있다고는 하지만, 그전까지만 해도 가장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던 사람은 신성 길드장, 이서진이다.
그동안 베일에 싸여 있던 만큼, 등장과 동시에 파격적인 행보를 보여주는 인물이다.
김본규 또한 반사적으로 그의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길드장쯤 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관리라도 열심히 받는 걸까.
도저히 평범한 20대 중반으로는 보이지 않을 탄탄한 몸과 곱상한 외모를 보고 있자니, 샘이 났다.
‘누구는 이러고 있는데, 누구는 젊은 나이에 대형 길드의 수장 자리를 꿰차고 있구나.’
“안녕하십니까. 신성 길드장, 이서진입니다.”
묘한 흥분이 섞여 있던 강당이 그 한마디에 단번에 가라앉았다.
자신이 방금까지 하고 있던 불경한 생각이 사라질 정도로 마음이 편해지게 하는 부드러운 목소리다.
‘……역시 신성 길드장은 뭐라도 다르다 이건가?’
신성 길드장이 단상에 오르자 본격적인 기자회견이 시작되었다.
“신성 길드장님, 오늘 발표하신다는 게 뭡니까?”
“이번에 신성 길드에서 새로 던전을 공략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세이크리드 스트로베리의 신제품에 관한 발표입니까?”
단순한 발표라고 했기 때문일까, 기자들은 평범한 질문들을 하고 있었다.
김본규가 그 틈에서 손을 들었다.
“신성 길드장님, 중국의 한 길드에서 이제껏 본 적 없던 물품을 세상에 공개하게 됐는데, 혹시 그에 관해 한 말씀 해주실 수 있으십니까?”
그가 뱉은 질문에 근처에 있는 기자들이 쌍심지를 켰다.
그러나 김본규는 자신의 질문을 철회할 생각이 없었다.
‘이곳에 오게 된 이상 확실한 기삿거리라도 하나 챙겨가야 할 것 아니야.’
주변에서도 눈을 부라리고 있긴 하지만, 다른 말은 나오지 않는다.
저놈들도 궁금할 것이다. 과연 대한민국에 한 번 기적을 일으킨 신성의 길드장이 그 영단에 관해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있을지.
“기자분?”
“예. 공아 일보 김본규 기자입니다.”
“방금 전에 말씀하신 게 혹시 ‘신체 강화의 영단’에 관한 것이 맞으신가요?”
“예, 그렇습니다. 허핑 길드에서 공개한 ‘신체 강화의 영단’입니다. 혹시 그에 관한 의견을 말씀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
이런 질문은 그냥 넘어갈 줄 알았는데, 의외로 덤덤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타 길드에서 그런 위대한 업적을 행한 것이 그렇게 기쁜 일은 아닐 텐데도.
신성 길드장이 반응하자, 모든 기자들의 관심이 그쪽으로 쏠렸다.
더 이상 신성 길드에서 한다고 했던 ‘가벼운 발표’ 같은 것을 신경 쓰고 있는 사람은 없었다.
“아주 대단한 성과더라고요. 그 어떤 길드에서도 쉽사리 따라 하지 못할 위대한 업적이기도 하고요.”
지극히 모범적인 답안이다.
지금 그 어떤 길드에서도 허핑 길드의 흠을 잡는 곳은 없을 것이다.
그들이 만들었다는 그 영단을 얻기 위해 계약을 맺길 바랄 테니까.
‘하지만 이런 건 기삿거리가 되지 않지.’
“신성 길드에서 또한 독자적으로 개발한 ‘성수’를 이용해서 마석병의 치료제를 만든 전적이 있지 않습니까.”
“예, 그렇죠.”
“따로 성수에 관한 공개를 하지 않고 계시는데, 허핑 길드 측에서는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영단을 판매할 의향이 있다고 밝혔습니다. 혹시 신성 길드에서 또한 그런 계획은 없으신지 여쭙고 싶습니다.”
다시 한번 주변이 고요해진다.
지금 그는 묻고 있는 것이다.
저쪽 길드에서는 이런 대단한 물건을 만들고 판매까지 생각하고 있다는데, 너희들은 가만히 있을 생각인가?
마치 허핑 길드와 싸움을 부추기기라도 하는 듯한 그 발언에, 입구에 서 있던 경비원이 그를 제지하기 위해 움직였다.
신성 길드장은 손을 들어 경비원을 멈춰 세웠다.
이런 무례한 질문을 받았는데도 그의 얼굴에는 불쾌함이 드러나지 않았다.
오히려 이제까지와는 다른 작은 미소가 띠어 있을 뿐이었다.
‘……웃는다?’
“그렇죠. 그런 위대한 물건을 만들고, 또한 그것을 세상에 내놓기까지는 엄청난 고민을 해야 했을 겁니다.”
미소는 점점 짙어진다.
“제가 여러분들을 이곳으로 부른 것 또한 그 때문이기도 합니다.”
“뭐?!”
“그게 사실입니까?”
드디어 제대로 된 게 터졌다.
신성 길드 또한 허핑 길드의 발표에 자극받아 무언가를 공개하려 하고 있었다.
‘성수인가?’
그것만으로도 대박이었다.
“혹시 신성 길드에서 제작하고 있는 성수의 판매에 대한 것입니까?”
“아뇨. 그건 아닙니다.”
이서진의 말에 김본규가 노골적으로 실망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긴, 그 어떤 게 나와봤자 허핑 길드가 내민 것은 이길 수 없겠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단상 위에 있는 이서진의 입이 재차 열렸다.
별것 아닌 것을 이야기하듯이,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던전과 균열이 지구에 나타난 이후, 인류의 과학은 무궁한 발전을 이루어왔습니다.”
“어?”
신성 길드장이 뱉은 그 말에 기자들이 강당이 혼란에 빠졌다.
“이건…….”
“허핑 길드장이 하던…….”
“……영단의 발표를 하면서 했던 말이잖아?”
그렇다.
이틀 전에 허핑 길드장이 영단을 발표하면서 직접 했던 말이다.
현재 명언이라도 되듯이 텔레비전에서 계속 흘러나오고 있는 말이기도 했다.
신성 길드장의 입은 멈추질 않았다.
마치 재방송이라도 하듯이 그가 했던 말들을 똑같이 얘기하고 있었다.
‘대체 왜 저러는 거지?’
이 강당에 있는 그 누구도 그의 의도를 알지 못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부터 인류의 과학은 한순간 진보할 것입니다.”
이윽고 허핑 길드장이 했던 말이 끝이 났다. 그와 동시에 이서진이 단상 위로 무언가를 올려놓았다.
각성자쯤 되면 흔히 볼 수 있는 물건이다.
물약을 담는 전용 용기.
하지만 그 안에 들어 있는 액체의 색깔이 이상했다.
“노란색……?”
“보라색……?”
처음 보는 그 낯선 색깔들에 기자들이 질문했다.
“그, 그것은 무엇입니까?”
“물약입니다.”
이서진은 자신을 찍고 있는 무수한 카메라들을 둘러보고, 그를 지켜보고 있는 수많은 기자들을 훑어보았다.
흠칫.
방금까지 공격적인 질문을 하고 있던 기자 한 명이 몸을 떤다.
피식.
일부러 저런 노골적인 사람들이 이곳에 참여할 수 있게 손을 써뒀다.
원래 무언가를 말하기 위해서는 불을 지펴줄 사람도 필요했으니까.
“오늘 저는 어떤 한 위대한 물건을 발표하기 위해 이 자리에 왔습니다.”
허핑 길드장.
네가 그 영단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돈을 부었고, 얼마만큼의 시간을 들였으며, 어떤 더러운 짓을 해왔는지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신체 강화의 물약입니다.”
네가 어떤 걸 만들었던 우리 집 정수기에서 흐르는 물보다도 못할 테니까.
* * *
각성자들이 신체를 강화하기 위한 방법으론 여러 가지가 있다.
당연히 본신의 노력 자체가 중요했지만, 개인마다 한계라는 것이 있었으니까.
그들은 그것을 외적인 요소에서 채우려고 한다.
선택지 자체는 많지 않다.
보스급 마물의 사체에서 극악의 확률로 나타나는 환을 먹든가.
그들의 사체로 만든 장비를 착용하든가.
어느 쪽이든 쉽게 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던 와중에 중국의 허핑 길드에서 어떠한 물건을 발표했다.
단순히 먹는 것만으로 일정 시간 동안 신체가 강화된다.
말 그대로 속도가 빨라지거나 힘 자체가 강해지는 것이었다.
그들이 말하는 ‘약간의 부작용’은 신경 쓰지 않았다.
이미 저것만으로도 혁신이라고 부를 만한 발명품이었으니까.
분명히 그들이 ‘신체 강화의 영단’에 관해서 발표를 하던 어제까지는 그랬다.
“뭐?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린데?!”
“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일단은 진위 확인에 들어가고 있습니다만…….”
타 경쟁사의 제품을 벤치마킹하는 경우는 많다.
미리 정보를 파악하고, 발표 시기에 맞춰서 경쟁 업체 것보다 좋은 물건을 시장에 내놓는 경우 또한 전략 중 하나다.
하지만 이것은 그동안 세상에 드러난 적 없는 종류의 물건이다.
섭취하는 것만으로 신체를 강화하는 마법 같은 영단.
쉽사리 따라 할 수도 없으며, 이렇게 단 며칠의 간격을 두고 발표할 만한 것도 아니었다.
“……신체를 강화하는 영단이 확실한 건가?”
“예. 그들이 말하기로는 영단이 아니라, 물약이라고 하는 것 같지만요. 효과 자체는 허핑에서 발표한 것과 똑같았…… 아니, 훨씬 좋았습니다.”
허핑 길드와의 거래를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던 각 나라의 길드들은 갑작스럽게 일어난 이 발표에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다.
마치 허핑 길드를 저격이라도 하는 듯이 노골적인 공개였다.
“이게 가능한 건가……?”
훨씬 더 좋은 효능.
없다시피 한 부작용.
마치 지금까지는 숨겨두고 있던 것처럼 완벽한 물건이다.
의문을 가질 여유 같은 건 없었다.
그들이 할 것이라곤 이미 정해져 있었다.
“절대로 놓치지 마. 신성 길드와 어떻게든 계약을 맺어.”
세계적으로 신성 길드의 이름이 널리 퍼지고 있을 때, 미국에 있는 한 길드에서도 그런 소식을 전해 듣고 있었다.
“킥. 신체 강화의 물약이라. 우리가 만들고 있던 건 어떻게 됐지?”
“사용자의 몸에 심한 부담을 주기에 그 부분에 관한 보완을 서두르고 있습니다.”
“아직 완성은 멀었다는 거구만?”
“예, 그렇습니다.”
책상을 톡톡 두드리며 재밌다는 듯 눈앞에 보이는 영상을 시청하고 있는 남성.
신체를 강화하는 비약.
중국만이 아니라, 각 나라에 있는 길드에서 암암리에 진행 중이던 작업이다.
자신의 길드 또한 천문학적인 비용을 투자하고 있는 분야이기도 했다.
당연히 그 어떤 나라를 뒤져보아도 자신들보다 먼저 약을 완성할 곳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허핑 길드 쪽에서 먼저 선수를 치긴 했지만.’
부작용 자체를 생각하지 않고 급하게 발표한 것이다.
최초는 될 수 있을지언정 완벽하지는 않았기에, 나중에 자신들이 완성한 물건을 공개하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선수를 친 곳이 있었다.
“효과도 우리 것보다 훨씬 좋다는 것 같고.”
“예. 그들이 말하기로는 그렇습니다만, 아마 사실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부작용 자체도 아예 없다고 하고.”
“자연스럽게 수반 되는 탈력 증상 또한 없다고 하더군요.”
“핫. 그게 말이 돼?”
아니, 뭐 말이 안 되는 건 아니지.
자신의 앞에 놓인 진한 붉은색의 물약을 보면서 그가 눈을 좁혔다.
“신성 길드라고 했지?”
“예. 그쪽과 접촉하기 위해 방한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래? 내가 직접 가도록 하지, 뭐.”
“부 길드장님이 직접 말입니까?”
자신의 비서를 밖으로 내보낸 그가 유리병의 뚜껑을 열었다.
바닥에 쏟아지는 순도 100% 물약의 화려한 자태를 보며 피식 웃는다.
“재밌는 방법을 사용하네.”
신성 길드.
세간에서 수없이 떠들고 있는 곳이었지만, 그는 달리 생각했다.
이것을 만든 진짜 주인은 따로 있다고.
“정해연, 그년이 이런 걸 만들고 아무런 말도 안 했다, 이거지?”
그가 한쪽 입꼬리를 들어 올리며 바닥에 흩뿌려진 물약을 짓밟았다.
마치 누군가의 머리가 떠오르는 기분 나쁜 색이다.
“뭐, 가끔은 여동생을 직접 보러 가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테니까. 영광인 줄 알라고.”
미국 랭킹 2위, 프론티어(frontier) 길드의 부길드장, 에이든 버틀러가 작게 조소했다.
* * *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예. 애초에 제가 독점할 생각 같은 것도 없었거든요.”
이번 일을 진행하면서 가장 우려했던 건 정해연이었다.
그녀와 나는 계약으로 얽힌 인연이다.
나는 물약을 공급하고, 그녀는 물약을 팔고.
그것이 없었더라면 정해연과의 인연은 여기까지 이어지지 않았겠지.
이번에 신체 강화의 물약을 세상에 공개하게 된다면, 내가 납품하던 물약들은 완전히 황혼의 손을 벗어나게 될 것이다.
애초에 신성 길드가 있는 이상, 굳이 그녀를 통해서 판매를 할 필요가 없었으니까.
“애초에 제가 말씀드렸잖아요, 서진 씨.”
정말로 아무렇지 않다는 듯 정해연이 싱긋 웃었다.
“서진 씨가 원하신다면 언제든지 계약을 파기할 수 있다고요.”
그 당시 받았던 불공정 계약서를 떠올리니 웃음이 나왔다.
정해연의 타오를 듯 붉은 머리카락이 살랑거린다.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저 머리 색은 정해연을 아주 잘 표현해 주고 있다.
매사에 열정적인 그녀다.
그것은 자신이 아닌, 나와 관련된 일에도 그랬다.
“거기다가, 이제는 조금 질렸거든요.”
“뭐가요?”
“저 자신만의 무언가를 쌓아 올리는 것에 집착하는 거요.”
정해연이 살짝 눈을 좁히고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혹시 계약이 없어졌다고 해서, 저 무시하고 그러는 건 아니죠?”
“그럴 리가요. 어때요, 좀 이따 시간 있어요? 간단하게 커피라도 한잔해요.”
“후훗. 좋아요.”
우리 둘이 사이좋게 얘기를 나누고 있을 때, 방호복을 벗은 박명훈이 다가왔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코를 막았다.
“쓰읍. 아무래도 나 혼자서는 힘들 것 같은데.”
박명훈이 저렇게 약한 소리를 하는 건 처음이다.
“제가 도와드릴까요?”
“아니, 애초에 이쪽은 내 전문이 아니라서 말이야.”
허핑 길드에게 엿을 줄 것이라면 확실하게 주기로 했다.
그것은 영단뿐만이 아니라, 나를 노리던 자객들이 입고 있던 방어구 또한 그랬다.
흔히 볼 수 없는 내구력을 가지고 있는 강화복이다.
이왕지사 이것도 우리가 업그레이드해서 사용해 준다면 아주 좋아 죽을 테니까.
“꼭 해야 하나?”
“예. 할 거면 확실하게 하고 싶어서요.”
“……쯧. 그렇다면 그놈한테 의뢰하는 게 빠를 것 같구만.”
“그놈이요?”
박명훈이 내키지 않는다는 듯 얼굴을 구기며 말했다.
“스미스. 그놈 말일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