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ous Beverage RAW novel - Chapter 103
정도마신 102화
사완악은 여인과 소년이 떠나고 식사를 하는 동안 아무 말도 없이 어떤 생각에 잠겨 있었다.
사령문의 수하들, 네 명의 귀령들은 그의 치를 보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사완악이 말했다.
“그래, 초심을 잃고 있었네.”
만사무가 사완악에게 물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사완악은 십 년 묵은 체증이 내려간 사람처럼 편안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지난 일 년 간, 나는 천기자와 그 제자들을 어떻게 찾아내야 할지 깊게 고민했었다.”
귀령들은 이미 사완악에게 천기자와 얽힌 이야기를 어느 정도 들은 상태였다.
그것은 사완악이 그만큼 네 사람을 신뢰하게 되었다는 방증이기도 했다.
“사실 그들이 숨고자 마음먹는다면 찾아내는 일이 쉽지는 않으니까.”
“한 가지 방법이 있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래. 하지만 그것 역시 그리 신통한 방법은 아니거든.”
천기자에 관한 것은 사령문의 서고에서도 어떤 기록을 찾을 수 없었다.
아무리 오성이 뛰어나고 잔꾀가 많은 사완악이지만, 아무런 단서조차 없이 천기자를 만날 수 있는 뾰족한 수단은 생각나지 않았다.
하지만 조금 전, 여인과 소년을 구해 주고 그들이 감사해하는 모습에서 사완악은 한 가지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저 힘이 부족했을 뿐, 충분히 잘 하고 있었는데 말이야.”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천기자는 나를 악인으로 만들고 싶어 했고, 나는 그래서 오히려 협객이 되고 있었지. 그런데 생각해 보면 결국 그로 인해 천기자의 제자들이 하나둘씩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느냐?”
차근차근 설명해 주는 사완악.
만사무가 가장 먼저 그의 말을 이해하고는 물었다.
“그럼 다시 강호에서 협객의 명성을 쌓겠다는 말씀입니까?”
“그래.”
천화가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공자님. 그때와 지금은 상황이 조금 다르지 않을까요? 공자님의 행적이 알려지는 순간, 정도맹의 무인들이 득달같이 달려들 거예요.”
사완악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내가 왜 그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예?”
“단순히 협객의 명성만 쌓을 수는 없지. 내 방식은 받은 대로 돌려주는 거니까.”
사완악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나를 악인으로 만들려고 한다면…… 반대로 그들을 악인으로 만들어야겠다.”
* * *
하남성(河南城)의 서쪽, 황하의 남쪽 해안과 낙하의 북쪽 해안에 위치한 낙양(洛陽).
이곳은 주(周)나라의 수도가 된 이래로, 동주(東周), 동한(東漢), 조위(曹魏), 서진(西晉), 북위(北魏), 수(隨), 당(唐), 후량(後梁), 후당(後唐)까지 아홉 개의 왕조가 도읍지로 정하여 구조고도(九朝古都)라고 불리는 도시였다.
그만큼 예술과 문화가 꽃피우고, 날씨까지 따뜻하여 중원에서 가장 평화로운 도시라고 볼 수 있는 지역이 낙양이었다.
또한 무림의 태산북두라 불리는 소림사가 있는 숭산(嵩山)과도 가까워, 정파의 무인들이 많이 드나드는 장소기도 했다.
그 낙양의 외곽에는 왕청위라는 부호가 살고 있는 장원이 있었다.
왕청위는 활동적인 사람은 아니었지만 이따금씩 가난한 사람들에게 구호 식량을 나눠 주어 평판이 매우 좋은 사람이었다.
어느 날 밤, 그 왕청위의 장원에 한 사내가 귀신같은 신법으로 담을 넘어 나타났다.
그런데 사내는 도둑이라고 보기에는 너무나 당당한 발걸음으로 성큼성큼 걸어 장원 중앙에 있는 큰 전각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더욱 놀라운 점은 전각 안에는 열 명의 사람들이 자리에 앉아 있었고, 그들의 전신에서는 하나같이 폭발할 듯한 기세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십 인의 고수들은 사내가 나타날 것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자리에서 일어나야 한다는 것 자체에 불만을 가진 듯했고, 매우 못마땅한 얼굴로 사내를 주시하고 있었다.
“오셨습니까?”
먼저 입을 연 것은 바로 이 장원의 주인, 왕청위였다.
왕청위는 평범한 체구에 시체처럼 창백한 낯빛, 마른 얼굴에 마치 유생처럼 차분하고 지적인 인상을 지닌 중년인이었고, 오직 그만은 다른 사람들과 달리 담담한 표정이었다.
놀랍게도 그는, 약 일 년 전 숭산 소림사에 잠입하여 눈앞의 사내에게 한 권의 비밀스러운 무공 비급을 건넸던 그 사람이었다.
사내는 열 명의 고수들을 쭉 훑어보고는 가벼운 웃음을 터뜨렸다.
“내가 오늘 시험에 통과하지 못한다면 너희들은 나를 살려 보낼 생각이 없을 텐데. 겨우 열 명으로 나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왕청위가 눈에 이채를 띠며 사내를 쳐다봤다.
사내는 이곳이 용담호혈이라는 것을 알고도 찾아왔고, 태도는 매우 자신만만했다.
그렇다는 것은……
‘정말 그분이 맞는다는 것인가?’
이때 열 명의 사람들 중 한 노인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당신이 그 무공을 익히지 못했다면, 우리 중 한 사람을 감당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사내는 그 노인을 힐끗 쳐다본 후 왕청위에게 고개를 돌려 물었다.
“저 노인은 누구지?”
왕청위는 고개를 살짝 숙이며 대답했다.
“그분은 본교 칠대마가(七大魔家) 중 혼원마가(混元魔家)의 가주님이십니다.”
왕청위의 말은 놀라웠다.
칠대마가는 바로 마교의 십대마공 중 한 가지씩을 이어받은 일곱 개의 가문이었다.
그렇다면 이 평화로운 낙양 땅의 장원에 모인 이들이, 모두 마교의 고수들이란 말인가?
사내는 마교의 내부 사정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듯 물었다.
“중요한 인물인가?”
“물론입니다. 칠대마가는 본교 힘의 오 할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무공 실력은?”
“칠대마가의 가주님들은 모두 본교에서 삼십 위 안에 드는 강자 분들입니다.”
“호오.”
사내는 흥미롭다는 듯 노인을 다시 한번 바라보고는 나직이 말했다.
“그럼 아주 적당하겠군.”
열 명의 사람들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사내는 무엇이 적당하다고 말하는 것일까?
그러나 다음 순간, 그들의 의아한 얼굴은 경악으로 바뀌었다.
돌연 사내의 신형이 공간을 뛰어넘은 듯 노인의 바로 옆에 나타나더니 노인의 뒷목을 움켜쥐고 그대로 들어 올려 땅에 내리꽂은 것이다.
“크윽!”
노인의 입에서 한 가닥 고통스러운 신음이 흘러나왔다.
그는 위기의 순간 내공으로 몸을 보호해 크게 다치지는 않았지만, 무려 혼원마가의 가주인 그가 속수무책으로 당했다는 것은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이 진정으로 놀란 이유는 그것 때문이 아니었다.
“이놈이 감히!”
혼원마가의 가주 양인섭은 분노에 찬 음성을 내뱉다가 온몸이 돌처럼 굳어졌다.
그 역시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눈을 부릅뜨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으며, 심지어 몸을 덜덜 떨기까지 했다.
“이, 이 기운은……!”
마공을 익힌 자들의 마음속에 본능적인 두려움과 경외심을 갖게 하는 기운.
마치 모든 어둠을 다 집어삼킬 것 같은 그 기운은 천하에 오직 하나뿐이었다.
바로 마교의 교주만이 익힐 수 있다는 천마신공(天魔神功)이었다.
열 명의 마교 고수들은 일제히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었다.
왕청위가 모두를 대표하여 말했다.
“연성에 성공하셨군요. 감축 드립니다.”
사내는 고개를 미미하게 끄덕였다.
“과연 훌륭한 신공이다.”
“그분은 어떻게 되셨습니까?”
“현종 말이냐?”
“예.”
사내의 얼굴에 여유로운 웃음이 떠올랐다.
“그는 전혀 눈치를 채지 못했다.”
“다행이군요.”
“그럼 이제 내가 마교의 교주가 될 자격이 있는 것인가?”
“물론입니다. 천마동으로 모시겠습니다. 그곳에서 천마신공의 후반부 구결을 모두 체득하신다면, 곧바로 교주님의 즉위식을 열겠습니다.”
사내는 처음에 자신에게 코웃음을 쳤던 노인을 바라보며 말했다.
“혼원마가의 가주도 그때는 날 인정하겠지?”
혼원마가의 가주, 양인섭은 몸을 사시나무처럼 떨며 말했다.
“제가 감히 존귀하신 분을 알아보지 못했나이다. 용서하시옵소서.”
사내가 웃음을 터뜨렸다.
“나는 그리 속 좁은 사람이 아니다. 단지 확실한 힘을 보여 주어야 너희들도 갑자기 나타난 나를 인정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 뿐이니 오늘 일은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아도 좋다.”
“가, 감사합니다.”
사내는 왕청위에게 물었다.
“천마동에 들어가 실패한 사례도 있었나?”
왕청위가 잠시 생각하더니 천천히 설명했다.
“천마동에 들어가셨던 선대는 모두 열아홉 분이었습니다. 그중 세 분만이 천마신공을 완성하셨습니다. 사대 교주에 오르셨던 검마후를 포함하여 후대에는 아무도 천마동을 통과하지 못했습니다.”
열아홉 명 중 단 세 명.
그들도 분명히 사내처럼 천마신공의 전반부를 완성했을 것이고, 사내보다 마공에 있어서 더 풍부한 지식을 갖고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열아홉 명 중 열여섯 명이 천마동에서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는 것은, 사내라 할지라도 결코 성공을 장담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사내는 오히려 미소를 지으며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나의 그릇을 시험해 볼 수 있는 곳이라…… 재밌구나.”
“제가 함께 들어가 마교에 관한 여러 가지를 말씀드리고, 도와드리겠습니다.”
“좋다, 그곳으로 인도해라.”
* * *
정도맹의 밤은 언제나 평화롭고 고요했다.
그 적막한 공기를 한 여인의 검이 부드러우면서도 예리하게 가르고 있었다.
쉬익! 쉬익!
그녀는 바로 정유문의 오대 문주, 설린이었다.
그녀는 오직 검술에만 몰입하여 무아지경에 빠져 있었고, 검술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렇게 반 시진 정도 지났을까?
“후우…….”
설린은 마침내 깊게 심호흡을 하며 검을 멈추었다.
‘이제 현종 스님께 배운 세 초식이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설린은 모처럼 기분 좋은 미소를 짓다가 이내 다시 우울한 눈빛이 되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밤하늘의 별빛은 쏟아질 것처럼 반짝였으나, 그녀의 마음에는 아무런 위로가 되지 못했다.
‘사 공자님은 여전히 아무 소식이 없구나. 무사히 계신지만 알 수 있어도 좋으련만.’
그런데 그때였다.
짝짝짝짝!
별안간 설린이 무공 수련을 하고 있는 마당 한편에서 박수 소리와 함께 한 음성이 들려왔다.
“청초한 미녀의 월하검무(月下劍舞)는 아름답기 그지없군.”
그 순간, 설린은 심장이 내려앉을 만큼 깜짝 놀랐다.
아무런 인기척도 느끼지 못해서가 아니었다.
가볍고 명랑하면서 장난기 가득한 그 음성.
설린은 태어나서 가장 빠른 속도로 뒤를 돌아보았고, 그녀의 눈에는 곧바로 눈물이 맺혔다.
백의장삼을 입고 있는 곱상한 얼굴의 청년.
바로 사완악이 그녀의 눈앞에 서 있었다.
“사 공자님……!”
사완악은 특유의 악동 같은 미소를 씩 지으며 다가왔다.
“잘 지냈어?”
설린은 눈물을 닦아 내며 말했다.
“제가 꿈을 꾸고 있는 건 아니겠죠?”
사완악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여전히 순수하군. 꿈이 이렇게 생생할 리 없잖아?”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설린의 눈동자에는 다시 한번 물기가 가득해져 있었다.
사완악은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물었다.
“검술이 많이 늘었던데?”