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ous Beverage RAW novel - Chapter 10
정도마신 9화
사완악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걱정 마, 난 사부들 안 죽여.”
“멍청한 놈.”
어느새 침착해진 사마소가 씹어뱉듯 한마디를 내뱉었다.
“내가 널 헛가르쳤구나. 그런 생각이라면 조용히 강호로 나가서 돌아오지 않는 편이 좋았을 터. 네가 오늘 이곳에서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을 것 같으냐?”
사완악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지요. 내가 사부들을 모릅니까? 만약 그냥 돌아오지 않는다면 사부들이 무슨 짓이든 꾸며서 날 잡으러 올지도 모르죠. 특히 사마 사부는 잔머리가 보통이 아니니까. 당분간 아무 짓도 꾸미지 못하게 해야지.”
잔머리?
아니, 그보다 당분간 아무 짓도 꾸미지 못하게 한다니?
그 말뜻은…….
사마소의 눈이 불을 뿜었다.
“네놈이 정말 죽고 싶은 게로구나.”
“난 사부들이 뿌듯해할 줄 알았다고. 사대악인을 배신하다니, 첫 악행부터 아주 화려하잖아.”
사완악은 여전히 장난기 섞인 표정 그대로였다.
사마소가 염라대사 영환에게 말했다.
“보고만 있을 생각인가?”
“그럴 리가.”
이미 염화신공을 극성으로 끌어올린 염라대사 영환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미쳐 날뛰는 망둥이에겐 매가 약이지.”
구득소가 뒤에서 외쳤다.
“조심해라! 이놈, 내공을 빼앗아 가는 것 같다!”
“봤다.”
영환 대사는 별다른 흔들림이 없었다.
사완악이 구득소의 내공을 흡수하는 광경을 보았음에도 별 상관없다는 듯한 태도였다.
오히려 사완악의 얼굴에 처음으로 긴장의 빛이 떠올랐다.
‘이런, 이 정도인 줄은 몰랐는데?’
다르다.
같은 칠대고수지만 확실히 염라대사와 잔혹신풍은 격이 달랐다.
단순한 내공의 차이가 아니다.
기세의 차이.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짓누를 듯한 기세가 염라대사의 몸에서 뿜어져 나왔다.
“어리석은 녀석.”
씁쓸한 한마디와 함께 영환 대사는 가볍게 일장을 뻗어 냈다. 그러나 그 안에 담긴 기운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쾅!
한 번의 폭음.
‘이제 시작이군.’
사완악은 이를 악물었다.
파신마장은 서서히 몰아치는 파도와 같은 무공이다.
처음에는 느릿하지만 중후하게, 그러나 파도의 물결처럼 뒤로 갈수록 더욱 빠르고 강맹한 장력이 밀려온다.
쾅, 쾅, 쾅!
파파파팡!
사완악과 염라대사 영환.
두 사람은 마치 다리가 땅에 뿌리를 내린 듯, 제자리에 굳건히 서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은 채 계속해서 파신마장의 초식들을 쏟아 내기 시작했다.
쾅쾅쾅쾅!
장풍과 장풍이 격돌하며 폭음이 진동했다.
“제법!”
염라대사 영환은 감탄사를 터뜨리며 더욱 맹렬하게 사완악을 몰아붙였다.
하지만 사완악 또한 질세라 내공을 끌어올리며 무식할 정도로 강맹한 장법을 뿜어내는 것이 아닌가?
염라대사 영환은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내심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놈이 그동안 무공의 성취를 숨기고 있었구나!’
사완악의 파신마장은 아직 숙련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던 염라대사 영환이었다.
그러나 아니었다.
사완악이 펼치는 파신마장은 영환 대사 자신과 비교해도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
더구나 사완악의 파신마장을 뒷받침하고 있는 내공.
다른 건 몰라도 내공의 심후함만큼은 사완악이 염라대사를 능가할 수 없어야 정상이었다.
사대악인에게 이 갑자의 내공을 물려받은 걸 감안해도 염라대사보다는 부족했다.
한데 지금 사완악의 장법에서 느껴지는 기운은 결코 그렇지가 않았다.
‘구가 놈의 내공이 더해져서인가!’
구득소가 영환 대사에 비해 약하다고 하지만 명색이 칠대고수다. 일신에 지닌 내공이 적을 리 없다는 뜻이다.
그런 구득소의 내공을 얼마나 빨아들였는지, 염라대사 영환조차 사완악의 장력이 부담스럽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에잇!”
굳건히 서 있던 사완악이 짜증 섞인 기합을 내지르며 영환 대사의 장력을 쳐 내고 공중제비를 돌며 신형을 움직였다.
휙, 휙!
사완악이 서 있던 자리에 강철 판관필이 허공을 갈랐다. 신천마뇌 사마소가 갑작스럽게 뛰어들었던 것이다.
염라대사 영환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천하의 염라대사가 합공(合攻)이라니?
그것도 새파란 제자를 상대로!
“사마소! 물러나라!”
“시끄럽다! 빨리 이놈을 제압해야 한다.”
영환 대사와 달리 사마소는 개의치 않았다.
지금 그는 감히 자신을 배신한 사완악을 가만두지 않겠다는 일념만으로 가득 차 있는 듯했다.
염라대사 영환은 주먹을 꽉 쥐었지만 사마소의 뜻을 따르기로 했다.
콰콰콰!
쒜에엑!
영환 대사의 장풍이 날아오고, 사마소의 판관필이 온몸의 혈도를 독사(毒蛇)처럼 노려 온다.
‘하, 생각보다 장난 아닌데?’
사완악은 진땀을 흘리며 두 사람의 공격을 쳐 내기에 급급했다. 구득소의 내공을 빨아들이고 나면 충분히 염라대사 영환을 제압할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착각이었다.
자신이 무공을 감추었던 것처럼, 염라대사 영환도 지금껏 그의 실력을 제대로 드러낸 적이 없었다.
게다가 언제나 사대악인 중 최약체를 자처했던 사마소의 무공도 장난이 아니었다.
저 판관필에 혈도를 한 번 찍히는 날에는 군림혼혈공이 얼마나 무서운 수법인지 뼈저리게 느낄 수 있을 것이었다.
‘내공이 조금 더 필요해.’
사완악의 눈에 한쪽에서 운기조식을 하고 있는 구득소의 모습이 들어왔다.
사완악의 신형은 한 줄기 빛이 되어 그대로 구득소에게 날아갔다.
“이런!”
“구득소! 피해라!”
사완악의 속셈을 알아차린 영환 대사와 사마소가 다급히 외쳤다.
그러나 사완악이 펼친 것은 다름 아닌 천하제일의 경신술 승광신법이었다.
두 사람의 말이 제대로 끝나기도 전에 사완악의 몸은 이미 구득소 앞에 당도해 있었다.
사완악은 재빨리 구득소의 등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때였다.
“헉!”
갑작스럽게 자신의 명치를 찔러 오는 검 하나.
그것은 실로 쾌속무비(快速無比)하면서도 수많은 변화를 담고 있는 괴랄(怪辣)한 초식이었다.
‘환요옥영검(幻妖玉詠劍)!’
사완악은 헛바람을 들이켜며 몸을 있는 힘껏 비틀었다.
파앗!
사완악의 무복이 잘려 나가며 붉은 실금 하나가 그의 가슴팍에 얕게 그어졌다.
“휴…….”
사완악은 자신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방금의 일격은 실로 예상하지 못한 것이어서, 만약 사완악 본인이 익힌 검 초식이 아니었다면 결코 피해 내지 못했을 것이었다.
사완악은 자신의 앞을 슬픈 눈으로 가로막은 요희요검 채보령을 바라봤다.
“역시, 괜히 검마후의 검법이 아니야.”
채보령은 치기 어린 아들을 달래듯 말했다.
“아들, 도대체 왜 이런 선택을 하는 거니?”
사완악은 그녀를 가만히 응시하며 말했다.
“사부들은 날 이용하기 위해 키웠고, 나는 이용당하기 싫어하는 놈으로 자란 것뿐이야.”
채보령의 표정이 더욱 서글퍼졌다.
“그래도 널 사랑하는 마음은 진짜란다.”
사완악은 그 말을 듣는 순간 그동안 채보령과의 추억이 눈앞에 그려지듯 나타났다.
‘어머니, 오늘 어머니랑 수련은 쉬면 안 돼요? 영환 사부가 너무 힘들게 했단 말이에요.’
‘호호, 그러렴. 오늘은 재밌는 이야기나 하면서 쉬자.’
‘재밌는 얘기요?’
‘그래. 엄마가 강호에서 겪었던 일들을 말해 줄게.’
사완악은 그녀와의 기억들이 떠오르자 마음 한편이 헛헛해졌다.
만약…….
“어머니, 만약 방금 탈정미혼공을 사용하지 않았더라면 더 좋았을 거야.”
“호호! 역시 너에게는 통하지 않는구나!”
채보령과의 추억이 환영처럼 보였던 것은 그녀가 탈정미혼공의 섭혼술을 사용했던 것이었다.
사완악은 그녀가 굳이 두 사람의 가장 소중한 추억을 이용한 것이 씁쓸했다.
“말 안 듣는 아들은 혼을 내 줘야지!”
채보령의 얼굴은 더 이상 자애로운 어머니의 얼굴이 아니었다.
그녀의 검이 일곱 개의 환영을 만들어 내며 날아왔다.
사완악은 예상했다는 듯 오히려 그녀의 검영(劍影)을 향해 뛰어들었다.
채챙!
사완악이 정권을 힘껏 내찌르자 일곱 개의 검영은 유리가 깨지듯 모두 사라졌다. 그러자 채보령의 신형이 땅에 꺼지듯 엎드렸다가 다시 용이 승천하듯 사완악의 목을 향해 검을 찔러 넣었다.
‘환룡승천(幻龍昇天)!’
그것은 실로 예상할 수 없는 초식이어서, 만약 이 무공에 처음 당하는 사람이라면 속절없이 목젖에 커다란 구멍이 뚫리고 말았을 것이다.
다만, 사완악은 누구보다 이 검법에 정통하지 않은가.
사완악은 승광신법의 돌풍충소(突風衝溯)를 발휘했다.
휘리리리!
사완악의 신형이 제자리에서 회오리처럼 몸을 회전하며 공중으로 순식간에 오 장 높이까지 솟구쳤고, 채보령의 검은 허공을 꿰뚫었다.
사완악은 공중에서 그녀를 향해 일장을 내질렀다. 그러자 채보령은 검을 황급히 휘둘러 장풍을 갈라 냈다.
“큭!”
구득소의 내공을 흡수한 사완악의 파신마장의 위력은 이미 염라대사 영환을 능가하는 것.
요희요검 채보령은 십여 걸음을 물러나고서야 사완악의 장력을 모두 해소할 수 있었다. 그녀는 머리가 모두 풀어헤쳐지고 창백해진 낯빛으로 무섭게 사완악을 쏘아보았다.
“정말 끝까지 이럴 생각이니?”
공중에서 뒷짐을 진 채 서서히 하강(下降)한 사완악은 여전히 개구쟁이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응. 끝까지 이럴 생각인데?”
“이 녀석……!”
“내가 더 재밌는 거 말해 줄까요, 사부들?”
사대악인의 얼굴에 의아함이 떠올랐다.
지금도 충분히 예상하지 못한 상황인데 또 저 소악마(小惡魔) 같은 아이가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일까?
“내가 생각을 해 봤어. 그래도 사부들이 길러 준 은혜가 있으니까. 비록 사부들의 부탁은 들어주지 않더라도 사부들이 천기자에게 체면은 서도록 제대로 된 악인이 되어야겠다고 말이야.”
사대악인은 계속 말해 보라는 듯 사완악을 바라봤다.
“그런데 좋은 생각이 떠올랐어.”
운기조식을 어느 정도 마친 구득소가 힘없는 얼굴로, 하지만 너무 궁금해 죽겠다는 듯 물었다.
“그게 무엇이냐?”
사완악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안 해.”
“……?”
“아무것도 안 한다고, 사부들이 원하는 악행 같은 거. 날 길러 준 사부들의 은혜를 완전히 배신해서 천기자한테 체면도 안 서게 만드는 거지. 천기자는 비웃겠지, 사대악인이 고작 그 정도였다고. 어때? 제법 근사하지 않아?”
사대악인은 순간 사완악이 했던 한마디를 떠올렸다.
‘전 이미 사부들조차 소름 끼치다고 할 만큼 엄청난 악행을 준비해 놓았으니까요.’
그게 이런 뜻이었단 말인가?
염라대사 영환은 참지 못하고 소리를 버럭 질렀다.
“내 오늘 너를 때려죽이지 못하면 죽어서도 눈을 감지 못할 게다!”
“뭐야, 사부의 사부도 죽이더니 제자까지 죽이려는…….”
사완악은 말을 끝마치지 못하고 급히 내공을 끌어올렸다. 영환 대사가 분을 참지 못하고 전광석화같이 다가와 연거푸 주먹을 내질렀던 것이다.
타타탓! 파파팟!
두 사람의 손이 육안으로는 따라가기 어려울 만큼 빠르게 부딪치며 수십 개의 그림자를 만들어 냈다.
순식간에 오십여 합이 오고 갔을 때였다.
염라대사 영환이 벼락같이 강맹한 일장을 뻗어 내자 사완악도 같은 초식으로 맞섰다.
쾅!
두 사람은 동시에 약속이라도 한 듯 뒤로 물러서며 조금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