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ous Beverage RAW novel - Chapter 100
정도마신 99화
설린은 순간 이상한 기분에 휩싸였다.
지금까지 그녀는 현종을 만나 매우 반가웠다.
비록 현종과 사완악 사이만큼은 아닐지라도 두 사람은 오랜만에 만난 친구 같았고, 설린은 더없이 마음의 편안함을 느끼며 오랜만에 진심으로 웃을 수 있었다.
또한 모든 힘을 쏟아부은 비무 역시 그녀의 지난 일 년 동안의 외로움과 고독함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었던 즐거운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녀를 잡아 주고 걱정해 주는 현종의 눈빛에서, 설린은 기이한 느낌을 받았다.
그 눈빛은 따뜻하고 자상했지만, 깊은 곳에서 어떤 강렬한 빛이 일렁이는 듯했다.
그것은 스님이나 친구 사이에서 나올 수 있는 눈빛이 아니라, 마치 사랑하는 사람을 바라보는 듯한…….
‘내가 또 무슨 말도 안 되는 생각을.’
설린은 퍼뜩 정신을 차리며 자세를 바로잡았다.
“괜찮아요. 감사합니다.”
현종의 넓은 어깨와 단단한 팔의 온기가 허리에 남아 있기 때문일까?
설린의 하얀 얼굴은 민망함으로 조금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현종은 그런 설린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말했다.
“실력이 많이 느셨군요.”
“많이 부족하죠?”
“아닙니다.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뛰어난 검술이었습니다. 다만…….”
현종이 잠시 말끝을 흐렸다.
설린은 현종이 자신에게 가르쳐 주고 싶은 것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말했다.
“편하게 말씀해 주세요.”
현종은 살짝 고개를 끄덕인 후 말했다.
“아시겠지만 정유검법은 후발제인의 검법입니다. 상대의 공격을 받아 내고 그 허점을 노려 반격하는 검법이지요.”
“맞아요. 사 공자님께 그렇게 배웠어요.”
“하지만 후발제인의 무공에도 선공(先攻)을 가하는 초식은 있어야 하는 법입니다. 그래야 상대의 허점을 더 크게 만들 수도 있고, 혹은 위기의 순간 누군가를 구할 수도 있겠지요. 물론 정유검법에도 그런 초식이 하나 정도 있는 듯하지만…… 그 위력이 너무 약하여 공격이라기보다는 상대에게 예의를 보이는 수준입니다. 과거 설영충 대협의 정유검법에는 분명히 그런 초식이 있었을 것입니다. 후대로 전해지며 소실된 것이겠지요. 완악은 그런 말을 하지 않았습니까?”
현종의 말은 노골적인 면이 있었으나, 설린은 그것이 오히려 좋았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사 공자님도 그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지만, 자신이 공격 초식을 만들면 정유검법이 가진 색깔에서 크게 어긋날 것 같다며 더 이상 손보지 않으셨어요.”
현종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말했다.
“괜찮으시다면 세 가지 초식 정도를 만들어 드릴까 합니다만, 어떻습니까?”
설린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세 가지 초식이요?”
“꼭 정유검법에 포함시키실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설 문주님 개인적으로 익혀 둔다면 필시 강호에서 무슨 일이 생겼을 때 도움이 되실 겁니다.”
“물론이죠. 현종 스님이 알려 주시는 초식이라면 강호의 모든 무인들이 천금을 주고서라도 얻고 싶어 할 텐데요.”
현종이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과찬이십니다. 음…… 잠시 검을 빌려주시겠습니까?”
설린은 얼른 현종에게 검을 넘겼다.
현종은 검을 들어 허공에 몇 차례 휘두르고는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가, 다시 허공에 검을 휘두르기를 서너 번 반복했다.
그러고는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됐습니다. 한 번 보여 드리겠습니다.”
현종은 검을 들어 하나의 자세를 취했다.
이때 설린의 눈에는 이채가 흘렀다.
어쩐지 현종의 자세가 설린이 취했던 정유검법의 기본자세와 비슷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현종의 검이 허공에 그어졌을 때, 설린의 놀람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이건……!”
현종이 보여 준 세 개의 초식.
그것은 정말 정유검법의 본래 초식이라고 해도 전혀 위화감이 없을 정도로 정유검법의 느낌이 묻어 있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그 공격은 매우 강맹하고 날카로워서 보는 것만으로도 감탄이 흘러나오고 가슴이 서늘해지는 느낌이었다.
첫 번째 초식은 연달아 몰아치는 질풍 같았고, 두 번째 초식은 여러 명의 적을 휩쓸 듯 사방을 모두 공격했으며, 세 번째 초식은 태산을 무너뜨릴 것 같은 힘이 느껴졌다.
설린은 이 세 가지 초식이 자신에게 향한다면, 어느 것 하나도 막거나 피할 수 있는 방도가 떠오르지 않았다.
‘시작은 정유검법처럼 유려하지만, 끝은 소림사의 무공처럼 웅장하고 강대하다.’
설린은 이 같은 느낌에 현종에게 물었다.
“혹시 이 초식들은 소림사의 무공인가요?”
현종이 말했다.
“눈썰미가 좋으시군요. 이 세 가지 초식은 본래 달마검법의 초식들입니다.”
설린이 깜짝 놀라 현종을 쳐다봤다.
달마삼검이라면 그녀도 알고 있었다.
소림사에는 검법이 몇 가지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소림사의 검법이 다른 절학들에 비해 부족한 것은 절대 아니었다.
특히 달마검법은 소림사의 조사 달마가 창안했다고 알려진 검법이었다.
“달마검법의 초식을 어찌 제가 배울 수 있겠어요? 마음은 감사하지만 감히 그럴 수 없는 일입니다. 소림사에서 알게 된다면 저는 둘째 치고 현종 스님도 크게 곤란해지실 거예요.”
그러자 현종이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소림사에서 제 직분은 그 정도 권한은 있습니다. 그리고 달마검법을 그대로 가르쳐 드린 것이 아니라 정유검법에 맞게 수정한 것이니 크게 상관없습니다. 어차피 강호에 소림 무공의 영향을 받은 무공을 꼽자면 수를 헤아리기 어려운 일이지요.”
“그건 그렇지만…….”
설린은 현종의 말에 마음이 혹했다.
그만큼 현종이 보여 준 세 개의 초식은 정유검법의 약점을 완벽하게 메워주는 것이었다.
“걱정이 크신 것 같으니 그럼 제가 사형을 만나 뵙고 확실히 허락을 받고 오겠습니다. 그럼 괜찮으시겠습니까?”
설린의 얼굴이 한층 밝아졌다.
그렇다면 마음에 거리낄 것이 없었고, 불감청이언정고소원이었다.
“그렇게까지 마음 써 주시니 뭐라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아닙니다. 다시 생각해 보니 저 역시 그렇게 하는 것이 편할 것 같습니다. 그럼 오늘은 사형을 뵙고, 내일 이 시간에 다시 오도록 하겠습니다.”
“아, 잠시만요. 이건 이제 돌려 드릴게요.”
설린은 품에서 하나의 염주를 꺼내 내밀었다.
푸른색과 적갈색이 섞여 있는 염주알에, 금색의 작은 부처 조각상이 달린 염주.
현종이 예전에 설린에게 빌려 주었던 구천항마호신불(九天降魔護身佛)이었다.
설린은 이 염주 덕분에 사완악의 점혈을 스스로 풀어낼 수 있었고, 사완악의 폭주를 막을 수 있었다.
“이 염주는 정말 신통하더군요. 너무 과분한 보물이라 어서 돌려드려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현종이 기분 좋은 얼굴로 답했다.
“도움이 되셨나 보군요. 다행입니다. 그렇다면 계속 지니고 계십시오.”
“예?”
“저에게는 아직 필요가 없으니 말입니다.”
현종은 설린이 무슨 말을 하기 전에 다시 말했다.
“설 문주님. 완악이 다시 강호로 나오게 된다면, 앞으로 저희는 무슨 일을 경험할지 알 수 없습니다. 제가 설 문주님에게 검술을 가르쳐 드리고, 그 호신불을 빌려 드리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입니다. 지금은 서로 예의를 차리기보다 준비를 해야 하는 시기입니다.”
준비를 해야 하는 시기.
그 말에 설린은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그녀는 잠시 후, 겨우 입을 열었다.
“현종 스님은 정말…… 너무 많은 것을 베풀어 주시네요.”
현종은 말없이 설린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완악도, 설 문주님도, 제게는 소중한 친구니까요.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현종은 그렇게 말한 뒤 경공을 펼쳐 순식간에 사라졌다.
설린은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홀로 중얼거렸다.
“소중한 친구…… 맞아요. 제게도 현종 스님은 가장 고맙고 소중한 친구입니다.”
* * *
섬서성의 성도(省都), 서안(西安).
섬서성 문화의 중심지인 이곳은 중원에서 서역으로 무역을 위해 떠나는 출발지였고, 그만큼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모이며 복잡하기 이를 데 없는 도시였다.
그 서안에서도 가장 사람이 많고 여러 장사치들이 몰리기로 유명한 시장에서, 열 살 정도로 보이는 소년 하나가 당과 가게의 진열대 앞에 서 있었다.
진열대의 당과는 진한 갈색에 설탕과 꿀이 배어 있어 매우 달짝지근해 보였고, 소년은 침을 꿀꺽 삼키며 그것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소년의 뒤에서 하나의 음성이 들려왔다.
“저 당과를 먹고 싶으냐?”
소년이 뒤를 돌아보니 키가 작고 인자한 얼굴의 한 노인이 서 있었다.
소년은 노인의 미소에 고개를 끄덕였다.
“부모님은 어디 가시고?”
“모르겠어요.”
“모른다고?”
“처음에는 손을 잡고 있었는데, 어떤 아저씨한테 밀려 넘어졌거든요. 그런데 일어나보니 엄마가 사라졌어요. 그래서 계속 이 자리에 있는 거예요. 만약 길을 잃으면 그 자리에 가만히 있으라고 하셨거든요.”
노인은 아이가 부모를 잃어버렸다는 것을 알고는 혀를 찼다.
“쯧쯧, 조심했어야지. 그래서 여기에서 계속 저 당과만 바라보고 있었구나.”
“네.”
“그래도 똑똑하구나. 엄마가 해 준 말을 잘 지키고 있고. 잠깐만, 기다려라.”
노인은 가게의 주인에게 돈을 주고 당과 다섯 개를 사 왔다.
“하나 먹어라.”
소년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노인을 쳐다봤다.
“정말 먹어도 돼요?”
“그럼. 이깟 당과가 얼마나 한다고.”
“감사합니다!”
소년은 꾸벅 인사를 하고는 당과를 한 입 먹더니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맛있냐?”
“예! 정말 맛있어요. 감사합니다, 할아버지.”
“맛있다니 기분 좋구나. 너 나이가 몇 살이냐?”
소년은 씩씩하게 대답했다.
“열 살입니다.”
“열 살?”
노인은 한 번 되묻고는 소년을 위아래로 훑어봤다.
“밥은 먹었냐?”
“아니요. 아직이요.”
“배가 고프겠구나.”
“네.”
“그럼 이 할아비를 따라오지 않으련? 내가 맛있는 걸 사 주마.”
“예? 하지만…… 안 돼요. 엄마가 절대 다른 곳으로 가지 말랬어요.”
망설이면서도 의지를 굽히지 않는 소년.
노인이 웃으며 말했다.
“똘똘한 녀석이구나. 하지만 지금까지 네 엄마가 오지 않은 것을 보니 너를 어디서 잃어버렸는지 모르는 게다. 그럼 밥은 나중에 먹고, 이 할아비랑 같이 엄마를 찾아보자.”
“음…….”
소년이 잠시 생각에 잠기자 노인이 손을 내밀었다.
“할아버지 손을 꼭 잡고 따라와라. 아까처럼 놓치지 말고.”
소년은 노인의 얼굴을 다시 보았다.
선한 웃음과 따뜻한 표정. 도저히 나쁜 사람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었다.
그리고 빨리 엄마를 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 노인의 손을 꼭 잡았다.
“엄마랑 어느 방향에서 왔었는지 기억하느냐?”
“네, 저쪽이요.”
“그래, 그럼 처음 왔던 곳으로 돌아가자. 엄마도 아마 그곳부터 찾으러 올 테니.”
“네!”
손을 잡은 노인과 소년은 그렇게 함께 걸어갔다.
그리고 이때, 당과 가게 맞은편의 객잔에서 밥을 먹고 있던 한 일행이 있었다.
일행은 모두 다섯 명이었고, 그중 한 중년인이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사 공자님, 왜 안 드십니까?”
중년인은 바로 사령문의 일귀령, 만사무였고, 밖에서는 사완악의 명령대로 지존 대신 공자라는 호칭을 쓰고 있었다. 그리고 만사무와 함께 있는 묵영과 천화, 가종후 역시 의아한 얼굴로 사완악을 바라봤다.
그들은 사완악이 음식 앞에서 식사 대신 다른 생각에 잠겨 있는 것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완악은 창밖에 시선을 고정한 채, 말했다.
“저 노인, 이상하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